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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지, 질경이, 나생이, 딸장이, 민들레, 솔구장이, 쇠민장이, 길오장이, 달래, 무릇신금초, 씀바귀, 돌나물, 비름, 늘쟁이. 들은 온통 초록 전에 덮여 벌써 한 족각의 흙빛도 찾아볼 수 없다. 초록의 바다.

초록은 흙빛보다 찬란하고 눈빛보다 복잡하다. 눈이 뽀얗게 깔렸을 때에는 흰빛과 능금나무의 자주빛과 그림자의 옥색빛밖에는없어 단순하기 옷벗은 여인의 나체와 같은 것이, 봄은 옷입고 치장한 여인이다.

흙빛에서 초록으로.... 이 기막한 신비에 다시 한 번 놀라 볼 필요가 없을까. 땅은 어디서 어느 때 그렇게 많은 물감을 먹었기에 봄이 되면 한꺼번에 그것을 이렇게 지천으로 뱉어 놓을까. 바닷물을 고래같이 들이켰던가. 하늘의 푸른 정기를 모르는 결에 함빡 마셔 두었던가. 그것을 빗물에 풀어 시절이 되면 땅 위로 솟쳐 보내는 것일까. 그러나 한 표기의 풀을 뽑에 볼 때 잎새만이 푸를 뿐이지 뿌리와 흙에는 아무 물들인 자취도 없음은 웬일일까. 시험관 속 붉은 물에 약품을 넣으면 그것이 금시에 새파랗게 변하는 비밀. 그것과도 흡사하다. 이 우주의 비밀의 약품, 그것을 결국 알 바 없을까. 할 톨의 보리알이 열 낱으로 나는 이치를 가르치는 이 있어도 그 보리알에서 푸른 잎이 돋는 조화의 동기는 옳게 말하는 이 없는 듯하다.

사람의 지혜란 결국 신비의 테두리를 뱅뱅 돌 뿐이요 조화의 속의 속은 언제까지나 열리지 않는 판도라의 상자일 듯싶다. 초록 풀에 덮인 땅 속의 뜻을 초록 옷을 입은 여자의 마음과도 같이 엿볼 수 없는 저 건너 세상이다.

얀들얀들 나부끼는 초목의 양자는 부드럽게 솟는 음악. 줄기는 굵고 잎은 연한 멜로디의 마디마디이다. 부피 있는 대궁은 나팔소리요 가는 가지는 거문고의 음률이라고도 할까. 알레그로가 지나고 안단테에 들어갔을 때의 감동.... 그것이 봄의 걸음이다. 풀 위에 누워 있으면 은근한 음악의 율동에 끌려 마음이 너볏너볏 나부낀다.

꽃다지 질경이 민들레.... 가지가지 풋나물들을 뜯어 먹으면 몸이 초록으로 물들 것같다. 물들어야 될 것 같다. 물들어야 옳을 것 같다. 물들지 않음이 거짓말이다. 물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새가 지저귄다. 꾀꼬리일까.

지평선이 아롱거린다.

들은 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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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든지 푸른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으면 나중에는 현기증이 나며 눈이 둘러빠질 듯싶다. 두 눈을 뽑아서 푸른 물에 채웠다가 라무네1 병 속의 구슬같이 차진 놈을 다시 살속에 박아넣은 것과도 같이 눈망울이 차고 어리어리하고 푸른 듯하다. 살과는 동떨어진 유리알이다. 그렇게도 하늘은 맑고 멀다. 눈이 아픈 것은 그 하늘을 발칙하게도 오랫동안 우러러본 벌인 듯싶다. 확실히 마음이 죄송스럽다. 반나절 동안 두려움 없이 하늘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는 사람이란 세상에서도 가장 착한 사람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가장 용기있는 악한이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도 푸른 하늘은 거룩하다.

눈을 돌리면 눈물이 푹 쏟아진다. 벌판이 새파랗게 물들어 눈앞에 아물아물한다. 이런 때에는 웬일인지 구름 한 점도 없다. 곁에는 한 묶음의 꽃이 있다. 오랑캐꽃, 고들빼기, 노고초, 새고사리, 가처무릇, 대게, 맛탈, 차치광이. 나는 그것들을 섞어 틀어 꽃다발을 곁기 시작한다. 각색 꽃판과 꽃술이 무릎 위에 지천으로 떨어진다. 그것은 헤어지는 석류알보다도 많다.....

나는 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좋아졌는지를 모른다. 지금에는 한 그릇의 밥, 한 권의 책과 똑같은 지위를 마음속에 차지하게 되었다. 책에서 읽은 이론도 아니요 얻어들은 이치도 아니요 몇 해 동안 하는 일 없이 들과 벗하고 지내는 동안에 이유없이 그것은 살림 속에 푹 젖었던 것이다. 어릴 때에 동물들과 벌판을 헤매며 찔레를 꺾으러 가시덤불 속에 들어가고 소똥버섯을 따다 화로 속에 굽고 메를 캐러 밭이랑을 들치며 골로 말을 만들어 끌고 다니느라고 집에서보다도 들에서 더 많은 날을 지우던, 그때가 다시 부활하여 돌아온 셈이다. 사람은 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에 있는 것 같다.

자연과 벗하게 됨은 생활에서의 퇴각을 의미하는 것일까. 식물적 애정은 반드시 동물적 열정이 진한 곳에 오는 것일까. 학교를 쫓기우고 서울을 물러오게 된 까닭으로 자연을 사랑하게 된 것일까. 그러나 동무들과 골방에서 만나고 눈을 기여 거리를 돌아치다 붙들리고 뛰다 잡히고 쫓기고....하였을 때의 열정이나 지금에 들을 사랑하는 열정이나 일반이다.

지금의 이 기쁨은 그때의 그 기쁨과도 흡사한 것이다. 신념에 목숨을 바치는 영웅이라고 인간 이상이 아닌 것과 같이 들을 사랑하는 졸부라고 인간 이하는 아닐 것이다. 아직도 굳은 신념을 가지면서 지난날에 보던 책들을 들척거리다도 문득 정신을 놓고 의미없이 하늘을 우러러보는 때가 많다.

학교. 이제는 고향이 마음에 붙는 모양이지.

마을 사람들은 조롱도 아니요 치사도 아닌 이런 말을 던지게 되었고 동구 밖에서 만나는 이웃집 머슴은 인사 대신에 흔히,

해동지 늪에 붕어 떼 많던가?

고기사냥 갈 궁리를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십리정 보리 고개 숙었던가?

하고 곡식 소식을 묻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보다도 내가 더 들과 친하고 곡식의 소식을 잘 알게 된 증거이다.

나는 책을 외듯이 벌판의 구석구석을 샅샅이 외고 있다. 마음속에는 들의 지도가 세밀히 박혀 있고 사철의 변화가 표같이 적혀있다. 나는 들사람이요 들은 내 것과도 같다.

어느 논두렁의 청대콩이 가장 진미이며 어느 이랑의 감자가 제일 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새발고사리가 많이 피어 있는 진펄과 종달새 뜨는 보리밭을 잠작할 수 있다. 남대천 어느 모퉁이를 돌 때 가장 고기가 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개리 쇠리 붉어지가 덕실덕실 끓는 여율과 메게 뚜구뱅이가 잠겨있는 웅덩이와 쏘가리 꺽지가 누워 있는 바위 밑과... 매재와 고들빼기를 잡으려면 철교께서도 몇 마장을 더 올라가야 한다는 것과 쇠치네와 기름종개를 뜨려면 얼마나 벌판을 나가야 될 것을 안다. 물 건너 귀릉나무 수풀과 방치골 으름 덩굴 있는 곳을 아는 것은 아마도 나뿐일 듯싶다.

학교를 퇴학맞고 처음으로 도회를 쫓겨 내려왔을 때에 첫걸음으로 찿은 곳은 일가집도 아니요 동무 집도 아니요 실로 이 들이었다. 강가의 사시나무가 제대로 있고 버들숲 둔덕의 잔디가 헐리지 않았으며 과수원의 모습이 그대로 남은 것을 보았을 때의 기쁨이란 형언할 수 없이 큰 것이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란 곧 산천을 사랑하고 벌판을 반가와하는 심정이 아닐까.

이런 자연의 풍물을 내놓고야 고향의 그림자가 어디에 알뜰히 남아 있는가. 헐리어 가는 초가지붕에 남아 있단 말인가. 고향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면서도 그리운 것은 더 많이 들과 시냇물이다.

3

시절은 만물을 허랑하게 만드는 듯하다.

짐승은 드러내놓고 모든 것을 들의 품 속에 맡긴다.

새 풀 숲에서 새둥우리를 발견한 것을 나는 알 수 없이 기쁘게 여겼다. 거룩한 것을, 아름다운 것을 찾은 느낌이다. 집과 가족들을 송두리째 안심하고 땅에 맡기는 마음씨가 거룩하다. 풀과 깃을 모아 두툼하게 결은 둥우리 안에는 아직 까지 않은 알이 너더 알 들어 있다. 아롱아롱 줄이 선 풋대추만큼씩한 새알.

막 뛰어나려는 생명을 침착하게 간직하고 있는 얇은 껍질---금시에 딸깍 두 조각으로 깨뜨려질 모태---창조의 보금자리!

그 고요한 보금자리가 행여나 놀래고 어지럽혀질까를 두려워하여 둥우리 기슭 손가락 하나 대기조차 주저되어 나는 다만 한참 동안이나 물끄러미 바라보고 섰다가 풀포기를 제대로 덮어 놓고 깜쪽같이 발을 옮겨 놓았다. 금시에 알이 쪼개지며 생명이 돋아날 듯싶다. 등 뒤에서 새가 푸드득 날아들 것같다. 적막을 깨뜨리고 하늘과 들을 놀래이며 푸드득 날았다! 생각에 마음이 즐겁다.

그렇게 늦게 까는 것이 무슨 새일까. 청새일까. 덤불지일까. 고요하게 뛰노는 기쁜 마음을 걷잡을 수 없어 목소리를 내서 노래라도 부를까 느끼며 뚝아래로 발을 옮겨 놓으려다 문득 주춤하고 서 버렸다.

맹랑한 것이 눈에 뜨인 까닭이다. 껄껄 웃고 싶은 것을 참고 풀 위에 주저 앉았다. 그 웃고 싶은 마음은 노래라도 부르고 싶윽 마음의 연장인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면 그 맹랑한 풍경이 나의 마음을 결코 노엽히거나 모욕한 것이 아니요 도리어 아까와 똑같은 기쁨을 자아내게 한 것이다. 일반으로 창조의 기쁨을 보여 준 것이다.

개울녘 풀밭에서 한 자웅의 개가 장난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을 겁내지 않고 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사람의 눈을 꺼리는 법 없이 자웅은 터놓고 마음의 자유를 표현할 뿐이다. 부끄러운 것은 도리어 이쪽이다. 나는 얼굴을 붉히면서 대중없이 오랫동아 그 요절할 광경을 바라보기가 몹시도 겸연쩍었다. 확실히 나는 그런 장난을 목격한 일이 없다. 역시 들이 푸를 때 새가 늦은 알을 깔 때 자웅도 농탕치는 것이다. 나는 그 광경을 성내어서는 비웃어서는 안되었다.

보고 있는 동안에 어디서부터인지 자웅에게로 돌멩이가 날아들었다. 킬킬킬킬 웃음 소리가 나며 두 번째 것이 날았다. 가뜩이나 몸이 떨어지지 않는 자웅은 그제서야 겁을 먹고 흘끔흘끔 눈을 굴리며 어색한 걸음으로 주체스런 두 몸을 비틀거렸다. 나는 나 이외에 그 광경을 그때까지 은근히 바라보고 있던 또 한 사람이 부근에 숨어 있음을 비로소 알고 더 한층 부끄러운 생각이 와락 나며 숨도 크게 못 쉬고 인기척을 죽이고 잠자코만 있을 수밖에는 없었다.

세 번째 돌멩이가 날리더니 이윽고 호담스런 웃음 소리가 왈칵 터지며 아래편 숲속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덥석 뛰어나왔다. 빨래 함지를 인 채 한 손으로 연해 자웅을 쫓으면서 어깨를 떨며 웃음을 금할 수 없다는 자세였다.

그 돌연한 인물에 나는 놀랐다. 한편 응겼던 마음이 풀리기도 하였다. 옥분이였다. 빨래를 하고 나자 그 광경임에 마음속은 미리 흠뻑 그것을 즐기고 난 뒤인 모양이다. 그러나 나의 놀람보다도 옥분이가 문득 나를 보았을 때의 놀람....그것은 몇 갑절 더 큰 것이었다. 별안간 웃음을 뚝 그치고 주춤 서는 서슬에 머리에 였던 함지가 왈칵 떨어질 판이었다. 얼굴의 표정이 삽시간에 검붉게 질려 굳어졌다. 눈알이 땅을 향하고 한편 손이 어쩔 줄 몰라 행주치마를 의미없이 꼬깃거렸다.

별안간 깊은 구렁에 빠진 것과도 같은 궁축한 처지와 덴 마음을 건져 주기 위하여 나는 마음에도 없는 목소리를 일부러 자아내어 관대한 웃음을 한바탕 웃으면서 그의 곁으로 내려갔다.

빌어먹을 짐승들.

마음에도 없는 책망이었으나 옥분의 마음을 풀어 주자는 뜻이었다.

득추녀석쯤이 너를 싫달 법 있니, 주제넘은 녀석.

이어 다짜고짜로 그의 일신의 이야기를 끄집어 낸 것은 그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자는 생각이었다. 군청 고원 득추는 일껏 옥분과 성혼이 된 것을 이제 와서 마다고 투정을 내고 다른 감을 구하였다. 옥분의 가세가 빈한하여 들고 날 판이므로 혼인한 뒤에 닥쳐올 여러 가지 귀찮은 거래를 염려하여 파혼한 것이 확실하다. 득추의 그런 꾀바른 마음씨를 나무라는 것은 나뿐이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은 거개 고원의 불신을 책하였다.

배반을 당하고 분하지도 않으냐?

모른다.

옥분은 도리어 짜증을 내며 발을 떼놓았다.

그 녀석 한번 해내 줄까.

웬일인지 그에게로 쏠리는 동장을 금할 수 없다.

쓸데없는 짓 할 것 있니?

동정의 눈치를 알면서도 시치미를 떼는 옥분의 마음씨에는 말할 수 없이 그윽한 것이 있어 그것이 은연중에 마음을 당긴다.

눈앞에 떨어지는 그의 민출한 자태가 가슴속에 새겨진다. 검은 치마폭 밑으로 드러난 불그레한 늠츳한 두 다리---자작나무보다도 더 아름다운 것---헐벗기 때문에 한결 빛나는 것---세상에도 가지고 싶은 탐나는 것이다.

4

일요일인 까닭에 오래간만에 문수와 함께 둑 위에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날마다 거리의 학교에 가야 하는 그를 자주 붙들어 낼 수는 없다. 일요일이 없는 나에게도 일요일이 있는 것이다.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뚝에 오르면 마음이 활짝 열리는 듯이 시원하다. 바다 바람이 아직 조금 차기는 하나 신선한 맛이다. 잔디 밭에는 간간이 피지 않은 해당화 봉오리가 조촐하게 섞였으며 뚝 맞은편에 군데군데 모여선 백양나무 잎새가 햇빛에 반짝반짝 나부껴 은가루를 뿌린 것 같다.

문수는 빌어 갔던 몇 권의 책을 돌려 주고 표해 두었던 몇 구절의 뜻을 질문하였다. 나는 그에게는 하루의 선배인 것이다. 돈독하게 뛰어 주는 것이 즐거운 의무도 되었다.

공부가 끝난 다음 책을 덮어 두고 잡담에 들어갔을 때에 문수는 탄식하는 어조였다.

학교가 점점 틀려 가는 모양이다.

구체적 실례를 가지가지 들고 나중에는 그 한 사람의 협착한 처지를 말하였다.

책 읽는 것까지 들키었네. 자네 책도 빼앗길 뻔했어.

짐작되었다.

나와 사귀는 것이 불리하지 않은가.

자네 걸은 길대로 되어 나가는 것이 뻔하지. 차라리 그 편이 시원하겠네.

너무 궁박한 현실 이야기만도 멋없어 두 사람은 무릎은 툭 털고 일어서 기분을 가다듬고 노래를 불렀다.

아는 말 아는 곡조를 모조리 불렀다.

노래가 진하면 번갈아 서서 연설을 하였다. 눈앞에 수많은 대중을 가상하고 목소리를 다하여 부르짖어 본다. 바닷물이 수물거리나 어쩌나 새들이 놀라서 떨어지나 어쩌나를 시험하려는 듯이도 높게 고함쳐 본다. 박수하는 사람은 수만의 대중 대신에 한 사람의 동무일 뿐이나 지쩔이는 동안에 정신이 흥분되고 통쾌하여 간다. 훌륭한 공부 이외 단련이다.

협착한 땅 위에 그렇게 자유로운 벌판이 있음이 새삼스러운 놀람이다. 아무리 자유로운 말을 외쳐도 거기에서만을 <중지>를 당하는 법이 없으니까 말이다. 땅 위는 좁으면서도 넓은 셈인가.

둑은 속 풀리는 시원한 곳이며 문수와 보내는 하루는 언제든지 다시없이 즐거운 날이다.

5

과수원 철망 너머로 엿보이는 철 늦은 딸기


잎새 사이로 불긋불긋 둗아난 송이 굵은 양딸기---지날 때마다 건강한 식욕을 참을 수 없다.

더구나 달빛에 젖은 딸기의 야자란 마치 크림을 껴얹은 것과도 같이 한층 부드럽게 빛난다.

탐나는 열매에 눈독을 보내며 철망을 넘기에 나는 반드시 가책과 반성으로 모질게 마음을 매질하지는 않았으며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것이 누구의 과수원이든 간에 찰망을 넘는 것은 차라리 들 사람의 일종의 성격이 아닐까.

들 사람은 또 한편 그것을 용납하고 묵인하는 아량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몇 해 동안에 완전히 이 야취의 성격을 얻어 버런 것 같다.

흐뭇한 송이를 정신없이 따서 입에 넣으면서도 철망 밖에서 다만 탐내고 보기만 할 때보다 한층 높은 감동을 느끼지 못하게 됨은 도리어 웬일일까. 입의 감동이 눈의 감동보다 떨어지는 탓일까. 생각만 할 때의 감동이 실상 당하였을 때의 감동보다 항용 더 나은 까닭일까. 나의 욕심을 만족시키기에는 불과 몇 송이의 딸기가 필요할 뿐이었다. 차라리 발판에 지천으로 열려 언제든지 딸 수 있는 들딸기 편이 과수원 안의 양딸기보다 나음을 생각하며 나는 다시 철망을 넘었다.

멍석딸기, 중딸기, 장딸기, 나무딸기, 감내달기, 곰딸기, 닷딸기, 뱀딸기....

능금나무 그늘에 난데없는 사람의 그림자를 발견하자 황급히 뛰어넘다 철망에 걸려 나는 옷을 찢었다. 그러나 옷보다도 행여나 들키지나 않았나 하는 염려가 앞서 허둥허둥 풀 속을 뛰다가 또 공교롭게도 그가 옥분임을 알고 마음이 일시에 턱 놓였다. 그 역시 딸기밭을 노리고 있던 터가 아닐까. 철망 기숡을 기웃거리며 능금나무 아래 몸을 간직하고 있지 않던가.

언제인가 개천 둑에서 기묘하게 만난 후 두 번째의 공교로운 만남임을 이상하게 여기고 있는 동안에 마음이 퍽이나 헐하게 놓여졌다. 가까이 가서 시룽시룽 말을 건 것도 그역시 시스러워하지 않고 수얼하게 말을 받고 대답하고 하였다. 전날의 기묘한 만남이 확실히 두 사람의 마음을 방긋이 열어 놓은 것 같다.

딸기 따 줄까.

무서워.

그의 떨리는 목소리가 왜 그리도 나의 마음을 끌었는지 모른다. 나는 떨리는 그의 팔을 붙들고 풀밭을 지나 버드나무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의 입술은 딸기보다도 더 붉다. 확실히 그는 딸기 이상의 유혹이었다.

무서워.

무섭긴.

하고 달래기는 하였으나 기실 딸기를 훔치러 철망을 넘을 때와 똑같이 가슴이 후둑후둑 떨림을 어쩌는 수는 없었다. 버드나무 잎새 사이로 달빛이 가늘게 새어들었다. 옥분은 굳이 거역하려고 하지 않았다.

양딸기 맛이 아니요 확실히 들딸기 맛이었다. 멍석딸기 나무딸기의 신선한 감각에 마음은 흐뭇이 찼다.

아무리 야취의 습관에 젖었기로 철망 너머 딸기를 딸 때와 일반으로 아무 가책도 반성도 없었던가. 벌판서 난창치던 한 자웅의 짐승과 일반이 아닌가. 그것이 바른가 그래서 옳을까 하는 한 줄기의 곧은 생각이 한결이 벋쳐오름을 억제할 수는 없었다. 결국 마지막 판단은 누가 옳게 내릴 수 있을까.

6

며칠이 자나도 여전히 귀찮은 생각이 머릿 속에 뱅 돈다. 어수선한 마음을 활짝 씻어 버릴 양으로 아침부터 그물을 들고 집을 나섰다.

그물을 후릴 곳을 찾으면서 남대천 물줄기를 따라 올라간 것이 시적시적 걷는 동안에 어느덧 철교께서도 근 10리를 올라가게 되었다. 아무 고기나 닥치는 대로 잡으려던 것이 그렇게 되고 보니 불현듯이 고들빼기를 후려 볼 욕심이 솟았다.

고기 사냥 중에서도 가장 운치 있고 흥있는 고들빼기 사냥에 나는 몇 번인지 성공한 일이 있어 그 호젓한 멋을 잘 안다. 그 중 많이 모여 있을 듯이 보이는 그럴 듯한 여울을 점쳐 첫그물을 던져 보기로 하였다.

산 속에 오막하게 둘러싸인 개울, 물도 맑거니와 물소리도 맑다. 돌을 굴리는 여울 소리가 티끌 한 점 있을 리 없는 공기와 초목을 영롱하게 울린다. 물 속에서 노는 고기는 산신령이 아닐까.

옷을 활짝 벗어부치고 그물을 메고 물 속에 뛰어들었다. 넉넉히 목욕을 할 시절임에도 워낙 산골물이라 뼈에 차다. 마음이 한꺼번에 씻쳐쳤다느니보다도 도리어 얼어붙을 지경이다. 며칠 내로 내려오던 어수선한 생각이 확실히 덜해지고 날아갔다고 할까. 그러나 그러면서도 마지막 한 가지 생각이 아직도 철사같이 가늘게 꿰뚫고 흐름을 속일 수는 없었다.

(사람의 사이란 그렇게 수월할까.)

옥분과의 그날 밤 인연이 어처구니없게 쉽사리 맺어진 것이 도리어 의심쩍은 것이었다. 아무 마음의 거래도 없던 것이 달빛과 딸기에 꼬임을 받아 그때 그 자리에서 금방 응낙이 되다니. 항용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두 사람의 마음의 교섭이란 이야기 속에서 읽을 때에는 기막히게 장황하고 지리한 것이었는데 그것이 그렇게 수월할 리 있을까. 들 복판에서는 수월한 법일까.

(책임 문제는 생기지 않는가.)

생각은 다시 솔솔 풀린다. 물이 찰수록 생각도 첨점 차게만 들어간다.

물이 다리목을 넘게 되었을 때 그쯤에서 한 훌기 던져 보려고 그물을 펴들고 물 속을 가늠 보았다. 속물이 꽤 세어 다리를 훌친다. 물때 낀 돌멩이가 몹시 미끄러워 마음대로 발을 디딜 수 없다. 누르칙칙한 물 속이 정확히 보이지 않는다. 몇 걸음 아래편은 바위요 바위 아래는 소가 되어있다.

그물을 던질 때의 호흡이란 마치 활을 쏠때의 그것과도 같이 미묘한 것이어서 일종의 통일된 정신과 긴장된 자세를 요구하는 것임을 나는 경험으로 잘 안다. 그러면서도 그 때 자칫하여 기어이 실수를 하게 된 것은 필시 던지는 찰나까지도 통일되지 못한 마음이 어수선하고 정신이 까닥거렸음이 확실하다.

몸이 휫등하고 휘더니 휭하게 날아야 할 그물이 물 위에 떨어지자 어지럽게 흩어졌다. 발이 미끄러져서 센 물결에 다리가 쓸리니까 그물은 손을 빠져 달아났다. 물 속에 넘어져 흐르는 몸을 아무리 버둥거려야 곧추 일으키는 장사 없었다. 생각하면 기가 막히나 별수없이 몸은 흐를 대로 흐르고야 말았다. 바위에 부딪쳐 기어이 소에 빠졌다. 거품을 날리는 폭포 속에 송두리째 푹 잠겼다가 날리는 폭포 속에 송두리째 푹 잠겼다가 휘엿이 솟으면서 푸른 물 속을 뱅돌았다. 요행 헤엄의 술득이 약간 있던 까닭에 많은 고생 없이 허부적거리고 소를 벗어날 수는 있었다.

면상과 어깻죽지에 몇 군데 상처가 있었다. 피가 돋았다. 다리에도 군데군데 싯퍼렇게 멍이 들어 있음을 보았다. 잃어버린 그물은 어느 줄기에 묻혀 흐르는지 알 바도 없거니와 찾을 용기도 없었다. 고들빼기는 물론 한 마리도 손에 쥐어 보지 못하였다.

귀가 메이고 코에서는 켰던 물이 줄줄 흘렀다. 우연히 욕을 당하게 된 뭄뚱어리를 홅어보며 나는 알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별안간 옥분의 몸이, 향기가 눈앞에 흘러 왔다. 비밀을 가진 나의 몸이 다시 돌려보이며 한동안 부끄러운 생각이 쉽게 꺼지지 않았다.

7

문수는 기어이 학교를 쫓겨났다. 기한 없는 정학 처분이었으나 영영 몰려난 것과 같은 결과이다. 덕분에 나도 빌려 주었던 책권을 영영 빼앗긴 셈이 되었다.

차라리 시원하다고 문수는 거드름부렸으나 시원하지 않은 것은 그의 집안 사람들이다. 들볶는 바람에 그는 집을 피하여 더 많이 나와 지내게 되었다. 원망의 물줄기는 나에게까지 튀어왔다. 나는 애매하게도 그를 타락시켜 놓은 안된 놈으로 몰릴 수밖에는 없다.

별수없이 나날을 들과 벗하게 되었다. 나는 좋은 들의 동무를 얻은 셈이다.

풀밭에 서면 경주를 하고 시냇가에 서면 납작한 돌을 집어 물 위에 수제비를 뜨기가 일쑤다. 돌을 힘껏 던져 그것이 물위를 뛰어가는 뜀 수를 세는 것이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이 최고 기록이다. 돌은 굴러갈수록 걸음이 좁아지고 빨라지다 나중에는 깜박 물 속에 꺼진다. 기차가 차차 멀어지고 작아지다 산모퉁이에 깜박 사라지는 것과도 같다. 재미있는 장난이다. 나는 몇 번이고 싫지 않게 돌을 집어 시험하는 것이었다.

팔이 축 처지게 되면 다시 기운을 내여 모래밭에 겨루고 서서 씨름을 한다. 힘이 비등하여 승패가 상반이다. 떠밀기도 하고 샅바씨름도 하고 잡아나꾸기도 하고, 다리걸이 딴죽치기, 기술도 차차 늘어가는 것 같다.

세상에서 제일 장하고 제일 크고 제일 아름답고 제일 훌륭하고 제일 바른 것이 무엇이냐?

되고 말고 수수께끼를 걸고,

힘이다!

하고 껄껄 웃으면 오장육부가 물에 행군 듯이 시원한 것이다. 힘! 무슨 힘이든지 좋다. 씨름을 해 가는 동안에 우리는 힘에 대한 인식을 한층 더 새롭혀 갔다. 조직의 힘도 장하거니와 그것을 꾸미는 한 사람의 힘이 크다면 더 한층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8

문수와 천렵을 나섰다.

그물을 잃은 나는 하는 수 없이 족대를 들고 쇠치네 사냥을 하러 시냇물을 훑어내려갔다.

벌판에 남비를 걸고 뜬 고기를 끓이고 밥을 지었다.

먹을 것이 거의 준비되었을 때 더운 판에 목욕을 들어갔다.

땀을 씻고 때를 밀고는 깊은 곳에 들어가 물장구와 가댁질이다. 어린아이 그대로의 순진한 마음이 방울방울 날리는 물방울과 함께 맑은 하늘을 휘덮었다가는 쏟아지는 것이다. 물가에 나와 얼굴을 씻고 물을 들일 때에 문수는 다따가,

어깨의 상처가 웬일인가.

하고 나의 어깨의 군데군데를 가리켰다. 나는 뜨끔하면서 그때까지 완전히 잊고 있던 고들빼기 사냥과 거기에 관련된 옥분과의 일건이 생각났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그에게까지 기일 바 못 되어 기어이 고기잡이 이야기와 따라서 옥분과의 곡절을 은연중 귀뜀하여 주게 되었다.

이상한 것은 그의 태도였다.

명예의 부상일세그려.

놀리고는 걱실걱실 웃는 것이다.

웃다가 문득 그치더니,

이왕 말이 났으니 나도 내 비밀을 게울 수 밖에는 없게 되었네 그려.

정색하고 말을 풀어냈다.

옥분이....나도 그와는 남이 아니야.

어안이 벙벙한 나의 어깨를 치며,

생각하면 득추와 파혼된 후부터는 달뜬 마음이 허랑해진 모양이네. 일종의 자표자기야. 죽일 놈은 득추지 옥분의 형편이 가엾기는 해.

나에게는 이상한 감정이 솟아올랐다. 문수에게 대하여 노염과 질투를 느끼는 대신에, 도리어 일종의 안심과 감사를 느끼는 것이었다. 괴롭던 책임이 모면된 것 같고 무거운 짐을 벗어 놓은 듯이도 감정이 가벼워지고 응겼던 마음이 풀리는 것이다. 이상한 것은 교활하고 악한 마음 보일까. 그러나 나를 단 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 옥분의 허랑한 태도에 해결의 열쇠는 있다. 그의 태도가 마지막 책임을 져야 될 터이니까.

왜 말이 없나. 거짓말로 알아듣나. 자네가 버드나무에서 숲에서 만났다면 나는 풀밭에서 만났네.

여전히 잠자코만 있으면서 나는 속으로 한결같이 들의 성격과 마술과도 같은 자연의 매력이라는 것을 생각하였다.

얼마나 이야기가 장황하였던지 밥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9

무더운 날이 계속된다.

이런 때 마을은 더 한층 지내기 어렵고 역시 들이 한결 낫다.

낮은 낮으로 해 두고 밤을...하룻밤을 온전히 들에서 보낸 적이 없다.

우리는 의논하고 하룻밤을 들에서 야영하기로 하였다.

들의 밤을 두려운 것일까? 이런 위문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왕 의가 통한 후이니 이 후로는 옥분이도 데려다가 세 사람이 일단의 <들의아들>이되었으면 하는 문수의 의견이었으나 나는 그것을 일종의 악취미라고 배척하였다. 과거의 피차의 정의는 정의로 하여 두고 단체 생활에는 역시 두 사람이 적당하며 수효가 셋이 면 어떤 경우에든지 반드시 기울고 불안정 하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결국 나의 야성이 철저하지 못한 까닭이 아닐까.

어떻든 두 사람은 둘 복판에서 해를 넘기고 어둡기를 기다리고 밤을 맞이하였다.

불을 피우고 이야기 하였다.

이야기가 장황하기 때문에 불이 마저 스러질 때에는 마을의 등불도 벌써 다 꺼지고 개짖는 소리도 수습된 뒤였다. 별만이 깜박거리고 바다 소리가 은은할 뿐이다.

어둠은 깊고 무한하다.

창조 이전의 혼돈의 세계는 이러하였을까.

무한한 적막....지구의 자전 공전 소리도 들리지는 않는 것이다.

공포....두려움이란 어디서 오는 감정일까.

어둠에서도 적막에서도 오지는 않는다.

우리는 일부러 두려운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로 마음을 떠 보았으나 이렇듯한 새삼스러운 공포의 감정이라는 것은 솟지 않았다..

위에는 하늘이요 아래는 풀이요---주위에 어둠이 있을 뿐이지 모두가 결국 낮 동안의 계속이요 연장이다. 몸에 소름이 돋는 법도 마음이 덜리는 법도 없다.

서로 눈말 말똥거리다가 피곤하여 어늘 결엔지 잠이 들어 버렸다.

단잠을 깨었을 때는 아침 해가 높은 후였다.

야영의 밤은 시원하였을 뿐이요 공포의 새는 결국 잡지 못하였다.

10

그러나 공포는 왔다.

그것은 들에서 온 것이 아니요 마을에서, 사람에게서 왔다.

공포를 만드는 것은 자연이 아니요 사람의 사회인 듯싶다.

문수가 돌연히 끌려간 것이다. 학교 사건의 뒤맺이인 듯하다. 이어 나도 들어가게 되었다.

나 혼자에 대하여 혹은 문수와 관련되어 여러 가지 질문을 받았다.

사흘 밤을 지우고 쉽게 나왔으나 문수는 소식이 없다. 오랠 것 같다.

여러 가지 재미있는 여름의 계획도 세웠으나 혼자서는 하릴없다.

가졌던 동무를 잃었을 때의 고독이란 큰 것이다.

들에서 무료히 지내는 날이 많다.

심심파적으로 옥분을 데려올까도 생각되나 여러 가지로 거리끼고 주체스런 일이다. 깨끗한 것이 좋을 것 같다.

별수없이 녀석이 하루라도 속히 나오기를 충심으로 바랄 뿐이다.

나오거든 풋콩을 실컷 구워 먹이고 기름종개를 많이 떠먹이고 씨름해서 몸을 불려 줄 작정이다.

들에는 도라지 꽃이 피고 개나리꽃이 장하다.

진펄의 새발 고사리꽃도 어느덧 활짝 피었다. 해오라기가 가끔 조촐한 자태로 물가에 내린다.

시절이 무르녹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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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성 모퉁이 버드나무 까치 둥우리 위에 푸르둥한 하늘이 얕게 드리웠다. 토끼우리에서 하이얀 양토끼가 고슴도치 모양으로 까칠하게 웅크리고 있다. 능금나무 가지를 간들간들 흔들면서 벌판을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채 녹지 않은 눈 속에 덮인 종묘장(種苗場) 보리밭에 휩쓸려 돼지우리에 모질게 부딪친다.

우리 밖 네 귀의 말뚝 안에 얽어 매인 암퇘지는 바람을 맞으면서 유난히 소리를 친다. 말뚝을 싸고도는 종묘장(種苗場) 씨돝은 시뻘건 입에 거품을 뿜으면서 말뚝의 뒤를 돌아 그 위에 덥석 앞다리를 걸었다. 시꺼먼 바위 밑에 눌린 자라 모양인 암퇘지는 날카로운 비명을 울리며 전신을 요동한다. 미끄러진 씨돝은 게걸덕 거리며 다시 말뚝을 싸고 돈다. 앞뒤 우리에서 응하는 돼지들의 고함에 오후의 종묘장 안은 떠들썩했다.

반 시간이 넘어도 여의치 않았다. 둘러싸고 보던 사람들도 흥이 식어서 주춤주춤 움직인다. 여러 번째 말뚝 위에 덮쳤을 때에 육중한 힘에 말뚝이 와싹 무지러지면서 그 바람에 밑에 깔렸던 돼지는 말뚝의 테두리로 벗어져서 뛰어났다.

"어려서 안되겠군."

종묘장 기수가 껄껄 웃는다.

"--- 황소 앞에 암달 같으니 쟁그러워서 볼 수 있나."

"겁을 먹고 달아나는데."

농부는 날쌔게 우리 옆을 돌아 뛰어가는 돼지의 앞을 막았다.

"달포 전에 한번 왔다 갔으나 씨가 붙지 않아서 또 끌고 왔는데요."

식이는 겸연쩍어서 얼굴을 붉혔다.

"아무리 짐승이기로 저렇게 어리구야 씨가 붙을 수 있나."

농부의 말에 식이는 다시 얼굴을 붉혔다.

"빌어먹을 놈의 짐승."

무안도 무안이려니와 귀찮게 구는 짐승에 식이는 화를 버럭 내면서 농부의 부축을 하여 달아나는 돼지의 뒤를 쫓는다. 고무신이 진창에 빠지고 바지춤이 흘러내린다.

돼지의 허리를 매인 바를 붙잡았을 때에 그는 홧김에 바를 뒤로 잡아 나꾸며 기운껏 매질한다. 어린 짐승은 바들바들 뛰면서 비명을 울린다. 농가 일년의 생명선 --- 좀 있으면 나올 제일기 세금과 첫여름 감자가 나올 때까지의 가족의 양식의 예산의 부담을 맡은 이 어린 짐승에 대한 측은한 뉘우침이 나중에는 필연코 나련마는 종묘장 사람들 숲에서의 무안을 못 이겨 식이의 흔드는 매는 자연 가련한 짐승 위에 잦게 내렸다.

"그만 갖다 매시오."

말뚝을 고쳐 든든히 박고 난 농부는 식이에게 손짓한다. 겁과 불안에 떨며 허둥거리는 짐승을 이번에는 이걸 더 든든히 말뚝 안에 우겨 넣고 나뭇 대를 가로질러 배까지 떠받쳐 올려 꼼짝 요동하지 못하게 탐탁하게 얽어 매였다.

털몸을 근실근실 부딪히며 그의 곁을 궁싯궁싯 굼도는 씨돝은 미처 식이의 손이 떨어지기도 전에 '화차'와도 같이 말뚝 위를 엄습한다. 시뻘건 입이 욕심에 목메어서 풀무같이 요란히 울린다. 깔리운 암톹은 목이 찢어져라 날카롭게 고함친다.

둘러 선 좌중은 일제히 웃음소리를 멈추고 일시 농담조차 잊은 듯 하였다.

문득 분이의 자태가 눈앞에 떠오른다. 식이는 말뚝에서 시선을 돌려 딴전을 보았다.

---“분이 고것 지금엔 어디 가 있는구."

---제 이기분은 세려 일기분 세금조차 밀려오는 농가의 형편에 돼지보다 나은 부업이 없었다. 한 마리를 일년동안 충시히 기르면 세금도 세금이려니와 잔돈푼의 가용돈은 훌륭히 우러나왔다. 이 돼지의 공용을 잘 아는 식이다. 푼푼이 모든 돈으로 마을 사람들의 본을 받아 종묘장에서 가주 난 양 돼지 한 자웅을 사놓은 것이 자는 여름이었다. 기름이 자르를 흐르는 새까만 자웅을 식이는 사람보다도 더 귀히 여겨 가주 사왔던 무렵에는 우리에 넣기가 아까와 그의 방 한 구석에 짚을 펴고 그 위에 재우기까지 하던 것이 젖이 그리워서인지 한 달도 못돼서 숫놈이 죽었다. 나머지의 암놈을 식이는 애지중지하여 단 한 벌의 그의 밥그릇에 물을 받아 먹이기까지 하였다. 물도 먹지 않고 꿀꿀 앓을 때에는 그는 나무하러 가는 것도 그만두고 종일 짐승의 시중을 들었다. 여섯 달을 키우니 겨우 암퇘지 티가 났다. 달포 전에 식이는 첫 시험으로 십리가 넘는 종묘장으로 끌고 왔었다. 피돈 오십 전이나 내서 씨를 받은 것이 종시 붙지 않았다. 식이는 화가 났다. 때마침 정을 두고 지내던 이웃집 분이가 어디론지 도망을 갔다. 식이는 속이 상해서 며칠 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늘 뾰로통해서 쌀쌀하게 대꾸하더니 그 고운 살을 한번도 허락하지 않고 늙은 아비를 혼자 둔 채 기어이 도망을 가버렸구나 생각하니 분이가 괘씸하였다. 그러나 속깊은 박초시의 일이니 자기 딸 조처에 무슨 꿍꿍이 수작을 대었는지 도무지 모를 노릇이었다. 청진으로 갔느니 서울로 갔느니 며칠 전에 박초시에게 돈 십원이 왔느니 소문은 갈피갈피 였으나 하나도 종잡을 수 없었다. 이래저래 상할대로 속이 상했다. 능금꽃같은 두 볼을 잘강잘강 씹어먹고 싶던 분이인만큼 식이는 오늘까지 솟아오르는 심화를 억제할 수 없었다.

---"다 됐군."

딴전만 보고 섰던 식이는 농부의 목소리에 그쪽을 보았다. 씨돝은 만족한 듯이 여전히 꿀꿀 짖으면서 그곳을 떠나지 않고 빙빙 돈다.

파장 후의 광경이언만 분이의 그림자가 눈앞에 어른거리는 식이는 몹시도 겸연쩍었다. 잠자코 섰는 까칠한 암퇘지와 분이는 자태가 서로 얽혀서 그의 머리속에 추근하게 떠올랐다. 음란한 잡담과 허리 꺾는 웃음소리에 얼굴이 더 한층 붉어졌다. 환영을 떨쳐버리려고 애쓰면서 식이는 얽어매었던 돼지를 풀기 시작하였다. 농부는 여전히 게걸덕거리며 어른어른 싸도는 욕심 많은 씨돝을 몰아 우리 속에 가두었다.

"이번에는 틀림없겠지."

장부에 이름을 올리고 오십 전을 치뤄주고 종묘장을 나오니 오후의 해가 느지막하였다. 능금밭 건너편 양옥 관사의 지붕이 흐린 석양에 푸르뎅뎅하게 빛난다. 옛성 어귀에는 드나드는 장꾼의 그림자가 어른어른 한다. 성안에서 한 채의 뻐스가 나오더니 폭넓은 이등도로를 요란히 달아온다. 돼지를 몰고 길 왼편 가으로 피한 식이는 푸뜩 지나가는 뻐스 안을 흘끗 살펴본다. 분이를 잃은 후로부터는 그는 달아나는 뻐스 안까지 조심스럽게 살피게 되었다. 일전에 나남에서 뻐스 차장 시험이 있었다더니 그런 데로나 뽑혀 들어가지 않았을까. 분이의 간 길을 이렇게도 상상하여 보았기 때문이다.

"장이나 한바퀴 돌아올까."

북문 어귀 성밑 돌 틈에 돼지를 매놓고 식이는 성을 들어가 남문 거리로 향하였다.

분이가 없는 이제, 장꾼의 눈을 피하여 으슥한 가게 앞에 가서 겸연쩍은 태도로 매화분을 살 필요도 없어진 식이는, 석유 한 병과 마른명태 몇 마리를 사들고 장판을 오르락내리락 하였다. 한 동네 사람의 그림자도 눈에 띠이지 않기에 그는 곧게 성밖을 나와 마을로 향하였다.

어기죽거리며 돼지의 걸음이 올때만큼 재지 못하였다. 그러나 매질할 용기는 없었다.

철로를 끼고 올라가 정거장 앞을 지나 오촌포 한길에 나서니 장보고 돌아가는 사람의 그림자가 드문드문 보인다. 산모퉁이가 바닷바람을 막아 아늑한 저녁 빛이 한길 위를 덮었다. 먼 산 위에는 전기의 고가선이 솟고 산밑을 물줄기가 돌아 내렸다. 온천 가는 넓은 도로가 철로와 나란히 누워서 남쪽으로 줄기차게 뻗쳤다. 저물어 가는 강산 속에 아득하게 뻗친 이 두 줄의 길이 새삼스럽게 식이의 마음을 끌었다. 걸어가는 그의 등뒤에서는 산모퉁이를 돌아오는 기차소리가 아련히 들린다. 별안간 식이에게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 길로 아무데로나 달아날까."

장에 가서 돼지를 팔면 노자가 되겠지. 차 타고 노자 자라는 곳까지 달아나면 그곳에 분이가 있지 않을까, 어디서 들었는지 공장에 들어가기가 분이의 소원이더니 그 곳에서 여직공 노릇하는 분이와 만나 나도 '노동자'가 되어 같이 살면 오죽 재미있을까. 공장에서 버는 돈을 달마다 고향에 부치면 아버지도 더 고생하실 것 없겠지. 돼지를 방에서 기르지 않아도 좋고 세금 못 냈다고 면소 서기들한테 밥솥을 빼앗길 염려도 없을 터이지. 농사같이 초라한 업이 세상에 또 있을지. 아무리 부지런히 일해도 못살기는 일반이니......분이 있는 곳이 어디인가......돼지를 팔면 얼마를 받을까. 암퇘지 양돼지.......

"앗!"

날카로운 소리에 번쩍 정신이 깨었다.

찬바람이 휙 앞을 스치고 불시에 일신이 딴 세상에 뜬 것 같았다. 눈 보이지 않고, 귀 들리지 않고, 잠시간 전신이 죽고, 감각이 없어졌다. 캄캄하던 눈앞이 차차 밝아지며 거물거물 움직이는 것이 보이고 귀가 뚫리며 요란한 음향이 전신을 쓸어 없앨 듯이 우렁차게 들렸다. 우레 소리가......바다 소리가......바퀴 소리가....... 별안간 눈앞이 환해지더니 열차의 마지막 바퀴가 쏜살같이 눈앞을 달아났다.

"앗 기차!"

다 지나간 이제 식이는 정신이 아찔하며 몸이 부르르 떨린다.

진땀이 나는 대신 소름이 쪽 돋는다. 전신이 불시에 비인 듯이 거뿐하다. 글자대로 전신이 비었다. 한쪽 팔에 들었던 석유병도 명태 마리도 간 곳이 없고 바른 손으로 이끌던 돼지도 종적이 없다.

"아, 돼지!"

"돼지구 무어구 미친놈이지. 어디라고 건널목을 막 건너."

따귀를 철썩 맞고 바라보니 철로 망보는 사람이 성난 얼굴로 그를 노리구 섰다.

"돼지는 어찌됐단 말이오."

"어제밤 꿈 잘 꾸었지. 네 몸 안 친 것이 다행이다."

"아니 그럼 돼지가 치었단 말요."

"다음부터 차에 주의해."

독하게 쏘아붙이면서 철로 망군은 식이의 팔을 잡아 나꿔 건널목 밖으로 끌어냈다.

"아 돼지가 치었다니 두 번 종묘장에 가서 씨를 받은 내 돼지 암퇘지 양돼지......."

엉겁결에 외치면서 훑어보았으나 피 한방을 찾아 볼 수 없다. 흔적조차 없다니 --- 기차가 달롱 들고 간 것 같아서 아득한 철로 위를 바라보았으나 기차는 벌써 그림자조차 없다.

"한 방에서 잠재우고, 한 그릇에 물 먹여서 기른 돼지, 불쌍한 돼지......."

정신이 아찔하고 일신이 허전하여서 식이는 급시에 그 자리에 푹 쓰러질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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觸角

觸角이 이런 情景을 圖解한다.

悠久한 歲月에서 눈 뜨니 보자, 나는 郊外 淨乾한 한 방에 누워 自給自足하고 있다. 눈을 둘러 방을 살피면 방은 追憶처럼 着席한다. 또 창이 어둑어둑하다.

不遠間 나는 굳이 지킬 한 개 슡케―스1를 발견하고 놀라야 한다. 계속하여 그 슡케―스 곁에 花草처럼 놓여 있는 한 젊은 女人도 발견한다.

나는 실없이 疑訝하기도 해서 좀 쳐다보면 각시가 방긋이 웃는 것이 아니냐. 하하, 이것은 기억에 있다. 내가 열심히 연구한다. 누가 저 새악시를 사랑하던가! 연구중에는

「저게 새벽일까? 그럼 저묾일까?」

부러 이런 소리를 했다. 女人은 고개를 끄덕끄덕 한다. 하더니 또 방긋이 웃고 부스스 五月철에 맞는 치마저고리 소리를 내면서 슡케―스를 열고 그속에서 서슬이 퍼런 칼을 한 자루만 꺼낸다.

이런 경우에 내가 놀래는 빛을 보이거나 했다가는 뒷감당하기가 좀 어렵다. 反射的으로 그냥 손이 목을 눌렀다 놓았다 하면서 제법 천연스럽게

「임재는 刺客입니까요?」

서투른 西道사투리다. 얼굴이 더 깨끗해지면서 가느다랗게 잠시 웃더니 그것은 또 언제 갖다 놓았던 것인지 내 머리맡에서 나쓰미깡2을 집어다가 그 칼로 싸각 싸각 깎는다.

「요곳 봐라!」

내 입안으로 침이 쫘르르 돌더니 불현듯이 弄談이 하고 싶어 죽겠다.

「가시내애요, 날쭘 보이소, 나캉 結婚할낭기요? 盟誓듸나? 듸제?」

「융3이 날로 패아주뭉 내사 고마 마자 주울란다. 그람 늬능 우앨랑가? 잉?」

우리들이 맛있게 먹었다. 時間은 분명히 밤이 쏟아져 들어온다. 손으로 손을 잡고

「밤이 오지 않고는 결혼할 수 없으니까.」

이렇게 탄식한다. 기대하지 않은 간지러운 경험이다.

낄낄낄낄 웃었으면 좋겠는데 ― 아 ― 결혼하면 무엇하나, 나따위가 생각해서 알 일이 되나? 그러나 재미있는 일이로다.

「밤이지요?」

「아 ―냐.」

「왜 ― 밤인데 ― 에 ― 우습다 ― 밤인데 그러네.」

「아 ― 냐, 아 ― 냐.」

「그러지 마세요 , 밤이예요.」

「그럼 뭐 , 결혼해야 허게.」

「그럼요 ―」

「히히히히 ―」

결혼하면 나는 姙이를 미워한다. 尹? 姙이는 지금 尹한테서 오는 길이다. 尹이 내어대었단다. 그래보는 거다. 그런데 姙이가 채 오해했다. 정말 그러는 줄 알고 울고 왔다.

(애게 ― 밤일세)

「어떻거구 왔누.」

「건 알아 뭐허세요?」

「그래두.」

「제가 버리구 왔어요.」

「足히?」

「그럼요 ―」

「히히.」

「절 모욕허지 마세요.」

「그래라.」

일어나더니 ― 나는 지금 이러한 姙이를 좀 描寫해야겠는데 最小限度로 그 차림차림이라도 알아 두어야겠는데― 姙이 슡케―스를 뒤집어 엎는다. 왜 저러누― 하면서 보자니까 야단이다. 죄다 파 헤치고 무엇인지 찾는 모양인데 무엇을 찾는지 알아야 나도 助力을 하지, 저렇게 방정만 떠니 낸들 손을 대일 수가 있나, 내버려 두었다. 가도 참다참다 못해서

「거 뭘 찾누?」

「엉― 엉― 반지― 엉― 엉―」

「원 세상에, 반진 또 무슨 반진구.」

「결혼반지지.」

「옳아, 옳아, 옳아, 응, 결혼 반지렷다.」

「아이구 어딜 갔누, 요게, 어딜 갔을까.」

결혼반지를 잊어버리고 온 新婦. 라는 것이 있을까? 可笑롭다. 그러나 모르는 말이다. 라는 것이 반지는 新郞이 준비하라는 것인데― 그래서 아주 아는 척 하고

「그건 내 슡케―스에 들어 있는 게 原則的으로 옳지!」

「슡케―스 어딧세요.」

「없지!」

「쯧, 쯧.」

나는 신부 손을 붙잡고

「이리 좀 와봐.」

「아야, 아야, 아이 그러지 마세요, 놓세요.」

하는 것을 달래서 왼손 무명지에다 털붓으로 쌍줄반지를 그려 주었다. 좋아한다. 아무 것도 낑기운 것은 아닌데 제법 간질간질한 게 천연반지 같단다.

천연 결혼하기 싫다. 트집을 잡아야겠기에 ―

「멫번?」

「한번.」

「정말?」

「꼭.」

이래도 안되겠고 間髮을 놓지 말고 다른 방법으로 拷問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럼 尹 以外에?」

「하나.」

「예이!」

「정말 하나예요.」

「말 마라.」

「둘.」

「잘 헌다.」

「셋.」

「잘헌다, 잘 헌다.」

「넷.」

「잘 헌다, 잘 헌다, 잘헌다.」

「다섯.」

속았다. 속아넘어 갔다. 밤은 왔다. 촛불을 켰다. 즉 이런 假짜반지는 탄로가 나기 쉬우니까 감춰야 하겠기에 꺼도 얼른 켰다. 밤이 오래 걸려서 밤이었다.

敗北 시작

이런 情景은 어떨까? 내가 理髮所에서 理髮을 하는 중에 ―

理髮師는 낯익은 칼을 들고 내 수염 많이 난 턱을 치켜든다.

「임재는 刺客입니까?」

하고 싶지만 이런 소리를 여기 理髮師를 보고도 막 한다는 것은 어쩐지 아내라는 存在를 是認하기 시작한 나로서 좀 良心에 안된 일이 아닐까 한다.

싹뚝, 싹뚝, 싹뚝, 싹뚝,

나쓰미깡 두 개 外에는 또 무엇이 채용이 되었던가 암만해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무엇일까.

그러다가 悠久한 歲月에서 쫓겨나듯이 눈을 뜨면, 거기는 理髮所도 아무 데도 아니고 新房이다. 나는 엊저녁에 결혼했단다.

窓으로 기웃거리면서 참새가 그렇게 의젓스럽게 싹둑거리는 것이다. 내 수염은 조금도 없어지진 않았고.

그러나 큰일난 것이 하나 있다. 즉 내 곁에 누워 普通 아침잠을 자고 있어야 할 신부가 온 데 간 데가 없다. 하하 그럼 아까 내가 理髮所 걸상에 누워있던 것이 그 쪽이 아마 생시더구나, 하다가도 또 이렇게까지 역력한 꿈이라는 것도― 없을 줄 믿고 싶다.

속았나보다. 밑진 것은 없다고 하지만 그동안에 원 歲月은 얼마나 悠久하게 흘렀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고 보니까 어저께 만난 尹이 만난 지가 바로 몇 해나 되는 것도 같아서 익살맞다. 이것은 한 번 尹을 찾아가서 물어 보아야 알 일이 아닐까, 즉 내가 자네를 만난 것이 어제 같은데 實로 몇 해나 된 세음인가 , 必是 내가 姙이와 엊저녁에 결혼한 것 같은 착각이 있는데 그것도 다 虛妄된 일이렷다. 이렇게 ―

그러나 다음 순간 일은 더 커졌다. 신부가 忽然히 나타난다. 五月철로 치면 좀 더웁지나 않을까 싶은 洋裝으로 차렸다. 이런 姙이와는 나는 面識이 없는 것이다.

그나 그뿐인가 斷髮이다. 或 이 이는 딴 아낙네가 아닌지 모르겠다. 斷髮 洋裝의 姙이란 내 親近에는 없는데, 그럼 이렇게 서슴지 않고 내 방으로 들어올 줄 아는 남이란 나와 어떤 惡緣일가?

가시내는 손을 툭툭 털더니

「갖다 버렸지」

이렇다면 姙이에는 틀림없나 보니 安心하기로 하고

「뭘?」

「입구 옹 거」

「입구 옹 거?」

「입고 옹 게 치마저고리지 뭐예요?」

「건 어째 내다 버렷다능거야」

「그게 바로 그거예요」

「그게 그거라니?」

「어이 참, 아 그게 바로 그거라니까 그래」

초가을 옷이 늦은 봄 옷과 비슷하였다. 姙이 말을 假量 신용하기로 하고 姙이가 단 한번 尹에게―

가만 있자. 나는 잠시 내 신세에 대하여 釋明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이를테면 적지아니 慘酷하다. 나는 아마 이 宿命的 業冤을 짊어지고 한평생을 내리 번민해야 하려나보다. 나는 형상없는 모던뽀이다. 라는 것이 누구든지 내 꼴을 보면 돌아서고 싶을 것이다. 내가 이래뵈도 체중이 十四貫이나 있다고 일러드리면 貴下는 알아차리시겠소? 즉 이 척신4이 銃알을 집어 먹었거로니 좀처럼 나기 어려운 洞窟을 보이는 것은 말하자면 나는 전혀 腦髓에 무게가 있다. 이것이 貴下가 나를 겁낼 重要한 비밀이외다.

그러니까―

於此於彼에 일은 運命에 波紋이 없는 듯이 이렇게까지 展開하고 말았으니 내 目的이라는 것을 披瀝할 필요도 있는 것 같다. 그러면―

尹, 姙이, 그리고 나,

누가 제일 미운가, 즉 나는 누구 편이냐는 말이다.

어쩔까, 나는 한 번만 똑똑이 말하고 싶지만 또한 그만두는 것이 옳은가도 싶으니 그럼 내 禮儀와 풍봉5을 確立해야겠다.

지난 가을 아니, 늦은 여름 어느날― 그 歷史的인 날짜는 姙이 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만― 나는 尹의 사무실에서 이른 아침부터 와 앉아 있는 姙이의 可憐한 座席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온 것이 아니라 가는 길인데 집의 아버지가 나가 갔다고6야단 치실까봐 무서워서 못가고 그렇게 앉아 있는 것을 나는 일찌감치도 와 앉았구나 하고 문득 오해한 것이다. 그때 그 옷이다.

같은 슈미즈, 같은 듀로워즈7, 같은 머리쪽, 한 男子, 또 한 男子.

이것은 안 된다. 너무나 어색해서 급히 내다 버린 모양인데 나는 좀 엄청나다고 생각한다. 大體 나는 그런 富裕한 이데올로기를 마음 놓고 諒解하기 어렵다.

그뿐 아니다. 첫째 나의 態度問題다. 그 시절에 나는 무엇을 하고 세월을 보냈더냐? 내게는 歲月조차 없다. 나는 들창이 어둑어둑한 것을 드나드는 안집 어린애에게 一錢씩 주어가면서 물었다.

「얘 아침이냐 저녁이냐.」

나는 또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슬을 받아 먹었나? 설마.

이런 나에게 姙이는 부질없이 體面을 차리려 들 것이다. 可憐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시절에 나는 제가 배가 고픈지 안 고픈지를 모르고 지냈다면 그것이 듣는 사람을 능히 속일 수 있나. 거짓부렁이리라. 나는 걷잡을 수 없이 皮膚로 거짓부렁이를 해버릇 하느라고 인제는 저도 눈치 채이지 못하는 틈을 타서 이렇게 虛妄한 거짓부렁이를 엉덩방아 찧듯이 해 넘기는 모양인데, 만일 그렇다면 나는 큰일 났다.

그리기에 사실 오늘 아침에는 배가 고프다. 이것으로 미루면 아까 姙이가 스커트, 슬맆, 듀로워즈, 등속을 모조리 내다버리고 들어왔더라는 紹介조차가 필연 거짓말일 것이다. 그것은 내 吝嗇한 愛情의 打算이 姙이더러

「너 왜 그러지 않았더냐.」

하고 暗暗裡에 퉁명? 심술을 부려본 것일 줄 나는 믿는다.

그러나 發音 안되는 글짜처럼 생동생동한 姙이는 내 손톱을 열심으로 깎아주고 있다.

「猛獸가 家畜이 되려면 이 凶惡한 毒牙를 剪斷해 버려야 한다.」

는 美術的인 勸誘임에 틀림없다. 이런 一方 나는 못났게도

「아이 배 고파.」

하고 여지없이 素朴한 얼굴을 姙이에게 디밀면서 아침이냐 저녁이냐 과연 이것만은 묻지 않았다.

新婦는 어디까지든지 귀엽다. 돋보기를 가지고 보아도 이 可憐한 일타화8 의 나이를 알아내이기는 어려우리라. 나는 내 失望에 守備하기 위하여 열 일곱이라고 넉넉잡아 준다. 그러나 내 귀에다 속삭이기를

「스물두살이라나요. 어림없이 그리지 마세요. 그만하면 알텐데 부러 그리시지요?」

이 可憐한 新婦가 지금 赤手空拳으로 나갔다. 내 짐작에 쌀과 나무와 숯과 반찬거리를 장만하러 나간 것일 것이다.

그동안 나는 심심하다. 안집 어린애기 불러서 같이 놀까. 하고 전에 없이 불렀더니 얼른 나와서 내 房 미닫이를 열고

「아침이예요.」

그린다. 오늘부터 一錢 안 준다. 나는 다시는 이 어린애와는 놀 수 없게 되었구나 하고 나는 할 수 없어서 덮어놓고 성이 잔뜩 난 얼굴을 해 보이고는 뺨 치듯이 房 미닫이를 딱 닫아 버렸다. 눈을 감고 가슴이 두근두근하자니까 으아 하고 그 어린애 우는 소리가 안마당으로 멀어가면서 들려왔다. 나는 오랜동안을 혼자서 덜덜 떨었다. 姙이가 돌아오니까 몸에서 牛乳내가 난다. 나는 徐徐히 내 活力을 整理하여가면서 姙이에게 주의한다. 똑 갓난애기 같아서 썩 좋다.

「牧場꺼지 갔다 왔지요.」

「그래서?」

카스텔라와 山羊乳를 책보에 싸가지고 왔다. 집씨族 아침 같다.

그러고 나서도 나는 내 本能 以外의 것을 지껄이지 않았나 보다.

「어이 목말라 죽겠네.」

대개 이렇다.

이 牧場이 가까운 郊外에는 電燈도 水道도 없다. 水道 대신에 펌프.

물을 길러 갔다 오더니 운다. 우는 줄만 알았더니 웃는다. 조런― 하고 보면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하다. 그러고도 웃고 있다.

「고개 누우집 아일까. 아, 쪼꾸망게 나더러 너 담발했구나, 핵교 가니? 그리겠지 고개 나알 제 동무루 아아나봐, 참 내 어이가 없어서, 그래, 난 안 간단다, 그랬드니, 요개 또 헌다는 소리가 나 발 씻게 물 좀 끼얹어 주려무나 얘, 아주 이리겠지, 그래 내 물을 한통 그냥 막 쫙 쫙 끼얹어 쥐었지, 그랬드니 너두 발 씻으래, 난 있다가 씻는단다 그리구 왔어, 글쎄, 내 기가 맥혀.」

누구나 속아서는 안 된다. 햇수로 여섯해 전에 이 女人은 정말이지 處女대로 있기는 성가셔서 말하자면 헐값에 즉 아무렇게나 내어주신 분이시다. 그동안 滿五個年 이분은 休憩라는 것을 모른다. 그런 줄 알아야 하고 또 알고 있어도 나는 때마침 변덕이 나서

「가만 있자, 거 얼마 들었드라?」

나쓰미깡이 두 개에 제 아무리 비싸야 二十錢, 옳지 깜빡 잊어버렸다. 초 한 가락에 三錢, 카스텔라 二十錢, 山羊乳는 어떻게 해서 그런지 거저,

「四十三錢인데.」

「어이쿠.」

「어이쿠는 뭐이 어이쿠예요.」

「고눔이 아무 數루두 除해지질 않는군 그래.」

「素數?」

옳다.

신통하다.

「신통해라!」

乞人反對

이런 情景마저 불쑥 내어놓는 날이면 이번 復讐行爲는 完璧으로 흐지부지하리라. 적어도 完璧에 가깝기는 하리라.

한 사람의 女人이 내게 그 宿命을 公開해 주었다면 그렇게 쉽사리 公開를 받은― 懺悔를 듣는 神父 같은 地位에 있어서 보았다고 자랑해도 좋은― 나는 비교적 행복스러웠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어디까지든지 약다. 약으니까 그렇게 거저 먹게 내 행복을 얼굴에 나타내이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로직을 不言實行하기 위하여서만으로도 내가 그 구중중한 수염을 깎지 않은 것은 至當한 중에도 至當한 맵시일 것이다.

그래도 이 愚鈍한 女人은 내 얼굴에 더덕더덕 붙은 바 醜를 指摘하지 않는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그 宿命을 公開하던 口實도 헛되거니와 그 女人의 愛情이 不足한 탓이리라. 아니 전혀 없다.

나는 바른 대로 말하면 애정 같은 것은 희망하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내가 결혼한 이튿날 新婦를 데리고 外出했다가 다행히 길에서 그 신부를 잃어버렸다고 하자. 내가 그럼 밤잠을 못자고 찾을까.

그때 가령 이런 엄청난 글발이 날라 들어왔다고 내가 은근히 희망한다.

「小生이 某月某日 길에서 줏은 바 少女는 貴下의 新婦임이 確實한 듯하기에 通知하오니 찾아가시오.」

그래도 나는 고집을 부리고 안 간다. 발이 있으면 오겠지, 하고 나의 念頭에는 그저 왕양9한 自由가 있을 뿐이다.

돈 지갑을 어느 포켓에다 넣었는지 모르는 사람만이 容易하게 돈 지갑을 잃어버릴 수 있듯이, 나는 길을 걸으면서도 결코 新婦 姙이에 대하여 주의를 하지 않기로 주의한다. 또 사실 나는 좀 片頭通이다. 五月의 郊外길은 좀 눈이 부셔서 실없이 어찔어찔하다.

走馬加鞭(달리는 말에 채찍을 더함. 정진해서 일하는 사람에게 한층 더 권장함)

이런 느낌이다.

姙이 결코 結婚 이튿날 걷는 길을 앞서지 않으니 姙이로 치면 이날 사실 가볼 만한 데가 없다는 것일까. 姙이는 그럼 뜻밖에도 孤獨하던가.

닫는 말에 한층 채찍을 내리우는 형상, 姙이의 적은 步幅이 어디 어느 地點에서 卒倒를 하나 보고 싶기도 해서 좀 심청맞으나 자분참 걸었던 것인데 ―

아니나다를까? 떡 없다.

내 常識으로 하면 귀한 사람이 家畜을 끌고 逍遙하려 할 때 으례히 가축이 앞선다는 것이다.

앞서 가는 내가 놀라야 하나. 이 경우에 그러면 그렇지 하고 까딱도 하지 않아야 더 점잖은가.

아직은? 했거만은 於焉간 없어졌다.

나는 내 孤獨과 내 老年을 생각하고 거기는 銀行 벽 모퉁이인 것도 채 認識하지도 못하는 중 서서 그래도 서너 번은 뒤 或은 兩곁을 둘러보았다. 斷髮 洋裝의 少女는 마침 드물다.

「이만하면 遺失이구?.」

닥쳐와야 할 일이 척 닥쳐왔을 때 나는 내 갈팡질팡하는 肉身을 收拾해야 한다. 그러나 姙이는 銀行 正門으로부터 魔術처럼 나온다. 하이힐이 아까보다는 사뭇 무거워 보이기도 하는데, 이상스럽지는 않다.

「拾圓째리를 죄다 十錢째리루 바꿨지, 이것 좀 봐, 이망쿰이야, 주머니에다 느세요.」

走馬加鞭이라는 爽快한 내 語彙에 드디어 슬램프10가 왔다. 는 것이다.

나는 기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大膽하게 그럴 성싶은 표정을 이 소녀 앞에서 하는 수는 없다. 그래서 얼른

SEUVENIR!11

均衡된 步調가 똑같은 목적을 향하여 걸었다면 겉으로 보기에 親和하기도 하련만, 나는 내 마음에 忍耐를 명령하여 놓고 파라독스에 의한 復讐에 착수한다. 얼마나 요런 암상12은 참나? 計算은 말잔다.

愛情은 애초부터 없었다는 증거!

그러나 내 입에서 復讐라는 말이 떨어진 이상 나만은 내 姙이에게 對한 愛情을 있다고 우길 수 있는 것이다.

보자! 얼마간 피곤한 내 두 발과 姙이의 한 켤레 하이힐이 尹의 집 문간에 가 서게 되었는데도 깜쪽스럽게 姙이가 성을 안 낸다. 안차고 겸하여 다라지기도13하다.

尹은 不在요, 그러면 내가 뜻하지 않고 姙이의 顔色을 살필 기회가 온 것이기에

『PM 다섯 시까지 따이먼드14로 오기를』

이렇게 적어서 안짬재기15 에게 전하고 흘깃 姙을 노려보았더니―

얼떨결에 色素가 없는 血液이라는 說明할 修辭學을 나는 내가 마치 姙이 편인 것처럼 敏捷하게 찾아 놓았다.

暴風이 눈앞에 온 경우에도 얼굴빛이 변해지지 않는 그런 얼굴이야말로 人間苦의 根源이리라. 실로 나는 울창한 森林 속을 진종일 헤매고 끝끝내 한 나무의 印象을 훔쳐 오지 못한 幻覺의 人이다. 無數한 表情의 말뚝이 共同墓地처럼 내게는 똑같아 보이기만 하니 멀리 이 奔走한 焦燥를 어떻게 점잔을 빼어서 求하느냐.

따이먼드茶房 문앞에서 너무 머뭇머뭇하느라고 들어가지 못하고 말기는 처음이다. 尹이 오면―따이먼드 뽀이 녀석은 尹과 姙이 여기서 그늘을 사랑하는 夫婦인 것까지도 알고, 하니까 나는 다시 내 筆跡을

『PM 여섯 시까지 집으로 저녁을 토식16 하러 가리로다. 勿驚 夫妻』

주고 나왔다. 나온 것은 나왔다뿐이지

DOUGHTY DOG17이라는 可憎한 장난감을 살 의사는 없다. 그것은 다만 十圓짜리 쵄지18와 아울러 姙이의 분간 못할 天候에서 나온 經症의 賭博이리라.

여섯 시에 일어난 事件에서 나는 완전히 失脚했다.

가령―(내가 尹더러)

「아 아 있군 그래, 따이먼드에 갔든가, 게다 여섯 시에 오께 밥 달라구 적어놨는데 밥이라면 술이 붙으렷다.」

「갔지, 가구말구, 밥은 예편네가 어딜 가서 아직 안됐구 술은 내 미리 먹구 왔구.」

첫째 尹은 따이먼드까지 안갔다. 고 안짬내기 말이 아이구 댕겨 가신 지 오분두 못 돼서 드로세서 여태 기대리셨는데요― PM 다섯 시는 즉 말하자면 나를 힘써 만날 것이 없다는 태도다.

「대단히 교만하다.」

이러려다 그만 두어야했다. 나는 그 대신 배를 좀 불쑥 앞으로 내이밀고

「내 아내를 소개허지 이름은 姙이.」

「아내? 허― 착각을 일으켰군그래, 내 짐작 같아서는 그게 내 아내 비슷두 헌데!」

「내가 더 미안헌 말 한마디만 허까, 이따위 서푼째리 小說을 쓰느라고 내가 萬年筆을 쥐이지 않았겠나, 追憶이라는 건 요컨대 이 萬年筆망쿰 두 손에 直接 잽히능게 아니란 내 學說이지, 어때?」

「먹다 냉깅걸 몰르구 집어먹었네그려, 자넨 自古로 貴族趣味는 아니라니까. 아따 자네 衛生이 不足헌 체 허구 그저 그대루 견디게그려, 내게 암만 퉁명을 부려야 낸들 또 한번 죗다19 버린 萬年筆을 인제 와서 어쩌겠나.」

내 얼굴은 담박 잠잠하다. 할 말이 없다. 핑계삼아 내 포켓에서

DOUGHTY DOG

을 꺼내 놓고 스프링을 감아 준다. 한 마리의 그레이하운드가 제 몸집만이나 한 구두 한 짝을 물고 늘어져서 흔든다. 죽도록 흔들어도 구두대로 개는 개대로 鋼鐵의 位置를 변경하는 수가 없는 것이 딱하기가 짝이 없고 또 내가 더럽다.

DOUGHTY

는 더럽다는 말인가. 焦燥하다는 말인가. 이 글짜의 威壓에 참 나는 견딜 수 없다.

「아닝게 아니라 나두 깜짝 놀랬네, 놀랜 것이, 지애가(안짬내기가) 내댕겨 두로니까20 헌다는 소리가, 한 마흔댓 되는 이가 열칠팔 되는 시액시를 데리구 날 찾어왔드라구, 딸 겉기두 헌데 또 첩 겉기두 허드라구, 종이쪼각을 봐두 자네 이름을 안 썼으니 누군지 알 수 없구, 덮어놓구 따이먼드루 찾어갔다가 또 혹시 실수허지나 않을까봐, 예끼 그만 내버려 둬라, 제눔이 누구등간에 날 보구 싶으면 찾어오겠지 허구 기대리는 차에, 하하 이건 좀 일이 제대루 되질 않은 것 겉기두허예 어째.’

나는 좋은 기회에 姙이를 한 번 어디 돌아다보았다.

魚族이나 다름없이 몽툭한 채 그 이 두 남자를 건드렷다 말았다 한 손을 솜씨있게 놀려

DOUGHTY DOG

스프링을 감아 주고 있다. 이것이 나로서는 성화가 날 일이 아니면 罪씨인이다. 아― 아―.

나는 아― 아― 하기를 免하고 싶어도 다음에 내 무너져 들어가는 肉體를 支持할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도록 工夫하지 않고는 이 구중중한 아― 아―를 모른 체할 수는 없다.

明 示

女子란 과연 天惠처럼 男子를 철두철미 쳐다보라는 義務를 思想의 先決條件으로 하는 彈性體던가.

다음 瞬間 내 最後의 趣味가

「家畜은 인제 싫다.」

이렇게 快히 부르짖은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을 忘却의 벌판에다 내다던지고 얇다란 趣味 한풀만을 질질 끌고 다니는 자기 자신 문지방을 이제는 넘어 나오고 싶어졌다.

憂患!

유리 속에서 웃는 그런 不吉한 유령의 웃음은 싫다. 인제는 소리를 가장 快活하게 질러서 손으로 만지려면 만져지는 그런 웃음을 웃고 싶은 것이다. 憂患이 있는 것도 아니요 憂患이 없는 것도 아니요 나는 深夜의 車道에 내려진 超然한 性格으로 이런 俗된 混濁에서 돌아서 보았으면―

그러기에는 이번에 적잖이 技術을 要했다. 칼로 물을 버히듯이

「아차! 나는 T가 월급이군 그래, 잊어 버렸구나!(하건만 나는 덜 배앝아 놓은 것이 혀에 미꾸라지처럼 걸려서 근질근질한다. 尹은 或은 植物과 같이 人文을 떠난 防彈 조끼를 입었나) 그러나 尹! 들어보게, 자네가 모조리 핥았다는 姙이의 裸體는 그건 姙이가 沐浴할 때 입는 비누 듀레스21나 마창가질세! 지금 아니! 전무후무하게 姙이 벌거숭이는 내게 獨占된 걸세, 그리게 자넨 그만큼 해 두구 그 병정구두 겉은 교만을 좀 버리란말일세, 알아 듣겠나.」

尹은 落照를 받은 것처럼 얼굴이 붉콰하다. 거기 嘲笑가 脂肪처럼 윤이 나서 蔓廷하는 것이 내 戰鬪力을 재채기시킨다.

尹은 내가 불쌍하다는 듯이

「내가 이만큼꺼지 辭讓허는데 자네가 공연히 자꾸 그리면 또 모르네, 내 성가셔서 자네 따귀 한 대쯤 갈길는지두.」

이런 어리석어빠진 論爭을 왜 내게 裁判을 청하지 않느냐는 듯이 그레이하운드가 구두를 기껏 흔들다가 그치는 것을 보아 姙이는 舞踊의 어떤 포우즈 같은 손짓으로

「저이가 됴―스의 女神입니다. 둘이 어디 모가질 한 번 바꿔 붙여 보시지요. 안 되지요? 그러니 그만들 두시란말입니다. 尹헌테 내애준 肉體는 거기 該當한 貞操가 法律처럼 붙어갔던 거구요, 또 지이가 어저께 결혼했다구 여기두 여기 해당한 정조가 따라왔으니까 뽐낼 것두 없능거구, 嫉妬헐 것두 없능거구 그러지 말구 겉은 選手끼리 握手나 허시지요, 네?」

尹과 나는 악수하지 않았다. 握手 以上의 통봉22이 尹은 몰라도 적어도 내 위에는 내려 앉았던 것이니까. 이것은 여기 앉았다가 밴댕이처럼 납짝해질 징조가 아닌가, 겁이 차츰차츰 나서 나는 벌떡 일어나면서 들창 밖으로 춤을 탁 배앝을까 하다가 차분참

「그렇지만 자네는 萬金을 기울여두 이젠 姙이 裸體 스냅 하나 보기두 어려울 줄 알게, 조꿈두 사양헐게 없이 구구루 나허구 竝行해서 온전한 正義를 유지허능게 어떵가?’

하니까」

「二着 열번 헌 눔이 아무래도 一着 단 한 번 헌 눔 앞에서 고갤 못드는 법일세. 자네두 그만헌 禮儀쭘 분간이 슬듯헌데 왜 그리 바들짝바들짝허나 응? 그러구 그 萬金이니 萬萬金이니 허능 건 또 다 뭔가? 나라는 사람은 말일세 자세 듣게, 女子가 날 싫여허면 헐수록 좋아허는 체허구 쫓아댕기다가두 그 女子가 섣불리 그럼 허구 좋아허는 낯을 단 한번 허는 나날에는 즉 말허자면 마지막 물건을 단 한 번 건드리구 난 다음엔 당장 눈앞에서 그 女子가 싫여지는 성질일세, 그건 자네가 아주 바루 正義가 어쩌니 허지만 이거야말루 내 정의에서 우러나오는 걸세, 대체 난 나버덤 낮은 人間이 싫으예 女子가 한 번 제 마지막 것을 구경시킨 다암엔 열이면 열 百이면 百, 밑으로 내려가서 그 男子를 쳐다보기 시작이거든, 난 이게 견딜 수 없게 싫단 그말일세.」

나는 그제는 사뭇 돌아섰다. 그만침 精密한 侮辱에는 더 견디기 어려워서.

尹은 새로 담배에 불을 붙여 물더니 주머니를 뒤적뒤적한다. 나를 殺害하기 위한 凶器를 찾는 것일까. 담뱃불은 이미 붙었는데―

「여기 十圓 있네, 가서 가난헌 T군 졸르지 말구 자네가 T군 헌테 한 잔 사 주네가, 자넨 오늘 그 자네 서푼째리 體面 때문에 꽤 憂鬱해진 모양이니 자네 소위 新婦허구 같이 있다가는 좀 위험헐걸, 그러니까 말일세 그 신부는 내 오늘 같이 키네마루 모시구 갈 테니 안헐 말루 잠시 빌리게, 응? 왜 맘에 꺼림칙헝가?」

「너무 細密허게 내 行動을 指定허지 말게, 하여간 난 혼자 좀 나가겠으니 姙이, 尹군허구 키네마 가지 응 키네마 좋아허지 왜.’

하고 말끝이 채 맞기23 전에 姙이 뾰루퉁하면서―

「姙이 남편을 그렇게 맘대루 동정허거나 慈善허거나 헐 權利는 남에겐 더군다나 없습니다. 자―그거 받어서는 안됩니다. 여깃세요.」

하고 내어 놓은 無數한 十錢짜리.

「하 하 야 이겁봐라.」

尹은 담뱃불을 재떨이에다 벌레 죽이듯이 꼭 꼭 이기면서 좀처럼 웃음을 얼굴에서 걷지 않는다. 나도 사실 속으로

「하 하 야 요겁봐라.」

안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도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姙이 등을 어루만저 주고 그 白銅貨를 한 움큼 주머니에 넣고 그리고 과연 尹이 집을 나서는 길이다.

「이따 파헐 臨時 해서 키네마 문 밖에서 기대리지, 어디지?」

「단성사, 헌데 말이 났으니 말이지, 난 오늘 친구헌테 술값 꾀주는 權利를 완전히 구속당했능걸! 어― 쯧 쯧.」

적어도 百步 가량은 앞이 매음을 돌았다. 무던히 어지러워서 비척비척 하기까지 한 것을 나는 아무에게도 자랑할 수는 없다.

TEXT

「불장난― 貞操責任이 없는 불장난이면? 저는 즐겨합니다. 저를 믿어 주시나요? 貞操責任이 생기는 나잘에 벌써 이 불장난의 記憶을 저의 良心의 힘이 抹殺하는 것입니다. 믿으세요.」

評―이것은 分明히 다음에 敍述되는 같은 姙이의 敍述 때문에 姙이의 怜悧한 거짓부렁이가 되고 마는 일이다. 즉

「貞操責任이 있을 때에도 다음 같은 方法에 依하여 불장난은―主觀的으로 만이지만―용서될 줄 압니다. 즉 아내면 남편에게, 남편이면 아내에게, 무슨 特殊한 戰術로든지 감쪽같이 모르게 그렇게 스무우스하게 불장난을 하는데 하고 나도 이렇달 形蹟을 꼭 남기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네?

그러나 主觀的으로 이것이 容納되지 않는 경우에 하였다면 그것은 罪요, 苦痛일 줄 압니다. 저는 罪도 알고 苦痛도 알기 때문에 저로서는 어려울까 합니다. 믿으시나요? 믿어주세요.」

評―여기서도 끝으로 어렵다는 대문 부근이 分明히 거짓부렁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亦是 같은 姙이의 筆蹟, 이런 潛在意識, 綻露現象에 依하여 確實하다.

「불장난을 못하는 것과 안하는 것과는 性質이 아주 다릅니다. 그것은 컨디션 如何에 左右되지는 않겠지요. 그러니 어떻다는 말이냐고 그러십니까. 일러드리지요. 기뻐해 주세요. 저는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입니다.

自覺된 戀愛니가요.

안하는 경우에 못하는 것을 觀望하고 있노라면 좋은 語彙가 생각납니다.

嘔吐. 저는 이것은 견딜 수 없는 肉體的 刑罰이라고 생각합니다. 온갖 自然發生的 姿態가 저에게는 어째 乳臭萬年의 넝마쪼각 같습니다. 기뻐해 주세요. 저를 이런 遠近法에 좇아서 사랑해 주시기 바랍니다.」

評―나는 싫어도 요만큼 다가선 位置에서 姙이를 說諭하려 드는 때쉬24의 姿勢를 取消해야 하겠다. 안하는 것은 못하는 것보다 敎養 知識 이런 尺度로 따져서 높다. 그러나 안한다는 것은 내가 빚어내이는 氣候 如何에 憑藉해서 언제든지 아무 謙遜이라든가 躊躇없이 불장난을 할 수 있다는 條件附契約을 車道 복판에 安全地帶 設置하듯이 强要하고 있는 徵兆에 틀림은 없다.

나 스스로도 不決할 에필로그로 貴下들을 引導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薄氷을 밟는 듯한 會話를 組織하마.

「너는 네 말 마따나 두 사람의 男子 或은 事實에 있어서는 그 以上 훨씬 더 많은 男子에게 내주었던 肉體를 걸머지고 그렇게도 豪氣있게 또 正正堂堂하게 내 城門을 闖入할 수가 있는 것이 그래 鐵面皮가 아니란 말이냐?」

「당신은 無數한 賣春婦에게 당신의 그 당신 말 마따나 高貴한 肉體를 廉價로 구경시키셨습니다. 마찬가지지요」

「하하! 너는 이런 社會組織을 깜빡 잊어버렸구나. 여기를 너는 서장25으로 아느냐, 그렇지 않으면 男子도 哺乳行爲를 하던 피테칸트롶스26 時代로 아느냐. 可笑롭구나. 未安하오나 男子에게는 肉體라는 觀念이 없다. 알아듣느냐?」

「未安하오나 당신이야말로 이런 社會組織을 어째 急速度로 逆行하시는 것 같습니다. 貞操라는 것은 一對一의 確立에 있습니다. 掠奪結婚이 지금도 있는 줄 아십니까?」

「肉體에 對한 男子의 權限에서의 嫉妬는 무슨 걸레쪼각 같은 敎養 나부랭이가 아니다. 本能이다. 너는 이 本能을 無視하거나 그 穉機滿滿한 敎養의 掌匣으로 整理하거나 하는 재주가 通用될 줄 아느냐?」

「그럼 저도 平等하고 溫順하게 당신이 定義하시는 ‘本能’에 依해서 당신의 過去를 嫉妬하겠습니다. 자― 우리 數字로 따져 보실까요?」

評―여기서 부터는 내 敎材에는 없다.

新鮮한 道德을 期待하면서 내 舊態依然하다고 할 만도 한 貫祿을 버리겠노라.

다만 내가 이제부터 내 不足하나마 努力에 依하여 獲得해야 할 것은 내가 脫皮할 수 있을 만한 知識의 購買다.

나는 내가 환甲을 지난 몇 해 後 내 무릎이 일어서는 날까지는 내 오―크材로 만든 葡萄송이 같은 孫子들을 거느리고 喫茶店에 가고 싶다. 내 알라모우드27는 孫子들의 그것과 泰然히 맞서고 싶은 現在의 내 悲哀다.

전 질(顚跌; 넘어짐)

이러다가는 내 中立地帶로만 알고 있던 健康術이 자칫하면 崩壞할 것 같은 危懼가 적지 않다. 나는 조심조심 내 앉은 자리에 或 有害한 昆蟲이나 棲息하지 않는가 보살펴야 한다.

T군과 마주앉아 싱거운 술을 마시고 있는 동안 내 눈이 여간 축축하지 않았단다. 그도 그럴밖에. 나는 時時刻刻으로 刺殺할 것을, 그것도 제 형편에 꼭 맞춰서 생각하고 있었으니―

내가 받은 自決의 判決文 題目은

「被告는 一朝에 人生을 浪費하였느니라. 하루 被告의 生命이 延長되는 것은 이 乾坤의 經常費를 구태여 騰貴시키는 것이어늘 被告가 들어가고자 하는 쥐구녕이 거기 있으니 被告는 모름지기 그리 가서 꽁무니 쪽을 돌아다보지는 말지어다.」

이렇다.

나는 내 言語가 이미 이 荒漠한 地上에서 蕩盡된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만치 精神은 空洞이요, 思想은 당장 貧困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 悠久한 歲月을 무사히 睡眼하기 위하여, 내가 夢想하는 情景을 合理化하기 위하여, 입을 다물고 꿀항아리처럼 잠자코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몽고르퓌에 兄弟가 發明한 輕氣球가 結果로 보아 空氣보다 무거운 飛行機의 發達을 훼방놀 것이다. 그와 같이 또 空氣보다 무거운 飛行機 發明의 힌트의 出發點인 날개가 도리어 現在의 形態를 갖춘 飛行機의 發達을 훼방 놀았다고 할 수도 있다. 즉, 날개를 펄럭거려서 飛行機를 날으게 하려는 努力이야말로 車輪을 發明하는 대신에 말의 步行을 본떠서 自動車를 만들 궁리로 바퀴 대신 機械裝置의 네 발이 달린 自動車를 發明했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抑場도 아무 것도 없는 死語다. 그럴밖에. 이것은 즈앙·꼭또우28의 말인 것도.

나는 그러나 내 말로는 그래도 내가 죽을 때까지의 단 하나의 絶望 아니 希望을 아마 텐스29를 고쳐서 지껄여버린 기색이 있다.

「나는 어떤 閨秀作家를 秘密히 사랑하고 있소이다그려!」

그 閨秀作家는 原告 한 줄에 반드시 한 자씩의 誤字를 揷入하는 快活한 怠慢性을 가진 사람이다. 나는 이 女人 앞에서는 내 醜한 짓밖에는, 할 수 있는 擧動의 心理的 餘裕가 없다. 이 女人은 多幸히 경산부30다.

그러나 곧이듣지 마라. 이것은 다음과 같은 내 面目을 維持하기 위해 發掘한 연장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結婚하고 싶어하는 女人과 結婚하지 못하는 것이 결이 나서 結婚하고 싶지도 저쪽에서 結婚하고 싶어하지도 않는 女人과 結婚해 버린 탓으로 뜻밖에 나와 結婚하고 싶어하던 다른 女人이 그 또 결이 나서 다른 男子와 結婚해 버렸으니 그야말로― 나는 지금 一朝에 破滅하는 結婚 위에 저립31하고 있으니 ― 一擧에 三尖일세그려.」

즉 이것이다.

T군은 암만해도 내가 불쌍해 죽겠다는 듯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다보더니

「자네, 그중 어려운 外國으로 가게, 가서 비로소 말두 배우구, 또 사람두 처음으로 사귀구 다시 채국채국 살기 시작허게, 그렇거능게 자네 自殺을 求할 수 있는 唯一의 方途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는 내가 그럼 薄情한가?」

自殺? 그럼 T君이 눈치를 채었던가.

「이상스러워할 것도 없는 게 자네가 주머니에 칼을 넣고 댕기지 않는 것으로 보아 자네에게 自殺하려는 意思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지 않겠나. 勿論 이것두 내게 아니구 남한테서 꿔온 에피그람32이지만.’

여기 더 앉았다가는 鰒魚처럼 탁 터질 것 같다. 아슬아슬한 때 나는 T君과 함께 빠아를 나와 알마추 단성사 문앞으로 가서 三分쯤 기다렸다.

尹과 姙이가 一條二條하는 文章처럼 나란히 나온다. 나는 T君과 같이 ‘晩春’試寫를 보겠다. 尹은 우물쭈물하는 것도 같더니

「바통 가져 가게.」

한다. 나는 일없다. 나는 절을 하면서

「一着 選手여! 나를 列車가 沿線의 小驛을 잘디잔 바둑돌 默殺하고 通過하듯이 無視하고 通過하여 주시기(를) 바라옵나이다.」

瞬間 姙이 얼굴에 毒花가 핀다. 응당 그러리로다. 나는 二着의 名譽 같은 것도 요새쯤 내다 버리는 것이 좋았다. 그래 얼른 릴레를 棄權했다. 이 경우에도 語彙를 蕩盡한 浮浪者의 資格에서 恐懼 橫光利一33氏의 出世를 사글세 내어온 것이다.

姙이와 尹은 人波 속으로 숨어 버렸다.

갸렐리34 어둠 속에 T君과 어깨를 나란히 앉아서 신발 바꿔 신은 人間코메디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랫배가 몹시 아프다. 손바닥으로 꽉 누르면 밀려 나가는 김이 입에서 哄笑로 化해 터지려 든다. 나는 阿片이 좀 생각났다. 나는 조심도 할 줄 모르는 野人이니까 半쯤 죽어야 껍적대이지 않는다.

스크린에서는 죽어야 할 사람들은 안 죽으려 들고 죽지 않아도 좋은 사람들은 죽으려 야단인데 수염난 사람이 수염을 혀로 핥듯이 만지적 만지적 하면서 이쪽을 향하더니 하는 소리다.

「우리 醫師는 죽으려 드는 사람을 부득부득 살려가면서도 살기 어려운 세상을 부득부득 살아가니 거 익살맞지 않소?」

말하자면 굽달린 自動車를 硏究하는 사람들이 거기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고들 있다.

나는 차츰차츰 이 客 다 빠진 텅 빈 空氣 속에 沈沒하는 果實 씨가 내 허리띠에 달린 것 같은 恐怖에 지질리면서 정신이 점점 몽롱해 들어가는 벽두에 T군은 은근히 내 손에 한 자루 서슬 퍼런 칼을 쥐여 준다.

(復讐하라는 말이렷다)

(尹을 찔러야 하나? 내 決定的 敗北가 아닐까? 尹은 찌르기 싫다)

(姙이를 찔러야 하지? 나는 그 毒花 핀 눈초리를 網膜에 映像한 채 往生하다니)

내 心臟이 꽁꽁 얼어들어 온다. 빼드득 빼드득 이가 갈린다.

(아하 그럼 自殺을 勸하는 모양이로군, 어려운데 어려워, 어려워, 어려워)

내 卑怯을 嘲笑하듯이 다음 순간 내 손에 무엇인가 뭉클 뜨뜻한 덩어리가 쥐어졌다. 그것은 서먹서먹한 표정의 나쓰미깡, 어느 틈에 T군은 이것을 제 주머니에다 넣고 왔던구.

입에 침이 쫘르르 돌기 전에 내 눈에는 식은 컵에 어리는 이슬처럼 방울지지 않는 눈물이 핑 돌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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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슡케―스; suitcase. 여행용 가방. (1)

  2. 나쓰미깡; 귤의 일종. 크기가 귤보다 크고 아주 신맛이 남. (2)

  3. 융(尹); 경상도 방언을 표기하느라 비음처럼 적음. (3)

  4. 瘠身; 수척한 몸 (4)

  5. 風丰; 살지고 아름다운 풍채. (5)

  6. 나가 갔다고; ‘나가 잤다고’의 오식 (6)

  7. 듀로워즈; drawers. 삼각팬티보다 긴 여자 속옷 (7)

  8. 一朶花; 한 떨기 꽃 (8)

  9. 汪洋한; 바다같이 넓은 (9)

  10. 슬램프; slump. 갑자기 오는 권태, 의기소침한 상태 (10)

  11. SEUVENIR; souvenir의 오식인 듯. 기억·추억·기념품·비망록의 뜻 (11)

  12. 암상; 남을 미워하고 샘을 잘 내는 잔망스러운 심술 (12)

  13. 다라지기도; 됨됨이가 단단하여 여간한 일에는 겁내지 아니하다 (13)

  14. 따이먼드; 다방 이름 (14)

  15. 안짬재기; 안잠자기. 남의 일에서 잠자며 일을 돕는 여자 (15)

  16. 討食; 음식을 강제로 청하여 먹음 (16)

  17. DOUGHTY DOG; 용감한 개. 여기서는 장난감의 이름 (17)

  18. 쵄지; change. 환전. 돈바꾸기 (18)

  19. 죗다; ‘쥐었다’의 뜻인 듯 (19)

  20. 내 댕겨 두로니까; ‘내가 다니다 들어오니까’의 사투리 (20)

  21. 듀레스; dress. 옷 (21)

  22. 痛棒; 좌선할 때 스승이 마음의 안정을 잡지 못하는 제자를 징벌할 때 쓰는 방망이 (22)

  23. 맞기; ‘맺기’의 오식 (23)

  24. 때쉬; dash. 돌진. 力走 (24)

  25. 西藏; 티벳지방 (25)

  26. 피테칸트롶스; 피테칸트로푸스 에렉투스(Pithecanthropus erectus). 1891년에 자바섬에서 발견된 약 50만년 전의 인류. 直立猿人 (26)

  27. 알라모우드; 아라모드( la mode). 유행의. 멋의 (27)

  28. 즈앙·꼭또우; 쟝 꼭도(Jean Cocteau). 프랑스의 시인·소설가·배우·화가. 세계 제1차 대전과 동시에 다다이즘으로 등장하여 <무서운 아이들>(1929) 등의 소설과 <Po sies>(1920)라는 시집을 남김 (28)

  29. 텐스; tense. 시제(時制) (29)

  30. 經産婦; 아이를 낳은 경험이 있는 여자 (30)

  31. 佇立; 우두커니 섬 (31)

  32. 에피그람; epigram. 경구(警句) (32)

  33. 橫光利一; 요코미츠 리이츠(1898∼1947). 일본의 소설가. 川端康成과 더불어 신감각파 운동을 전개한 후 신심리주의 문학으로 옮아감. <機械>, <紋章>, <日輪> 등을 씀 (33)

  34. 갸렐리; gallery. 회랑. 방청석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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