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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장이란 애시당초에 글러서 해는 아직 중천에 있건만 장판은 벌써 쓸쓸하고 더운 햇발이 벌려 놓은 전휘장 밑으로 등줄기를 훅훅 볶는다. 마을 사람들은 거의 돌아간 뒤요, 팔리지 못한 나무꾼패가 길거리에 궁싯거리고들 있으나 석유병이나 받고 고깃마리나 사면 족할 이 축들을 바라고 언제까지든지 버티고 있을 법은 없다. 칩칩스럽게 날아드는 파리떼도 장난꾼 각다귀들도 귀찮다. 얼금뱅이요 왼손잡이인 드팀전의 허생원은 기어이 동업의 조선달을 나꾸어 보았다.

"그만 거둘까 ? "

"잘 생각했네. 봉평 장에서 한번이나 흐뭇하게 사본 일 있었을까. 내일 대화 장에서나 한몫 벌어야겠네."

"오늘밤은 밤을 새서 걸어야 될걸."

"달이 뜨렷다."

절렁절렁 소리를 내며 조선달이 그날 번 돈을 따지는 것을 보고, 허 생원은 말뚝에서 넓은 휘장을 걷고 벌려 놓았던 물건을 거두기 시작하였다. 무명 필과 주단 바리가 두 고리짝에 꼭 찼다. 멍석 위에는 천 조 각이 어수선하게 남았다.

다른 축들도 벌써 거의 전들을 걷고 있었다. 약빠르게 떠나는 패도 있었다. 어물장수도 땜장 이도 엿장수도 생강장수도 꼴들이 보이지 않 았다. 내일은 진부와 대화에 장이 선다. 축들은 그 어느쪽 으로든지 밤 을 새며 육칠십 리 밤길을 타박거리지 않으면 안 된다. 장판은 잔치 뒤 마당같 이 어 수선하게 벌어지고 술집에서는 싸움이 터져 있었다. 주정 꾼 욕지거리에 섞여 계집의 앙칼 진 목 소리가 찢어졌다. 장날 저녁은 정 해 놓고 계집의 고함 소리로 시작되는 것이다.

"생원,시침을 떼두 다 아네. --- 충주집 말야."

계집 목소리로 문득 생각난 듯이 조선달은 비죽이 웃는다.

"화중지병이지. 연소패들을 적수로 하구야 대거리가 돼야 말이지."

"그렇지두 않을 걸. 축들이 사족을 못 쓰는 것두 사실은 사실이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두 왜 그 동이 말일세. 감쪽같이 충주집을 후린 눈치거든."

"무어 그 애숭이가? 물건 가지고 낚았나부지. 착실한 녀석인 줄 알았더니."

"그 길만은 알 수 있나...... 궁리 말구 가보세나그려. 내 한턱 씀세."

그다지 마음이 당기지 않는 것을 쫓아갔다. 허생원은 계집과는 연분이 멀었다. 얼금뱅이 상판을 쳐들고 대어설 숫기도 없었으나, 계집 편에서 정을 보낸 적도 없었고, 쓸쓸하고 뒤틀린 반생이었다. 충주집을 생각만 하여 도 철없이 얼굴이 붉어지고 발밑이 떨리고 그 자리에 소스라쳐 버린다. 충주집 문을 들어서 술 좌석에서 짜장 동이를 만났을 때에는 어찌된 서슬엔지 발끈 화가 나 버렸다. 상위에 붉은 얼굴 을 쳐들고 제법 계집과 농탕치는 것을 보고서야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녀석이 제법 난질군인데 꼴 사납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낮부터 술 처먹고 계집과 농탕이야. 장돌뱅이 망신만 시키고 돌아다니누나. 그 꼴에 우리들과 한몫 보자는 셈이지. 동이 앞에 막아서면서부터 책망이었다. 걱정두 팔자요 하는 듯이 빤히 쳐다보는 상기된 눈망울에 부딪칠 때 결김에 따귀를 하나 갈겨주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동이도 화를 쓰고 팩하게 일어서기는 하였으나, 허생원은 조금도 동색하는 법 없이 마음먹은 대로는 다 지껄였다 --- 어디서 주워먹은 선머슴인지는 모르겠으나, 네게도 아비 어미 있겠지. 그 사나운 꼴 보면 맘 좋겠다. 장사란 탐탁하게 해야 되지. 계집이 다 무어야. 나가거라 냉큼 꼴치워.

그러나 한마디도 대거리하지 않고 하염없이 나가는 꼴을 보려니 도리어 측은히 여겨졌다. 아직도 서름서름한 사인데 너무 과하지 않았을까 하고 마음이 섬짓해졌다. 주제도 넘지, 같은 술 손님이면서도 아무리 젊다고 자식 낫세 되는 것을 붙들고 치고 닦아 세울 것은 무어야 원. 충주집은 입술을 쫑긋하고 술 붓는 솜씨도 거칠었으나, 젊은애들한테는 그것이 약이 된다고 하고 그 자리는 조선달이 얼버무려 넘겼다. 너 녀석한테 반했지? 애숭이를 빨면 죄된다. 한참 법석을 친 후이다. 담도 생긴 데다가 웬일인지 흠뻑 취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서 허생원은 주는 술잔이면 거의 다 들이켰다. 거나해짐을 따라 계집의 생각보다도 동이의 뒷일이 한결같이 궁금해졌다. 내 꼴에 계집을 가로채서는 어떡할 작정이었누, 하고 어리석은 꼬락서니를 모질게 책망하는 마음도 한 편에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얼마나 지난 뒤인지 동이가 헐레벌떡거리며 황급히 부르러 왔을 때에는 마시던 잔을 그 자리에 던지고 정신 없이 허덕이며 충주집을 뛰어나간 것이었다.

"생원 당나귀가 바를 끊구 야단이에요."

"각다귀들 장난이지 필연코."

짐승도 짐승이려니와 동이의 마음씨가 가슴을 울렸다. 뒤를 따라 장판을 달음질하려니 거슴츠레 한 눈이 뜨거워질 것 같으다.

"부락스런 녀석들이라 어쩌는 수 있어야죠."

"나귀를 몹시 구는 녀석들은 그냥 두지 않을걸."

반평생을 같이 지내온 짐승이었다. 같은 주막에서 잠자고 달빛에 젖으면서 장에서 장으로 걸어 다니는 동안에 이십 년의 세월이 사람과 짐승을 함께 늙게 하였다. 가스러진 목뒤 털은 주인의 머리털과도 같이 바스러지고, 개진개진 젖은 눈은 주인의 눈과 같이 눈곱을 흘렸다. 몽당비처럼 짧게 슬리운 꼬리는 파리를 쫓으려고 기껏 휘저어 보아야 벌써 다리까지는 닿지 않았다. 닳아 없어진 굽을 몇 번이나 도려내고 새 철을 신겼는지 모른다. 굽은 벌써 더 자라나기는 틀렸고 닳아버린 철 사이로는 피가 빼짓이 흘렀다. 냄새만 맡고도 주인을 분간하였다. 호소하는 목소리로 야단스럽게 울며 반겨한다.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목덜미를 어루만져 주니 나귀는 코를 벌름거리고 입을 투르르거렸다. 콧물이 튀었다. 허생원은 짐승 때문에 속도 무던히는 썩였다. 아이들의 장난이 심한 눈치여서 땀배인 몸뚱어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좀체 흥분이 식지 않는 모양이었다. 굴레가 벗어지고 안장도 떨어졌다. 요 몹쓸 자식들, 하고 허생원은 호령을 하였으나 패들은 벌써 줄행랑을 논 뒤요. 몇 남지 않은 아이들이 호령에 놀래 비슬비슬 멀어졌다.

"우리들 장난이 아니우. 암놈을 보고 저 혼자 발광이지."

코홀리개 한 녀석이 멀리서 소리를 쳤다.

"고녀석 말투가."

"김첨지 당나귀가 가버리니까 온통 흙을 차고 거품을 홀리면서 미친 소같이 날뛰는걸. 꼴이 우스워 우리는 보고만 있었다우. 배를 좀 보지."

아이는 앵돌아진 투로 소리를 치며 깔깔 웃었다. 허생원은 모르는 결에 낯이 뜨거워졌다. 뭇 시선을 막으려고 그는 짐승의 배 앞을 가리워 서지 않으면 안되었다.

"늙은 주제에 암샘을 내는 셈야, 저놈의 짐승이. "

아이의 웃음 소리에 허생원은 주춤하면서 기어이 견딜 수 없어 채찍을 들더니 아이를 쫓았다.

"쫓으려거든 쫓아보지. 왼손잡이가 사람을 때려."

줄달음에 달아나는 각다귀에는 당하는 재주가 없었다. 왼손잡이는 아이 하나도 후릴 수 없다. 그만 채찍을 던졌다. 술기도 돌아 몸이 유난스럽게 화끈거렸다

"그만 떠나세. 녀석들과 어울리다가는 한이 없어. 장판의 각다귀들이란 어른보다도 더 무서운 것들인걸."

조선달과 동이는 각각 제 나귀에 안장을 얹고 짐을 싣기 시작하였다. 해가 꽤 많이 기울어진 모양이었다

드팀전 장돌이를 시작한 지 이십 년이나 되어도 허생원은 봉평장을 빼논 적은 드물었다. 충주. 제천 등의 이웃 군에도 가고, 멀리 영남 지방도 혜매이기는 하였으나, 강릉쯤에 물건 하러 가는 외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군내를 돌아다녔다. 닷새만큼씩의 장날에는 달보다도 확실하게 면에서 면으로 건너간다. 고향이 청주라고 자랑삼아 말하였으나 고향에 돌보러 간 일도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장에서 장으로 가는 길의 아름다운 강산이 그대로 그에게는 그리운 고향이었다. 반 날 동안이나 뚜벅뚜벅 걷고 장터 있는 마을에 거의 가까웠을 때, 지친 나귀가 한바탕 우렁차게 울면 --- 더구나 그것이 저녁녘이어서 등불들이 어둠 속에 깜박거릴 무렵이면, 늘 당하는 것이건만. 허생원은 변치 않고 언제든지 가슴이 뛰놀았다.

젊은 시절에는 알뜰하게 벌어 돈푼이나 모아본 적도 있기는 있었으나, 읍내에 백중이 열린 해 호탕스럽게 놀고 투전을 하고 하여 사흘 동안에 다 털어버렸다. 나귀까지 팔게 된 판이었으나, 애끓는 정분에 그것만은 이를 물고 단념하였다. 결국 도로아미타불로 장돌이를 다시 시작할 수 밖에는 없었다. 짐승을 데리고 읍내를 도망해 나왔을 때에는 너를 팔지 않기를 다행이었다고 길가에서 울면서 짐승의 등을 어루만졌던 것이다.

빚을 지기 시작하니 재산을 모을 염은 당초에 틀리고 간신히 입에 풀칠을 하러 장에서 장으로 돌아다니게 되었다.

호탕스럽게 놀았다고는 하여도 계집 하나 후려보지는 못하였다. 계집이란 쌀쌀하고 매정한 것이었다. 평생 인연이 없는 것이라고 신세가 서글퍼졌다. 일신에 가까운 것이라고는 언제나 변함없는 한 필의 당나귀였다.

그렇다고는 하여도 꼭 한번의 첫일을 잊을 수는 없었다. 뒤에도 처음에도 없는 단 한번의 괴이한 인연! 봉평에 다니기 시작한 젊은 시절의 일이었으나, 그것을 생각할 적만은 그도 산 보람을 느꼈다.

"달밤이었으나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는지 지금 생각해도 도무지 알 수 없어."

허생원은 오늘밤도 또 그 이야기를 끄집어내려는 것이다. 조선달은 친구가 된 이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그렇다고 싫증을 낼 수도 없었으나. 허생원은 시치미를 떼고 되풀이할 대로 되풀이하고야 말았다.

"달밤에는 그런 이야기가 격에 맞거든."

조선달 편을 바라는 보았으나 물론 미안해서가 아니라 달빛에 감동하여서였다.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뭇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팔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섰다. 방울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밀밭께로 흘러간다.

앞장선 허생원의 이야기 소리는 꽁무니에 선 동이에게는 확적히는 안 들렸으나, 그는 그대로 개운한 제멋에 적적하지는 않았다.

“장선 꼭 이런 날 밤이었네. 객주집 토방이란 무더워서 잠이 들어야지. 밤중은 돼서 혼자 일어나 개울가에 목욕하러 나갔지. 봉평은 지금이나 그제나 마찬가지지. 보이는 곳마다 메밀밭이어서 개울가가 어디 없이 하얀 꽃이야. 돌밭에 벗어도 좋을 것을 달이 너무도 밝은 까닭에 옷을 벗으러 물방앗간으로 들어가지 않았나. 이상한 일도 많지. 거기서 난데없는 성서방네 처녀와 마주 쳤단 말이야. 봉평서야 제일가는 일색이었지 --- 팔자에 있었나부지."

아무렴 하고 응답하면서 말머리는 아끼는 듯이 한참이나 담배를 빨 뿐이었다. 구수한 자줏빛 연기가 밤기운 속에 흘러서는 녹았다.

"날 기다린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달리 기다리는 놈팽이가 있는 것두 아니었네. 처녀는 울고 있단 말야. 짐작은 대고 있었으나 성서방네는 한창 어려워서 들고날 판인 때였지. 한 집안 일이니 딸에겐들 걱정이 없을 리 있겠나? 좋은 데만 있으면 시집도 보내련만 시집은 죽어도 싫다지. 그러나 처녀란 울 때같이 정을 끄는 때가 있을까. 처음에는 놀라기도 한 눈치였으나 걱정이 있을 때는 누그러지기도 쉬운 듯해서 이럭저럭 이야기가 되었네 --- 생각하면 무섭고도 기막힌 밤이었어.“

"제천인지로 줄행랑을 놓은 건 그 다음날이렷다."

"다음 장도막에는 벌써 온 집안이 사라진 뒤였네. 장판은 소문에 발끈 뒤집혀 고작해야 술집에 팔려가기가 상수라고 처녀의 뒷공론이 자자들 하단 말이야. 제천 장판을 몇 번이나 뒤졌겠나. 하나 처녀의 꼴은 꿩 궈먹은 자리야. 첫날밤이 마지막 밤이었지. 그때부터 봉평이 마음에 든것이 반평생을 두고 다니게 되었네. 평생인들 잊을 수 있겠나."

"수 좋았지. 그렇게 신통한 일이란 쉽지 않어. 항용 못난 것 얻어 새끼 낳고 걱정 늘고 생각만 해두 진저리 나지 --- 그러나 늘그막바지까지 장돌뱅이로 지내기도 힘드는 노릇 아닌가. 난 가을까지만 하구 이 생계와두 하직하려네. 대화쯤에 조그만 전방이나 하나 벌이구 식구들을 부르겠어. 사시 장천 뚜벅뚜벅 걷기란 여간이래야지."

"옛 처녀나 만나면 같이나 살까 --- 난 거꾸러질 때까지 이 길 걷고 저 달 볼 테야."

산길을 벗어나니 큰 길로 틔어졌다. 꽁무니의 동이도 앞으로 나서 나귀들은 가로 늘어섰다.

"총각두 젊것다 지금이 한창 시절이렷다. 충주집에서는 그만 실수를 해서 그 꼴이 되었으나 섧게 생각 말게."

“처, 천만에요. 되려 부끄러워요. 계집이란 지금 웬 제격인가요. 자나 깨나 어머니 생각뿐인 데요."

허생원의 이야기로 실심해 한 끝이라 동이의 어조는 한풀 수그러진 것이었다.

"아비 어미란 말에 가슴이 터지는 것도 같았으나 제겐 아버지가 없어요. 피붙이라고는 어머니 하나뿐인걸요."

"돌아가셨나 ? "당초부터 없어요."

"그런 법이 세상에......"

생월과 선달이 야단스럽게 껄껄들 웃으니, 동이는 정색하고 우길 수 밖에는 없었다.

"부끄러워서 말하지 않으려 했으나 정말예요. 제천 촌에서 달도 차지 않은 아이를 낳고 어머니는 집을 쫓겨났죠. 우스운 이야기나. 그러기 때문에 지금까지 아버지 얼굴도 본 적 없고, 있는 고장도 모르고지 내와요."

고개가 앞에 놓인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내렸다. 둔덕은 험하고 입을 벌리기도 대견하여 이야기는 한동안 끊겼다. 나귀는 건듯하면 미끄러졌다. 허생원은 숨이 차 몇 번이고 다리를 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고개를 넘을 때마다 나이가 알렸다. 동이 같은 젊은 축이 그지없이 부러웠다. 땀이 등을 한 바탕 쪽 씻어내렸다.

고개 너머는 바로 개울이었다. 장마에 흘러버린 널다리가 아직도 걸리지 않은 채로 있는 까닭에 벗고 건너야 되었다. 고의를 벗어 띠로 등에 얽어매고 반벌거숭이의 우스꽝스런 꼴로 물 속에 뛰어들었다. 금방 땀을 홀린 뒤였으나 밤 물은 뼈를 찔렀다.

"그래 대체 기르긴 누가 기르구 ? "

"어머니는 하는 수 없이 의부를 얻어가서 술장수를 시작했죠. 술이 고주래서 의부라고 전 망나니예요. 철들어서부터 맞기 시작한 것이 하룬들 편한 날 있었을까. 어머니는 말리다가 채이고 맞고 칼부림을 당하고 하니 집꼴이 무어겠소. 열여덟 살 때 집을 뛰쳐나와서부터 이 짓이죠."

“총각 낫세론 동이 무던하다고 생각했더니 듣고 보니 딱한 신세로군."

물은 깊어 허리까지 찼다. 속 물살도 어지간히 센데다가 발에 채이는 돌멩이도 미끄러워 금시에 훌칠 듯하였다. 나귀와 조선달은 재빨리 거의 건녔으나, 동이는 허생원을 붙드느라고 두 사람은 훨씬 떨어졌다.

"모친의 친정은 원래부터 제천이었던가?"

"웬걸요. 시원스리 말은 안 해주나 봉평이라는 것만은 들었죠."

"봉평? 그래 그 아비 성은 무엇이구?"

"알 수 있나요. 도무지 듣지를 못했으니까."

"그 그렇겠지"

하고 중얼거리며 흐려지는 눈을 까물까물하다가. 허생원은 경망하게도 발을 빗디뎠다. 앞으로 고꾸라지기가 바쁘게 몸째 풍덩 빠져 버렸다. 허비적거릴수록 몸을 걷잡을 수 없어 동이가 소리를 치며 가까이 왔을 때에는 벌써 퍽이나 흘렀었다. 옷째 쫄딱 젖으니 물에 젖은 개보다도 참혹한 꼴이었다.

동이는 물 속에서 어른을 해깝게 업을 수 있었다. 젖었다고는 하여도 여윈 몸이라 장정 등에는 오히려 가벼웠다

“이렇게까지 해서 안됐네. 내 오늘은 정신이 빠진 모양이야."

"염려하실 것 없어요."

"그래 모친은 아비를 찾지는 않는 눈치지?"

"늘 한번 만나고 싶다고는 하는데요."

"지금 어디 계신가?"

"의부와도 갈라져서 제천에 있죠. 가을에는 봉평에 모셔 오려고 생각 중인데요. 이를 물고 벌면 이럭저럭 살아갈 수 있겠죠."

"아무렴 기특한 생각이야. 가을이랬다?"

동이의 탐탁한 등어리가 뼈에 사무쳐 따뜻하다. 물을 다 건넜을 때에는 도리어 서글픈 생각에 좀더 업혔으면도 하였다.

"진종일 실수만 하니 웬일이오, 생원?"

조선달은 바라보며 기어이 웃음이 터졌다.

"나귀야. 나귀 생각하다 실족을 했어. 말 안 했던가. 저 꼴에 제법 새끼를 얻었단 말이지. 읍내 강릉집 피마에게 말일세. 귀를 쫑긋 세우고 달랑달랑 뛰는 것이 나귀 새끼같이 귀여운 것이 있을까. 그것보러 나는 일부러 읍내를 도는 때가 있다네."

"사람을 물에 빠치울 젠 딴은 대단한 나귀 새끼군."

허생원은 젖은 옷을 웬만큼 짜서 입었다. 이가 덜덜 갈리고 가슴이 떨리며 몹시도 추웠으나. 마음은 알 수 없이 둥실둥실 가벼웠다.

"주막까지 부지런히들 가세나. 뜰에 불을 피우고 훗훗이 쉬어. 나귀 에겐 더운 물을 끓여주고. 내일 대화 장 보고는 제천이다."

"생원도 제천으로......?"

"오래간 만에 가보고 싶어. 동행하려나, 동이?"

나귀가 걷기 시작하였을 때, 동이의 채찍은 왼손에 있었다. 오랫동안 아둑신이같이 눈이 어둡던 허생원도 요번만은 동이의 왼손잡이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걸음도 해깝고 방울 소리가 밤 벌판에 한층 청청하게 울렸다.

달이 어지간히 기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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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봄이 되었다. 기다리던 봄이 왔다.

누가 봄을 기다리지 않으련만 윤수는 남달리 봄을 기다렸다. 윤수는 겨울 동안에도 볕만 나면 뒷산에 올라가서 마른 나뭇가지며 썩은 등걸 따위를 모아서 땔나무를 해 오기도 하고 멀리 뵈는 산봉우리의 허옇게 덮인 눈경치를 구경하기에 그다지 갑갑한 줄은 모르지만, 날이 흐리고 몹시 추운 때에는 자연 집안에 들어앉아 있게 되기 때문에 심심하고 갑갑한 시간을 보내기가 퍽 괴로왔다. 이제 따뜻한 봄이 왔으니 윤수는 산과 들에 나가서 마음대로 뛰놀고 힘껏 일을 하게 되었다.

윤수가 봄을 기다리고 봄을 좋아하는 것은 춥지 않고 따뜻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뾰죽뾰죽 돋아나오는 새싹, 파랗게 피어나는 버들개지, 하얗게 피어나는 버들개지 —— 이런 것을 보기가 무척 좋았다.

윤수는 돋아나는 새싹이나 파랗게 피어나는 버들개지를 보면 오래 못 보던 동무를 만난 듯이 빙그레 웃고 좋아하고, 어떤 때는 땅 속에서 솟아나오는 새싹을 보고 무어라고 이야기도 해 보고 노래도 불러 보는 것이었다.

엄마 엄마 이리 와
요것 보세요
병아리떼 뿅뿅뿅
놀고 간 뒤에
미나리 파란 싹이
돋아났어요
미나리 파란 싹아
돋아났어요

윤수는 언젠가 뒷집 교장네 작은 아이가 부르는 걸 듣고 배운 이 노래를 자꾸만 부르는 것이다.

윤수는 땅 속에서 파란 싹이 돋아나오는 것이 신기해서도 좋아하지만 길가에 오고가는 사람의 발길에 밟히면서 곱게 피는 민들레 노란 꽃도 썩 좋아한다.

봄날에 파랗게 돋아나는 새싹이나 하얗게 피어나는 버들개지, 그리고 길가에 핀 민들레 노란 꽃은 다 윤수의 좋은 동무였다. 윤수에게는 이런 동무밖에 동무가 없었다.

2

윤수네가 성재 동네 온 지는 일 년밖에 못되었다. 성재에 온지 석 달 만에 윤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윤수네가 처음 이 동네로 이사해 올 적에 허술한 집을 하나 사 가지고 왔기 때문에,윤수 아버지는 혼자서 손수 집을 고치고 을 갈아 덮고 방 구들을 뜯고 다시 놓느라고 너 무 고달프게 지내다가 그만 눕기를 시작해서 시름시름 앓게 되었는데, 나중에는 병이 부쩍 더해서 아무리 약을 써도 낫지 않고 그만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가 앓는 동안 윤수는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어머니와 같이 정성껏 간호를 해드렸다.

윤수 아버지는 딸 하나는 일찍 시집보내고 이 동네 올 적에는 윤수 하나만 데리고 왔다. 그래서 어머니하고 세 식구가 살다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니까 어머니와 단둘이만 남게 되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몇 날 전에 조용한 밤인데,

「윤수야.」

부르고 나서 윤수의 손을 꼭 붙잡고 힘없는 목소리로,

「윤수야, 너 이담에 좋은 사람 돼야 한다. 좋은 사람 될려면 동무를 잘 가려서 사귀어야 한다. 함부로 동무를 사귀었다가는 큰일난다.」

아버지는 잠시 쉬어서,

「윤수야, 알겠니 ? 너 나쁜 아이들하구 놀면 안된다, 응? 내 아들 착하지,내 말을 명심해서 들어서 꼭 그대루 해야 한다.」

그렇게 쉬엄쉬엄 이르시는 말을 듣다가 윤수는,

「아버지,염려 마세요. 그런데 아버지, 어떤 아이가 나쁜 아이야요? 무얼 보고 나쁜 아이, 좋은 아이를 가려요? 아버지, 그것만 더 일러 주셔요. 그러면 저는 그대루만 할 테야요.」

이렇게 물어 보았다. 아버지는 잠깐 생각 하는 것 같더니,

「그래,내 말대루만 해라. 누구든지 말을 많이 하는 아이는 아예 사귀지 말아라. 그런 아이들은 믿을 수가 없느니라. 알겠니, 윤수야?」

아버지는 이렇게 간곡한 말로 일러 주었다.

「네,알겠읍니다. 아버지, 염려 마세요.」

윤수는 속으로 (옳지) 하면서 똑똑히 대답했다.

3

시집간 누이하고 매부가 오고 동네 사람들이 와서 보아 주어서 아버지 장사는 그럭저럭 지냈다.

아버지를 여읜 윤수는 슬프고 외로운 것을 참고 어머니를 위로하면서 그럭저럭 지냈다. 아버지가 남겨 준 재산이 좀 있고 동네에 사 둔 땅마지기도 있어서 두 식구가 살아 가기는 걱정이 없었다. 윤수 하나 간신히 공부시킬 만한 형편도 되었기 때문에 윤수는 새해부터 학교에 들어가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동안 윤수는 참 심심했다. 그럭저럭 봄이 되고 농사 지을 철이 되어서 어머니는 사람을 얻어서 밭을 갈고 거름을 내기에 바빠서 집에 있는 시간이 적었기 때문에 윤수는 더 심심하고 갑갑했다. 그래서 윤수는 갑갑한 때면 가끔가끔 동네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산의 아버지 무덤에 가서 놀았다. 어떤 때는 꼭 아버지가 살아 있는 것처럼 무덤 옆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나 이담에 좋은 사람 될께요. 아버지,걱정 마세요. 말 많이 하는 아이하구는 놀지 않을께요,아버지!」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는 달음박질해서 내려오곤 했다.

「윤수야, 너 어디 갔었니?」

어머니는 이렇게 묻는 것이다. 어머니는 좀 기분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엄마, 나 아버지한테 갔다 왔어. 왜 아버지한테 가면 안돼요?」

「나하구 같이 가자,너 혼자만 가면 안 된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면서 옷고름으로 눈을 씻는 것이다.

혼자 가면 왜 안돼요? 하고 불어 보려고 하다가 그만두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윤수야,윤수야!」

대문 밖에서 누가 찾는다. 나가 보니까 동네에서 늘 보던 아이다. 나이는 자기보다 몇 살 위였다. 보기에도 좀 컸다.

「윤수야, 나와 우리들하구 놀자. 너 왜 우리들하구 놀지 않고 밤낮 집안에만 틀어백혀 있니?」

「……」

윤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너 그리구 혼자 산으로 가서 뭘하니? 밤 낮 산에 가서 뭘하니?」

장손이란 아이가 이렇게 지껄이고 있는데 저쪽에 보니까 또 다른 아이가 둘이 있다. 그리고 장손이가 말하는 소리를 듣고 픽픽 웃는 소리가 들린다.

윤수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안으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얘,윤수가 왜 그럴까? 좀 바본가봐.」

장손이가 저희 동무들하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윤수가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모르지만,하여튼 윤수는 썩 불쾌했다. 그리고,그런 애들하고 놀지 않고 들어온 것이 잘 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간곡하게 이르시던 것을 생각한 것이다.

4

그 이튿날이었다. 또 대문 밖에서 누군가 찾는다. 어머니는 어디 가고 없었다.

「윤수야,어머니 계시니?」

아버지 살아 계실 때부터 가끔 보던 사람이다. 동네에서 가끔 찾아오던 사람이다. 그런데,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에는 도무지 온 일이 없었다. 윤수가 산에 아버지한테 간 동안에 왔었는지 모른다. 어머니는 가끔 찾아가서 만난 모양이었다.

「허허,꼭 너의 어머니를 보아야 할 텐데, 어쩌나. 어머니 어디 가셨는지 너 모르겠니? 너 좀 가서 찾아보렴,응? 몇 살 이지.」

「열 살이어요.」

윤수는 겨우 이 한마디를 뱉어 버리고 인사도 하지 않고 들어와 버렸다.

(이 사람도 좀 말이 많으니 재미 없는 사람 이다)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자 어머니가 들어왔다.

「어머니, 아까 왔던 그 사람 아셔요? 우리 아버지 계실 때 가끔 우리 집에 오셨었나봐. 나이가 꽤 많은가봐. 수염이 길어요.」

「그래 그래,윗동네 주부님이로구나.」

「아마 그런가봐.」

이제 생각하니까 아버지 살아 계실 때도 오고 앓아 누웠을 때에 가끔 왔던 생각이 난다.

「그런데,엄마 그 사람 좋은 사람이야요?」

「왜 그러냐?」

「글쎄 말이어요.」

「글쎄라니, 왜 그러니?」

「말이 좀 많지 않아요.」

「무슨 말이 많던?」

어머니는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윤수는 어머니를 꼭 만나야 되겠다는 말이며, 공연히 남의 나이를 물어 보더란 말을 했다.

「애도,그만한 말을 하는 걸 가지고 그러니?」

「엄마 엄마,아버지가 말이 많은 사람은 믿을 수 없다고 그러신 거 엄마도 알지?」

「글쎄 그리셨던가?」

어머니는 빙그레 웃고 말았다. 그 다음에는 또 어떤 큰 아이가 찾아와서 윤수를 불렀다. 이 큰 아이는 심부름 온 아이였다.

「윤수야,너 윤수지? 어머니 어디 가셨니? 너 왜 동무하고 놀지 않니?」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윤수는 대답도 하지 않고 들어와 버렸다. 그리고 또 혼자서 아버지한테 갔다왔다. 어머니한테는 아버지 무덤에 갔다왔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들판으로 다니면서 놀다 왔노라 했다. 전날 산에서 오다가 들판과 딴 동네에서 이리저리 다니면서 민들레꽃 오랑캐꽃도 구경하고 갓 깬 병아리들이 어미닭을 따라다니는 구경도 하고, 어떤 때는 병아리 한 놈이 어미 닭을 따라가지 못하고 혼자 떨어져서 빽빽거리고 있는 것을 보고 가만히 손바닥에 놓아서 어미 있는 데 갖다 주고 오기도 했다. 그러기에 늦었다고 어머니에게 말했다.

「너는 동무도 없니?」

어머니는 걱정스러운 듯이 말하면 윤수는,

「어디 믿을 만한 애가 있어야지요.」

5

윤수에게도 동무가 생겼다. 뒷집 교장네 애란이란 올해 여섯 살짜리 계집애였다.

애란이는 아직 학교에도 안 가면서도 노래를 잘했다. 처음에 저희 집안에서 노래하는 것을 윤수는 밖에서 듣고 있었다. 그런데 한번은 애란이가 대문 밖엘 내다보다가 윤수가 혼자서 무엇을 듣고 있는 것을 보고 또 혼자서 쓸쓸한 것 같은 것을 알았는지 윤수더러 들어오라고 했다. 그것도 말로 하는 것이 아니요 생글생글 웃으면서 눈과 고개와 손짓으로 들어오라고 하는 것이다.

윤수는 가만히 보다가 슬금슬금 애란이 뒤로 따라 들어갔다. 애란네 집에는 여러 가지 전에 보지 못하던 훌륭한 꽃이 많았다.

그래서 그 꽃 구경을 하기에 정신없었다. 꽃구경을 하다가는 가끔 애란이를 쳐다보았다. 말없이 늘 웃기만 하는 애란이도 꽃과 같이 예뻤다.

왜 날 쳐다보니? 그런 말도 아니하고 약간 얼굴을 붉히면서 아주 말이 없이 웃기만 하는 것이다.

애란이도 동무가 없어서 심심했던 모양이었다. 좀 있다가는 윤수보고 또 오라고 눈과 고개로 말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애란이는 벙어리가 아니었다.

「엄마,나 잠깐 나갔다 올께요.」

하면서 윤수의 뒤를 따라와서 윤수네 대문까지 왔다 가는 것을 윤수는 보았다.

애란이는 그 뒤에도 가끔 윤수네 집에 와서 대문 안을 살며시 들여다보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윤수는 어느 틈에 그것을 알고 문을 급히 열고 뛰어나갔다. 그리고는 두 아이는 말도 없이 애란네 집으로 가는 것이다.

어떤 때는 윤수가 애란네 집 대문 밖에 가서 안쪽을 들여다본다. 그러면 어느 틈에 안에서 뛰어나와서 말없이 윤수를 맞아들인다.

「너 어떤 꽃이 제일 예쁘지?」

「글쎄, 다 예뻐.」

「그래도 그 중에 어느 꽃이?」

「요것이 제일 예뻐.」

「그것 무슨 꽃인지 알어?」

「몰라.」

「시클라멘(Cyclamen)이란다.」

「뭐 시크라문?」

「그래,하나 줄까? 너희 갖다 심을래?」

「싫어, 그만둬. 나 여기 와서 너하구 둘이 같이 보면 되지 머.」

애란이는 고개만 까딱였다. 두 사람은 이렇게 놀다가 애란이가 먼산을 바라보면서 가만가만히 노래를 부른다. 윤수는 처음에는 가만히 듣다가 나중에는 따라서 해 본다.

「엄마 엄마 이리와 요것 보세요」하는 노래도 하고 다른 새 노래도 하고 그러다가, 「참 아름다워라」하는 노래도 해 보았다.

「애란아,그것 무슨 노래지?」

「그것 말이야,찬송가라는 거야, 또 할까?」

「그래, 또 해, 응?」

이렇게 두 사람은 찬송가도 제법 부르게 되었다.

어느 날 밤이었다. 어머니는,

「윤수야,애란이는 좋은 애더냐.」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요, 그애는 말이 없으니까요.」

「그럼 벙어리더냐?」

「아니야, 아니야. 어쨌든 좋은 애야.」

「그런데 윤수야,애란네 이제 읍으로 이사 간다더라.」

「참말이야? 엄마, 공갈이지?」

「참말이다. 이제 한 달 있다가 간다더라.」

「그래요! 엄마?」

윤수의 얼굴은 금방 빨개졌다.

「윤수야,우리도 토지 팔아 가지고 읍으로 갈까?」

「그래요, 엄마. 우리도 가요, 읍으로 가요.」

「정말 갈까,우리끼리 살기 적적한데…… 읍으로 가면 누나네도 가깝고 좋지!」

윤수는 한참이나 무슨 생각을 하더니 똑똑 한 목소리로,

「엄마, 우리 읍에 가지 말아. 우리 떠나면 아버지는 어떡해요? 아버지 혼자 버리고 가문 안돼! 애란네는 가두 우린 가지 말어. 아버지 손수 손질해서 얌전하게 꾸린 이 집에서 그냥 살아요!」

한 달이 지났다. 윤수는 말없이 웃으면서 떠나가는 애란이를 물끄레 바라보다가 달음박질로 아버지한테 갔다. 오래도록 아버지 옆에 앉아서 애란이한테 배운,〈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을 부르고 또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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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 시간이었다.

“이 없는 동물이 무엇인지 아는가?”

선생이 두 번씩 거푸 물어도 손 드는 학생이 없더니 별안간 “넷!” 소리를 지르면서 기운 좋게 손을 든 사람이 있었다.

“음, 창남인가. 어데 말해 보아.”

“이 없는 동물은 늙은 영감입니다!”

“예에끼!”

하고 선생은 소리 질렀다.

온 반 학생이 깔깔거리고 웃어도 창남이는 태평으로 자리에 앉아 있다.

도덕 시간이었다.

“성냥 한 개피의 불을 잘못하야 한 동리 삼십여 집이 불에 타 버렸으니 단 성냥 한 개의 성냥이라도 무섭게 알고 주의해 써야 되는 것이니라.”

하고 열심히 설명해 준 선생님이 채 교실 문 밖에도 나아가기 전에,

“한 방울씩 떨어진 빗물이 모이고 모이어 큰 홍수가 난 것이니 누구든지 콧물 한 방울이라도 무섭게 알고 주의해 흘려야 하나니라.”

하고 크게 소리친 학생이 있었다.

선생님은 그것을 듣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면서 돌아서서,

“그게 누구냐? 아마 창남이가 또 그랬지?”

하고 억지로 눈을 크게 떴다. 모든 학생들은 킬킬거리고 웃다가 조용해졌다.

“네, 선생님 안 계신 줄 알고 제가 그랬습니다. 이담엔 안 그러지요.”

병정같이 우뚝 일어서서 말한 것은 창남이었다.

억지로 골낸 얼굴을 지은 선생님은 기어코 다시 웃고 말았다. 그래 아무 말 없이 빙그레 웃고는 그냥 나가 버렸다.

“아하하하.”

학생들은 일시에 손뼉들을 치면서 웃어대었다.

○○ 고등 보통 학교 1학년의 2반 창남이는 반 중에 제일 인기 좋은 쾌활한 소년이었다.

이름이 창남이요 성이 한가인 고로 ‘안창남’ 씨와 같다고 학생들은 모두 그를 보고 “비행사, 비행사.” 하고 부르는데 사실상 그는 비행사같이 시원스럽고 유쾌한 성질을 가진 좋은 소년이었다.

모자가 다 해어져도 새 것을 사 쓰지 않고 양복 바지가 해어져서 궁둥이에 조각조각을 붙이고 다니는 것을 보면 집안이 구차한 것도 같지만 그렇다고 단 한 번이라도 근심하는 빛이 있거나 남의 것을 부러워하는 눈치도 없었다.

남이 걱정이 있어 얼굴을 찡그릴 때에는 우스운 말을 잘 지어 내고 동무들이 곤란한 일이 있는 때에는 좋은 의견도 잘 꺼내는 고로 비행사의 이름은 더욱 높아졌다.

연설을 잘 하고 토론을 잘 하는 고로 1반하고 내기를 할 때에는 언제든지 창남이 혼자 나아가 이기는 셈이었다.

그러나 그의 집이 정말 가난한지 넉넉한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고 또 그의 집이 어데인지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도 그 가는 쪽으로 가는 학생이 없었고 가끔 그 뒤를 쫓아가 보려고도 하였으나 모두 중간에서 실패하고 말았다. 왜 그런고 하니 그는 날마다 이십 리 밖에서 학교를 다니는 까닭이었다.

그는 다른 우스운 말은 가끔가끔 하여도 자기 집안일이나 자기 신상에 관한 이야기는 말하는 법이 없었다. 그것을 보면 입이 무거운 편이었다.

그는 입과 같이 궁둥이가 무거워서 운동틀(철봉)에서는 잘 넘어가지 못하여 늘 체육 선생께 흉을 잡혔다.

하학한 후에 학생들이 다 돌아간 후에도 혼자 남아 있어서 운동틀에 매어 달려 땀을 흘리면서 혼자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을 동무들은 가끔 보았다.

“얘, 비행사가 하학한 후에 혼자 남아서 철봉 연습을 하고 있더라.”

“땀을 뻘뻘 흘리면서 혼자 애를 쓰더라.”

“그래 인제는 좀 넘어가데?”

“웬걸, 한 이백 번이나 넘어 연습을 하면서 그래도 혼자 못 넘어가더라.”

“그래 맨 나중에는 자기가 자기 손으로 그 누덕누덕 기운 궁둥이를 자꾸 때리면서 ‘궁둥이가 무거워, 궁둥이가 무거.’ 하면서 가더라!”

“자기가 자기 궁둥이를 때려?”

“그러게 괴짜지.”

“아하하하하하하.”

모두 웃었다.

어느 모로든지 창남이는 반 중의 이야깃거리가 되는 몸이었다.

2

겨울도 겨울, 몹시도 추운 날이었다.

혹혹 부는 이른 아침에 상학종은 치고 공부는 시작되었는데 한 번도 결석한 일이 없는 창남이가 이 날은 오지 않았다.

“호외일세, 호외야! 비행사가 결석을 하다니.”

“엊저녁 그 무서운 바람에 어데로 날러간 게지.”

“아마 병이 났나 부다. 감기가 든 게지.”

“이놈아, 능청스럽게 아는 체 말어라.”

1학년 2반은 창남이 소문으로 소근소근 야단들이었다.

첫째 시간이 반이나 넘어 지났을 때에 교실 문이 덜컥 열리고 창남이가 얼굴이 새빨개 가지고 들어섰다.

학생과 선생은 반가워하면서 웃었다. 그러고 그들은 창남이가 신고 서 있는 구두를 보고 더욱 크게 웃었다.

그의 오른편 구두는 헝겊으로 싸매고 또 새끼로 감아 매고 또 그 위에 손수건으로 싸매고 하여 퉁퉁하기 짝이 없었다.

“창남아, 오늘은 웬일로 늦었느냐?”

“네.”

하고 창남이는 그 괴상한 퉁퉁한 구두 신은 발을 번쩍 들고,

“오다가 길에서 구두가 다 떨어져 너털거리는 고로 새끼를 얻어서 고쳐 신었더니 또 너털거리고 또 너털거리고 해서 여섯 번이나 제 손으로 고쳐 신고 오느라고 늦어졌습니다.”

그러고도 창남이는 태평이었다. 그 시간이 끝나고 쉬는 동안에 창남이는 그 구두를 벗어 들고 다 해어져서 너털거리는 주둥이를 손수건과 대님짝으로 얌전스럽게 싸매어 신었다. 그러고도 태평이었다.

따뜻한 날도 귀찮아하는 체육시간이 이렇게 살이 터지게 추운 날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추운 날 체육을 한담.”

“또 그 무섭고 딱딱한 선생이 웃통을 벗으라 하겠지…… 아이그, 아찔이야.”

하고 싫어하는 체육 시간이 되었다.

원래 군인 다니던 성질이라 뚝뚝하고 용서성 없는 체육 선생이 호령을 하다가 그 괴상스런 창남이의 구두를 보았다.

“한창남! 그 구두를 신고도 활동할 수 있니? 뻔뻔하게.”

“네,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이것 보십시오.”

하고 창남이는 시키지도 않는 뜀도 뛰어 보이고, 달음박질도 하여 보이고 제자리걸음도 부지런히 해 보였다.

체육 선생도 어이가 없던지,

“음! 상당히 치료해 신었군!”

하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호령을 계속하였다.

“전열만 삼 보 앞으로옷!”

“전후열 모두 웃옷 벗엇!”

3

죽기보다 싫어도 체육 선생의 명령인지라 온 반 학생이 일제히 검은 양복 저고리를 벗고 샤쓰만 입은 채로 서 있고 선생까지 벗었는데 다만 한 사람 창남이가 벗지를 않고 있었다.

“한창남! 왜 웃옷을 안 벗니?”

창남이의 얼굴은 폭 수그러지면서 빨개졌다. 그가 이러기는 참말 처음이었다. 한참 동안 멈츳멈츳하다가 고개를 들고,

“선생님, 만년 샤쓰도 좋습니까?”

“무엇? 만년 샤쓰? 만년 샤쓰란 무어야?”

“매 매 맨몸 말씀입니다.”

성난 체육 선생은 당장에 후려 갈길 듯이 그의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면서,

“벗어랏!”

호령하였다.

창남이는 양복 저고리를 벗었다. 그는 샤쓰도 적삼도 아무것도 안 입은 벌거숭이 맨몸이었다. 선생은 깜짝 놀라고 학생들은 깔깔 웃었다.

“한창남! 왜 샤쓰를 안 입었니?”

“없어서 못 입었습니다.”

그 때 선생의 무섭던 눈에 눈물이 돌았다. 그리고 학생들의 웃음도 갑자기 없어졌다. 가난! 고생! 아아, 창남이 집은 그렇게 몹시 구차하였던가..... 모두 생각하였다.

“창남아, 정말 샤쓰가 없니?”

눈물을 씻고 다정히 묻는 소리에,

“오늘하고 내일만 없습니다. 모레는 인천서 형님이 올라와서 사 줍니다.”

“음! 그럼 웃옷을 다시 입어라!”

체육 선생은 다시 물러서서 큰 소리로,

“한창남은 오늘은 웃옷을 입고 해도 용서한다. 그러고 학생 제군에게 특별히 할 말이 있으니 제군은 다 한창남 군같이 용감한 사람이 되란 말이다. 누구든지 샤쓰가 없으면 추운 것은 둘째요, 첫째 부끄러워서 결석이 되더라도 학교에 오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같이 제일 추운 말 한창남 군은 샤쓰 없이 맨몸, 으응, 즉 그 만년 샤쓰로 학교에 왔단 말이다. 여기 섰는 제군 중에는 샤쓰를 둘씩 포개 잆은 사람도 있을 것이요, 재킷까지 외투까지 입고 온 사람이 있지 않은가……. 물론 맨몸으로 오는 것이 예의는 아니야. 그러나 그 용기, 의기가 좋단 말이다. 한창남 군의 의기는 일등이다. 제군도 다 그 의기를 배우란 말야.”

만년 샤쓰! 비행사란 말도 없어지고 그 날부터 만년 샤쓰라는 말이 온 학교 안에 퍼져서 만년 샤쓰라고만 부르게 되었다.

4

그 다음 날은 만년 샤쓰 창남이가 늦게 오지 않았건마는 그가 교문 근처에까지 오자마자 온 학교 학생이 허리가 부러지게 웃기 시작하였다.

창남이가 오늘은 양복 웃저고리에 바지는 어쨌는지 얄따랗고 해어져 뚫어진 조선 겹바지를 입고 버선도 안 신고 맨발에 짚신을 끌고 뚜벅뚜벅 걸어온 까닭이었다.

맨가슴에 양복 저고리. 위는 양복 저고리 아래는 조선 바지(그나마 다 뚫어진 겹바지) 맨발에 짚신, 그 꼴을 하고 이십 리 길을 걸어왔으니 행길에서는 오죽 웃었으랴. 그러나 당자는 태평이었다.

“고아원 학생 같으니, 고아원야.”

“밥 얻어먹으러 다니는 아이 같구나.”

하고들 떠드는 학생들 틈을 헤치고 체육 선생이,

“무슨 일인가?”

하고 들여다보다가 창남이의 그 꼴을 보고 놀랐다.

“너는 양복 바지를 어찌했니?”

“없어서 못 입고 왔습니다.”

“어째 그렇게 없어지느냐? 날마다 한 가지씩 없어진단 말이냐?”

“네! 그렇게 하나씩 둘씩 없어집니다.”

“어째서?”

“네…….”

하고 창남이는 침을 삼키고서.

“그저께 저녁이 바람이 몹시 불던 날 저희 집 동리에 큰 불이 나서 저희 집도 반이나 넘어 탔어요. 그래서 모두 없어졌습니다.”

듣기에 하도 딱해서 모두 혀끝을 찼다.

“그렇지만 양복 바지는 어저께도 입고 있지 않었니? 불은 그저께 나고…….”

“네, 저희 집은 반만이라도 타다가 남어서 세간도 더러 건졌지만 이웃집이 십여 호나 모두 타 버린 고로 동리가 야단들이야요. 저는 어머니하고 단 두 식구만 있는데 집은 반이라도 남았으니까 먹고 잘 것은 넉넉해요. 그런데 동리 사람들이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게 되야서 야단이야요. 그래 저희 어머니께서는 ‘우리들은 먹고 잘 수가 있으니까 벌거벗는 것만 면하면 살 수가 있으니 두 식구가 당장에 입을 것 한 벌씩만 남기고는 모두 길거리에 떨고 있는 동리 사람들게 나눠 드려라.’ 하시는 고로 어머니 옷, 제 옷을 모두 동리 어른들게 드렸답니다. 그러구 양복 바지는 주지 않고 제가 입고 있었는데 저희 집 옆에서 숯 장사하던 영감님이 병든 노인인 고로 하도 춥다 하니까 보기에 딱해서 어제 저녁에 마저 벗어 주고 저는 가을에 입던 해진 겹바지를 꺼내 입었습니다.”

모든 학생들은 죽은 듯이 고요하고, 고개들이 말없이 수그러졌다. 선생님도 고개를 숙였다.

“그래 너는 네가 입을 샤쓰까지 버선까지 다 벗어 주었단 말이냐?”

“아니오. 버선과 샤쓰뿐만은 한 벌씩 남겼는데 저희 어머니가, 입었던 옷은 모두 남에게 주어 놓고 앉어서 추워서 발발 떠시는 고로 제가 ‘어머니, 저의 샤쓰라도 입으실까요?’ 하니까, ‘네 샤쓰도 모두 남 주었는데 웬 것이 두 벌씩 남어 있겠니?’ 하는 고로 저는 제가 입고 있는 것 한 벌뿐이면서도 ‘네, 두 벌 남었으니 하나는 어머니 입으시지요.’ 하고 입고 있던 것을 어저께 아침에 벗어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네가 먼길에 학교 가기 추울 터인데 둘을 포개 입을 것을 그랬구나.’ 하시면서 받아 입으셨어요. 그러고 하도 발이 시려 하시면서 ‘이 애야 창남아, 너 버선도 두 켤레가 있느냐?’ 하시기에 신고 있는 것 한 켤레뿐이건마는 ‘네, 두 켤레올시다. 하나는 어머니 신으시지요.’ 하고 거짓말을 하고, 신었던 것을 어제 저녁에 벗어 드렸습니다. 저는 그렇게 어머니께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나쁜 일인 줄은 알면서도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오늘도 아침에 나올 때에 ‘이 애야, 오늘같이 추운 날 샤쓰를 하나만 입어서 춥겠구나. 버선을 잘 신고 가거라.’ 하시기에 맨몸 맨발이면서도 ‘네, 샤쓰도 잘 입고 버선도 잘 신었으니까 춥지는 않습니다.’ 하고 속이고 나왔어요. 저는 거짓말쟁이가 되었습니다.”

하고 창남이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네가 거짓말을 하드래도 어머니께서는 너의 벌거벗은 가슴과 버선 없이 맨발로 짚신 신은 것을 보시고 아실 것이 아니냐?”

“아아, 선생님…….”

하는 창남이의 소리는 우는 소리같이 떨렸다. 그러고 그의 수그린 얼굴에서 눈물 방울이 뚝뚝 그의 짚신 코에 떨어졌다.

“저희, 저희 어머니는 제가 여덟 살 되던 해에 눈이 멀으셔서 보지를 못하고 사신답니다.”

체육 선생의 얼굴에도 굵다란 눈물이 흘렀다. 와글와글하던 그 많은 학생들이 자는 것같이 고요하고 훌적훌적 훌적거리며 우는 소리만 여기서 저기서 조용히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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