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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협집이 부엌으로 물을 길어 가지고 들어오매 쇠죽을 쑤던 삼돌이란 머슴이 부지깽이로 불을 헤치면서,

“어젯밤에는 어디 갔었던교?”

하며, 불밤송이 같은 머리에 왜수건을 질끈 동여 뒤통수에 슬쩍 질러맨 머리를 번쩍 들어 안협집을 훑어본다

“남 어데 가고 안 가고 님자가 알아 무엇 할 게요?”

안협집은 별 꼴사나운 소리를 듣는다는 듯이 암상스러운 눈을 흘겨보며 톡 쏴버린다.

조금이라도 염량이 있는 사람 같으면 얼굴빛이라도 변하였을 것 같으나 본시 계집의 궁둥이라면 염치없이 추근추근 쫓아다니며 음흉한 술책을 부리는 삼십이나 가까이 된 노총각 삼돌이는 도리어 비웃는 듯한 웃음을 웃으면서,

“그리 성낼 게야 무엇 있습나? 어젯밤 안 쥔 심바람으로 님자 집을 갔었으니깐두루 말이지.”

하고 털 벗은 송충이 모양으로 군데군데 꺼칫꺼칫하게 난 수염을 숯검정 묻은 손가락으로 두어 번 쓰다듬었다.

“어젯밤에도 김참봉 아들네 사랑방에서 자고 왔습네그려.”

삼돌이는 싱긋 웃는 가운데에도 남의 약점을 쥔 비겁한 즐거움이 나타났다.

“무엇이 어쩌고 어째, 이 망나니 같은 놈……”

하는 말이 입 바깥까지 나왔던 안협집은 꿀꺽 다시 집어삼키면서,

“남 어데 가 자든 말든 상관할 것이 무엇인고!”

하며, 물동이를 이고서 다시 나가려 하니까,

“흥! 두고 보소. 가만있을 줄 알았다가는……”

“듣기 싫어! 별꼬락서니를 다 보겠네.”

2

강원도 철원 용담(龍潭)이라는 곳에 김삼보(金三甫)라는 자가 있으니 나이는 삼십 오륙 세나 되었고, 키는 작달막하여 목은 다가붙고 얼굴빛은 노르께하며 언제든지 가죽창 박은 미투리에 대갈 편자를 박아 신고 걸음을 걸을 적마다 엉덩이를 내저으므로 동리에서는 그를 <땅딸보 김삼보>, <아편쟁이 김삼보>, <오리 궁둥이 김삼보>라고 부르는데 한 달에 자기 집에 붙어 있는 날이 이틀이라면 꽤 오래 있는 셈이요, 하루라면 예사다. 그리고는 언제든지 나돌아다니므로 몇 해 전까지도 잘 알지 못하였으나 차차 동리서 소문이 돌기를 <노름꾼 김삼보>라는 말이 퍼지자 점점 알아본즉 딴은 강원도, 황해도, 평안도 접경을 넘어다니며 골패 투전으로 먹고 지내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 노름꾼 김삼보의 여편네가 아까 말하던 안협집이니 안협(安峽)은 즉 강원, 평안, 황해, 삼도 품에 있는 고읍(古邑)의 이름이다.

그 안협집은 김삼보가 얻어오기는 지금으로부터 오년 전, 안협집이 스물 한 살 되던 해인데 어떻게 해서 얻었는지 자세히는 알지 못하나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술파는 것을 눈을 맞추어서 얻었다고 하기도 하고, 계집이 김삼보에게 반해서 따라왔다기도 하고, 또는 그런 것 저런 것도 아니라 계집의 전남편과 노름을 해서 빼앗았다고도 하는데 위인 된 품으로 보아서 맨 나중 말이 가장 유력할 것 같다고 동리 사람들이 말을 한다.

처음에 안협집이 동리에 오자 그 동리 그 또래 계집들은 모두 석경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안협집이 비록 몸은 그리 귀하게 태어나지 못하였으나 인물이 남달리 고운 점이 있어, 동리 젊은것들이 암연히 부러워도 하고 질투도 하게 되고 또는 석경 속에 비친 자기네들의 예쁘지 못한 얼굴을 쥐어뜯고 싶기도 하였으니 지금까지 <나만한 얼굴이면> 하는 자만심이 있던 젊은 계집들에게 가엾게도 자가결함(自家缺陷)이 폭로되는 환멸을 느끼게 하기까지도 하였다.

그러나 촌구석에서 아무렇게나 자란데다가 먼저 안 것이 돈이었다.

<돈만 있으면 서방도 있고 먹을 것, 입을 것이 다 있지> 하는, 굳은 신조는 자기 목숨을 내어놓고는 무엇이든지 제공하여 부끄러운 것이 없었다.

십 오륙 세 적, 참외 한 개에 원두막 속에서 총각 녀석들에게 정조를 빌린 것이나, 벼 몇 섬, 돈 몇 원, 저고리감 한 벌에 그것을 빌리는 것이 분량과 방법이 조금 높아졌을 뿐이요 그 관념은 동일하였다.

그리하여 이곳으로 온 뒤에도 동리에서 돈푼이나 있고 얌전한 젊은 사람은 거의 다 한번씩은 후려내었으니 그것은 남자편에서 실없은 짓 좋아하는 이에게 먼저 죄가 있다 하는 것보다도 이쪽 안협집에서 그 책임이 더 있다고 할 수 있고, 또 그것보다 더 큰 죄는 그 남편 되는 노름꾼 김삼보에게 있다고 할 수가 있으니 그것은 남편 노름꾼이 한 달에 한번을 올까 말까 하면서도 올 적에는 빈손을 들고 오는 때가 많으니 젊은 계집 혼자 지낼 수가 없으매 자연히 이 집 저 집 동리로 다니며 품방아도 찧어주고 김도 매주고 진일도 하여주며 얻어먹다가 한번은 어떤 집 서방님에게 실없은 짓을 당하고 나서 쌀 말과 피륙 필을 받아보니 그것처럼 좋은 벌이가 없어 차츰차츰 이번에는 자기가 스스로 벌이를 시작하여 마치 장사하는 사람이 거래 단골을 트듯이, 이 사람 저 사람을 집어먹기 시작하더니 그것도 차차 눈이 높아지니까 웬만한 목도꾼 패장이나 장돌림, 조금 올라가서 순사 나리쯤은 눈으로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고, 적어도 그곳에서는 돈푼도 상당하고 여간해서 손아귀에 들지 않는다는 자들을 얼러보기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후부터는 일하지 않고 지내며 모양내고 거드름 부리고 다니는데 자기 남편이 오면은,

“이번에는 얼마나 땄습노?”

하고, 포르께한 눈을 사르르 내려 뜬다.

“딴 게 뭔가, 밑천까지 올렸네.”

삼보는 목 뒤를 쓰다듬으며 입맛을 다신다. 그러면 안협집은 전에 없던 바가지를 긁으며,

“X알 두 쪽을 달구서 그래 계집만두 못하다는 말요.”

하고서, 할 말 못할 말을 불어서 풀을 잔뜩 죽여놓은 뒤에는 혹시 서방이 알면 경이 내릴까 하여 노자랑 밑천 푼을 주어서 배송을 낸다. 그러면 울며 겨자 먹기로 삼보는 혼자 한숨을 쉬면서,

“허허, 실상 지금 세상에는 섣부른 X알보다는 계집편이 훨씬 나니라.”

하고, 봇짐을 짊어지고 가버린다.

3

이렇게 이삼 년을 지내고 난 어느 가을에 삼돌이란 놈이 그 뒷집 머슴으로 왔는데 놈이 어느 곳에서 어떻게 빌어먹던 놈인지는 모르나 논맬 때 콧소리나마 아리랑타령 마디나 똑똑히 하고 술잔이나 먹을 줄 알며, 동료들 가운데 나서면 제법 구변이나 있는 듯이 떠들어젖히는 것이 그럴 듯하고 게다가 힘이 세어서 송아지 한 마리 옆에 끼고 개천 뛰기는 밥 먹듯하는 까닭에 동리에서는 호랑이 삼돌이로 이름이 높다.

놈이 음침하여 오던 때부터 동리 계집으로 반반한 것은 남 모르게 모두 건드려보았으나 안협집 하나가 내내 말을 듣지 않으므로 추근추근 귀찮게 구는데 마침 여름이 되어 자기 집 주인 마누라가 누에를 놓고 혼자는 힘이 드니까 안협집을 불러서 같이 누에를 길러 실을 낳거든 반분하자는 약속을 한 후 여름내 같이 누에를 치게 된 것을 알고 어떤 틈 기회만 기다리며,

“흥, 계집년이 배때가 벗어서 말쑥한 서방님만 얼르더라. 어디 두고 보자. 너도 깩소리 못하고 한번 당해야 할걸. 건방진 년!”

하고는 술잔이나 취하면 주먹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그러자 집 주인 마누라가 치는 누에가 거의 오르게 되자 뽕이 떨어졌다. 자기 집 울타리에 심은 뽕은 어림도 없이 다 따다 먹이었고 그 후에는 삼돌이란 놈을 시켜서 날마다 십리나 되는 건넛말 일가집 뽕을 얻어다 먹이었으나 그것도 이제는 발가숭이가 되게 되었다. 인제는 뽕을 사다 먹이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사다가 먹이자면 돈이 든다. 주인노파는 담뱃대를 물고서 생각하여보았다.

(개량 뽕이 좋기는 좋지마는 돈을 여간 받아야지. 그리고 일일이 사서 먹이려다가는 뽕값으로 다 들어가고 남는 것이 어디 있나.)

노파 생각에는 돈 한푼 안 들이고 공짜로 누에를 땄으면 좋을 것이다. 돈 한푼을 들인다 하면 그 한푼이 전 수확에서 나오는 이익의 전부같이 생각되어 못 견디었다. 그뿐 아니라 자기 혼자 이익을 먹는 것 같으면 모르거니와 안협집하고 동사로 하는 것이므로 안협집이 비록 뼈가 부서지도록 일을 한다 하더라도 그 힘이 자기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 한푼만 못해 보인다. 그래서 뽕을 어떻게 공짜로, 돈 안 들이고 얻어올 궁리를 하고 있다가 안협집이 마침 마당으로 들어서매,

“뽕 때문에 일 났구료.”

하며 안협집에게는 무슨 도리가 없느냐고 물어보았다.

“글쎄.”

안협집 생각은 주인의 마음과 또 달라서 남의 주머니 돈 백 냥이 내 주머니 돈 한 냥만 못하다. 그래서 <돈주면 살걸> 하는 듯이 심상하게 있다.

“어떻게 해서든지 구해 와야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때, 들에 나갔던 삼돌이란 놈이 툭 튀어들어오다가 이 소리를 듣더니 제딴은 동정하는 표정으로,

“그것 일 났쇠다. 어떻게 하나……”

한참 허리를 짚고 생각을 해보더니,

“헝! 참 그 뽕은 좋더라마는 똑 되기를 미선조각같이 된 놈이 기름이 지르르 흐르는데 그놈을 먹이기만 하면 고치가 차돌같이 여물 거야!”

들으라는 말인지 혼잣말인지는 모르나 한마디를 탁 던지고 말이 없다. 귀가 반짝 띈 주인은,

“어디 그런 것이 있단 말이야?”

하며 궁금증 난 사람처럼 묻는다.

“네, 저 새술막에 있는 것 말씀이요.”

혹시 좋은 수가 있을까 하려다가 남의 뽕밭, 더구나 그것으로 살아가는 양잠소 뽕이라, 말씨름만 하는 것이 될 것 같으므로,

“응! 나도 보았지, 그게 그렇게 잘되었나? 잘되었겠지. 그렇지만 그런 것이야 짐으로 있으면 무엇하나.”

“언제 보셨어요?”

“보기야 여러 번 보았지. 올 봄에 두릅 따러 갔다가도 보고.”

삼돌이란 놈이 한참 있다가 싱긋 웃더니 은근하게,

“쥔마님! 제가 뽕을 한 짐 저다 드릴 것이니 탁주 많이 먹이시렵니까?”

듣던 중에도 그렇게 반가운 소리가 또 어디 있으랴.

“작히 좋으랴. 따오기만 하면 탁주에다 젓이라도 담그마.”

귀찮스런 삼돌이도 이런 때는 쓸 만하다는 듯이 안협집도 환심 얻으려는 듯한 웃음을 웃으며 삼돌이를 보았다. 삼돌이는 사내자식의 솜씨를 네 앞에 보여주리라 하는 듯이 기운이 나며 만족하였다.

그날밤 저녁을 먹고 자정 때나 되더니 삼돌이는 눈을 비비며 일어나서 문 밖으로 나갔다. 갔다가 한 두어 시간 만에 무엇인지 지고 오더니 그것을 뒷곁 건넌방 뒤 창밑에 뭉뚱그려 놓았다.

이튿날 보니까 딴은 미선쪽 같은 기름이 흐르는 뽕잎이었다.

“어디서 났을꼬?”

주인하고 안협집은 수근수근 하였다.

“그 녀석이 밤에 도둑질을 해온 게지? 뽕은 참 좋소, 그렇지?”

“참 좋쇠다. 날마다 이만큼씩만 가져오면 넉넉히 먹이겠쇠다.”

두 사람은 뽕을 또 따오지 않을까 보아서 아무 말도 아니하고,

“참 뽕 좋더라. 오늘도 좀 또 따오렴.”

하고 충동인다. 놈은 두 손을 내저으며,

“쉬, 떠드시지 맙쇼. 큰일나죠. 그것이 그렇게 쉬워서야 그 노릇만 하게요. 까딱하다가는 다리 마디가 두 동강 날걸요.”

도둑해온 삼돌이나 받아들인 두 사람이나 도둑질했소! 하는 말은 없으나 서로 알고 있다.

그러자 하루는 주인이 안협집더러,

“여보, 이번에는 임자가 하루 저녁 가보구려. 그놈이 혹시 못 가게 되더래도 임자가 대신 갈 수 있지 않수. 또 고삐가 길며는 바래인다구 무슨 일이 있을는지 모르니 임자가 둘이 가서 한몫 많이 따오는 것이 좋지 않수.”

안협집이 삼돌이를 꺼리는 줄 알지마는 제 욕심에 입맛이 달아서 자꾸자꾸 충동인다.

“따다가 잡히면 어찌 하구유.”

“무얼! 밤중에 누구 알우? 그러고 혼자 가라오. 삼돌이란 놈하고 가랬지.”

“글쎄 운이 글러서 잡히거나 하면 욕이지요.”

잡히는 것보다도 안협집의 걱정은 보기도 싫은 삼돌이란 녀석하고 밤중에 무인지경에를 같이 가라니 그것이 딱한 일이다.

안협집의 정조가 헤프기도 유명한 만치 또 매몰스럽기도 유명하여 한번 맘에 들지 않는 것은 죽어도 막무가내다. 그것은 만냥 금을 주어도 거들떠보지도 아니한다. 그런데 삼돌이가 그 중에 하나를 참례하여 간장을 태우는 모양이다.

안협집은 생각하고 생각하여 결심해버렸다.

(빌어먹을 녀석이 그 따위 맘을 먹거든 저 죽이고 나 죽지. 내 기운은 없어도……)

하고 쌀쌀하게 눈을 가로뜨고 맘을 다가먹었다.

그리고는 뽕을 따러 가기로 하였다.

삼돌이는 어깨에서 춤이 저절로 추어진다.

“얘, 이것이 정말인가, 거짓말인가? 이제는 때가 왔구나 인제는 제가 꼭 당했지.”

놈이 신이 나서 저녁 먹고 마당 쓸고, 소 여물 주고, 도야지, 병아리 새끼 다 몰아넣고, 앞뒤로 돌아다니며 씻은 듯 부신 듯 다 해놓고, 목물하고 발 씻고, 등거리 잠뱅이까지 갈아입은 후 곰방대에 담배를 꾹꾹 눌러 듬뿍 한 모금 내뿜으며 시간 오기만 기다린다.

4

안협집은 보자기를 가지고 삼돌이를 따라서 뽕밭을 향하여 간다.

날이 유달리 깜깜하여 앞의 개천까지 자세히 보이지 않는다. 돌부리가 발부리를 건드리면 안협집은 에구 소리를 내며 천방지축으로 다리도 건너고 논이랑도 지나고 하여 길 반쯤 왔다.

삼돌이란 놈은 속으로 궁리를 하였다.

(뽕을 따기 전에 논이랑으로 끌고 가?…… 아니지, 그러다가는 뽕두 못 따가지고 오면 어떻게 하게…… 저도 열녀가 아닌 다음에 당하고 나면 할 말 없지. 아주 그런 버릇이 없는 년 같으면 모르거니와…… 옳지, 수가 있어, 뽕을 잔뜩 따서 이어주면 제가 항우의 딸년이라고 한 번은 중간에서 쉬렸다. 그러거든……)

이렇게 궁리를 하다가 너무 말이 없으니까 심심파적도 될 겸 또는 실없이 농담도 좀 해서 마음을 좀 떠보아 나중 성사의 전제도 만들어 놀 겸 공연히 쓸데없는 말을 지껄인다.

“삼보는 언제나 온답데까?”

“몰라, 언제는 온다 간다 말이 있어 다니나.”

“그래 영감은 밤낮 나돌아다니니 혼자 지내기 쓸쓸치 않소?”

놈이 모르는 것같이 새삼스럽게 시치미를 뗀다.

“별걱정 다 하네. 어서 앞서 가, 난 길이 서툴러 못 가겠으니……”

“매우 쌀쌀하구려. 나는 님자를 위해서 하는 말인데. 그렇지만 김참봉 아들이란 쇠귀신 같은 놈이라 아무리 다녀도 잇속 없습네. 내 말이 그르지 않지.”

안협집은 삼돌이가 아주 터놓고 말을 하는 것을 들으니까 분해서 뺨이라도 치고 싶었으나 그대로 참으며,

“무엇이 어째? 말이라면 다 하는 줄 아는군.”

하고, 뒤로 조금 떨어져 걸어갈 제 전에도 그 녀석이 미웠지마는 남의 약점을 들어 가지고 제 욕심을 채우려는 것이 더 더러웠다.

뽕밭에 왔다. 삼돌이란 놈이 철망으로 울타리 한 것을 들어주어 안협집이 먼저 들어가고 나중으로 삼돌이란 놈은 그 무거운 다리를 성큼 하여 그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다가 발끝에 삭정이 가지를 밟아서 딱 우지끈 소리가 나고 조용하였다.

삼돌이는 손에 익어서 서슴지 않고 따지마는 안협집은 익지도 못한데다가 마음이 떨리고 손이 떨려서 마음대로 안 된다.

삼돌이는 뽕을 따면서도 있다가 안협집을 꾀일 궁리를 하지마는 안협집은 이것 저것을 잊어버리고 손에 닥치는 대로 뽕을 땄다.

얼마쯤 땄다. 갑자기 안협집의 뒤에서,

“누구야!”

하고, 범 같은 소리를 지르는 남자 소리가 안협집의 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삼돌이란 놈은 길이나 되는 철망을 어느 결에 뛰어넘었는지 십여 간 통이나 달아나서 안협집을 불렀다.

“어서 와요! 어서, 어서!”

그러나 안협집은 다리가 떨려서 빨리 나와지지를 않는다. 그러나 죽을 힘을 다하여 달아나려고, 한아름 잔뜩 따 넣었던 뽕을 내던지고 철망으로 기어나오기는 나왔으나 치맛자락이 걸려서 잡아당긴다. 거기에 더 질겁을 해서 그대로 쭉 찢고 나오려 할 때, 때는 이미 늦었다. 뽕 지키던 남자는 안협집을 잡았다.

“이 도둑년! 남의 뽕을 네 것같이 따가? 온 참, 이년, 며칠째냐, 벌써? 이렇게 남의 것이라고 건깡깽이로 먹으면 체하지 않을 줄 알았더냐? 저리 가자.”

안협집은,

“살려주소, 제발 잘못했으니 살려만 주소. 나는 오늘이 처음이오. 저 삼돌이란 놈이 날마다 따가지 나는 죄가 없쇠다.”

하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빈다.

“듣기 싫어. 이년아! 무슨 변명이냐. 육시를 하고도 남을 년 같으니. 왜, 감옥소의 콩밥 맛이 고소하더냐?”

“그저 잘못했습니다.”

삼돌이는 보이지 않고 뽕지기는 안협집 손목을 끄을고 뽕밭으로 들어갔다.

“이리 와! 외양도 반반히 생긴 년이 무엇이 할 게 없어 뽕 서리를 다녀.”

하더니 성냥불을 그어대고 안협집을 들여다보더니,

“흥!”

의미 있는 웃음을 웃어 버렸다.

안협집은 이 웃음에 한 가닥 희망을 얻었다. 그 웃음은 안협집의 손아귀에 자기를 갖다 쥐어 준다는 웃음이다. 안협집은 따라서 방싯 웃었다. 그 웃음 한번이 넉넉히 뽕지기의 마음을 반 이상이나 흰 죽 풀어지게 하였다.

안협집은 끌려갔다.

(제가 철석 같은 간장을 가진 놈이 아닌 바에…… 한 번이면 놓아줄걸.)

그는 자기의 정조를 팔아서 자기의 죄를 면할 수 있음을 알았다.

그는 마지 못하는 체하고 끌려갔다.

삼돌이란 놈은 멀리서 정경만 살피다가 안협집을 뽕지기가 데리고 가는 것을 보더니 두 눈에서 쌍심지가 돋았다.

“얘, 이놈이 호랑이 삼돌이를 모르는 모양이다. 그러나 대관절 어떻게 할 셈이냐? 이놈 안협집만 건드려보아라. 정강마루를 두 토막에다 내놀 터이니. 오늘밤에는 꼭 내 것이던걸 그랬지. 어디 좀 가까이 좀 가 볼까?”

이제는 단판씨름이라 주먹이 시비 판단을 하는 때이다. 다시 철망을 넘어서 들어갔다. 들어가서는 이곳 저곳 귀를 기울이더니 이 구석 저 구석으로 돌아다녀 보았다.

저쪽에서 인기척이 웅얼웅얼 하더니 아무 말이 없다. 한 두서너 시간 그 넓은 뽕밭을 헤매고 또 거기 닿은 과목밭, 채마전, 나중에는 그 옆 원두막까지 가보았다. 놈이 뽕나무 밭 가운데 부풀덤불을 보지 못한 까닭이다.

그는 입맛만 다시면서 집으로 와서 주인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노파의 눈은 등잔만 해지더니 두 손, 두 다리가 사시나무 떨 듯한다.

“이거 일 났구나. 어쩌면 좋단 말이냐.”

좌불안석을 할 제 삼돌이란 녀석은 분한 생각에 곰방대만 똑똑 떨고 앉았다.

5

그날 새벽에 안협집이 무사히 왔다. 머리에 지푸라기가 묻고 몸매무시가 말이 아니다.

“에그, 어떻게 왔어? 응?”

주인은 눈에 눈물이 괴어서 어루만진다.

“무얼 어떻게 와요? 밤새도록 놈하고 승강이를 하다가 그대로 왔지.”

“그대로 놓아주던가?”

“놓아주지 않고, 붙잡아두면 어찌할 테야?”

일이 너무 싱겁다. 삼돌이 놈만 혼잣말처럼,

“내가 잡혔더면 콩밥을 먹었을걸, 여편네니까 무사했지.”

주인은 그래도 미진해서,

“그래, 잘 놓아주었으니 다행이지. 그러나 저러나 뽕은 어떻게 되었소?”

“다 뺏겼죠!”

“인제는 아무 일 없겠소?”

“일이 무슨 일예요.”

그날 밤에 삼돌이란 놈은 혼자 앉아서 생각하기를,

(복 없는 놈은 하는 수가 없거든. 그러나 내가 다 눈치를 채었으니까, 노름꾼놈이 오거든 일르겠다고 위협을 하면 년도 발이 저려서 그대로는 못 있지, 내 입을 안 막고 될 줄 아는 게로구먼.)

그후부터는 삼돌이란 놈이 안협집을 보고는,

“뽕지기놈 보고 싶지 않습나?”

하고 오며가며 맞대놓고 빈정대기도 하고 빗대놓고도 비웃는다.

“뽕이나 또 따러 가소.”

이러는 바람에 온 동리에서 다 알았다. 안협집은 분해서 죽겠는데, 하루는 삼돌이란 놈이 막 안협집이 이불을 펴고 누우려는데 찾아와서 추근추근 가지도 않고,

“삼보 김서방이 올 때도 되었습네그려.”

하며, 눈치를 본다. 안협집은 졸음이 와서 눈꺼풀이 뻣뻣하여오는데 삼돌이란 놈이 가지도 않는 것이 귀찮아서,

“누가 아우.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겠지.”

하고, 담벼락에 비스듬히 기대앉는다.

삼돌이의 눈에는 그 고단해하면서 비스듬히 누워서 눈을 감을락말락한 안협집의 목덜미 살찌기며 볼그레한 두 볼이 몹시 정욕을 일으킨다.

그래서 차츰차츰 말소리가 음흉해간다.

“님자는 사람을 너무 가려봅디다. 그러지 마슈. 나도 지금은 남의 집 머슴놈이지마는 안집 지체라든지 젊었을 적에는 그래도 행세하는 집에서 났더라우. 지금은 그놈의 원수스런 돈 때문에 이렇게 되었지마는……”

하고, 말을 건네려 하는데 안협집은 별 시러베 자식 다 보겠다는 듯이 대답이 없다.

“자! 그럴 것 있소. 오늘은 내 청을 한번 들어 주소그려.”

하고, 바싹 달려드는 바람에 반쯤 감았던 안협집의 눈은 똥그래지며 어느 결에 삼돌의 뺨에 손뼉이 올라가 정월에 떡치듯 철썩 한다.

“이놈! 아무리 쌍녀석이기로 이게 무슨 버르장머리냐. 냉큼 나가거라!”

하고 호령이 추상같다. 삼돌이란 놈은 따귀를 비비면서 성이 꼭두까지 일어나서,

“무엇이 어쩌고 어째. 횡! 어디 또 한번 때려봐라.”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자기가 하려던 것은 이루고 마는 것이 상책이다. 이래도 소문은 날 것이요, 저래도 소문은 날 것이니 이왕이면 만족이나 채우고 소문이 나더라도 나는 것이 자기에게는 이로울 것 같았다.

더구나 안협집으로 말을 하면 온 동리에서 판박아 놓은 화냥년이니 한번 화냥이나 두 번 화냥이나, 남이나 내가 무엇이 다를 것이 있으랴 하는 생각이 났다. 도리어 자기의 만족을 한번 얻는 것이 사내자식으로서의 일종의 자랑인 것같이 생각되었다.

그는 두 팔로 안협집을 힘껏 끼어안고,

“내가 호랑이 삼돌이다! 네가 만일 내 말을 들으면 무사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대로 두지 않을 터이야! 네 네 남편이 오기만 하면 모조리 꼬아바칠 터이야! 뽕 따러 갔던 날 일까지 모조리!”

무식한 놈이라 야비한 곳이 있다. 안협집은 그 소리가 얼마나 사내답지 못하였는지 알 수 없었다. 쇠같은 팔이 자기 허리를 누를 때 눈을 감고 한번 허락할까 하려다가 그 말을 듣고서 고만 침을 얼굴에 뱉었다.

“이 더러운 녀석! 네가 그까짓 것으로 나를 위협한다고 말을 들을 줄 아니.”

하고, 소리를 질렀다. 삼돌이는 손으로 안협집의 입을 막았으나 때는 늦었다. 마침 마을 다녀오던 이장의 동생이 이 소리를 듣고 문을 열었다.

삼돌이란 놈은 무안해서 얼굴이 붉어지며 안협집을 놓았다. 안협집은 분해서 색색거리며,

“저놈 보시소. 아닌 밤중에 혼자 자는데 와서 귀찮게 굽니다. 저 죽일 놈이요. 좀 끌어내다 중치(重治)를 좀 해주시오.”

이장의 동생은 안협집의 행실을 아는고로 삼돌이만 보내려고,

“이놈이 할 일이 없거든 자빠져 자기나 하지, 왜 아닌 밤중에 남의 계집의 방에서 지랄이야? 냉큼 네 집으로 가거라!”

두 눈이 등잔만하여진다.

“네, 그런 게 아니라 실없이 기롱을 좀 했삽더니……”

“딛기 싫어! 공연히 어름어름 하면서, 이놈아 너는 사람을 죽여도 기롱으로 아느냐?”

삼돌이는 쫓겨났다. 이장의 동생은 포달을 부리며 푸념을 하는 안협집을 향하여,

“젊은것이 늦도록 사내녀석들을 방에다 붙이니까 그런 꼴을 당하지.”

“누가요?……”

“고만둬! 어서 잠이나 자.”

하며 문을 닫다 주고 나가버렸다.

6

삼돌이는 앙심을 먹었다. 안협집을 어떻게 해서든지 한번 골리리라는 생각이 가슴속에 탱중하였다. 안협집은 독이 났다. 삼돌이란 놈 분풀이를 하려는 생각이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이튿날 동리에 소문이 났다.

“삼돌이란 놈이 뺨을 맞았다지! 녀석이 음침하니까.”

“그렇지만 계집년이 단정하면 감히 그런 맘을 먹을라구.”

“그렇구 말구! 제 행실야 판에 박은 행실이니까.”

“지가 먼저 꼬리를 쳤던 게지.”

이 소리가 바람에 떠돌아오자 안협집은 분하였다. 요조숙녀보다도 빙설 같은 여자인데 이런 누추한 소문을 듣는 것 같았다. 맘에 드는 서방질은 부정한 일이 아니요, 죄가 아니요, 모욕이 아니나 마음에 없는 놈에게 그런 소리를 듣고 당하는 것은 무서운 모욕 같았다.

그는 그 길로 삼돌의 주인마누라에게로 갔다.

“삼돌이란 놈을 내쫓으소.”

주인은 벌써 알아채었으나 안협집편은 안 들었다. 다만 어루만지는 수작으로,

“무얼 내쫓을 것까지 있소. 그만 일에…… 그저 눈감아 두지.”

“왜 눈을 감는단 말이요?”

주인은 속으로 웃었다.

(소 한 필을 달라면 줄지언정 삼돌이를 내놔?)

하였다.

“내쫓아선 무얼 하우, 또.”

<어림없는 년! 네가 떠들면 떠들수록 네 밑구멍 들춰서 남 보이는 것이라>는 듯이 치어다보며 맨 나중으로 아주 잘라 말을 해버렸다.

“나는 못 내보내겠소.”

안협집은 분해서 집에 와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었다. 그리고 또 결심했다.

“두고 봐라. 너희들까지 삼돌이를 싸고도니! 영감만 와봐라.”

하루는, 딴은 영감이 왔다. 안협집은 곤두박질을 하면서 맞았다.

“에그, 어서 오슈.”

노름꾼 김삼보는 눈이 똥그래졌다. 무슨 큰 좋은 일이나 생긴 것 같았다. 딴 때와 유달리 반가와하는 것이 의심스럽고 이상하였다.

방에 들어앉자마자 얼마나 땄느냐는 말도 물어보지 않고 삼돌이란 놈에게 욕당할 뻔하였다는 말을 넋두리하듯 이야기하였다.

“사람이 분해서 죽겠구려. 이것도 모두 영감 잘못 둔 탓이야. 오죽 영감이 위엄이 없어 보이면 그따위 녀석이 그런 짓을 할라고…… 영감이라고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지, 1년 열두 달 계집이 죽거나 살거나 내버려 두고 돌아만 다니니까……”

영감은 픽 웃었다.

“왜 내 잘못인가? 오죽 행실을 잘 가지면 그따위 녀석에게 그 꼴을 당한담.”

김삼보는 분이 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계집의 소행을 짐작도 하려니와 그놈의 주먹도 아니 생각할 수가 없었다. 계집이 먹여 살리라는 말이 없고 이혼하자는 말만 없는 것이 다행해서 서방질을 해도 눈을 감아주고 무슨 짓을 하든지 그저 코대답만 하여주는 터이라 그런 소리가 귓전으로 들릴 뿐이다.

“내가 행실 잘못 가진 게 무어요?”

안협집은 분풀이라도 하여줄 줄 알았더니 도리어 타박을 주므로 분한데 악이 났다.

“글쎄 무어야! 무엇? 어디 대 봐요! 임자가 내 행실 그른 것을 보았소? 어디 보았거든 본대로 말을 하시우.”

딴은 김삼보는 집어서 말할 것이 없었다. 그는 그저 그런 눈치만 채었지, 반박할 증거는 잡은 것이 없다.

“본 거나 다름없지!”

“무엇이 본 거나 다름없어? 1년 열 두 달 계집이 죽거나 살거나 내버려 두었다가 이제 와서 한다는 소리가 그것밖에 없어? 살기가 싫거든 그대로 살기 싫다고 그래, 사내답게. 왜 고만 냄새가 나지? 또 어디다가 계집을 얻어 논 게지.”

“이년이 뒈지지를 못해서 기를 쓰나?”

“그렇다. 이놈아! 네까짓 녀석 아니면 서방 없을까 봐 그러니, 더러운 녀석!”

김삼보의 주먹은 안협집의 등줄기를 우렸다.

“이년, 그래도 잔소리야! 주둥이 좀 닫치지 못하겠니……”

이렇게 서로 툭닥거리며 싸우는 판에 뒷집에서 삼돌이란 놈이 이 소리를 듣고서 가장 긴한 체하고 달아왔다.

“삼보 김서방 언제 오셨소?”

하고, 마당에 들어섰다. 김삼보는 그놈의 상판을 보니까 참았던 분이 꼭두까지 올라온다. 삼돌이는 제법 웃음을 띠며,

“허허, 오래간만에 만나셔서 내외분 싸움이 웬일이시우?”

어디서 한잔을 하였는지 얼굴이 불콰하다.

김삼보는 눈을 흘겨 뚫어지도록 삼돌이를 치어다보았다.

“이놈아! 남이 내외싸움을 하든 말든 참견이 무어야!”

삼돌이란 놈은 주춤하였다. 그는 비지 같은 눈꼽이 낀 눈을 꿈벅꿈벅 하더니,

“그렇게 역정 내실 것 무엇 있수. 말 좀 했기로……”

“이놈아 네가 아랑곳 할 게 무어야?”

“아랑곳은 할 것 없어도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랬으니까 말이오. 나는 싸움 좀 못 말린단 말이요?”

하고, 술 냄새를 풍기며 다가앉는다.

“이놈아, 술을 먹었거던 곱게 삭여!”

이번에는 삼돌이란 놈이 빌붓는다.

“나 술 먹고 어찌하든 김 서방이 관계할 게 무어요.”

“이놈아! 남의 내외싸움에 참견을 하니까 그렇지.”

주고받다가 삼돌이의 멱살을 김삼보가 쥐었다.

“이 녀석, 네가 무슨 뻔뻔으로 이따위 수작이냐? 내 계집 이놈 왜 건드렸니?”

삼돌이는 조금 발이 저렸으나 속으로 흥 하고 웃었다.

“요까짓 게 누구 멱살을 쥐어? 앙징하게……”

하더니 김삼보의 팔을 잡아 마당에다가 내려갈기니 개구리 떨어지듯 캑 한다.

“요놈의 자식아! 내 말을 좀 들어보고 말을 해! 네 계집 흠절을 모르고 뎀비기만 하면 강산이냐? 이 동리 반반한 사내양반 쳐놓고 네 계집 건드리지 않은 놈이 없다. 이놈! 꼭 집어 말을 하라면 위에서 아래로 내리섬기마. 이놈 너도 계집 덕분에 노자랑 노름 밑천 푼 좋이 얻어썼지. 그래 집이라고 오면서 볼 받은 것이나마 옥양목 버선 벌이나 얻어 가지고 가는 것은 모두 어디서 나온 것으로 아니? 요 땅딸보 오리궁둥아! 아무리 속이 밴댕이 같기로…… 그리고 또 들어봐라. 나중에는 주워먹다 못해서 뽕지기까지 주워먹었다.”

안협집이 파래서 달려든다.

“이놈! 네가 보았니!”

“보나 안 보나 일반이지.”

“이녀석, 네 말을 듣지 않으니까 된 말 안된 말 주둥이질을 하는구나.”

동리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안협집은 삼돌이에게 발악을 하고 김삼보는 듣고만 있다.

한참 있더니 듣다듣다 못하는 듯이 삼돌이란 놈이 안협집에게로 달려들며,

“이년이 뒈지려고 기를 쓰나?”

하고, 주먹을 들었다.

동리 사람들이 호령을 하고 말렸다.

“이놈! 저리 얼른 가거라!”

삼돌이는 변명을 하며 뻗딩겼다. 그러나 여러 사람에게 끌려 저리로 가버렸다.

사람이 헤어지자 노름꾼은 계집의 머리채를 잡았다.

그는 삼돌이에게 태질을 당한 것이 분하였다. 그뿐 아니라 그렇게까지 계집년의 행실을 온 동리에서 아는 것이 분하였다.

“이년! 더러운 년! 뽕밭에는 몇 번이나 나갔니?”

발길로 지르고 주먹으로 패고 머리채를 잡아당기고 땅에다 질질 끌었다. 그는 이를 갈고 어쩔 줄을 몰랐다. 계집은 울고 발버둥질을 쳤다.

“죽여라! 죽여!”

“그럼 살려줄 줄 아니? 이년! 들어앉아서 하는 게 그런 짓밖에는 없어?”

김삼보는 자기의 무딘 팔다리가 계집의 따뜻하고 연한 몸에 닿을 때에 적지 않은 쾌감을 느끼었다. 그는 그럴수록 더욱 힘을 주어 저리도록 속에 숨겨 있던 잔인성이 북받쳐 올라왔다.

맞은 안협집은 당장에 죽을 것 같았다. 그는 생각하기를 이왕 이리된 바에야 모두 말해버리고 저하고 갈라서면 고만이지 언제는 귀밑머리 풀고, 사주단자 보내고, 사당에 예배드린 내외냐. 저는 저고 나는 난데, 왜 이렇게 때리노? 하는 맘이 나며,

“이것 놔라! 내 말하마!”

하고, 머리를 붙잡았다.

“뽕밭에는 한 번밖에 안 갔다. 어쩔 테냐?”

삼보는 더욱 머리채를 잡아챘다.

“이년! 한번?”

이번에는 더 때렸다. 안협집은 말한 것이 후회가 났다. 삼보는 그래도 거짓말을 한다고 그대로 엎어놓고 짓밟았다. 안협집은 기절을 하였다. 삼보는 귀로 안협집의 숨소리를 들어 보았다. 그러나 숨소리가 없다. 그는 기겁을 하여 약국으로 갔다. 그의 팔다리는 떨렸다. 그가 의사에게서 약을 지어 가지고 왔을 때 안협집은 일어나 앉아 있었다. 삼보는 반가웁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여 약을 마당에 팽개쳤다. 그리고 밤새도록 서로 말이 없었다.

이튿날은 벙어리들 모양으로 말이 없이 서로 앉아 밥을 먹고, 서로 앉아 치어다보고, 서로 말만 없이 옷도 주고 받아 갈아입고, 하루를 더 묵어 삼보는 또 가버렸다. 안협집은 여전히 동리 집 공청 사랑에서 잠을 잤다. 누에는 따서 30원씩 나눠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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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군!

북극의 이 항구에 두텁던 안개도 차차 엷어갈 젠 아마 봄도 퍽은 짙었나부에. 그동안 동지들과 무사히 건투하여 왔는가? 항구에 안개 끼고 부두에 등불 흐리니 고국을 그리워하는 회포 무던히도 깊어가네.

내가 이곳에 상륙한 지도 어언 두 주일이 넘지 않았나. 그동안 찾을 사람도 찾았고 볼것도 모조리 보았네. 모든 인상이 꿈꾸고 상상하던 것과 빈틈없이 합치되는 것이 어찌도 반가운지 모르겠네. 남녀노소를 물론하고 다같이 위대한 건설사업에 힘쓰고 있는 씩씩한 기상과 신흥의 기분! 이것이 나의 얼마나 보고저 하고 배우고저 한 것인지 이것을 이제 매일같이 눈앞에 보고 접대하는 내 자신 신이 나고 흥이 난다면 군도 대강은 짐작할 수 있겠지. 더구나 차근차근 줄기 찾고 가지 찾아서 빈틈없이 일을 진행하여 나가는 제 3인터내셔널의 비범한 활동이야말로 오직 탄복하고 놀라지 않을 수밖에 없네.

여기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야 하려들면 한이 없을 듯하기에 그것은 다음 기회로 밀고 이 편지는 내가 이곳에 온 후의 첫 편지이고 군 역시 이곳을 무한히 그리워하던 터이므로 여기서는 대강 이 도시의 인상과 나의 사생활에 관한 재미있는 한 편의 에피소드를 군에게 소개할려네 ---

두 가닥의 반도가 바다를 폭 싸고 있는 것 만큼 항구는 으슥하고도 잔잔하네. 잔잔한 그 안에 새로운 기를 펄펄 날리는 수많은 기선과 정크와 화물선. 항구 위로 훤히 터진 도시. 발달된 지 오래인만큼 건축이 대개는 낡았고 생각하였던 것보다는 좀 고색을 띠운 듯하네. 가장 번화한 거리인 해안과 평행하여 길게 뻐친 레닌가 그 속에 즐비한 건축 --- 은행, 극장, 호텔, 국영 백화점 그외 각 회관, 구락부, 극동XX대학 등이 모두 제정 시대의 건물 그대로 있고 언덕 중턱에는 백의 동포의 거리가 있으니 역시 정결치 못한 낡은 거리이네. 그러나 대체로 보아 희고 노란 석조의 건축들이 시가의 전체에 밝은 색조를 주는 --- 밝은 풍경 맑은 도시임은 틀림없네.

국영 판매소 앞에는 언제든지 사람의 행렬이 끊일 새 없고 노파, 젊은이, 아이들이 길게 열을 짓고 움직이면서 차례를 기다려서 여러 가지의 필요한 식료품을 사는 것이네.

흐레브(빵), 마쏘(고기), 아보스취(야채), 싸--하르(사탕), 웟카 등의 모든 식료품이 국영 판매소에서만 팔리고 사사로이 경영하는 소매상이라고는 시중에 극히 희소하다는 것은 군도 아는 바이겠지. 빵을 사려는 늙은이는 병을 들고 긴 행렬 속에 끼어서 결코 조급하게 덤비는 법 없이 행렬과 같이 유유히 움직이는 풍경 이것은 오로지 새시대의 풍경의 하나일 것이니 옛날의 생활 형태를 철저히 청산하여 버린 이 신흥 도시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일 것이네.

오후 다섯 시만 되면 시가는 온전히 노동자의 거리이니 한 시간 에누리없이 꼭 여덟 시간의 노동을 마친 수많은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일터에서 무수히 거리를 쏟아져 나오네. 검소하게 옷입은 그들이 자랑스러운 걸음으로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할 때 거리는 우리의 것이다 세상은 우리의 것이다!--- 그들의 자랑스런 태도와 굵은 보조가 이것을 또렸이 말하는 듯하네.

이것으로 보면 고색을 띤 이 거리가 실상은 가장 활기를 띤 새날의 거리라는 것은 누구나 다 느끼겠지. 신흥의 기상이 신선한 생장력이 거리의 구석구석에 충만하여 있고 그 속에서 굵은 조직이 크나큰 건설이 한층한층 굳어가는 것이네. 노동자들이 노동을 마치고도 날마다 갖가지 의회에 출석하기 위하여 분주히 돌아치고 젊은 학생들과 청년들이 질소한 옷을 입고 책을 끼고 역시 건설의 사업에 분주히 휘돌아치고 있는 것은 물론이어니와 오직 남자뿐이 아니라 신흥계급의 여자 역시 그러하네. 노동 부인이나 여학생이나 다같이 수건으로 머리를 싸고 굽 얕은 구두를 신고 건강한 걸음으로 거리를 걸어다니네. 북극의 능금같이 신선한 그들의 얼굴빛 밋밋하고 탄력 있는 그들의 다리! 굽 높은 구두 끝에 불안정한 체력을 싣고 휘춘휘춘 걸어가는 엷은 다리에 멸망하여 가는 계급의 불안정한 미학이 있다면 굽 얕은 구두에 전신을 든든히 싣고 탄력 있게 걸어가는 밋밋한 다리에는 신흥한 이 나라의 건강한 미학이 있다고 나는 생각하네.

이 나라는 미인 --- 자유롭고 순진하고 건강하고 그야말로 기쁨과 힘의 상징이요, 새날의 매력이 아니면 무엇일까.

도시의 인상은 이만하여 두고 나는 아까 말한 나의 사생활에 관한 에피소드라는 것을 다음에 소개하겠네. 그것은 나답지 않은 끔찍이도 달콤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니 --- 다른 것이 아니라 내가(결코 자랑스런 일은 아니나) 아름다운 이 나라의 미인의 키스를 받고 사랑을 얻은 이야기라네. 설마 군이 사치하고 불건강하다고 비웃지는 않을 줄 믿네. 일상 소설을 좋아하는 나는 이 이야기에 예술적 윤택을 가하여 소설의 형식으로 쓰겠으니 넌센스의 한 편이 되고 말지라도 이 북극의 봄 나의 첫 선물로만 알고 과히 허물은 말게.

상륙한 지 일주일이 되니 항구의 지리도 대강 터득되고 그들의 기풍도 차차 알아는졌으나 아직 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은 관계상 나는 일정한 숙소도 없이 박군과 김군에게 번차례로 폐를 끼칠 분이었다.

<카페 우스리> --- 안정치 못한 이 며칠 동안 자주 출입하게 된 것은 이 부두 가까이 외롭게 서있는 카페 우스리였다. 저녁부터 자옥한 안개 속에 붉은 불을 희미하게 던지고 있는 카페 우스리 --- 그곳은 온전히 노동자들의 오아시스였다.

모보들이 재즈를 추고 룸펜들이 호장된 기염을 토하는 곳이 아니요, 그야말로 똑바른 의미에서의 노동자의 안식처이었다. 마도로스 파이프에서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 속에 서리운 이 나라의 제일 큰 공로자의 초상 밑에는 유쾌한 노동자의 웃음이 있고 건강한 선원들의 흥이 있었다.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긴 항해를 마치고 동무들과 카페 우스리를 찾아오는 것은 곧 그들의 기쁨의 하나인 듯도 하였다. 그것은 물론 순진한 노동자의 숲에서만 우러나오는 이 집의 유쾌하고 건강한 기분을 사랑하여서지만 솔직하게 말한다면 보다 더 카페 주인의 딸 되는 사--샤의 매력에 끌려서라고 할까.

늙은 아버지의 타는 수풍금에 맞춰 기타를 뜯는 사--샤. 낭랑한 목소리로 슬라브의 민요를 노래하는 사--샤, 손님 숲은 유쾌히 돌아치는 사--샤. 그의 한 마디 한 동작이 다 말할 수 없이 귀여운 사--샤였다. 슬라브 독특한 아름다운 살결, 능금같이 신선한 용모, 북극의 하늘같이 맑은 눈, 어글어글한 몸맵시, 풍부한 육체. --- 북극의 헬렌이다. 손가락 하나 대지 말고 신선한 향기 그대로 맑은 자태를 그대로를 하루 온종일 바라보고도 싶고 가지채 곱게 꺽어 향기채 꽃송이채 한 입에 넣고 잘강잘강 씹어 버리고도 싶은 아름다운 꽃이다.

상륙 당시 내가 이 카페에 자주 출입하게된 것도 실상인즉 사--샤의 매력에 끌린 까닭이었다. 붉은 수건으로 머리를 싸고 기타에 맞춰서 순박한 민요를 읊을 때의 사--샤. 한 번 보고 두 번 봄을 따라 넓은 세상에는 그와 같은 존재는 다시 없으리라고까지 생각되었다. 사--샤! 세상에 둘도 없는 사--샤! 가련한 웃음을 띄우고 낭랑한 목소리로 「야 류뷰류 -- 빠아스」 하면서 품에 와서 넘싯 안긴다면 그 순간에 죽어도 이 세상에 났던 보람이 있겠다고 평소의 나답지 않은 이러한 당치않은 생각에 나중에는 센티멘탈하게까지 되었다. 일이 많고 짐이 무거운 몸에 괴롭게 할 처지가 아니라고 스스로 꾸짖어 보았으나 사람으로서의 이 영원한 감정만은 어찌할 수 없었다.

우스리를 찾은 지 사흘 되는 밤이었다.

육중한 기중기와 창고와 기선의 허리가 안개 속에 몽롱한 밤 부두에는 우스리의 창에서 흐르는 향기로운 불빛을 향하여 선원들의 검은 그림자가 하나씩 둘씩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넓은 카페 안에는 어느덧 사람들이 그득하였고 값싼 마홀카의 푸른 연기가 방안에 자옥하였다.

늙은 아버지는 손님 시중들기에 분주하였고 사--샤의 목가적 자태를 볼 때에 그가 낮 동안에 부두에 나와 바닷바람을 쏘여가면서 새로 닻 내린 배에 올라 정신없이 무엇을 적으면서 선객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취조하는 해상 국가 보안부의 여서기인 줄야 누가 첫눈에 짐작할 수 있으랴. 그리고 그가 몇 해 전에 모스크바에 있을 때에 열렬한 콤사몰카1의 한 사람으로 낮 동안에는 회관에서 일보고 밤에는 또한 동무들과 혁명사 강의를 들으러 다니던 그 사--샤일 줄야 누가 짐작하랴. 혁명에 오빠와 어머니를 잃은 사--샤는 모스크바에서 열심으로 공부하고 일보던 그때에도 외로이 떨어져 있는 늙은 아버지를 지극히 사랑하였던 끝에 마침내 도읍을 떠나 동쪽 항구까지 멀리 아버지를 찾아왔던 것이다. 그리하여 여서기로서 바쁜 일을 보아 가면서도 아버지를 위하여 그가 경영하는 카페를 또한 도와 나갔던 것이다. 낮에는 바쁘게 휘돌아치면서도 밤에는 수많은 노동자와 선원들을 상대로 목가와 기쁨에 취하는 이 두 가지의 생활을 사--샤는 가장 자유롭고 양기롭게 해나갔던 것이다.

사--샤는 한참이나 기타의 줄을 맞추더니 익숙한 기술로 마주르카(Mazurka)의 한 곡조를 뜯기 시작하였다.

우리 세 사람은 한편 구석 탁자를 차지하고 유쾌한 흥에 잠기면서 사--샤의 기타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잡담과 웃음에 요란하던 사람들도 그 음조에 취한 듯이 방안은 고요하였다. 힘과 땀의 노동을 마친 뒤에 고요한 마주르카의 한 곡조는 사실 한 모금의 청량제일 것이다. 방안은 이 고요한 맛에 취한 듯 하였다. 그러나 나는 은은한 음조보다도 능란히 놀리는 그의 손맵시보다도 더 많이 어여쁜 사--샤의 용모에 정신이 쏠렸었다.

한 곡조가 그치자 박수하는 소리가 파도같이 일어나고 치하의 소리가 물 퍼붓듯 쏟아 졌다.

「사--샤!」

「부라보!」

이 물끓듯하는 환조의 사이에서 선원인 듯한 건장한 사나이가 문득 자리를 일어서더니 무엇이라고 높게 외치면서 사--샤의 앞으로 걸어갔다.

「크라시---바야떼---보슈카!」

만면에 웃음을 띄우고 이렇게 외치더니 그는 다짜고짜로 사--샤를 번쩍 들어 탁자 위에 올려세웠다. 사람들은 의아하여서 그의 거동을 잠자코 보고만 있었다. 사--샤 역시 영문을 모르나 그러나 그는 여전히 양기로운 웃음을 띄우면서 기타를 한 손에 든 채 탁자 위에 서슴치 않고 올라섰다.

사나이는 또 소리 높이 외쳤다.

「아욱숀니 톨기.」

「!」

「?」

「아나---파세루---이.」

당돌한 그 사나이의 거동에 의아해하고 있던 사람들은 그의 외치는 이 한마디에 기뻐하고 소리치고 박수하면서 찬동의 뜻을 표하였다.

「하라쇼!」

「부라보!」

그러나 나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장난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키스를 경매하다니! 내가 은근히 생각하여 오던 사--샤의 키스를! 생각할 수 없었다. 허락할 수 없었다. 나의 가슴은 알 수 없이 떨렸다.

그러나 사--샤의 얼굴을 보았을 때에는---이 순진한 처녀는 그들의 제의에 승낙하는 듯이 양기롭게 웃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 역시 박수를 하면서 동의의 뜻을 표하고 있었다.

(모를 백성이다.)

그들의 미친 장난을 이해하기 어려운 나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세 사람이 수군수군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에 열광적 흥분과 환호 가운데에서 경매의 막은 드디어 열리고 말았다.

건장한 사나이는 사--샤의 옆에 선 채 군중을 향하여 소리쳤다.

「취토 스토---야트?」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먼 구석 한 편 탁자 옆에 앉았던 키작은 노인이 일어서면서 마도로스 파이프를 입에서 빼더니 모기 소리 만한 목소리로 가늘게 불렀다.

「아딘 루---브랴.」

별안간 웃음소리가 봇살 터지듯이 방안에 그득히 터져 나왔다. 키스 한 번에 일 루불이라는 것이 결코 망발된 값은 아니었으나 개시로 그것을 부른 것이 호호한 노인이었고 또 그의 태도가 하도 우스운 까닭에 모두들 웃음을 금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오---첸 도쉐보!」

무참하여서 자리에 도로 주저앉은 노인을 보고 사나이는 이렇게 말하고 다시 「취토 스토---야트!」를 부르니 시세는 차차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드바 루---브랴.」

「트리 루---브랴.」

「파티 루---브랴.」

오 루불까지 오르더니 시세는 더 오르지 않고 잠깐 머물렀다.

건장한 사나이는 <샤티> <샤티>를 연발하면서 사람 숲을 휘돌아 보았으나 거기에는 침묵이 있을 뿐이요, 값을 더 올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자 한참이나 있다가.

「데---파샤티!」

하고 한편 구석에서 벌떡 얼어서는 사나이가 있었으니 그것이 곧 나였다.

처음에는 그들의 당돌한 행동에 자못 놀랐으나 차차 그들의 무작위한 태도와 사--샤의 유쾌한 태도를 봄을 따라 나도 그 속에 한 몫 끼어 아름다운 사--샤의 한 송이의 사랑을 얻어 볼까 하고 알맞은 때를 기다려오던 터이었다.

십 루불이 결코 많은 돈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사--샤의 아름다운 입술을 살 수가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귀중한 십 루불이며 영광스런 십 루불일 것인가! 흥분된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탁자 옆에 일어서서 사--샤을 바라보았다.

사--샤 역시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징긋이 이쪽을 바라보는 묵직한 응시 속에는 그 무슨 깊은 의미가 있다---고 적어도 나는 생각하였다. 사흘이나 이곳을 찾아온 만큼 그는 나의 존재도 이미 짐작하였을 것이다. 그의 응시에는 차차 미소가 떠올랐다. 미소를 띤 그를 이렇게 정면으로 대하니 그는 얼마나 더 아름다운가, 아름다운 그의 입술이 십 루불에·····단 생각에 취하면서 나는 나에게 쏠려 있는 수많은 시선을 무시하면서 정신없이 사--샤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 단 생각도 중턱에서 끊어져 버리고야 말았다.

「드바따티!」

엄청나게 큰 소리로 부르짖으면서 나의 옆 탁자에 앉았던 늘름 한 사나이가 나의 흥정을 가로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뭇사람의 시선과 사--샤의 시선을 독점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또 다른 사람에게 가로채어 버리고 시세는 또다시 차차 폭등하기 시작하였다.

「트리따티!」

「소--로끄!」

「파티데샤티!」

처음에는 일 루불씩 오르던 것이 이제와서는 십 루불씩 올라갔다. 그리고 한 사람이 봉을 떠놓으면 왠일인지 그것이 가속도적으로 급속하게 올라갔다. 올라갈 때마다 나의 속을 죄이고 떨리고 흥분되어 갔던 것이다.

「쉐스티!데샤티!」

「쌤떼샤티!」

「부쌤데샤티!」

드디어 팔십 루불까지 올라갔다. 키스 한번에 팔십 루불. 그것은 아름다운 사--샤와 달아 볼 때에는 별로 무거운 것이 아니지만 넉넉지 못한 노동자나 선원들의 처지와 달아 볼 때에는 팔십 루불은 곧 저울대가 휠이만치 무거운 돈일 것이다. 사--샤의 아름다운 자태를 눈앞에 놓고도 시세가 이 팔십 루불 까지 와서는 그대로 침체하여 버리고 더 올라갈 형세를 보이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이 팔십 루불을 부른 사나이는 몸이 부대한 것이라든지 해군모를 엇비슷하게 쓴 품이 틀림없는 선장격의 사나이였다. 그는 그가 부른 가격에 십분의 만족과 자신을 가지고 자랑스럽게 주위를 휘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를 좇을려는 사람이 없음을 깨달았을 때에 그는 유유히 자리를 일어서서 사--샤에게로 가려 하였다.

처음에는 무작위하게 장난으로 시작한 것이 일이 차차 이렇게 참스럽게 되고 나중에는 한 사나이가 그것도 그다지 마음먹지 않는 사나이가 자기 앞으로 서슴지 않고 달려 듦을 볼 때 사--샤는 적지않이 실망한 듯 하였다.

드디어 그는 군중을 돌아보면서 호소하는 듯이 두 손을 들었다. 그러는 즈음에 기타줄에 걸려선지 그의 치마가 높이 들리며 양말속의 향기로운 하아얀 두 다리가 무릎 위에까지 드러났다. 새빨간 즈로오즈 밑으로 기름지게 드러난 백설 같은 감각이 전기불을 받아 눈이 부시게 현란하였다.

「데뱌노--스토.」

이 우연히 드러난 관능의 공인지는 모르나 잠시 중단 되었던 시세는 별안간 팔십 루불을 차버리고 구십 루불로 올랐다.

구십 루불을 부른 사나이는 역시 모자를 엇비슷하게 쓴 젊은 사나이였다. 그는 늠름히 일어서서 백분의 자신을 가지고 주위를 휘돌아보았다. 그러나 벌써 더 부를 만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이분이 지나고 삼분이 지나고 오분이 지났다. 그러나 이 시세를 돌파한 새 시세는 나오지 않았다. 구십 루불이 최후의 결정적 기록인 듯하였다. 젊은 사나이는 최대의 자신을 가지고 한 걸음 두 걸음 사--샤의 앞으로 걸어갔다.

한 걸음 두 걸음······ 나는 참을 수 없었다. 사--샤의 사랑이 결국 이 사나이의 것이 된단 말인가 하고 생각할 때에 나는 모욕이나 받은 듯 하였다. 안된다. 안된다. 그럴 수 없다. 사--샤가 사--샤가······ 나는 부지중에 벌떡 자리를 일어섰다. 그리고 어느 결엔지 모르게,

「스토!」

하고 정신없이 백 루불을 불러 버렸다. 물론 아무 분별도 주책도 없이였다. 다만 머릿속에 있는 것은 사--샤를 뺏겨서는 안되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박군과 김군은 의아하여 나를 똑바로 바라 보았고 뭇사람의 시선 역시 일제히 나에게로 쏠렸다. 나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사--샤의 얼굴에는 말할 수 없이 요조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리고 그 미소 가운데에는 처음에 내가 「데--샤티!」를 불렀을 때에 보여준 그것 이상 몇몇 배의 깊은 의미와 호의의 표정이 떠올라 있는 것은 속일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의 눈은 나를 부르는 듯도 하지 않았던가.

사--샤의 옆에 섰던 건장한 사나이는 군중을 향하여 「스토!」「스토!」를 연호하였으나 그 이상 올리는 사람도 올릴 만한 사람도 보이지는 않았다.

사--샤는 결국 내 차지였다. 나는 당당히 자리를 나서서 한 걸음 두 걸음 사--샤에게로 발을 옮겨 놓았다.

사--샤 역시 반기는 낯으로 두 팔을 내밀면서 나에게로 가까이 달려왔다.

결국 나는 사--샤의 손을 잡고 그 역시 말없이 나의 손을 든든히 잡았다. 그의 맑은 눈, 거룩한 미소, 든든한 팔--- 이 모든 그의 무언의 자태가 기실 나의 꿈꾸고 있던 「야--류부류--바--스」를 한마디 한마디 또렸 또렸이 속삭였다. 나는 꿈이나 아닌가 하였다. 꿈이 아니고는 이렇게 끔찍한 행복이 나에게 굴러떨어질 리 만무할 것이다. 세상에도 아름다운 사--샤--- 희랍의 <헬렌>인들 애란의 <데아드라>인들 어찌 사--샤에게 미칠 수 있었을까---해를 비웃고 달을 비웃을 사--샤! (동무여 나의 이때의 이 감상을 허락하라.) 그는 나의 생애에 처음으로 나타났고 또 마지막으로 나타난 유일의 사람인 듯하였다.

황홀과 행복감에 흥분된 나는 몽롱한 의식 가운데에서도 감사의 눈으로 사--샤를 똑바로 대하면서 손을 옮겨 그의 팔을 붙들었다. 별안간 나의 팔을 꽉 잡고 사--샤와 나의 사이를 가로막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곧 처음부터 사--샤의 옆에 서 있던 건장한 사나이 였다.

그는 사--샤를 나에게서 떼더니 자기 옆에 세워 놓고,

「드베스티!」

하고 부르짖더니 주머니 속에서 이백 루불의 지폐 뭉치를 집어냈다.

처음에 경매를 제의한 것이 이 사나이였던 것을 보고 이제 또 이 그의 행동을 봄에 그가 처음부터 사--샤에게 마음을 둔 것이 확실하였다. 시세가 오를 대로 올라 그 이상 더 오르지 못할 그 형세를 살펴서 그보다 높은 시세로 사--샤를 손에 넣겠다는 것이 이 사나이의 처음부터의 계획이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말할 수 없이 흥분되고 당혹하였다.

「트리스타!」

삼백 루불이 나의 주머니 속에 있고 없고는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아무 분별도 없이 당혹한 가운데서 그저 이렇게 불렀던 것이다.

「체트레스티!」

그 사나이 역시 나에게 지지 않을 만한 높은 소리로 이렇게 부르짖으면서 또 이백 루불의 지폐 뭉치를 주머니 속에서 집어내서 합 사백 루불의 지폐를 두 손에 갈라 쥐었다.

이렇게 되면 죽든 살든 필사적이었다.

「파티소--티!」

나는 백 루불을 더 올렸다.

이때까지 늘름하던 그 사나이는 여기서 적지않은 당혹의 빛을 나타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불안과 의혹의 표정으로 나를 똑바로 바라보더니 손등으로 입을 씻고 어떤 결의의 빛을 보이면서 에라 마지막이다 하는 듯이 최후의 분발을 하였다.

「쉐스틔소--틔!」

주머니 속을 툭툭 긁어모아 합 육백 루불을 탁자 위에 던지더니 입맛이 쓴 듯이 그는 맥없이 의자에 주저앉아서 나의 입만 쳐다보았다.

이것이 마지막이로구나 하고 깨달았으나 나는 더 올려야 좋을지 안 올려야 좋을지 반은 광태에 빠진 나의 의식은 몽롱한 뿐이었다.

사--샤의 애원하는 듯한 시선이 매질하는 듯이 나의 전신에 흘렀다. 나는 그 시선을 배반하여 버릴 수 없었다. 온전히 미친 듯이 나는 목소리를 다하여 마지막으로,

「틔샤차!」

하고 외치고는 의식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던 것이었다. 나의 입만 바라보고 앉았던 그 사나이가 실망한 듯이 탁자 위의 지폐 뭉치를 도로 주섬주섬 주머니 속에 넣고 알지 못할 웃음을 커다랗게 웃으면서 군중 숲에서 사라진 것과 그 뒤에 파도 같은 박수와 환조가 군중 사이에 일어난 것과 그리고 영문모를 신세계의 노래가 집을 들어갈 듯이 높게 울린 것이 어렴풋이 짐작될 뿐이요 그 뒷일은 도무지 의식 밖이었다.

어느 맘때쯤 되었는지 새로 의식을 회복하였을 때 나는 그 카페 안의 넓은 소파 위에 누워 있었다.

요란하던 손님들은 다 가버리고 밤 깊은 카페 안은 고요하였다.

내가 깨나기를 기다리기에 지쳤는지 박군과 김군은 건너편 탁자 위에 두 팔로 머리를 괴인채 잠들어 있고 나의 옆에는 사--샤가 꿇어앉아 있었다.

내가 눈을 방긋 떴을 때에 거기에는 두팔을 소파에 걸치고 곤하지도 않은지 징긋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샤의 시선이 있었다. 그는 그때까지 나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옆에 꿇어앉아 내가 깨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의 키스를 사려고 모든 대적을 물리치고 천 루불을 불렀다. 그러나 물론 나의 수중에 천 루불이라는 큰 돈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천 루불을 커녕 백 루불도 아니 단 십 루불도 없었던 것이다. 몸을 전부 팔아도 단 십루불이 안될 내가 대담하게도 천 루불이란 값을 붙인 것은 온전히 광태 속에서였다.

사--샤를 뺏겨서는 안되겠다는 열증된 광태로 실상 그를 대하였을 때에는 그에 대한 미안한 생각과 부끄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무슨 주제에 천 루불의 끔찍한 대금을 부르고 그를 이렇게 붙들어 두었던가.

사--샤를 생각하던 열정도 간 곳 없고 다만 짝없이 부끄럽기만한 나는 말없이 소파에서 일어나서 동무를 깨워 가지고 이 집을 나갈 작정으로 자리를 일어섰다.

그러나 나의 표정이 일일이 바라보고 있던 사--샤는 벌떡 얼어나면서 나를 붙들었다.

「늬에트! 늬에트!」

다시 나를 소파 위에 앉히고 그 역시 나의 앞에 바싹 다가앉더니 두 팔을 나의 어깨 위에 걸었다.

나는 그의 이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던 차에 다음과 같은 연연한 그의 한 마디는 나를 이를 데 없이 혼란케 하였다.

「야 류뷰류---카레이스쿠!」

「?」

나는 잠시 멍멍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처구니가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도 큰 기쁨에 놀라서였다. 그는 그의 입으로 틀림없이 「야 류뷰류---카레이스쿠!」를 연연히 부르짖었다.

모든 것은 명백하였다. 내가 사--샤를 생각하였던 것같이 그 역시 처음부터 나를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는 아무런 인종적 편견도 가지지 아니하고 조선 사람인 나를 사랑하였던 것이다.

나는 기쁘고 말고 정신이 없이 좋았다.

만면에 웃음을 띄우고 두 팔로 그의 어깨를 든든히 잡았을 때에 거기에는 모든 것을 허락하는 사--샤가 있었다. 향기로운 용모가 애원하는 듯한 가련한 눈초리가 방끗 열린 입술이---황홀한 사랑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나는 아름다운 사--샤의 키스와 사랑을 샀네---아니 얻었네. 그리고 지금 역시 받고 있네. 그나 내가 낮에는 바쁘게 일하고 밤에 다시 우스리에서 만날 때에는 사랑과 안식이 있다네. 이제는 벌써 우스리에 모이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누구 한 사람 그의 키스를 경매할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네.

경매라니 말이지 처녀의 키스를 경매한다면 퍽 음란하고 야비하게 들릴 것일세. 그러나 알고 보면 이곳에서는 극히 건강하고 허물 없는 장난에 지나지 못하네. 퇴폐적 비열한 행동인 줄 알았던 것이 실상인즉 단순하고 무작위한 노름에 지나지 못함을 나는 깨달았네. 여기에 또한 슬라브다운 기풍이 나타나 있으니 이곳이 아니면 도저히 보기 어려운 장난일 것일세.

R군!

내가 지금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써 보낼 처지는 아니로되 낯모르는 땅에 처음으로 샹륙하자마자 우연히 겪은 나의 사생활의 잊지 못한 한 장의 이야기인 만큼 큼직한 슬라브의 풍모의 일단도 소개할 겸 허물 없는 군에게만은 기탄없이 말하고 싶었던 것일세. 그런 줄 알고 너그럽게 용서하게.

요 다음에는 무게 있는 좋은 소식 많이 들려줌세. 내내 군과 여러 동지의 건투를 빌고 이만 그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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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물세살이오 ― 三월이오 ― 咯血이다. 여섯달 잘 기른 수염을 하루 면도칼로 다듬어 코밑에 다만 나비만큼 남겨 가지고 藥 한 제 지어 들고 B라는 新開地 閑寂한 溫泉으로 갔다. 게서 나는 죽어도 좋았다.

그러나 이내 아직 기를 펴지 못한 靑春이 藥탕관을 붙들고 늘어져서는 날 살리라고 보채는 것은 어찌하는 수가 없다. 旅館 寒燈 아래 밤이면 나는 억울해 했다.

사흘을 못 참고 기어 나는 旅館 主人 영감을 앞장 세워 밤에 長鼓소리 나는 집으로 찾아갔다. 게서 만난 것이 錦紅이다.

  • 「몇 살인구?」

體大가 비록 풋고추만 하나 깡그라진 계집이 제법 맛이 맵다. 열여섯살? 많아야 열아홉살이지 하고 있자니까

  • 「스물 한 살이에요.」 「그럼 내 나인 몇 살이나 돼 뵈지?」 「글쎄 마흔? 서른 아홉?」

나는 그저 흥! 그래 버렸다. 그리고 팔짱을 떡 끼고 앉아서는 더욱더욱 점잖은 체했다. 그냥 그날은 無事히 헤어졌건만―

이튿날 畫友 K君이 왔다. 이 사람인즉 나와 弄하는 친구다. 나는 어쩌는 수 없이 그 나비 같다면서 달고 다니던 코밑수염을 아주 밀어 버렸다. 그리고 날이 저물기가 急하게 또 錦紅이를 만나러 갔다.

「어디서 뵌 어른 같은데.」

「엊저녁에 왔던 수염 난 양반, 내가 바루 아들이지. 목소리까지 닮았지?」

하고 익살을 부렸다. 酒席이 어느덧 罷하고 마당에 내려서다가 K君의 귀에 대이고 나는 이렇게 속삭였다.

  • 「어때? 괜찮지? 자네 한 번 얼러보게.」 「관두게, 자네가 얼러보게.」 「어쨌든 旅館으로 껄구 가서 짱껭뽕을 해서 定허기루 허세나.」 「거 좋지.」

그랬는데 K君은 厠간 에 가는 체하고 避해 버렸기 때문에 나는 不戰勝으로 錦紅이를 이겼다. 그날 밤에 錦紅이는 錦紅이가 經産婦라는 것을 감추지 않았다.

  • 「언제?」 「열여섯살에 머리 얹어서 열일굽살에 낳았지.」 「아들?」 「딸」 「어딨나?」 「돌만에 죽었어.」

지어 가지고 온 藥은 집어치우고 나는 전혀 錦紅이를 사랑하는 데만 골몰했다. 못난 소린 듯하나 사랑의 힘으로 咯血이 다 멈췄으니까―

나는 錦紅이에게 노름채를 주지 않았다. 왜? 날마다 밤마다 錦紅이가 내 房에 있거나 내가 錦紅이 房에 있거나 했기 때문에―

그대신―

禹라는 佛蘭西 留學生의 遊治郞 을 나는 錦紅이에게 勸하였다. 錦紅이는 내 말대로 禹氏와 더불어 <獨湯>에 들어갔다. 이 <獨湯>이라는 것은 좀 淫亂한 設備였다. 나는 이 淫亂한 設備 문간에 나란히 벗어 놓은 禹氏와 錦紅이 신발을 보고 언짢아하지 않았다.

나는 또 내 곁房에 와 묵고 있는 C라는 辯護士에게도 錦紅이를 勸하였다. C는 내 熱誠에 感動되어 하는 수 없이 錦紅이 房을 犯했다.

그러나 사랑하는 錦紅이는 늘 내 곁에 있었다. 그리고 禹, C等等에게서 받은 十圓 紙幣를 여러 장 꺼내 놓고 어리광석게 내게 자랑도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나는 伯父님 소상 때문에 歸京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복숭아꽃이 滿發하고 亭子 곁으로 石澗水가 졸졸 흐르는 좋은 터전을 한 군데 찾아가서 우리는 惜別의 하루를 즐겼다. 停車場에서 나는 錦紅이에게 十圓 紙幣 한 장을 쥐어 주었다. 錦紅이는 이것으로 典當잡힌 時計를 찾겠다고 그러면서 울었다.

2

錦紅이가 내 아내가 되었으니까 우리 內外는 참 사랑했다. 서로 지나간 일은 묻지 않기로 하였다. 過去래야 내 過去가 무엇 있을 까닭이 없고 말하자면 내가 錦紅이 過去를 묻지 않기로 한 約束이나 다름없다.

錦紅이는 겨우 스물한살인데 서른한살 먹은 사람보다도 나았다. 서른한살 먹은 사람보다도 나은 錦紅이가 내 눈에는 열일곱살 먹은 少女로만 보이고 錦紅이 눈에 마흔살 먹은 사람으로 보인 나는 其實 스물세살이오 게다가 주책이 좀 없어서 똑 여나믄살 먹은 아이 같다. 우리 內外는 이렇게 世上에도 없이 絢爛하고 아기자기하였다.

부질없는 歲月이―

一年이 지나고 八月, 여름으로는 늦고 가을로는 이른 그 북새통에―

錦紅이에게는 예전 生活에 對한 鄕愁가 왔다.

나는 밤이나 낮이나 누워 잠만 자니까 錦紅이에게 對하여 심심하다. 그래서 錦紅이는 밖에 나가 심심치 않은 사람들을 만나 심심치 않게 놀고 돌아오는―

즉 錦紅이의 狹窄한 生活이 錦紅이의 鄕愁를 向하여 發展하고 飛躍하기 시작하였다는 데 지나지 않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게 자랑하지 않는다. 않을 뿐만 아니라 숨기는 것이다.

이것은 錦紅이로서 錦紅이답지 않은 일일밖에 없다. 숨길 것이 있나? 숨기지 않아도 좋지. 자랑을 해도 좋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나는 錦紅이 娛樂의 便宜를 돕기 위하여 가끔 P君 집에 가 잤다. P君은 나를 불쌍하다고 그랬던가시피 지금 記憶된다.

나는 또 이런 것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즉 남의 아내라는 것은 貞操를 지켜야 하느니라고!

錦紅이는 나를 懶怠한 生活에서 깨우치게 하기 위하여 우정 姦淫하였다고 나는 好意로 解釋하고 싶다. 그러나 世上에 흔히 있는 아내다운 禮儀를 지키는 체해 본 것은 錦紅이로서 말하자면 千慮의 一失이 아닐 수 없다.

이런 實없는 貞操를 看板 삼자니까 自然 나는 外出이 잦았고 錦紅이 事業에 便宜를 도웁기 위하여 내 房까지도 開放하여 주었다. 그러는 中에도 歲月은 흐르는 法이다.

하루 나는 題目 없이 錦紅이에게 몹시 얻어맞았다. 나는 아파서 울고 나가서 사흘을 들어오지 못 했다. 너무도 錦紅이가 무서웠다.

나흘만에 와보니까 錦紅이는 때 묻은 버선을 웃목에다 벗어놓고 나가버린 뒤였다.

이렇게도 못나게 홀아비가 된 내게 몇 사람의 친구가 錦紅이에 關한 不美한 까싶을 가지고 와서 나를 慰勞하는 것이었으나 終始 나는 그런 趣味를 理解할 도리가 없었다.

뻐스를 타고 錦紅이와 男子는 멀리 果川 冠岳山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는데 정말 그렇다면 그 사람은 내가 쫓아가서 야단이나 칠까봐 무서워서 그런 모양이니까 퍽 겁장이다.

3

人間이라는 것은 臨時 拒否하기로 한 내 生活이 記憶力이라는 敏捷한 作用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 달 後에는 나는 錦紅이라는 姓名 三字까지도 말쑥하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런 杜絶된 歲月 가운데 하루 吉日을 卜하여 錦紅이가 往復葉書처럼 돌아왔다. 나는 그만 깜짝 놀랐다.

錦紅이의 모양은 뜻밖에도 憔悴하여 보이는 것이 참 슬펐다. 나는 꾸짖지 않고 麥酒와 붕어菓子와 장국밥을 사 먹여 가면서 錦紅이를 慰勞해 주었다. 그러나 錦紅이는 좀처럼 화를 풀지 않고 울면서 나를 원망하는 것이었다. 할 수 없어서 나도 그만 울어 버렸다.

  • 「그렇지만 너무 늦었다. 그만해두 두달之間이나 되지 않니? 헤어지자, 응?」 「그럼 난 어떻게 되우, 응?」 「마땅헌데 있거든 가거라, 응?」 「당신두 그럼 장가가나? 응?」

헤어지는 限에도 慰勞해 보낼지어다. 나는 이런 良識 아래 錦紅이와 離別했더니라. 갈 때 錦紅이는 선물로 내게 베개를 주고 갔다.

그런데 이 베개 말이다.

이 베개는 二人用이다. 싫대도 자꾸 떠맡기고 간 이 베개를 나는 두 週日동안 혼자 베어 보았다. 너무 길어서 안 됐다. 안 됐을 뿐 아니라 내 머리에서는 나지 않는 妙한 머릿기름땟내 때문에 安眠이 저으기 妨害된다.

나는 하루 錦紅이에게 葉書를 띄웠다. 「重病에 걸려 누웠으니 얼른 오라」고.

錦紅이는 와서 보니까 내가 참 딱했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亦是 며칠이 못 가서 굶어 죽을 것 같이만 보였던가보다. 두 팔을 부르걷고 그 날부터 나가서 벌어다가 나를 먹여 살린다는 것이다.

  • 「오― 케― 」

人間天國― 그러나 날이 좀 추웠다. 그러나 나는 대단히 安逸하였기 때문에 재채기도 하지 않았다.

이러기를 두 달? 아니 다섯 달이나 되나보다. 錦紅이는 忽然히 外出했다.

달포를 두고 錦紅이 ‘홈씩’ 을 期待하다가 盡力이 나서 나는 器皿什物을 뚜들겨 팔아 버리고 二十一年만에 ‘집’으로 돌아갔다.

와 보니 우리 집은 老衰했다. 이어 不肖 李箱은 이 老衰한 家庭을 아주 쑥밭을 만들어 버렸다. 그 동안 이태 가량―

於焉間 나도 老衰해 버렸다. 나는 스물일곱살이나 먹어 버렸다.

天下의 女性은 多少間 賣春婦의 要素를 품었느니라고 나 혼자는 굳이 信念한다. 그 대신 내가 賣春婦에게 銀貨를 支拂하면서는 한 번도 그네들을 賣春婦라고 생각한 일이 없다. 이것은 내 錦紅이와의 生活에서 얻은 體驗만으로는 成立되지 않는 理論같이 생각되나 其實 내 眞談이다.

4

나는 몇 篇의 小說과 몇 줄의 詩를 써서 내 衰亡해 가는 心身 위에 恥辱을 倍加하였다. 이 以上 내가 이 땅에서의 生存을 계속하기가 자못 어려울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나는 何如間 허울 좋게 말하자면 亡命해야겠다.

어디로 갈까. 만나는 사람마다 東京으로 가겠다고 豪言했다. 그뿐 아니라 어느 친구에게는 電氣技術에 關한 專門공부를 하러 간다는 둥 學校先生님을 만나서는 高級單式印刷術을 硏究하겠다는 둥 친한 친구에게는 내 五個國語에 能通할 作定일세 어쩌구 甚하면 法律을 배우겠소 까지 虛談을 탕탕 하는 것이다. 웬만한 친구는 보통들 속나보다. 그러나 이 헷宣傳을 안 믿는 사람도 더러는 있다. 何如間 이것은 영영 빈 털털이가 되어버린 李箱의 마지막 空砲에 지나지 않는 것만은 事實이겠다.

어느 날 나는 이렇게 如前히 空砲를 놓으면서 친구들과 술을 먹고 있자니까 내 어깨를 툭 치는 사람이 있다. ‘긴상 ’이라는 이다.

  • 「긴상(李箱도 事實은 긴상이다) 참 오래간만이슈. 건데 긴상 꼭 긴상 한 번 만나 뵙자는 사람이 하나 있는데 긴상 어떻거시려우」 「거 누군구. 남자야? 여자야?」 「여자니까 일이 재미있지 않으냐 거런말야.」 「여자라?」 「긴상 옛날 옥상 .」

錦紅이가 서울에 나타났다는 이야기다. 나타났으면 나타났지 나를 왜 찾누?

나는 긴상에게서 錦紅이의 宿所를 알아 가지고 어쩔 것인가 망설였다. 宿所는 동생 一心이 집이다.

드디어 나는 만나보기로 決心하고 一心이 집을 찾아가서,

  • 「언니가 왔다지?」 「어유― 아제두, 돌아가신 줄 알았구려! 그래 자그만치 인제 온단말씀유, 어서 들오슈」

錦紅이는 亦是 憔悴하다. 生活戰線에서의 疲勞의 빛이 그 얼굴에 如實하였다.

  • 「네눔 하나 보구져서 서울 왔지 내 서울 뭘허러 왔다디?」 「그리게 또 난 이렇게 널 찾어오지 않었니?」 「너 장가 갔다더구나.」 「얘 디끼 싫다. 그 육모초 겉은 소리.」 「안 갔단말이냐, 그럼」 「그럼.」

당장에 목침이 내 面上을 向하여 날라 들어왔다. 나는 예나 다름이 없이 못나게 웃어 주었다.

술床을 보았다. 나도 한잔 먹고 錦紅이도 한잔 먹었다. 나는 寧邊歌를 한 마디 하고 錦紅이는 육자백이를 한 마디 했다.

밤은 이미 깊었고 우리 이야기는 이게 이生에서의 永離別이라는 結論으로 밀려갔다. 錦紅이는 銀수저로 소반전을 딱딱 치면서 내가 한번도 들은 일이 없는 구슬픈 唱歌를 한다.

  •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굽이굽이 뜨내기 世上 그늘진 心情에 불질러 버려라 云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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