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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은 그 집에서 조반을 먹고 대문 밖에 나섰다. 노파와 어머니와 계향과 세 사람이 번갈아 형식을 권하므로 형식은 전보다 더 많이 먹었다. 더구나 그 밥이며 국이며 전골이며 모든 것이 평생 객줏집 밥만 먹던 형식에게는 지극히 맛이 좋았다. 그럴 뿐더러 형식은 아직도 이렇게 여러 사람에게 정성스럽게 권함을 받으며 밥상을 대하여 본 적이 없었다. 더구나 계향과 같은 아름다운 처녀에게
"어서 더 잡수셔요."
하고 정성스럽게 권함을 받은 적은 없었다. 계향은 형식의 밥상에 붙어서 손수 구운 조기를 뜯었다. 아까 성냥개비에 덴 손가락에 누렇게 탄 자리가 보인다. 계향은 형식의 숟가락을 빼앗아 제 손으로 대접에 밥을 말았다. 형식은,
"그렇게 많이 못 먹는데."
하면서 그 밥을 다 먹었다. 계향은 형식이가 밥을 다 먹는 것을 보고 기쁜 듯이 방그레 웃었다. 그 웃는 계향의 눈썹에는 아직도 눈물이 묻었더라. 세 사람은 실로 진정으로 형식을 권하였다. 형식을 자기네의 아들 모양으로, 또는 오라비 모양으로 따뜻한 밥과 맛있는 반찬을 한 술이라도 많이 먹도록 진정으로 권하였다. 그러고 형식도 그 권하는 사람들을 어머니와 같이 또는 누이와 같이 정답게 생각하였다.
"아무것도 잡수실 것이 없어서."
하는 인사도 항용 말하는 형식적 인사와 같이 들리지 아니하고 진정으로 맛나는 반찬이 부족함을 한탄하는 말로 들었다. 형식은 대문을 나설 때에 말할 수 없는 기쁨을 깨달았다. 오랫동안 영채의 일로 근심하고 슬퍼하고 답답하여 하던 마음을 거의 다 잊어버리고 새로운 기쁨을 깨달았다. 아까 오던 안개비가 걷히고 안개 낀 듯한 (하늘에는 보기만 하여도 땀이) 흐를 듯한 햇볕이 가득히 찼다. 형식이가 서너 걸음 걸어나갈 때에 뒤에서,
"저와 같이 가셔요."
하는 소리가 들린다. 형식은 계향의 소리로구나 하면서 우뚝 서며 고개를 돌렸다. 계향은 형식의 곁에 뛰어와 살짝 형식의 손을 잡으려다 말고 형식을 보면서,
"저와 같이 가셔요."
한다. 형식은 칠성문 밖 죄인의 무덤 있는 데와 기자묘 저편 북망산과 모란봉을 넘어 청류벽으로 걸어갈 것을 생각하면서,
"나를 따라오려면 다리가 아플걸요."
하고 계향의 눈을 내려다보며 '같이 갔으면 좋겠다' 하면서도 계향을 만류하였다. 그러나 계향은 몸을 한번 틀면서,
"아니야요. 다리 아니 아파요."
하고 기어이 따라갈 뜻을 보인다.
"또 날이 더운데."
하며 형식은 계향을 뒤세우고 종로를 향하여 나온다. 길가 초가 지붕에서는 가만가만히 김이 오른다. 벌써 사람들은 부채로 볕을 가리우고 다닌다. 손님도 없는 빙수 가게에 아롱아롱한 주렴이 무거운 듯이 가만히 있다. 바람이 불면 살랑살랑 소리가 나려니 하고 형식은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 계향은 길가 가게를 갸웃갸웃 엿보면서 한 손으로 치맛자락을 걷어들고 형식의 뒤로 따라온다. 형식의 누렇게 된 맥고자를 보고 저 사람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어떠한 사람인가 생각한다. 그러고 자기가 날마다 만나는 여러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 사람들과 형식과를 속으로 비교하여 본다. 그러나 계향은 아직도 자기가 만나는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 줄을 알 줄을 모른다. 다만 이 사람은 옷을 잘 못 입은 것을 보니 가난한 사람인가 보다 한다. 그러고 형식의 구겨진 두루마기를 본다. 계향은 '어젯밤 차에서 구겨졌고나. 왜 벗어서 걸지를 아니하였던고' 한다. 그러고 형식의 발을 본다. '새 구두로구나' 한다. 아까 담뱃불 붙여 주던 생각을 하고 그 데인 손가락을 보면서 '아직도 아픈 듯하다' 한다. 그러고 형식이가 불붙은 성냥을 보고 '이리 주시오' 하던 것을 생각하고 자기더러 '하시오' 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 한다. 소가 끄는 구루마를 피하여 섰다가 얼른 형식의 뒤를 따라가서 형식의 손을 잡는다. 형식은 잠깐 고개를 돌려 계향을 보고 웃으면서 계향의 잡은 손은 활개를 아니 친다. 두 사람은 팔각 국숫집 모퉁이를 돌아 비스듬한 고개로 올라간다. 계향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솟는다. 형식은 그것을 보고 잠깐 걸음을 그치며,
"이마에 땀이 흐르는구려."
한다. 계향은 형식의 손을 잡았던 손으로 이마의 땀을 씻으며,
"덥지 않습니다."
하고 또 형식의 손을 잡는다. 형식은 일부러 걸음을 늦추었다. 벌거벗은 때묻은 아이들이 머리를 긁적긁적 긁으며 두 사람을 보고 섰다. 치마 아니 입고 웃통 벗은 부인이 연기 나는 부엌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뛰어나오더니, 연기가 펄펄 오르는 부지깽이로 머리를 긁고 섰던 사내아이의 머리를 때린다. 맞은 아이는 '으아' 하고 울면서 길바닥에 흙을 집어 그 부인의 면상에 뿌린다. 형식은 영채가 숙천 어느 객주에 어떤 사람에게 업혀 가다가 그 사람의 얼굴에 흙을 뿌리던 생각을 한다. 계향은 우뚝 서며 우는 아이를 돌아보더니 두 손으로 형식의 손을 꼭 쥔다. 두 사람은 또 걷는다.
계향은 매맞던 아이를 생각하다가 버리고 형식과 월향의 관계를 생각한다. 언제 '형님'이 이 사람을 알았던고. 평양서 서로 알았으면 내가 모를 리가 없는데 한다. 그런데 이 사람이 왜 형님을 버려서 형님을 죽게 하였는고, 하고 형식이 원망스럽다 하여 가만히 형식의 얼굴을 쳐다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형식의 걱정 있는 듯한 낯빛을 보고 이 사람이 형님을 생각하고 슬퍼하는구나 한다.
이때에 어떤 젊은 사람이 자행거를 타고 두 사람의 앞으로 지나다가 번쩍 고개를 돌리더니 그만 자행거를 내려 형식의 앞으로 온다. 계향은 형식의 손을 놓고 한걸음 물러서서 지금 온 사람의 모양을 본다.
62
그 사람은 자행거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어 쾌활하게,
"그런데 웬일인가? 언제 왔는가?"
하고 담배를 내어 형식에게도 권하고 자기도 붙인다. 형식은 담배 연기를 코와 입으로 내어보내면서,
"오늘 아침차에 왔네."
하고 말하기 싫은 듯이 자행거의 말긋말긋한 방울을 본다. 그 사람은 형식의 곁에 한 걸음 비켜 섰는 계향을 유심히 보고 형식이가 어떤 기생을 데리고 가는가 하고 의심하면서,
"그런데 주인은 어디인가. 왜 바로 내 집으로 오지 아니하고."
하면서도 형식의 얼굴을 보며 '무슨 까닭이 있구나' 한다. 형식은,
"무슨 일이 있어서, 잠깐 다녀갈 양으로 온 것이니까."
하고 고개를 들어 멀리 하얗게 보이는 대동강을 본다. 그 사람은 한번 더 계향을 보더니,
"그런데 저 여자는 누군가?"
형식은 잠깐 얼굴이 붉어지며 어떻게 대답할 줄을 모른다. 계향도 민망한 듯이 고개를 숙인다. 그 사람은 형식이 얼른 대답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의심스럽다 하는 듯이 고개를 기울인다. 형식은 빙긋이 웃으며,
"내 누일세."
하였다. 그러고 내가 잘 대답을 하였구나, 하고 마음에 만족하였다. 그러고는 새로운 용기를 얻어 정면으로 그 사람을 본다. 그 사람은 '내 누일세' 하는 형식의 대답의 뜻을 몰라 담배를 문 채로 멍멍하니 섰다. 그 사람은 형식에게 오직 한 누이가 있는 줄을 알고 또 그 누이는 이미 남의 아내가 된 줄을 안다. 한참이나 우두커니 섰더니 담배 꽁달이를 발로 비비면서,
"그런데 어디로 가는가?"
한다. 형식은 다만,
"기자묘를 보러 가네."
한다. 그 사람은 형식의 행색이 수상하다 하면서,
"그러면 저녁에는 내 집으로 오게. 하룻밤 이야기나 하세."
하고 자행거를 타고 달아난다. 얼마를 가다가 자행거에서 고개를 돌려 천천히 걸어오는 두 사람의 모양을 보더니 그만 어떤 길굽이를 돌아간다. 그 흰 껍데기 씌운 나파륜 모자 꼭대기가 번뜻번뜻 보이더니 아주 아니 보이고 만다. 계향은 안심한 듯이 형식의 손을 잡으며,
"그 어른이 누구시야요?"
한다.
"내 친구외다. 동경 가 있을 때에 같은 학교에 있던 친구요."
계향은 이 말을 듣고 '그러면 이 사람은 동경 유학생인가' 하였다. 그러나(그러고) 자기의 집에 동경 유학생이 여러 사람 오는 것을 생각하고 그 중에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 오는 것도 생각하였다. 그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 늘 술이 취하여 (자기를 껴안을 때에) 그 입에서 구역나는 술냄새가 나던 것과, 또 한번은 자기의 화상을 그려 줄 터이니 벌거벗고 앉으라 할 때에 자기 '그러면 싫소!' 하고 건넌방으로 뛰어가던 것을 생각한다.
두 사람은 칠성문에 다다라 잠깐 걸음을 멈춘다. 칠성문통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 형식은 두루마기 고름을 늦추고 땀에 젖은 자기의 적삼 가슴을 보면서 바람을 맞아들이려는 듯이 두루마기를 벌린다. 계향은 '후―후―' 하고 입김을 내어불면서 두 손으로 두 귀밑을 부친다. 형식은 계향의 얼굴을 보았다. 그 얼굴을(얼굴은) 둥그스름하다. 그러고 더위에 술이 취한 모양으로 두 뺨이 불그레하게 되었다. 오늘 아침에는 분도 바르지 아니하였건마는, 귀밑에는 어저께 발랐던 분이 조곰 남았다. 계향의 적삼 등에도 땀이 내어 배었다. 형식은 선형의 적삼에 땀이 배어 그 젖은 자리가 작았다 컸다 하던 것을 생각하고 빙긋이 웃었다. 계향은,
"녜, 왜 웃으세요?"
하고 웃는다. 형식은 계향의 어깨를 만지며,
"적삼 등에 땀이 배었구려"
한다.
계향은 얼른 돌아서며 형식의 등을 만져 보더니 머뭇머뭇하다가,
"여기도 땀이 배었습니다."
한다. 계향은 형식을 무엇이라고 부를는지 모른다. 자기의 집에 놀러 오는 동경 유학생들을 그 어머니는, 혹 '무슨 주사'라고도 하고 그저 '나리'라고도 하고 또 관 앞에 있는 키 큰 사람은 '김학사'라고도 부르건마는, 계향은 형식을 무엇이라고 부를지 모른다. 그래서 형식의 등에 땀이 밴 것을 보고 '나리도' 할까, '이학사도' 할까 하고 잠깐 주저하다가 '여기도 땀이 배었습니다' 한 것이다. 형식은 그것을 알고 어디 계향이가 자기를 무엇이라고 부르는가 보리라 하여 또 웃으며,
"계향 씨의 얼굴은 술이 취한 것같이 붉구려!"
하였다. 계향도 형식이가 자기의(자기를) 무엇이라고 부를지 몰라 주저하던 것을 알았는가 하여 더욱 얼굴을 붉히더니,
"오빠의 얼굴도……."
하고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더 숙이고 말을 다하지 못한다. 계향은 아까 형식이가 자기를 '내 누일세' 하던 것을 생각한다. 형식이가 계향에게서 들으려던 말은 이 '오빠'란 말이었다. 그러나 계향이가 '오빠의 얼굴도……' 하는 것을 듣고는 미상불 부끄러운 생각이 났다. 형식은 친누이 하나와 종매가 이삼 인 있다. 그러나 친누이는 그 시가를 따라 함경도에 살므로, 이래 사오 년간에 만나 본 적이 없고, 방학 때를 타서 고향에 돌아가면 누구보다도 먼저 종매 세 사람을 찾아갔다. 그 종매들은 오래간만에 만나는 종형을 잘 사랑하였다. 그 중에도 형식보다 나이 어린 두 종매는 형식을 만날 때에 떠날 때에 늘 울었다. 시부모의 앞이라 마음대로 반가운 정을 표하지는 못하나, 처음 만나서 '오빠' 하는 소리와 밥상에 놓은 국에 닭고기를 많이 넣는 것으로 넉넉히 그네의 애정을 알았었다. 형식이 방학에 고향에 돌아가는 것은 실로 이 두 종매에게 '오빠'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듣기 위함이러라. 계향의 '오빠의 얼굴도……' 하는 간단한 말은 형식에게 무한한 기쁨을 주었다. 형식과 계향은 또 걷는다. 그러나 계향은 형식의 손을 잡지 아니하였다.
그 사람은 자행거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어 쾌활하게,
"그런데 웬일인가? 언제 왔는가?"
하고 담배를 내어 형식에게도 권하고 자기도 붙인다. 형식은 담배 연기를 코와 입으로 내어보내면서,
"오늘 아침차에 왔네."
하고 말하기 싫은 듯이 자행거의 말긋말긋한 방울을 본다. 그 사람은 형식의 곁에 한 걸음 비켜 섰는 계향을 유심히 보고 형식이가 어떤 기생을 데리고 가는가 하고 의심하면서,
"그런데 주인은 어디인가. 왜 바로 내 집으로 오지 아니하고."
하면서도 형식의 얼굴을 보며 '무슨 까닭이 있구나' 한다. 형식은,
"무슨 일이 있어서, 잠깐 다녀갈 양으로 온 것이니까."
하고 고개를 들어 멀리 하얗게 보이는 대동강을 본다. 그 사람은 한번 더 계향을 보더니,
"그런데 저 여자는 누군가?"
형식은 잠깐 얼굴이 붉어지며 어떻게 대답할 줄을 모른다. 계향도 민망한 듯이 고개를 숙인다. 그 사람은 형식이 얼른 대답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의심스럽다 하는 듯이 고개를 기울인다. 형식은 빙긋이 웃으며,
"내 누일세."
하였다. 그러고 내가 잘 대답을 하였구나, 하고 마음에 만족하였다. 그러고는 새로운 용기를 얻어 정면으로 그 사람을 본다. 그 사람은 '내 누일세' 하는 형식의 대답의 뜻을 몰라 담배를 문 채로 멍멍하니 섰다. 그 사람은 형식에게 오직 한 누이가 있는 줄을 알고 또 그 누이는 이미 남의 아내가 된 줄을 안다. 한참이나 우두커니 섰더니 담배 꽁달이를 발로 비비면서,
"그런데 어디로 가는가?"
한다. 형식은 다만,
"기자묘를 보러 가네."
한다. 그 사람은 형식의 행색이 수상하다 하면서,
"그러면 저녁에는 내 집으로 오게. 하룻밤 이야기나 하세."
하고 자행거를 타고 달아난다. 얼마를 가다가 자행거에서 고개를 돌려 천천히 걸어오는 두 사람의 모양을 보더니 그만 어떤 길굽이를 돌아간다. 그 흰 껍데기 씌운 나파륜 모자 꼭대기가 번뜻번뜻 보이더니 아주 아니 보이고 만다. 계향은 안심한 듯이 형식의 손을 잡으며,
"그 어른이 누구시야요?"
한다.
"내 친구외다. 동경 가 있을 때에 같은 학교에 있던 친구요."
계향은 이 말을 듣고 '그러면 이 사람은 동경 유학생인가' 하였다. 그러나(그러고) 자기의 집에 동경 유학생이 여러 사람 오는 것을 생각하고 그 중에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 오는 것도 생각하였다. 그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 늘 술이 취하여 (자기를 껴안을 때에) 그 입에서 구역나는 술냄새가 나던 것과, 또 한번은 자기의 화상을 그려 줄 터이니 벌거벗고 앉으라 할 때에 자기 '그러면 싫소!' 하고 건넌방으로 뛰어가던 것을 생각한다.
두 사람은 칠성문에 다다라 잠깐 걸음을 멈춘다. 칠성문통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 형식은 두루마기 고름을 늦추고 땀에 젖은 자기의 적삼 가슴을 보면서 바람을 맞아들이려는 듯이 두루마기를 벌린다. 계향은 '후―후―' 하고 입김을 내어불면서 두 손으로 두 귀밑을 부친다. 형식은 계향의 얼굴을 보았다. 그 얼굴을(얼굴은) 둥그스름하다. 그러고 더위에 술이 취한 모양으로 두 뺨이 불그레하게 되었다. 오늘 아침에는 분도 바르지 아니하였건마는, 귀밑에는 어저께 발랐던 분이 조곰 남았다. 계향의 적삼 등에도 땀이 내어 배었다. 형식은 선형의 적삼에 땀이 배어 그 젖은 자리가 작았다 컸다 하던 것을 생각하고 빙긋이 웃었다. 계향은,
"녜, 왜 웃으세요?"
하고 웃는다. 형식은 계향의 어깨를 만지며,
"적삼 등에 땀이 배었구려"
한다.
계향은 얼른 돌아서며 형식의 등을 만져 보더니 머뭇머뭇하다가,
"여기도 땀이 배었습니다."
한다. 계향은 형식을 무엇이라고 부를는지 모른다. 자기의 집에 놀러 오는 동경 유학생들을 그 어머니는, 혹 '무슨 주사'라고도 하고 그저 '나리'라고도 하고 또 관 앞에 있는 키 큰 사람은 '김학사'라고도 부르건마는, 계향은 형식을 무엇이라고 부를지 모른다. 그래서 형식의 등에 땀이 밴 것을 보고 '나리도' 할까, '이학사도' 할까 하고 잠깐 주저하다가 '여기도 땀이 배었습니다' 한 것이다. 형식은 그것을 알고 어디 계향이가 자기를 무엇이라고 부르는가 보리라 하여 또 웃으며,
"계향 씨의 얼굴은 술이 취한 것같이 붉구려!"
하였다. 계향도 형식이가 자기의(자기를) 무엇이라고 부를지 몰라 주저하던 것을 알았는가 하여 더욱 얼굴을 붉히더니,
"오빠의 얼굴도……."
하고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더 숙이고 말을 다하지 못한다. 계향은 아까 형식이가 자기를 '내 누일세' 하던 것을 생각한다. 형식이가 계향에게서 들으려던 말은 이 '오빠'란 말이었다. 그러나 계향이가 '오빠의 얼굴도……' 하는 것을 듣고는 미상불 부끄러운 생각이 났다. 형식은 친누이 하나와 종매가 이삼 인 있다. 그러나 친누이는 그 시가를 따라 함경도에 살므로, 이래 사오 년간에 만나 본 적이 없고, 방학 때를 타서 고향에 돌아가면 누구보다도 먼저 종매 세 사람을 찾아갔다. 그 종매들은 오래간만에 만나는 종형을 잘 사랑하였다. 그 중에도 형식보다 나이 어린 두 종매는 형식을 만날 때에 떠날 때에 늘 울었다. 시부모의 앞이라 마음대로 반가운 정을 표하지는 못하나, 처음 만나서 '오빠' 하는 소리와 밥상에 놓은 국에 닭고기를 많이 넣는 것으로 넉넉히 그네의 애정을 알았었다. 형식이 방학에 고향에 돌아가는 것은 실로 이 두 종매에게 '오빠'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듣기 위함이러라. 계향의 '오빠의 얼굴도……' 하는 간단한 말은 형식에게 무한한 기쁨을 주었다. 형식과 계향은 또 걷는다. 그러나 계향은 형식의 손을 잡지 아니하였다.
63
두 사람은 칠성문을 나섰다. 길가에는 쓰러져 가는 집들이 섰다. 철도가 생기기 전에 지나가는 손님도 있어서 술도 팔고 떡도 팔더니 지금은 장날이나 아니면 사람 그림자도 보기가 어렵다. 문 밖에는 문짝 모양으로 만든 소위 '평상'이란 것을 놓고, 그 위에는 다 떨어진 볏짚 거적을 폈다. 어떤 낡디낡은 탕건을 쓴 노인이, 이 더운 때에 때묻은 무명옷을 입고 할일이 없는 듯이 평상에 앉아서 몸을 앞뒤로 흔들흔들하면서 두 사람의 지나가는 양을 본다. 그 노인의 얼굴은 붉고 눈에 빛이 있으며 매우 풍채가 늠름하다. 형식은 그가 수십 년 전 조선이 아직 옛날 조선으로 있을 때에 선화당(宣化堂) 안에서 즐겁게 노닐던 사람인 줄을 알았다. 그러고 형식의 고향에도 일찍 그 골에서 내로라 하고 번쩍하게 행세하던 사람들이 갑오 이래로 세상이 졸변하매 모두 시세를 잃고 적막하게 지내는 노인이 있음을 생각하였다. 그러고 우뚝 서며 그 노인을 다시 보았다. 그 노인도 두 사람을 본다.
저 노인도 갑오 전 한창 서슬이 푸르렀을 적에는 평양 강산이 다 나를 위하여 있고, 천하 미인이 다 나를 위하여 있다고 생각하였으리라. 그러나 갑오년 을밀대 대포 한 방에 그가 꿈꾸던 태평시대는 어느덧 깨어지고 마치 캄캄한 밤에 번개가 번쩍하는 모양으로 새 시대가 돌아왔다. 그래서 그는 세상에서 버려진 사람이 되고 세상은 그가 알지도 못하던, 또는 보지도 못하던 젊은 사람의 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는 철도를 모르고 전신과 전화를 모르고 더구나 잠행정이나 수뢰정을 알 리가 없다. 그는 대동문 거리에서 오 리가 못 되는 칠성문 밖에 있으면서 평양 성내에서 날마다 밤마다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른다. 그의 머리에는 선화당이 있을 뿐이요, 도청(道廳)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는 영원히 이 세상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하리니, 그는 이 세상에 살아 있으면서 이 세상 밖에 있음과 (같다.) 형식과 그 노인은 전혀 말도 통하지 못하고 글도 통하지 못하는 딴나라 사람이로다. '낙오자(落伍者), 과거(過去)의 사람'이라 하는 생각과 함께 자기가 아무리 새 세상 이야기를 하여도 못 알아듣다가 세상을 버린 자기의 종조부를 생각하였다. 그러고 형식은 그 노인에게 대하여 일종 말할 수 없는 설움을 깨달았다. 계향은 형식이가 오래 서서 무슨 생각을 하는 양을 보다가 형식의 소매를 끌며,
"어서 가세요!"
한다. 형식은 다시 그 노인을 돌아보고 '돌로 만든 사람이라' 하다가 '아니다, 화석(化石)한 사람이라' 하였다. 노인은 한참이나 형식을 보더니 무슨 생각이 나는지 눈을 감고 여전히 몸을 앞뒤로 흔든다. 혜경(계향)은 가늘게,
"아시는 노인야요?"
한다. 형식은 계향의 어깨에 손을 놓고 걷기를 시작하면서,
"녜, 이전에는 알던 노인이더니 지금은 모르는 노인이 되고 말았어요."
하고 웃으며 계향을 본다. 형식은 생각에 '계향이 너는 영원히 저 노인을 알지 못하리라' 하였다. 그러고 형식은 자기가 처음 평양에 올 때에 이리로 지나가던 생각을 하였다. 머리에 흰 댕기를 드리고 감발을 하고 아장아장 이 길로 지나가던 소년을 생각하였다. 그러고 그 소년은 저 노인을 알았다 하였다. 대동문 거리에서 커다란 유리창을 보고 놀라고, 대동강 위에서 '쌩' 하고 달아나는 화륜선을 보고 놀라던 소년은 그 노인을 알았다. 그러나 그러하던 소년은 이미 죽었다. '쌩' 하는 화륜선을 볼 때에 이미 죽었다. 그러고 그 소년의 껍데기에 전혀 다른 이형식이라는 사람이 들어앉았다. 마치 선화당(宣化堂)이던 것이 도청(道廳)이 되고 감사(監司)이던 것이 도장관(道長官)이 된 모양으로. 그러고 곁에 오는 계향을 보았다. 계향과 그 노인과의 거리를 생각하였다. 그 거리는 무궁대(無窮大)라 하였다. 형식은 어느 집 모퉁이로 돌아서려 할 때에 다시 그 노인을 보았다. 그러나 그 노인은 여전히 몸을 앞뒤로 흔들흔들한다. 계향도 그 노인을 보더니,
"녜? 어떤 노인이야요?"
한다.
"계향씨는 모를 노인이오."
하고 웃을 때에 계향은 의심나는 듯이 형식의 얼굴을 본다. 가만히 형식의 손을 잡는다.
두 사람은 성 밑 비탈길로 남쪽을 향하고 나아간다. 그리 길지 아니한 풀잎사귀가 내려쪼이는 볕에 조곰 시들어서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다. 형식은 무너져 가는 성을 바라보고, 저 성을 쌓은 조상의 얼과 저 성이 지금까지 구경한 조상을(조상의) 성하던 것, 쇠하던 것과 저 성이 그 동안에 몇 번이나 총알을 맞고 대포알을 맞았는고 하는 생각을 한다. 비탈 위에 우뚝 섰는 오랜 성이 마치 사람과 같이 정도 있고 눈물도 있는 것같이 생각되고, 할 말이 많으면서도 들어 줄 자가 없어서 못하는 듯한 괴로워하는 빛이 보이는 듯하다.
계향은 땀을 발발 흘리고 형식의 뒤로 따라가면서 아까 자기가 형식에게 오빠 하고 부르던 생각이 난다. 계향은 아직도 오빠라고 불러 본 사람이 없었다. 계향은 그 어머니의 외딸이요, 또 그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자세히 모르므로 아는 친척도 없었다. 그러므로 계향이가 형님 하고 부르는 사람은 이삼 인 되건마는 오빠 하고 부를 사람은 없었다. 계향뿐 아니라 계향의 주위에는 오빠, 누나 하고 지내는 사람이 별로 없다. 계향이 있는 사회는 대개 여자의 사회요, 대하는 남자는 대개 기생집이라고 놀러 오는 손님뿐이었다. 계향은 처음 오빠 하고 불러 본 것이 매우 기뻤다. 아까 담뱃불을 붙여 줄 때보다 형식이가 더 정답게 보인다 하였다. 그러고 한번 더 오빠라고 불러 보고 싶었다. 두 사람은 죄인들의 무덤 있는 곳에 다다랐다.
두 사람은 칠성문을 나섰다. 길가에는 쓰러져 가는 집들이 섰다. 철도가 생기기 전에 지나가는 손님도 있어서 술도 팔고 떡도 팔더니 지금은 장날이나 아니면 사람 그림자도 보기가 어렵다. 문 밖에는 문짝 모양으로 만든 소위 '평상'이란 것을 놓고, 그 위에는 다 떨어진 볏짚 거적을 폈다. 어떤 낡디낡은 탕건을 쓴 노인이, 이 더운 때에 때묻은 무명옷을 입고 할일이 없는 듯이 평상에 앉아서 몸을 앞뒤로 흔들흔들하면서 두 사람의 지나가는 양을 본다. 그 노인의 얼굴은 붉고 눈에 빛이 있으며 매우 풍채가 늠름하다. 형식은 그가 수십 년 전 조선이 아직 옛날 조선으로 있을 때에 선화당(宣化堂) 안에서 즐겁게 노닐던 사람인 줄을 알았다. 그러고 형식의 고향에도 일찍 그 골에서 내로라 하고 번쩍하게 행세하던 사람들이 갑오 이래로 세상이 졸변하매 모두 시세를 잃고 적막하게 지내는 노인이 있음을 생각하였다. 그러고 우뚝 서며 그 노인을 다시 보았다. 그 노인도 두 사람을 본다.
저 노인도 갑오 전 한창 서슬이 푸르렀을 적에는 평양 강산이 다 나를 위하여 있고, 천하 미인이 다 나를 위하여 있다고 생각하였으리라. 그러나 갑오년 을밀대 대포 한 방에 그가 꿈꾸던 태평시대는 어느덧 깨어지고 마치 캄캄한 밤에 번개가 번쩍하는 모양으로 새 시대가 돌아왔다. 그래서 그는 세상에서 버려진 사람이 되고 세상은 그가 알지도 못하던, 또는 보지도 못하던 젊은 사람의 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는 철도를 모르고 전신과 전화를 모르고 더구나 잠행정이나 수뢰정을 알 리가 없다. 그는 대동문 거리에서 오 리가 못 되는 칠성문 밖에 있으면서 평양 성내에서 날마다 밤마다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른다. 그의 머리에는 선화당이 있을 뿐이요, 도청(道廳)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는 영원히 이 세상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하리니, 그는 이 세상에 살아 있으면서 이 세상 밖에 있음과 (같다.) 형식과 그 노인은 전혀 말도 통하지 못하고 글도 통하지 못하는 딴나라 사람이로다. '낙오자(落伍者), 과거(過去)의 사람'이라 하는 생각과 함께 자기가 아무리 새 세상 이야기를 하여도 못 알아듣다가 세상을 버린 자기의 종조부를 생각하였다. 그러고 형식은 그 노인에게 대하여 일종 말할 수 없는 설움을 깨달았다. 계향은 형식이가 오래 서서 무슨 생각을 하는 양을 보다가 형식의 소매를 끌며,
"어서 가세요!"
한다. 형식은 다시 그 노인을 돌아보고 '돌로 만든 사람이라' 하다가 '아니다, 화석(化石)한 사람이라' 하였다. 노인은 한참이나 형식을 보더니 무슨 생각이 나는지 눈을 감고 여전히 몸을 앞뒤로 흔든다. 혜경(계향)은 가늘게,
"아시는 노인야요?"
한다. 형식은 계향의 어깨에 손을 놓고 걷기를 시작하면서,
"녜, 이전에는 알던 노인이더니 지금은 모르는 노인이 되고 말았어요."
하고 웃으며 계향을 본다. 형식은 생각에 '계향이 너는 영원히 저 노인을 알지 못하리라' 하였다. 그러고 형식은 자기가 처음 평양에 올 때에 이리로 지나가던 생각을 하였다. 머리에 흰 댕기를 드리고 감발을 하고 아장아장 이 길로 지나가던 소년을 생각하였다. 그러고 그 소년은 저 노인을 알았다 하였다. 대동문 거리에서 커다란 유리창을 보고 놀라고, 대동강 위에서 '쌩' 하고 달아나는 화륜선을 보고 놀라던 소년은 그 노인을 알았다. 그러나 그러하던 소년은 이미 죽었다. '쌩' 하는 화륜선을 볼 때에 이미 죽었다. 그러고 그 소년의 껍데기에 전혀 다른 이형식이라는 사람이 들어앉았다. 마치 선화당(宣化堂)이던 것이 도청(道廳)이 되고 감사(監司)이던 것이 도장관(道長官)이 된 모양으로. 그러고 곁에 오는 계향을 보았다. 계향과 그 노인과의 거리를 생각하였다. 그 거리는 무궁대(無窮大)라 하였다. 형식은 어느 집 모퉁이로 돌아서려 할 때에 다시 그 노인을 보았다. 그러나 그 노인은 여전히 몸을 앞뒤로 흔들흔들한다. 계향도 그 노인을 보더니,
"녜? 어떤 노인이야요?"
한다.
"계향씨는 모를 노인이오."
하고 웃을 때에 계향은 의심나는 듯이 형식의 얼굴을 본다. 가만히 형식의 손을 잡는다.
두 사람은 성 밑 비탈길로 남쪽을 향하고 나아간다. 그리 길지 아니한 풀잎사귀가 내려쪼이는 볕에 조곰 시들어서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다. 형식은 무너져 가는 성을 바라보고, 저 성을 쌓은 조상의 얼과 저 성이 지금까지 구경한 조상을(조상의) 성하던 것, 쇠하던 것과 저 성이 그 동안에 몇 번이나 총알을 맞고 대포알을 맞았는고 하는 생각을 한다. 비탈 위에 우뚝 섰는 오랜 성이 마치 사람과 같이 정도 있고 눈물도 있는 것같이 생각되고, 할 말이 많으면서도 들어 줄 자가 없어서 못하는 듯한 괴로워하는 빛이 보이는 듯하다.
계향은 땀을 발발 흘리고 형식의 뒤로 따라가면서 아까 자기가 형식에게 오빠 하고 부르던 생각이 난다. 계향은 아직도 오빠라고 불러 본 사람이 없었다. 계향은 그 어머니의 외딸이요, 또 그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자세히 모르므로 아는 친척도 없었다. 그러므로 계향이가 형님 하고 부르는 사람은 이삼 인 되건마는 오빠 하고 부를 사람은 없었다. 계향뿐 아니라 계향의 주위에는 오빠, 누나 하고 지내는 사람이 별로 없다. 계향이 있는 사회는 대개 여자의 사회요, 대하는 남자는 대개 기생집이라고 놀러 오는 손님뿐이었다. 계향은 처음 오빠 하고 불러 본 것이 매우 기뻤다. 아까 담뱃불을 붙여 줄 때보다 형식이가 더 정답게 보인다 하였다. 그러고 한번 더 오빠라고 불러 보고 싶었다. 두 사람은 죄인들의 무덤 있는 곳에 다다랐다.
64
계향은 앞서서 가지런히 있는 세 무덤을 찾았다. 여러 해 동안에 비에 씻겨 내려 원래 작던 무덤이 거의 평지와 같이 되었다. 처음에는 나무패를 써 박았던 듯하여 썩어진 조각이 무덤 앞에 떨어졌다. 그 곁에도 그와 같은 무덤이 수십 개나 된다. 어떠한 무덤에는 서너 치 넓이 되는 나무패가 아직도 새로운 대로 있다. 계향은 그 셋이 가지런히 있는 무덤을 가리키면서,
"이것이 월향 형님의 아버지의 무덤이요, 이것이 두 오라버지(오라버니)의 무덤이야요."
하며 이전에 월향과 같이 왔던 생각을 한다. 계향은 월향을 따라 서너 번이나 이 무덤에 왔었다. 그 중에도 지난봄 월향이가 서울로 가려 할 때에, 월향은 술을 한 병 가지고 계향을 데리고 왔었다. 그때는 따뜻한 늦은 봄날, 이 불쌍한 자들의 무덤 곁에는 이름 모를 조고마한 꽃이 피고, 보통 벌에는 새로난 수수와 조가 부드러운 바람에 가볍게 물결이 지더라. 월향은 그 아버지의 무덤 앞에 술을 따라 놓고 말없이 한참이나 울다가 곁에서 우는 계향의 등을 만지며 자기가 서울을 가거든 네가 한 해에 두 번씩 이 무덤을 찾아보아 달라 하였다. 그때에 계향은, '형님의 아버지면 내 아버지요, 형님의 오빠면 내 오빠지요' (하였다. 계향은 이러한 생각을) 하고 형식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형식은 가만히 세 무덤을 보고 말없이 섰다. 그 눈이 크고 콧마루가 높고 키가 크고, 평생 몸을 꼿꼿이 하고 앉았던 박진사를 생각하였다. 그가 사랑에 젊은 사람들은 모두 데리고, 상해서 사가지고 온 석판으로 박은 책들을 가르치던 것을 생각하고, 그가 포박을 당할 때에 '내가 잡혀가는 것은 조곰도 슬프지 아니하거니와 저 학교가 없어지는 것이 슬프다' 하고 눈물을 흘리던 것을 생각하였다. 그러고 영채의 말에, 영채가 기생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옥중에서 절식 자살하였다는 말을 생각하였다. 그러고 시대(時代)의 선구(先驅)의 비참(悲慘)한 운명(運命)을 생각하였다. 박선생은 너무 일찍 깨었었다. 아니, 박선생이 너무 일찍 깬 것이 아니라, 박선생의 동족이 너무 깨기가 늦었었다. 박선생이 세우려던 학교는 지금 도처에 섰고, 박선생이 깎으려던 머리는 지금 사람마다 깎는다. 박선생이 만일 그 문명운동(文明運動)을 오늘에 시작하였던들 그는 사회의 핍박은커녕 도리어 사회의 칭찬과 존경을 받을 것이라. 시대가 옮아갈 때마다 이러한 희생이 있는 것이어니와 박선생처럼 참혹한 희생은 없다. 지금 그 며느리 두 사람은 어떻게 있는지 모르거니와 이제 영채까지 죽었다 하면 아주 박진사의 집은 멸망한 것이라. 형식의 집도 거의 멸망하다가 형식이 한 사람만 남고, 박진사의 집도 거의 멸망하다가 영채 하나만 남았었다. 그러나 이제 영채 죽으니 영채의 집은 아주 이 세상에 씨도 없이 되고 말았다. 수십여 호 되던 박씨 문중이 신미혁명(辛未革命)에 다 쓰러지고, 오직 하나 남았던 박진사의 집이 신문명운동(新文明運動)에 희생이 되어 아주 없어지고 말았다. 일문(一門)의 운명도 알 수 없고 일가(一家)의 운명도 알 수 없다 하였다.
그러나 형식은 그렇게 이 무덤을 보고 슬퍼하지는 아니하였다. 형식은 무슨 일을 보고 슬퍼하기에는 너무 마음이 즐거웠다. 형식은 죽은 자를 생각하고 슬퍼하기보다 산 자를 보고 즐거워함이 옳다 하였다. 형식은 그 무덤 밑에 있는 불쌍한 은인의 썩다가 남은 뼈를 생각하고 슬퍼하기보다 그 썩어지는 살을 먹고 자란 무덤 위의 꽃을 보고 즐거워하리라 하였다. 그는 영채를 생각하였다. 영채의 시체가 대동강으로 둥둥 떠나가는 모양을 생각하였다. 그러나 형식은 슬픈 생각이 없었고, 곁에 섰는 계향을 보매 한량없는 기쁨을 깨달을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형식은 혼자 놀랐다. 내가 어느덧에 이대도록 변하였는가 하였다. 형식은 너무 놀라서 눈을 부릅뜨고 두 주먹을 쥐었다. 형식은 어저께 영채의 편지를 보고 울었다. 가슴이 터질 듯이 슬퍼하였다. 그러고 밤에 차를 타고 올 때에도 남모르게 가슴을 아프고 남모르게 눈물을 씻었다. 더구나 아까 경찰서에서 영채가 아주 죽은 줄을 알 때에 형식의 몸은 마치 끓는 물에 들어간 듯하였다. 그러고 계향의 집을 떠나 박선생의 무덤을 찾아올 때에도, 무덤에 가거든 그 앞에 엎드려 실컷 통곡이라도 하리라 하였었다. 그리하였더니 이것이 웬일인가. 은사(恩師)의 무덤 앞에서 억지로라도 눈물을 흘리려 하였으나 조곰도 슬픈 생각이 아니 난다. 사람이 이렇게도 갑자기 변하는가 하고 혼자 빙그레 웃었다.
계향은 형식의 모양이 수상하다 하였으나 알아보려고도 하지 아니한다.
형식은 이렇게 살풍경(殺風景)한 곳에 오래 섰는 것보다 계향의 손을 잡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걸음을 걷는 것이 좋으리라 하여,
"자, 갑시다."
하였다. 계향은 이상하다 하는 듯이,
"어디로 가셔요?"
"집으로 갑시다."
"북망산에 아니 가시고요?"
"거기는 가서 무엇 하오? 가면서 이야기나 합시다. 영채 씨가 여기 왔던 형적이 없으니까 아마 아무 데도 아니 왔던 게지요."
하고 계향의 손을 잡는다.
형식은, 영채는 죽은 사람으로 작정하고 계향의 집에 돌아와, 노파는 이삼 일 평양에 있는다 하므로 자기 혼자 그날 저녁차로 서울에 올라왔다. 평양을 떠날 때에 노파는 문 밖에 나와 형식의 손을 잡고 울면서,
"아무리 하여서라도 영채를 찾아 주시오."
하였다. 그러나 형식은 다만 계향을 떠나는 것이 서운할 뿐이요, 영채를 위하여서는 별로 생각도 아니하였다. 형식은 차 속에서 '꿈이 깬 듯하다' 하면서 여러 번 웃었다.
계향은 앞서서 가지런히 있는 세 무덤을 찾았다. 여러 해 동안에 비에 씻겨 내려 원래 작던 무덤이 거의 평지와 같이 되었다. 처음에는 나무패를 써 박았던 듯하여 썩어진 조각이 무덤 앞에 떨어졌다. 그 곁에도 그와 같은 무덤이 수십 개나 된다. 어떠한 무덤에는 서너 치 넓이 되는 나무패가 아직도 새로운 대로 있다. 계향은 그 셋이 가지런히 있는 무덤을 가리키면서,
"이것이 월향 형님의 아버지의 무덤이요, 이것이 두 오라버지(오라버니)의 무덤이야요."
하며 이전에 월향과 같이 왔던 생각을 한다. 계향은 월향을 따라 서너 번이나 이 무덤에 왔었다. 그 중에도 지난봄 월향이가 서울로 가려 할 때에, 월향은 술을 한 병 가지고 계향을 데리고 왔었다. 그때는 따뜻한 늦은 봄날, 이 불쌍한 자들의 무덤 곁에는 이름 모를 조고마한 꽃이 피고, 보통 벌에는 새로난 수수와 조가 부드러운 바람에 가볍게 물결이 지더라. 월향은 그 아버지의 무덤 앞에 술을 따라 놓고 말없이 한참이나 울다가 곁에서 우는 계향의 등을 만지며 자기가 서울을 가거든 네가 한 해에 두 번씩 이 무덤을 찾아보아 달라 하였다. 그때에 계향은, '형님의 아버지면 내 아버지요, 형님의 오빠면 내 오빠지요' (하였다. 계향은 이러한 생각을) 하고 형식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형식은 가만히 세 무덤을 보고 말없이 섰다. 그 눈이 크고 콧마루가 높고 키가 크고, 평생 몸을 꼿꼿이 하고 앉았던 박진사를 생각하였다. 그가 사랑에 젊은 사람들은 모두 데리고, 상해서 사가지고 온 석판으로 박은 책들을 가르치던 것을 생각하고, 그가 포박을 당할 때에 '내가 잡혀가는 것은 조곰도 슬프지 아니하거니와 저 학교가 없어지는 것이 슬프다' 하고 눈물을 흘리던 것을 생각하였다. 그러고 영채의 말에, 영채가 기생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옥중에서 절식 자살하였다는 말을 생각하였다. 그러고 시대(時代)의 선구(先驅)의 비참(悲慘)한 운명(運命)을 생각하였다. 박선생은 너무 일찍 깨었었다. 아니, 박선생이 너무 일찍 깬 것이 아니라, 박선생의 동족이 너무 깨기가 늦었었다. 박선생이 세우려던 학교는 지금 도처에 섰고, 박선생이 깎으려던 머리는 지금 사람마다 깎는다. 박선생이 만일 그 문명운동(文明運動)을 오늘에 시작하였던들 그는 사회의 핍박은커녕 도리어 사회의 칭찬과 존경을 받을 것이라. 시대가 옮아갈 때마다 이러한 희생이 있는 것이어니와 박선생처럼 참혹한 희생은 없다. 지금 그 며느리 두 사람은 어떻게 있는지 모르거니와 이제 영채까지 죽었다 하면 아주 박진사의 집은 멸망한 것이라. 형식의 집도 거의 멸망하다가 형식이 한 사람만 남고, 박진사의 집도 거의 멸망하다가 영채 하나만 남았었다. 그러나 이제 영채 죽으니 영채의 집은 아주 이 세상에 씨도 없이 되고 말았다. 수십여 호 되던 박씨 문중이 신미혁명(辛未革命)에 다 쓰러지고, 오직 하나 남았던 박진사의 집이 신문명운동(新文明運動)에 희생이 되어 아주 없어지고 말았다. 일문(一門)의 운명도 알 수 없고 일가(一家)의 운명도 알 수 없다 하였다.
그러나 형식은 그렇게 이 무덤을 보고 슬퍼하지는 아니하였다. 형식은 무슨 일을 보고 슬퍼하기에는 너무 마음이 즐거웠다. 형식은 죽은 자를 생각하고 슬퍼하기보다 산 자를 보고 즐거워함이 옳다 하였다. 형식은 그 무덤 밑에 있는 불쌍한 은인의 썩다가 남은 뼈를 생각하고 슬퍼하기보다 그 썩어지는 살을 먹고 자란 무덤 위의 꽃을 보고 즐거워하리라 하였다. 그는 영채를 생각하였다. 영채의 시체가 대동강으로 둥둥 떠나가는 모양을 생각하였다. 그러나 형식은 슬픈 생각이 없었고, 곁에 섰는 계향을 보매 한량없는 기쁨을 깨달을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형식은 혼자 놀랐다. 내가 어느덧에 이대도록 변하였는가 하였다. 형식은 너무 놀라서 눈을 부릅뜨고 두 주먹을 쥐었다. 형식은 어저께 영채의 편지를 보고 울었다. 가슴이 터질 듯이 슬퍼하였다. 그러고 밤에 차를 타고 올 때에도 남모르게 가슴을 아프고 남모르게 눈물을 씻었다. 더구나 아까 경찰서에서 영채가 아주 죽은 줄을 알 때에 형식의 몸은 마치 끓는 물에 들어간 듯하였다. 그러고 계향의 집을 떠나 박선생의 무덤을 찾아올 때에도, 무덤에 가거든 그 앞에 엎드려 실컷 통곡이라도 하리라 하였었다. 그리하였더니 이것이 웬일인가. 은사(恩師)의 무덤 앞에서 억지로라도 눈물을 흘리려 하였으나 조곰도 슬픈 생각이 아니 난다. 사람이 이렇게도 갑자기 변하는가 하고 혼자 빙그레 웃었다.
계향은 형식의 모양이 수상하다 하였으나 알아보려고도 하지 아니한다.
형식은 이렇게 살풍경(殺風景)한 곳에 오래 섰는 것보다 계향의 손을 잡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걸음을 걷는 것이 좋으리라 하여,
"자, 갑시다."
하였다. 계향은 이상하다 하는 듯이,
"어디로 가셔요?"
"집으로 갑시다."
"북망산에 아니 가시고요?"
"거기는 가서 무엇 하오? 가면서 이야기나 합시다. 영채 씨가 여기 왔던 형적이 없으니까 아마 아무 데도 아니 왔던 게지요."
하고 계향의 손을 잡는다.
형식은, 영채는 죽은 사람으로 작정하고 계향의 집에 돌아와, 노파는 이삼 일 평양에 있는다 하므로 자기 혼자 그날 저녁차로 서울에 올라왔다. 평양을 떠날 때에 노파는 문 밖에 나와 형식의 손을 잡고 울면서,
"아무리 하여서라도 영채를 찾아 주시오."
하였다. 그러나 형식은 다만 계향을 떠나는 것이 서운할 뿐이요, 영채를 위하여서는 별로 생각도 아니하였다. 형식은 차 속에서 '꿈이 깬 듯하다' 하면서 여러 번 웃었다.
65
평양서 올라올 때에 형식은 무한한 기쁨을 얻었다. 차에 같이 탄 사람들이 모두 다 자기의 사랑을 끌고, 모두 다 자기에게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주는 듯하였다. 찻바퀴가 궤도에 깔리는 소리조차 무슨 유쾌한 음악을 듣는 듯하고, 차가 철교를 건너갈 때와 굴을 지나갈 때에 나는 소요한 소리도 형식의 귀에는 웅장한 군악과 같이 들린다. 형식은 너무 신경이 흥분하여,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하고 차창을 열어 놓고 시원한 바람을 쐬면서 어스름한 달빛을 어렴풋하게 보이는 황해도 연산(黃海道 連山)을 보았다. 산들은 물먹으로 그린 묵화 모양으로, 골짜기도 없고 나무나 돌도 없고, 모두 한 빛으로 보인다. 달빛과 밤빛과 구름빛을 합하여 커다란 붓으로 종이 위에 형체 좋게 그린 그림과 같다 하였다. 이렇게 생각하는 형식의 정신도 실로 이와 같았다. 형식의 정신에는 슬픔과 괴로움과 욕망과 기쁨과 사랑과 미워함과, 모든 정신 작용이 온통 한데 (모이고 한데) 녹고 한데 뭉치어, 무엇이 무엇인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비겨 말하면 이 모든 정신 작용을 한 솥에 집어넣고 거기다가 맑은 물을 두고 장작불을 때어 가며 그 솥에 있는 것을 홰홰 뒤저어서 온통 녹고 풀어지고 섞여서, 엿과 같이 죽과 같이 된 것과 같았다. 그러므로 이때의 형식의 정신 작용은 좋게 말하면 가장 잘 조화한 것이요, 좋지 않게 말하면 가장 혼돈한 상태러라. 엷은 구름 속에 가리워진 달빛이 산과 들을 변하여 꿈과 같이 몽롱하게 만든 모양으로, 그 달빛이 형식의 마음에 비치어 그 마음을 녹이고 물들여 꿈과 같이 몽롱하게 만들어 놓았다. 형식의 눈은 무엇을 보는지도 모르게 반작반작하고 형식의 머리는 무엇을 생각하는지도 모르게 흐물흐물한다. 형식의 몸은 차가 흔들리는 대로 흔들리고 형식의 귀는 무슨 소리가 들리는 대로 듣는다. 형식은 특별히 무엇을 생각하려고도 아니하고, 눈과 귀는 특별히 무엇을 보고 들으려고도 아니한다. 형식의 귀에는 차의 가는 소리도 들리거니와 지구의 돌아가는 소리도 들리고 무한히 먼 공중에서 별과 별이 마주치는 소리와 무한히 작은 에틸의 분자의 흐르는 소리도 듣는다. 메와 들에 풀과 나무가 밤 동안에 자라노라고 바삭바삭 하는 소리와, 자기의 몸에 피 돌아가는 것과, 그 피를 받아 즐거워하는 세포들의 소곤거리는 소리도 들린다.
그의 정신은 지금 천지가 창조되던 혼돈한 상태에 있고 또 천지가 노쇠하여서 없어지는 혼돈한 상태에 있다. 그는 하느님이 장차 빛을 만들고 별을 만들고 하늘과 땅을 만들려고 고개를 기울이고, 이럴까 저럴까 생각하는 양을 본다. 그러고 하느님이 모든 결심을 다 하고 나서 팔을 걷고 천지에 만물을 만들기 시작하는 양을 본다. 하느님이 빛을 만들고 어두움을 만들고 풀과 나무와 새와 짐승을 만들고 기뻐서 빙그레 웃는 양을 본다. 또 하느님이 흙을 파고 물을 길어다가 두 발로 잘 반죽하여 사람의 모양을 만들어 놓고 마지막에 그 사람의 코에다 김을 불어넣으매, 그 흙으로 만든 사람이 목숨이 생기고 피가 돌고 소리를 내어 노래하는 양이 보인다. 그러고 처음에는 움직이지 못하는 한 흙덩이다가 그것이 숨을 쉬고 소리를 하고 또 그 몸에 피가 돌게 되는 것을 보니 그것이 곧 자기인 듯하다. 이에 형식은 빙긋이 웃는다. 옳다, 자기는 목숨 없는 흙덩이였었다. 자기는 숨도 쉬지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노래도 못 하던 흙덩어리였었다. 자기는 자기의 주위에 있는 만물을 보지도 못하였었고 거기서 나는 소리를 듣지도 못하였었다. 설혹, 만물의 빛이 자기의 눈에 들어오고 소리가 자기의 귀에 들어온다 하더라도, 그는 오직 에틸의 물결에 지나지 못하였었다. 자기는 그 빛과 그 소리에서 아무 기쁨이나 슬픔이나 아무 뜻도 찾아낼 줄을 몰랐었다. 지금까지 혹 자기가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였다 하더라도, 그는 마치 고무로 만든 인형(人形)의 배를 꼭 누르면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것과 같았었다. 그러므로 그 웃음과 울음은 결코 자기의 마음에서 스스로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요, 전혀 타동적(他動的)이었었다.
자기가 지금껏 '옳다' '그르다' '슬프다' '기쁘다' 하여 온 것은 결코 자기의 지의 판단(知의 判斷)과 정의 감동(情의 感動)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온전히 전습(傳襲)을 따라, 사회의 습관(社會의 習慣)을 따라 하여 온 것이었다. 예로부터 옳다 하니 자기도 옳다 하였고, 남들이 좋다 하니 자기도 좋다 하였다. 다만 그뿐이로다. 그러나 예로부터 옳다 한 것이 자기에게 무슨 힘이 있으며, 남들이 좋다 하는 것이 자기에게 무슨 상관이 있으랴. 내게는 내 지(知)가 있고 내 의지(意志)가 있다. 내 지와 내 의지에 비추어 보아 '옳다'든가, '좋다'든가, 기쁘고 슬프다든가 하는 것이 아니면 내게 대하여 무슨 상관이 있으랴. 나는 내가 옳다 하던 것도 예로부터 그르다 하므로, 또는 남들이 옳지 않다 하므로 더 생각하지도 아니하여 보고 그것을 내어 버렸다. 이것이 잘못이로다. 나는 나를 죽이고 나를 버린 것이로다.
자기는 이제야 자기의 생명을 깨달았다. 자기가 있는 줄을 깨달았다. 마치 북극성(北極星)이 있고 또 북극성은 결코 백랑성(白狼星)도 아니요 노인성(老人星)도 아니요, 오직 북극성인 듯이, 따라서 북극성은 크기로나 빛으로나 위치(位置)로나 성분(成分)으로나, 역사(歷史)로나 우주(宇宙)에 대한 사명(使命)으로나, 결코 백랑성이나 노인성과 같지 아니하고, 북극성 자신의 특징(特徵)이 있음과 같이, 자기도 있고 또 자기는 다른 아무러한 사람과도 꼭 같지 아니한 지와 의지와 위치와 사명과 색채(色彩)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고 형식은 더할 수 없는 기쁨을 깨달았다.
형식은 웃으며 차창으로 내어다본다.
평양서 올라올 때에 형식은 무한한 기쁨을 얻었다. 차에 같이 탄 사람들이 모두 다 자기의 사랑을 끌고, 모두 다 자기에게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주는 듯하였다. 찻바퀴가 궤도에 깔리는 소리조차 무슨 유쾌한 음악을 듣는 듯하고, 차가 철교를 건너갈 때와 굴을 지나갈 때에 나는 소요한 소리도 형식의 귀에는 웅장한 군악과 같이 들린다. 형식은 너무 신경이 흥분하여,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하고 차창을 열어 놓고 시원한 바람을 쐬면서 어스름한 달빛을 어렴풋하게 보이는 황해도 연산(黃海道 連山)을 보았다. 산들은 물먹으로 그린 묵화 모양으로, 골짜기도 없고 나무나 돌도 없고, 모두 한 빛으로 보인다. 달빛과 밤빛과 구름빛을 합하여 커다란 붓으로 종이 위에 형체 좋게 그린 그림과 같다 하였다. 이렇게 생각하는 형식의 정신도 실로 이와 같았다. 형식의 정신에는 슬픔과 괴로움과 욕망과 기쁨과 사랑과 미워함과, 모든 정신 작용이 온통 한데 (모이고 한데) 녹고 한데 뭉치어, 무엇이 무엇인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비겨 말하면 이 모든 정신 작용을 한 솥에 집어넣고 거기다가 맑은 물을 두고 장작불을 때어 가며 그 솥에 있는 것을 홰홰 뒤저어서 온통 녹고 풀어지고 섞여서, 엿과 같이 죽과 같이 된 것과 같았다. 그러므로 이때의 형식의 정신 작용은 좋게 말하면 가장 잘 조화한 것이요, 좋지 않게 말하면 가장 혼돈한 상태러라. 엷은 구름 속에 가리워진 달빛이 산과 들을 변하여 꿈과 같이 몽롱하게 만든 모양으로, 그 달빛이 형식의 마음에 비치어 그 마음을 녹이고 물들여 꿈과 같이 몽롱하게 만들어 놓았다. 형식의 눈은 무엇을 보는지도 모르게 반작반작하고 형식의 머리는 무엇을 생각하는지도 모르게 흐물흐물한다. 형식의 몸은 차가 흔들리는 대로 흔들리고 형식의 귀는 무슨 소리가 들리는 대로 듣는다. 형식은 특별히 무엇을 생각하려고도 아니하고, 눈과 귀는 특별히 무엇을 보고 들으려고도 아니한다. 형식의 귀에는 차의 가는 소리도 들리거니와 지구의 돌아가는 소리도 들리고 무한히 먼 공중에서 별과 별이 마주치는 소리와 무한히 작은 에틸의 분자의 흐르는 소리도 듣는다. 메와 들에 풀과 나무가 밤 동안에 자라노라고 바삭바삭 하는 소리와, 자기의 몸에 피 돌아가는 것과, 그 피를 받아 즐거워하는 세포들의 소곤거리는 소리도 들린다.
그의 정신은 지금 천지가 창조되던 혼돈한 상태에 있고 또 천지가 노쇠하여서 없어지는 혼돈한 상태에 있다. 그는 하느님이 장차 빛을 만들고 별을 만들고 하늘과 땅을 만들려고 고개를 기울이고, 이럴까 저럴까 생각하는 양을 본다. 그러고 하느님이 모든 결심을 다 하고 나서 팔을 걷고 천지에 만물을 만들기 시작하는 양을 본다. 하느님이 빛을 만들고 어두움을 만들고 풀과 나무와 새와 짐승을 만들고 기뻐서 빙그레 웃는 양을 본다. 또 하느님이 흙을 파고 물을 길어다가 두 발로 잘 반죽하여 사람의 모양을 만들어 놓고 마지막에 그 사람의 코에다 김을 불어넣으매, 그 흙으로 만든 사람이 목숨이 생기고 피가 돌고 소리를 내어 노래하는 양이 보인다. 그러고 처음에는 움직이지 못하는 한 흙덩이다가 그것이 숨을 쉬고 소리를 하고 또 그 몸에 피가 돌게 되는 것을 보니 그것이 곧 자기인 듯하다. 이에 형식은 빙긋이 웃는다. 옳다, 자기는 목숨 없는 흙덩이였었다. 자기는 숨도 쉬지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노래도 못 하던 흙덩어리였었다. 자기는 자기의 주위에 있는 만물을 보지도 못하였었고 거기서 나는 소리를 듣지도 못하였었다. 설혹, 만물의 빛이 자기의 눈에 들어오고 소리가 자기의 귀에 들어온다 하더라도, 그는 오직 에틸의 물결에 지나지 못하였었다. 자기는 그 빛과 그 소리에서 아무 기쁨이나 슬픔이나 아무 뜻도 찾아낼 줄을 몰랐었다. 지금까지 혹 자기가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였다 하더라도, 그는 마치 고무로 만든 인형(人形)의 배를 꼭 누르면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것과 같았었다. 그러므로 그 웃음과 울음은 결코 자기의 마음에서 스스로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요, 전혀 타동적(他動的)이었었다.
자기가 지금껏 '옳다' '그르다' '슬프다' '기쁘다' 하여 온 것은 결코 자기의 지의 판단(知의 判斷)과 정의 감동(情의 感動)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온전히 전습(傳襲)을 따라, 사회의 습관(社會의 習慣)을 따라 하여 온 것이었다. 예로부터 옳다 하니 자기도 옳다 하였고, 남들이 좋다 하니 자기도 좋다 하였다. 다만 그뿐이로다. 그러나 예로부터 옳다 한 것이 자기에게 무슨 힘이 있으며, 남들이 좋다 하는 것이 자기에게 무슨 상관이 있으랴. 내게는 내 지(知)가 있고 내 의지(意志)가 있다. 내 지와 내 의지에 비추어 보아 '옳다'든가, '좋다'든가, 기쁘고 슬프다든가 하는 것이 아니면 내게 대하여 무슨 상관이 있으랴. 나는 내가 옳다 하던 것도 예로부터 그르다 하므로, 또는 남들이 옳지 않다 하므로 더 생각하지도 아니하여 보고 그것을 내어 버렸다. 이것이 잘못이로다. 나는 나를 죽이고 나를 버린 것이로다.
자기는 이제야 자기의 생명을 깨달았다. 자기가 있는 줄을 깨달았다. 마치 북극성(北極星)이 있고 또 북극성은 결코 백랑성(白狼星)도 아니요 노인성(老人星)도 아니요, 오직 북극성인 듯이, 따라서 북극성은 크기로나 빛으로나 위치(位置)로나 성분(成分)으로나, 역사(歷史)로나 우주(宇宙)에 대한 사명(使命)으로나, 결코 백랑성이나 노인성과 같지 아니하고, 북극성 자신의 특징(特徵)이 있음과 같이, 자기도 있고 또 자기는 다른 아무러한 사람과도 꼭 같지 아니한 지와 의지와 위치와 사명과 색채(色彩)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고 형식은 더할 수 없는 기쁨을 깨달았다.
형식은 웃으며 차창으로 내어다본다.
66
차는 지금 신막 남천역을 지나 경의 철도 중에 제일 산이 많은 옛날 금천 큰고개 근방으로 달아난다. 초생달은 벌써 넘어가고 창 밖은 캄캄하다. 달빛의 없는 것이 도리어 산들의 모양을 보기에는 편하다. 하늘과 산과의 경계는 굵은 붓으로 되는 대로 구불구불하게 그린 곡선(曲線) 모양으로 아주 분명하게 보인다. 왈칵왈칵 하는 찻바퀴 소리 사이로 산 강물이 조약돌 많은 여울로 굴러 내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이따금 기관차 굴뚝으로 나오는 불빛에 조고마한 산골짜기에 초가집 두어 개가 번적 보이고 혹 오랜 가물에 얼마 아니 되는 물이 가기 싫은 듯이 흘러가는 산강의 한 토막도 보인다. 차가 산모퉁이를 돌아설 때에 저편 컴컴한 속에 조고마한 불빛이 반작반작한다. 그 불빛이 차가 달아남을 따라 깜박깜박 있다가 없다가 함은 아마 잎이 무성한 나무에 가리워짐인 듯, 그 불은 꽤 오랫동안 형식의 차창에서 보인다. 형식은 물끄러미 그 불을 본다. 저 불 밑에는 누가 앉아서 무엇을 하는고. 가난한 어머니가 아이들을 잠들여 놓고 혼자 일어나 지아비와 아이들의 누더기를 깁는가. 잘 보이지 아니하는 눈으로 바늘구멍을 찾지 못하여 연방 불을 돋우고 눈을 비비는가. 그러다가 '아아 늙었구나!' 하고 깁던 누더기에 굵은 눈물을 떨구는가. 그때에 아랫목에서 자던 앓는 어린아이가 꿈에 놀라서 우는 것을 껴안고 먹은 것이 없어서 나지도 아니하는 젖을 물리고 있는 것이나 아닌가. 또는 앓는 외아들을 가운데 놓고 늙은 내외가 자리 위에 서서 번갈아 아들의 몸을 만지고 번갈아 울고 위로하면서 마음속으로 '하느님 내려다봅소서' 하는 것이 아닌가. 이에 형식은 십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자기 부모를 생각하였다. 어머니는 아직 젊었으나 아버지는 오십이 넘었으므로, 자기가 조곰이라도 병이 나면 그 병이 낫기까지 목욕재계하고 자기의 곁에서 밤을 새우던 것과, 자기가 혹 눈을 뜨면 아버지는 자기의 눈을 보고 그 아들이 눈을 뜨는 것이 무한히 기쁜 듯이 빙그레 웃으며 자기의 손을 잡던 것과, 아직 삼십이 다 못 된 자기의 어머니는 곤함을 이기지 못하여 앉은 대로 졸던 것이 생각이 난다. 형식은 잠깐 추연하다가 다시 그 불을 본다. 천지가 온통 캄캄한 중에 오직 불 하나가 반작반작하는 것과, 세상이 다 잠을 다 깊이 들었을 때에 그 불 밑에 혼자 깨어 있는 사람을 생각하매 형식은 그것이 마치 자기의 신세인 듯하였다. 차가 또 어떤 산모퉁이를 돌아서매 그 불은 그만 아니 보이게 되고 말았다. 형식은 서운한 듯이 머리를 창으로 끌어들였다. 차실에 같이 탄 사람들은 다 깊이 잠이 들었다. 바로 자기의 맞은 편에 누운 어떤 노동자 같은 소년이 추운 듯이 허리를 구부린다. 형식은 얼른 차창을 닫고 자기가 깔고 앉았던 담요로 그 소년을 덮어 주었다. 이 소년은 아마 어느 금광으로 가는지 흙 묻은 무명 고의를 입고 수건을 말아서 머리를 동였다. 머리는 언제 빗었는지 머리카락이 여기저기 뭉쳐지고 귀밑과 목에는 오래 묵은 때가 껴 있다. 역시 조고마한 흙물 묻은 보퉁이로 베개를 삼았는데 그 보퉁이를 묶은 종이로 꼰 노끈이 걸상 밑으로 늘어졌다. 형식은 그 노끈을 집어 보퉁이 밑에 끼웠다. 소년의 굵은 베로 만든 조끼 호주머니에는 국수표 궐련갑(菊水票卷煙匣)이 조곰 보이고 그 속에는 물부리가 넓적하게 된 궐련이 서너 개나 보인다. '아끼는 궐련이로구나' 하고 형식은 빙그레 웃으면서 자기의 '조일(朝日)'을 만져 보았다. 그러고 담배를 붙일 생각이 나서 한 대를 내었다. 형식은 그 궐련에 불을 붙여 길게 빨았다. 그때에 담배 맛은 특별하였다.
형식은 다시 차실을 돌아보았다. 어떤 일본 부인이 잠을 깨어 정신 없이 사방을 둘러보고 두어 번 머리와 목을 만지며 무엇을 찾는 듯이 기웃기웃하더니 도로 신현대(信玄袋)에 엎디어 잠이 든다. 형식도 내일에 곤할 것을 생각하고 한참 자리라 하여 수건을 창문턱에 접어 놓고 눈을 감았다. 그러나 형식의 정신은 더욱 쇄락할 뿐이요, 암만하여도 잠이 들지 아니하였다. 형식은 그래도 잠이 들까 하고 눈을 감은 대로 찻바퀴 소리를 세었다. 형식의 정신은 마치 풍랑이 침식한 바다 모양으로 아주 잔잔하게 되었다. 형식의 머리에는 영채와 선형과 노파와 배학감과 이희경과 또 칠성문 밖에서 보던 노인과 박선생의 무덤과 계향과…… 이러한 것들이 순서도 없이 번쩍번쩍 떠나온다. 형식은 눈을 감은 채로 그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다. 그 사람들은 혹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혹 성난 듯이 입을 내어밀고, 눈을 흘깃흘깃하기도 하고, 혹 나무로 새겨 놓은 듯이 시치미떼고 나서기도 한다. 더구나 영채의 모양이 오래 보이고 또 자주 보인다. 형식은 곁에 놓인 가방을 생각하였다. 그 속에 있는 영채의 편지와 지환과 칼이 눈에 보인다. 형식은 오싹 소름이 끼치며 번쩍 눈을 떴다. 아― 내가 잘못함이 아닌가. 내가 너무 무정함이 아닌가. 내가 좀더 오래 영채의 거처를 찾아야 옳을 것이 아닌가. 설사, 영채가 죽었다 하더라도, 그 시체라도 찾아보아야 할 것이 아니던가. 그러고 대동강가에 서서 뜨거운 눈물이라도 오래 흘려야 할 것이 아니던가. 영채는 나를 생각하고 몸을 죽였다. 그런데 나는 영채를 위하여 눈물도 흘리지 않아. 아― 내가 무정하구나, 내가 사람이 아니로구나 하였다. 남대문을 향하고 달아나는 차를 거꾸로 세워 도로 평양으로 내려가고 싶다 하였다. 그러나 형식은 마음은 평양으로 끌리면서 몸은 남대문에 와 내렸다.
차는 지금 신막 남천역을 지나 경의 철도 중에 제일 산이 많은 옛날 금천 큰고개 근방으로 달아난다. 초생달은 벌써 넘어가고 창 밖은 캄캄하다. 달빛의 없는 것이 도리어 산들의 모양을 보기에는 편하다. 하늘과 산과의 경계는 굵은 붓으로 되는 대로 구불구불하게 그린 곡선(曲線) 모양으로 아주 분명하게 보인다. 왈칵왈칵 하는 찻바퀴 소리 사이로 산 강물이 조약돌 많은 여울로 굴러 내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이따금 기관차 굴뚝으로 나오는 불빛에 조고마한 산골짜기에 초가집 두어 개가 번적 보이고 혹 오랜 가물에 얼마 아니 되는 물이 가기 싫은 듯이 흘러가는 산강의 한 토막도 보인다. 차가 산모퉁이를 돌아설 때에 저편 컴컴한 속에 조고마한 불빛이 반작반작한다. 그 불빛이 차가 달아남을 따라 깜박깜박 있다가 없다가 함은 아마 잎이 무성한 나무에 가리워짐인 듯, 그 불은 꽤 오랫동안 형식의 차창에서 보인다. 형식은 물끄러미 그 불을 본다. 저 불 밑에는 누가 앉아서 무엇을 하는고. 가난한 어머니가 아이들을 잠들여 놓고 혼자 일어나 지아비와 아이들의 누더기를 깁는가. 잘 보이지 아니하는 눈으로 바늘구멍을 찾지 못하여 연방 불을 돋우고 눈을 비비는가. 그러다가 '아아 늙었구나!' 하고 깁던 누더기에 굵은 눈물을 떨구는가. 그때에 아랫목에서 자던 앓는 어린아이가 꿈에 놀라서 우는 것을 껴안고 먹은 것이 없어서 나지도 아니하는 젖을 물리고 있는 것이나 아닌가. 또는 앓는 외아들을 가운데 놓고 늙은 내외가 자리 위에 서서 번갈아 아들의 몸을 만지고 번갈아 울고 위로하면서 마음속으로 '하느님 내려다봅소서' 하는 것이 아닌가. 이에 형식은 십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자기 부모를 생각하였다. 어머니는 아직 젊었으나 아버지는 오십이 넘었으므로, 자기가 조곰이라도 병이 나면 그 병이 낫기까지 목욕재계하고 자기의 곁에서 밤을 새우던 것과, 자기가 혹 눈을 뜨면 아버지는 자기의 눈을 보고 그 아들이 눈을 뜨는 것이 무한히 기쁜 듯이 빙그레 웃으며 자기의 손을 잡던 것과, 아직 삼십이 다 못 된 자기의 어머니는 곤함을 이기지 못하여 앉은 대로 졸던 것이 생각이 난다. 형식은 잠깐 추연하다가 다시 그 불을 본다. 천지가 온통 캄캄한 중에 오직 불 하나가 반작반작하는 것과, 세상이 다 잠을 다 깊이 들었을 때에 그 불 밑에 혼자 깨어 있는 사람을 생각하매 형식은 그것이 마치 자기의 신세인 듯하였다. 차가 또 어떤 산모퉁이를 돌아서매 그 불은 그만 아니 보이게 되고 말았다. 형식은 서운한 듯이 머리를 창으로 끌어들였다. 차실에 같이 탄 사람들은 다 깊이 잠이 들었다. 바로 자기의 맞은 편에 누운 어떤 노동자 같은 소년이 추운 듯이 허리를 구부린다. 형식은 얼른 차창을 닫고 자기가 깔고 앉았던 담요로 그 소년을 덮어 주었다. 이 소년은 아마 어느 금광으로 가는지 흙 묻은 무명 고의를 입고 수건을 말아서 머리를 동였다. 머리는 언제 빗었는지 머리카락이 여기저기 뭉쳐지고 귀밑과 목에는 오래 묵은 때가 껴 있다. 역시 조고마한 흙물 묻은 보퉁이로 베개를 삼았는데 그 보퉁이를 묶은 종이로 꼰 노끈이 걸상 밑으로 늘어졌다. 형식은 그 노끈을 집어 보퉁이 밑에 끼웠다. 소년의 굵은 베로 만든 조끼 호주머니에는 국수표 궐련갑(菊水票卷煙匣)이 조곰 보이고 그 속에는 물부리가 넓적하게 된 궐련이 서너 개나 보인다. '아끼는 궐련이로구나' 하고 형식은 빙그레 웃으면서 자기의 '조일(朝日)'을 만져 보았다. 그러고 담배를 붙일 생각이 나서 한 대를 내었다. 형식은 그 궐련에 불을 붙여 길게 빨았다. 그때에 담배 맛은 특별하였다.
형식은 다시 차실을 돌아보았다. 어떤 일본 부인이 잠을 깨어 정신 없이 사방을 둘러보고 두어 번 머리와 목을 만지며 무엇을 찾는 듯이 기웃기웃하더니 도로 신현대(信玄袋)에 엎디어 잠이 든다. 형식도 내일에 곤할 것을 생각하고 한참 자리라 하여 수건을 창문턱에 접어 놓고 눈을 감았다. 그러나 형식의 정신은 더욱 쇄락할 뿐이요, 암만하여도 잠이 들지 아니하였다. 형식은 그래도 잠이 들까 하고 눈을 감은 대로 찻바퀴 소리를 세었다. 형식의 정신은 마치 풍랑이 침식한 바다 모양으로 아주 잔잔하게 되었다. 형식의 머리에는 영채와 선형과 노파와 배학감과 이희경과 또 칠성문 밖에서 보던 노인과 박선생의 무덤과 계향과…… 이러한 것들이 순서도 없이 번쩍번쩍 떠나온다. 형식은 눈을 감은 채로 그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다. 그 사람들은 혹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혹 성난 듯이 입을 내어밀고, 눈을 흘깃흘깃하기도 하고, 혹 나무로 새겨 놓은 듯이 시치미떼고 나서기도 한다. 더구나 영채의 모양이 오래 보이고 또 자주 보인다. 형식은 곁에 놓인 가방을 생각하였다. 그 속에 있는 영채의 편지와 지환과 칼이 눈에 보인다. 형식은 오싹 소름이 끼치며 번쩍 눈을 떴다. 아― 내가 잘못함이 아닌가. 내가 너무 무정함이 아닌가. 내가 좀더 오래 영채의 거처를 찾아야 옳을 것이 아닌가. 설사, 영채가 죽었다 하더라도, 그 시체라도 찾아보아야 할 것이 아니던가. 그러고 대동강가에 서서 뜨거운 눈물이라도 오래 흘려야 할 것이 아니던가. 영채는 나를 생각하고 몸을 죽였다. 그런데 나는 영채를 위하여 눈물도 흘리지 않아. 아― 내가 무정하구나, 내가 사람이 아니로구나 하였다. 남대문을 향하고 달아나는 차를 거꾸로 세워 도로 평양으로 내려가고 싶다 하였다. 그러나 형식은 마음은 평양으로 끌리면서 몸은 남대문에 와 내렸다.
67
형식은 숙소에 돌아와 조반을 먹고는 곧 학교에 갔다. 노파가,
"얼굴에 몹시 곤한 모양이 보이는데, 오늘은 하루 쉬시지요."
하는 말도 듣지 아니하였다. 형식은 지나간 사흘 동안에 너무 정신을 쓰고 또 잠을 잘 자지 못하여 얼굴에 졸리는 빛이 보이도록 몸이 피곤하였다. 그러나 오늘 아침 첫 시간에는 사년급 영어가 있다. 어저께도 쉬고 오늘도 쉬면 연하여 이틀을 쉬게 된다. 형식은 이것이 괴로웠다. 형식은 병이 있기 전에는 아직도 학교 시간을 쉬어 본 적이 없었다. 감기가 들어 여간 두통이 나고 열이 있더라도 억지로 학교에 출석하였다. 그러고 돌아와서 병이 더치더라도 형식은 '내 의무를 위함'이라 하여 스스로 만족하였다. 형식은 자기가 한 시간을 편안히 쉬기 위하여 백여 명 청년으로 하여금 각각 한 시간을 허송하게 하는 것을 큰 죄악으로 안다. 그러나 형식이가 이처럼 열심으로 학교에 가는 데는 의무라는 생각 밖에 더 큰 무엇이 있었다. 그것은 이렇다.
형식은 외롭게 자라났다. 형식은 부모의 사랑이라든가, 형제 자매의 사랑도 모르고 자라났다. 그뿐더러 형식에게는 사랑하는 동무도 없었다. 나이 같고 성미가 서로 맞는 동무의 사랑은 여간 형제 자매의 사랑에 지지 않는 것이라. 그러나 형식은 일정한 처소에 있지 아니하여 그러한 동무를 사귈 기회가 없었고 또 불쌍하게 돌아다닐 때에는 동무 될 만한 아이들이 형식을 천대하여 동무로 여겨 주지를 아니하였다. 형식이 열두 살 적에 그 족제(族弟) 하나를 심히 사랑한 일이 있었다. 족제는 형식과 동갑이요, 이전에는 글도 같이 읽었었다. 한번은 형식이가 그 족제의 집에서 놀다가 밤이 깊었다. 그때에 형식은 그 족제와 한자리에서 자게 된 것을 더할 수 없이 기뻐하였다. 그래서 자기의 숙소 되는 당숙의 집에 갈 수도 있건마는 '어두워서 못 가겠다'고 떼를 쓰고 같이 자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족제는, '네 옷에는 이가 많더라' 하고 크게 소리를 쳐 온 집안 사람이 다 소리를 듣게 하였다. 그때에 형식은 섧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나 어찌할 수 없어 눈물을 흘리면서 그 집에서 뛰어나온 일이 있었다. 과연 형식의 옷과 머리에는 이가 많이 끓었었다. 이러하므로 어린 형식은 동무의 사랑조차 맛보지 못하였다. 그 후 박진사의 집에 와서는 자기보다 십여 세 위 되는 사람과만 같이 있었고, 경성에 올라와서도 역시 그러하였다. 형식이가 동무의 재미를 보려면 볼 수 있던 때는 동경 유학하는 동안이었다. 동경에는 자기와 연갑 되는 소년이 많았었다. 그래서 동무에 목마른 형식은 될 수 있는 대로 그네와 친하려 하였다. 그러나 형식은 어려서부터 세상에 부대껴 왔으므로 어느덧 소년의 어여쁜 빛이 스러지고 얼굴에나 마음에나 노성한 어른의 빛이 있었다. 그러므로 아무리 자기와 연갑 되는 소년들과 친하려 하여도 그 소년들이 마음을 허하지 아니하였다. 더구나 형식은 그 소년들에게 비하여 학문의 정도에 차이가 많았으므로 그 소년들은 형식을 선배 모양으로 공경하는 생각은 가지되, 어깨를 겯고 손을 잡고 동무가 되려고는 하지 아니하였다. 그 소년들은 형식을 대하면 가댁질하던 것도 그치고 고개를 숙이며,
"안녕합시오."
하였다. 형식도 하릴없이,
"안녕합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한번은 형식이가 자기보다 두어 살 아래 되는 소년을 붙들고,
"여보, 나하고 동무가 되십시다. 너, 나 하고 지내입시다."
하였다. 그 소년은 농담인 줄 알고,
"녜."
하면서 모자를 벗고 경례하고 달아났다. 그 후에도 기회 있는 대로 소년들의 동무가 되려 하였으나 소년들은 헤헤 웃고는 경례를 하고 달아났다. 마침내 형식은 소년의 동무가 되어 보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고 지금까지 평생 자기보다 십여 년이나 어른 되는 이와 친구가 되어 왔다. 형식은 일찍 이렇게 자탄하였다.
'나는 소년시대를 건너뛰었어!' 소년시대를 보지 못한 형식의 마음은 과연 적막하였다. 그는 항상 말하기를 '나는 인생의 한 권리를 빼앗겼다' 하였고, 또 '그러고 그 권리는 인생에게 가장 크고 즐거운 권리라' 한다. 이러한 말을 할 때마다 형식은 적막한 생각을 이기지 못하여 길게 한숨을 쉰다.
그러다가 스물한 살에 경성학교에 교사가 되어 여러 소년들과 가까이 접할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소년들이 '선생님' 하고 슬슬 피할 때에는 형식은 여전히 적막한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나도 이제 어느 중학교에 입학을 하여 저 소년들과 같이 놀아 보았으면 하는 생각까지도 하였다.
형식은 학생들을 지극히 사랑하였다. 그가 학생들에 대한 일언일동은 어느 것이나 뜨거운 사랑에서 아니 나옴이 없었다. 형식은 어린 학생들의 코도 씻어 주고 구두끈과 옷고름도 매어 주었다. 어떤 교사들은 형식이 이렇게 함을 비웃기도 하고, 심지어 형식이가 학생들을 끔찍이 사랑하는 것을 좋지 못한 뜻으로까지 해석하였다. 더구나 형식이가 이희경을 특별히 사랑하는 것은 필연 희경의 얼굴을 탐내어 그러하는 것이라 하며, 어떤 자는 형식과 희경의 더러운 관계를 확실히 아노라고 장담하는 자도 있었다. 그래서 형식도 어떤 친구에게 충고를 받은 일도 있었고, 희경도 동창들 사이에 좋지 못한 조롱을 받은 일도 있으며, 희경이가 우등을 하는 것은 형식의 작간이라고 험구를 하는 자도 있었다.
그러나 형식은 여전히 학생들을 사랑하였다. 만일 학생들 중에 사람의 피를 마셔야 살아나리라 하는 병인이 있다 하면 형식은 달게 자기의 동맥을 끊으리라고까지 생각하였다. 그 중에도 이희경 같은 몇 사람에게 대하여서는 남자가 여자에게 대하여 가지는 듯한 굉장히 뜨거운 사랑을 깨달았다.
형식은 숙소에 돌아와 조반을 먹고는 곧 학교에 갔다. 노파가,
"얼굴에 몹시 곤한 모양이 보이는데, 오늘은 하루 쉬시지요."
하는 말도 듣지 아니하였다. 형식은 지나간 사흘 동안에 너무 정신을 쓰고 또 잠을 잘 자지 못하여 얼굴에 졸리는 빛이 보이도록 몸이 피곤하였다. 그러나 오늘 아침 첫 시간에는 사년급 영어가 있다. 어저께도 쉬고 오늘도 쉬면 연하여 이틀을 쉬게 된다. 형식은 이것이 괴로웠다. 형식은 병이 있기 전에는 아직도 학교 시간을 쉬어 본 적이 없었다. 감기가 들어 여간 두통이 나고 열이 있더라도 억지로 학교에 출석하였다. 그러고 돌아와서 병이 더치더라도 형식은 '내 의무를 위함'이라 하여 스스로 만족하였다. 형식은 자기가 한 시간을 편안히 쉬기 위하여 백여 명 청년으로 하여금 각각 한 시간을 허송하게 하는 것을 큰 죄악으로 안다. 그러나 형식이가 이처럼 열심으로 학교에 가는 데는 의무라는 생각 밖에 더 큰 무엇이 있었다. 그것은 이렇다.
형식은 외롭게 자라났다. 형식은 부모의 사랑이라든가, 형제 자매의 사랑도 모르고 자라났다. 그뿐더러 형식에게는 사랑하는 동무도 없었다. 나이 같고 성미가 서로 맞는 동무의 사랑은 여간 형제 자매의 사랑에 지지 않는 것이라. 그러나 형식은 일정한 처소에 있지 아니하여 그러한 동무를 사귈 기회가 없었고 또 불쌍하게 돌아다닐 때에는 동무 될 만한 아이들이 형식을 천대하여 동무로 여겨 주지를 아니하였다. 형식이 열두 살 적에 그 족제(族弟) 하나를 심히 사랑한 일이 있었다. 족제는 형식과 동갑이요, 이전에는 글도 같이 읽었었다. 한번은 형식이가 그 족제의 집에서 놀다가 밤이 깊었다. 그때에 형식은 그 족제와 한자리에서 자게 된 것을 더할 수 없이 기뻐하였다. 그래서 자기의 숙소 되는 당숙의 집에 갈 수도 있건마는 '어두워서 못 가겠다'고 떼를 쓰고 같이 자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족제는, '네 옷에는 이가 많더라' 하고 크게 소리를 쳐 온 집안 사람이 다 소리를 듣게 하였다. 그때에 형식은 섧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나 어찌할 수 없어 눈물을 흘리면서 그 집에서 뛰어나온 일이 있었다. 과연 형식의 옷과 머리에는 이가 많이 끓었었다. 이러하므로 어린 형식은 동무의 사랑조차 맛보지 못하였다. 그 후 박진사의 집에 와서는 자기보다 십여 세 위 되는 사람과만 같이 있었고, 경성에 올라와서도 역시 그러하였다. 형식이가 동무의 재미를 보려면 볼 수 있던 때는 동경 유학하는 동안이었다. 동경에는 자기와 연갑 되는 소년이 많았었다. 그래서 동무에 목마른 형식은 될 수 있는 대로 그네와 친하려 하였다. 그러나 형식은 어려서부터 세상에 부대껴 왔으므로 어느덧 소년의 어여쁜 빛이 스러지고 얼굴에나 마음에나 노성한 어른의 빛이 있었다. 그러므로 아무리 자기와 연갑 되는 소년들과 친하려 하여도 그 소년들이 마음을 허하지 아니하였다. 더구나 형식은 그 소년들에게 비하여 학문의 정도에 차이가 많았으므로 그 소년들은 형식을 선배 모양으로 공경하는 생각은 가지되, 어깨를 겯고 손을 잡고 동무가 되려고는 하지 아니하였다. 그 소년들은 형식을 대하면 가댁질하던 것도 그치고 고개를 숙이며,
"안녕합시오."
하였다. 형식도 하릴없이,
"안녕합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한번은 형식이가 자기보다 두어 살 아래 되는 소년을 붙들고,
"여보, 나하고 동무가 되십시다. 너, 나 하고 지내입시다."
하였다. 그 소년은 농담인 줄 알고,
"녜."
하면서 모자를 벗고 경례하고 달아났다. 그 후에도 기회 있는 대로 소년들의 동무가 되려 하였으나 소년들은 헤헤 웃고는 경례를 하고 달아났다. 마침내 형식은 소년의 동무가 되어 보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고 지금까지 평생 자기보다 십여 년이나 어른 되는 이와 친구가 되어 왔다. 형식은 일찍 이렇게 자탄하였다.
'나는 소년시대를 건너뛰었어!' 소년시대를 보지 못한 형식의 마음은 과연 적막하였다. 그는 항상 말하기를 '나는 인생의 한 권리를 빼앗겼다' 하였고, 또 '그러고 그 권리는 인생에게 가장 크고 즐거운 권리라' 한다. 이러한 말을 할 때마다 형식은 적막한 생각을 이기지 못하여 길게 한숨을 쉰다.
그러다가 스물한 살에 경성학교에 교사가 되어 여러 소년들과 가까이 접할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소년들이 '선생님' 하고 슬슬 피할 때에는 형식은 여전히 적막한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나도 이제 어느 중학교에 입학을 하여 저 소년들과 같이 놀아 보았으면 하는 생각까지도 하였다.
형식은 학생들을 지극히 사랑하였다. 그가 학생들에 대한 일언일동은 어느 것이나 뜨거운 사랑에서 아니 나옴이 없었다. 형식은 어린 학생들의 코도 씻어 주고 구두끈과 옷고름도 매어 주었다. 어떤 교사들은 형식이 이렇게 함을 비웃기도 하고, 심지어 형식이가 학생들을 끔찍이 사랑하는 것을 좋지 못한 뜻으로까지 해석하였다. 더구나 형식이가 이희경을 특별히 사랑하는 것은 필연 희경의 얼굴을 탐내어 그러하는 것이라 하며, 어떤 자는 형식과 희경의 더러운 관계를 확실히 아노라고 장담하는 자도 있었다. 그래서 형식도 어떤 친구에게 충고를 받은 일도 있었고, 희경도 동창들 사이에 좋지 못한 조롱을 받은 일도 있으며, 희경이가 우등을 하는 것은 형식의 작간이라고 험구를 하는 자도 있었다.
그러나 형식은 여전히 학생들을 사랑하였다. 만일 학생들 중에 사람의 피를 마셔야 살아나리라 하는 병인이 있다 하면 형식은 달게 자기의 동맥을 끊으리라고까지 생각하였다. 그 중에도 이희경 같은 몇 사람에게 대하여서는 남자가 여자에게 대하여 가지는 듯한 굉장히 뜨거운 사랑을 깨달았다.
68
말이 좀 곁가지로 들어가지마는, 이 기회를 타서 형식의 지나간 동안 교사생활을 좀 말할 필요가 있다. 사 년간 형식의 경성학교 교사 생활은 일언이폐지하면 사랑과 고민(苦悶)의 생활(生活)이었다.
형식이 이십 년간 갇히고 주렸던 사랑은 교사가 되어 여러 소년을 접하게 되며(되매), 마치 눈에 가리워졌던 풀의 움이 봄바람을 타서 쑥 나오는 모양으로 나오기를 시작하였다. 부모의 사랑이나 형제의 사랑이나 동무의 사랑도 맛보지 못하고, 하물며 여자에게 대한 사랑은 꿈도 꾸어 보지 못한 형식의 사랑은 사리에 밀려들어 오는 밀물 모양으로 경성학교의 사백 명 어린 학생을 덮었다. 그가 일찍 일기(日記)에, '너희는 나의 부모요, 형제요, 자매요, 아내요, 동무요, 아들이로다. 나의 사랑을 나의 전 정신(全精神)을 점령한 것은 너희로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이 피가 다 마르도록, 이 살이 다 깎이도록, 이 뼈가 다 휘도록 일하고 사랑하마' 한 구절은 형식의 거짓없는 정을 말한 것이다. 형식은 아침마다 학교 문을 들어서서 학생들이 노니는 양을 보면 기쁘고, 시간마다 강단에 서서 학생들이 자기를 보고 자기의 말을 듣는 양을 보면 기쁘고, 밤에 혼자 자리에 누워 학생들의 놀던 모양과 배우던 모양을 생각하면 기뻤다. 그래서 어찌하면 하나라도 학생들을 더 가르쳐 줄까, 어찌하면 그네의 행실을 아름답게 만들고, 어찌하면 그네의 정신을 깨우쳐 줄까 하여 자기가 아는 바 모든 것을 말하고, 할 수 있는 바 모든 방법을 다하였다. 그래서 학생들이 토론회를 할 때에 자기의 가르친 말을 끌어 쓴다든가 무슨 일을 할 때에 자기가 시켜 준 어느 방법을 쓰는 것을 보면 형식은 더할 수 없이 기뻐하였다.
이렇게 지나간 사 년간의 형식의 경력과 시간의 대부분은 전혀 학생들을 위하여 소비되었다. 그 때문에 형식은 얼마큼 신경도 쇠약되고 몸도 약하게 되었다. 자기도 그런 줄을 안다. 그러나 순전히 자기의 손으로 만들어 놓은 사년급 학생들을 대할 때에는 마치 봄부터 여름내 땀을 흘리고 고생하던 농부가 가을에 누렇게 익어 고개 숙인 논과 밭을 보고 깨닫는 듯하는 기쁨과 만족을 깨닫는다. 형식(의 생각)에 사년급 학생의 지식의 대부분과 아름다운 생각과 말과 행실의 대부분은 다 자기의 정성으로 힘쓴 결과려니 한다. 과연 형식은 조고마한 기회라도 놓치지 아니하고 자기의 가진 지식과 경험과 감상과 재미있는 이야기까지도 들려주었다. 그래서 이제는 사년급 학생을 대하여도 별로 할 말이 없으리만큼 자기가 가진 바를 온통 나눠 주었다. 형식은 교과서를 가르치고 남는 시간을 반드시 새롭고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로 채웠다. 형식이가 독서를 하는 이유의 하나는 이 학생들에게 알려 주려는 욕심이었다. 그러고 학생들도 형식의 말을 재미있게 들었다.
"또 더 해주셔요."
하고 형식에게 청하기까지도 하였다. 이렇게 학생들이 청하는 것을 보고는 형식은 더욱 만족하였다. 무론 여러 학생 중에는 형식의 하는 이야기를 귀찮게 여기는 자도 있고, 형식이 한창 정성으로 이야기할 때에 일부러 한눈도 팔며 공책에 붓장난을 하는 자도 있었으나 형식의 보기에 대부분은 자기의 말을 흥미있게 듣는 듯하였다. 그러므로 학생들이 형식에게서 받은 감화와 얻은 지식과 쾌락도 적지 아니하였다. 여러 교사들 중에 학생들에게 영향을 많이 주기로는 남들도 형식이라고 허하고 형식 자신도 그렇게 확신하였다.
그러나 교사들은 형식의 학생에게 미치는 영향을 그다지 좋은 줄로도 생각지 아니하고 어떤 교사는 학생들에게 교만한 마음을 생기게 하느니, 학생들에게 좋지 못한 소설을 읽어 주어 학생들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느니 하고 비방도 한다.
이러한 비방도 아주 까닭이 없음은 아니라. 형식은 항상 학생들에게 될 수 있는 대로 자유를 주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며 학교 당국도 될 수 있는 대로는 학생의 의사를 존중하기를 주장한다. 더구나 처음 형식이가 이 학교에 교사로 왔을 때에는 교장과 학감이 극히 전제를 숭상하는 인물이 되어서 학생들은 선생에게 대하여 감히 한마디도 자기네의 의사를 표하지 못하였고, 혹 다만 한마디라도 학교의 명령이나 교사의 말에 대하여 비평을 한다든가 반대를 하는 자가 있으면 학생 일동의 앞에서 엄혹하게 책망을 한 후에 혹은 정학도 시키고 심하면 출학까지도 하였었다. 그래서 자유사상을 품은 형식은 여러 번 의견도 충돌하였었다. 형식은 학생들 앞에서, '학도에 대하여 불만한 일이 있으면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 옳소. 정당한 일을 학교가 부정당하게 여길 때에는 반항을 하여도 옳소.' 이러한 위험한 말도 할 때가 있다. 그러므로 배학감이, 이번 학생의 소동도 형식의 충동이라 함이 아주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니라.
또 형식은 삼사년급 학생들에게 은연중 문학을 장려하였다. 그래서 학생 중에는 혹 소설도 보며, 철학에 관한 서적도 보며, 잡지도 보는 자가 생기고, 그 중에는 가장 문학자인 체, 사상가인 체, 철인(哲人)인 체하여 무슨 큰 생각이나 하는지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학생도 몇 사람이 생기고, 또 그러한 학생들도 다른 교사들을 아주 정신생활(精神生活)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아주 유치한 사람들이라고 비웃기도 한다. 형식의 보기에 이는 학생들의 진보함이라 기쁜 일이언마는 다른 교사들 보기에 이는 학생들이 타락함이요 주제넘게 됨이었다. 교사들뿐 아니라 학생 중에도 이희경 일파가 글자 작은 어려운 책을 들고 다니는 것과 그달에 발행한 잡지를 들고 다니는 것을 비웃었다.
말이 좀 곁가지로 들어가지마는, 이 기회를 타서 형식의 지나간 동안 교사생활을 좀 말할 필요가 있다. 사 년간 형식의 경성학교 교사 생활은 일언이폐지하면 사랑과 고민(苦悶)의 생활(生活)이었다.
형식이 이십 년간 갇히고 주렸던 사랑은 교사가 되어 여러 소년을 접하게 되며(되매), 마치 눈에 가리워졌던 풀의 움이 봄바람을 타서 쑥 나오는 모양으로 나오기를 시작하였다. 부모의 사랑이나 형제의 사랑이나 동무의 사랑도 맛보지 못하고, 하물며 여자에게 대한 사랑은 꿈도 꾸어 보지 못한 형식의 사랑은 사리에 밀려들어 오는 밀물 모양으로 경성학교의 사백 명 어린 학생을 덮었다. 그가 일찍 일기(日記)에, '너희는 나의 부모요, 형제요, 자매요, 아내요, 동무요, 아들이로다. 나의 사랑을 나의 전 정신(全精神)을 점령한 것은 너희로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이 피가 다 마르도록, 이 살이 다 깎이도록, 이 뼈가 다 휘도록 일하고 사랑하마' 한 구절은 형식의 거짓없는 정을 말한 것이다. 형식은 아침마다 학교 문을 들어서서 학생들이 노니는 양을 보면 기쁘고, 시간마다 강단에 서서 학생들이 자기를 보고 자기의 말을 듣는 양을 보면 기쁘고, 밤에 혼자 자리에 누워 학생들의 놀던 모양과 배우던 모양을 생각하면 기뻤다. 그래서 어찌하면 하나라도 학생들을 더 가르쳐 줄까, 어찌하면 그네의 행실을 아름답게 만들고, 어찌하면 그네의 정신을 깨우쳐 줄까 하여 자기가 아는 바 모든 것을 말하고, 할 수 있는 바 모든 방법을 다하였다. 그래서 학생들이 토론회를 할 때에 자기의 가르친 말을 끌어 쓴다든가 무슨 일을 할 때에 자기가 시켜 준 어느 방법을 쓰는 것을 보면 형식은 더할 수 없이 기뻐하였다.
이렇게 지나간 사 년간의 형식의 경력과 시간의 대부분은 전혀 학생들을 위하여 소비되었다. 그 때문에 형식은 얼마큼 신경도 쇠약되고 몸도 약하게 되었다. 자기도 그런 줄을 안다. 그러나 순전히 자기의 손으로 만들어 놓은 사년급 학생들을 대할 때에는 마치 봄부터 여름내 땀을 흘리고 고생하던 농부가 가을에 누렇게 익어 고개 숙인 논과 밭을 보고 깨닫는 듯하는 기쁨과 만족을 깨닫는다. 형식(의 생각)에 사년급 학생의 지식의 대부분과 아름다운 생각과 말과 행실의 대부분은 다 자기의 정성으로 힘쓴 결과려니 한다. 과연 형식은 조고마한 기회라도 놓치지 아니하고 자기의 가진 지식과 경험과 감상과 재미있는 이야기까지도 들려주었다. 그래서 이제는 사년급 학생을 대하여도 별로 할 말이 없으리만큼 자기가 가진 바를 온통 나눠 주었다. 형식은 교과서를 가르치고 남는 시간을 반드시 새롭고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로 채웠다. 형식이가 독서를 하는 이유의 하나는 이 학생들에게 알려 주려는 욕심이었다. 그러고 학생들도 형식의 말을 재미있게 들었다.
"또 더 해주셔요."
하고 형식에게 청하기까지도 하였다. 이렇게 학생들이 청하는 것을 보고는 형식은 더욱 만족하였다. 무론 여러 학생 중에는 형식의 하는 이야기를 귀찮게 여기는 자도 있고, 형식이 한창 정성으로 이야기할 때에 일부러 한눈도 팔며 공책에 붓장난을 하는 자도 있었으나 형식의 보기에 대부분은 자기의 말을 흥미있게 듣는 듯하였다. 그러므로 학생들이 형식에게서 받은 감화와 얻은 지식과 쾌락도 적지 아니하였다. 여러 교사들 중에 학생들에게 영향을 많이 주기로는 남들도 형식이라고 허하고 형식 자신도 그렇게 확신하였다.
그러나 교사들은 형식의 학생에게 미치는 영향을 그다지 좋은 줄로도 생각지 아니하고 어떤 교사는 학생들에게 교만한 마음을 생기게 하느니, 학생들에게 좋지 못한 소설을 읽어 주어 학생들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느니 하고 비방도 한다.
이러한 비방도 아주 까닭이 없음은 아니라. 형식은 항상 학생들에게 될 수 있는 대로 자유를 주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며 학교 당국도 될 수 있는 대로는 학생의 의사를 존중하기를 주장한다. 더구나 처음 형식이가 이 학교에 교사로 왔을 때에는 교장과 학감이 극히 전제를 숭상하는 인물이 되어서 학생들은 선생에게 대하여 감히 한마디도 자기네의 의사를 표하지 못하였고, 혹 다만 한마디라도 학교의 명령이나 교사의 말에 대하여 비평을 한다든가 반대를 하는 자가 있으면 학생 일동의 앞에서 엄혹하게 책망을 한 후에 혹은 정학도 시키고 심하면 출학까지도 하였었다. 그래서 자유사상을 품은 형식은 여러 번 의견도 충돌하였었다. 형식은 학생들 앞에서, '학도에 대하여 불만한 일이 있으면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 옳소. 정당한 일을 학교가 부정당하게 여길 때에는 반항을 하여도 옳소.' 이러한 위험한 말도 할 때가 있다. 그러므로 배학감이, 이번 학생의 소동도 형식의 충동이라 함이 아주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니라.
또 형식은 삼사년급 학생들에게 은연중 문학을 장려하였다. 그래서 학생 중에는 혹 소설도 보며, 철학에 관한 서적도 보며, 잡지도 보는 자가 생기고, 그 중에는 가장 문학자인 체, 사상가인 체, 철인(哲人)인 체하여 무슨 큰 생각이나 하는지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학생도 몇 사람이 생기고, 또 그러한 학생들도 다른 교사들을 아주 정신생활(精神生活)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아주 유치한 사람들이라고 비웃기도 한다. 형식의 보기에 이는 학생들의 진보함이라 기쁜 일이언마는 다른 교사들 보기에 이는 학생들이 타락함이요 주제넘게 됨이었다. 교사들뿐 아니라 학생 중에도 이희경 일파가 글자 작은 어려운 책을 들고 다니는 것과 그달에 발행한 잡지를 들고 다니는 것을 비웃었다.
69
무론 이희경 일파가 그 어려운 책을 알아보지는 못하였다. 열 페이지나 스무 페이지를 읽은 뒤에 그 속에 있는 뜻을 계통적으로 깨닫지는 못하였다. 다만 여기저기 한 구절씩 혹은 두어 줄씩 자기네가 깨달을 만한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써 만족하여 하였다. 그네는 하루에 알지는 못하면서도 여러 페이지 읽기를 자랑으로 알고 형식에게 들은 대로 서양 문학자, 철학자, 종교가 같은 사람들의 이름과 그네의 저서(著書)의 이름을 외우기로 (유일한) 영광을 삼았다. 그러고 그네가 보는 책에서 '인생이란 무엇이뇨'라든가 '우주란 무엇이뇨' 하는 구절을 외워 토론회나 친구간에 하는 회화에 인용하였다. 혹 톨스토이나 셰익스피어의 격언을 인용하기도 하고 혹 그것을 영어대로 통으로 암기하여 인용하기도 하였다. 인용하는 자기도 그 뜻을 잘 모르면서도 그것을 인용하면 자기의 말하려는 바가 잘 발표된 듯하였고, 그것을 듣는 다른 학생들도 '흥' 하고 코웃음을 하면서도 그네의 지식이 많음을 속으로는 부러워하였다. 그래서 자기네도 몰래 낡은 잡지를 사다가 보기도 하고, 또는 이희경 일파에게 들은 말을 가만히 기억하였다가 다른 데 가서 자랑삼아 써보기도 하였다.
이희경은 꽤 이해력이 있었다. 형식의 생각에 희경은 가장 사상이 익었는 듯하고 희경 자신도 (자기는) 제법 형식의 하는 말을 깨닫는 줄로 믿었다. 그래서 형식과 희경이 같이 앉았을 때에는 마치 뜻맞는 사상가들이 오래간만에 만난 모양으로 인생 문제와 우주 문제가 뒤를 대어 흘러나왔다. 그러나 형식은 아직도 희경에게 말할 수 없는 고상한 사상을 많이 가진 듯이 생각하였다. 그는 사실이었다. 형식이가 한참이나 자기의 사상을 말하다가 희경의 멍하니 앉았는 것을 보고는 '너는 아직 모르는구나' 하는 듯이 빙그레 웃으며 말을 끊었다. 그러할 때에는 희경은 형식에게 모욕을 당한 듯하여 얼굴이 붉어졌다. 무론 희경은 형식이가 자기보다 지식이 많고 사상이 깊은 줄을 인정한다. 그러나 자기보다 여러 십 리 앞섰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아니한다. 그래서 형식이가 자기를 '네야 알겠니' 하는 듯이 대접할 때에 형식에게 대하여 불쾌하고 반항하는 생각이 났다. 희경이가 이년급까지는 형식은 자기보다 수천 리나 앞선 사람인 듯이 보였다. 형식의 머릿속에는 없는 것이 없고, 형식의 입으로서 나오는 말은 모두 다 깊은 뜻이 있는 것같이 생각하였다. 형식은 조선에 제일가는 지식도 많고 생각도 깊은 사람으로 여겼다. 그러나 삼년급이 반쯤 지나간 뒤로부터는 형식도 자기와 얼마 다르지 아니한 사람과 같이 보았다. 형식의 지식은 그렇게 많지 못하고 형식의 생각하는 바는 자기도 생각하는 것같이 생각하였다. 그러고 형식이가 강단에서 하는 말도 (별로) 감복할 만한 말이 아니요, 자기도 강단에 올라서면 그만한 말은 넉넉히 할 수 있으리라 하였다. 그러나 정작 토론회에서 말을 하여 보면 암만하여도 형식만 못한 것 같았다. 그러나 이는 결코 자기가 형식만 못하여 그러한 것이 아니라 형식은 여러 해 교사로 있어 말하는 법이 익은 것이지 자기가 그만큼 말을 연습하면 형식보다 나으리라 하였다. 희경의 생각에 삼 년만 지나면 자기는 생각으로나 지식으로나 말로나 모든 것으로 형식보다 나으리라 한다. 사년급이 되어 독본 사권을 배우게 되매 형식도 혹 모른다는 글자가 있고 문법관계도 분명히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있게 되매 희경은 영어로도 형식을 그렇게 우러러보지 아니하게 되었다. 지금은 희경의 보기에 형식은 자기보다 두어 걸음밖에 더 앞서지 못한 사람같이 보이고 장래에는 자기가 형식보다 열 배 스무 배나 높아질 것같이 보였다. 희경은 중학교 교사를 우습게 보게 되었다. 다른 교사를 아무것도 모르는 껍데기로 본 지는 벌써 오래거니와 그 중에 가장 무엇을 아는 듯하던 형식도 자세히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깨달았다. 자기는 중학교에 교사 같은 직업을 가질 사람이 아니요, 장차는 큰 학자가 별로 되거나 (박사가 되거나) 중학교에 온다 하더라도 교장이나 주면 하리라 한다.
교사들은 대개 될 대로 다 된 작은 인물같이 보이고 자기는 무한히 크게 될 가능성(可能性)이 있는 듯이 생각한다. 그러나 희경은 형식도 육칠 년 전에는 자기와 같은 생각을 가졌던 줄을 모른다. 희경이 보기에 형식은 본래 그릇이 작아서 높이 뛸 줄을 모르고, 사 년이 넘도록 중학교 교사로 있고, 또 일생을 중학교 교사로 지내는 것같이 보여서 일변 형식을 경멸하는 생각도 나고 일변 불쌍히도 여긴다.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것은 희경뿐이 아니다. 희경과 같이 어려운 책을 읽으려 하는 자는 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다른 학생들은 애초부터 형식을 존경하지도 아니하였고, 다만 끔찍이 친절하게 굴려 하는 젊은 교사라 할 뿐이었다. 그뿐더러 그들은 형식이 이희경 일파를 편애하는 것과 특별히 희경을 사랑하는 것을 비웃고 얼마큼 형식을 싫어하는 생각까지 있었다.
학생들은 아이로부터 어른이 되었다. 일년급부터 사년급이 되었다. 아무 지식도 없던 것들이 보통 지식을 얻게 되었다. 학생들 생각에 자기는 지나간 사 년간에 진보도 하였다. 자라기도 하였다. 그러나 형식은 일년급 적이나 사년급 되는 지금이나 학생들의 보기에는 변함이 없는 듯하였다. 형식은 그 가진 바 지식을 온통은 아니라도 거의 다 자기네에게 빼앗기고 이제는 자기네보다 높다고 할 자격이 없는 것같이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네가 형식에게 대한 표면의 행동은 전이나 다름이 없어도 마음으로는 형식을 자기네와 동등 또는 자기네 이하로 보게 되었다.
무론 이희경 일파가 그 어려운 책을 알아보지는 못하였다. 열 페이지나 스무 페이지를 읽은 뒤에 그 속에 있는 뜻을 계통적으로 깨닫지는 못하였다. 다만 여기저기 한 구절씩 혹은 두어 줄씩 자기네가 깨달을 만한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써 만족하여 하였다. 그네는 하루에 알지는 못하면서도 여러 페이지 읽기를 자랑으로 알고 형식에게 들은 대로 서양 문학자, 철학자, 종교가 같은 사람들의 이름과 그네의 저서(著書)의 이름을 외우기로 (유일한) 영광을 삼았다. 그러고 그네가 보는 책에서 '인생이란 무엇이뇨'라든가 '우주란 무엇이뇨' 하는 구절을 외워 토론회나 친구간에 하는 회화에 인용하였다. 혹 톨스토이나 셰익스피어의 격언을 인용하기도 하고 혹 그것을 영어대로 통으로 암기하여 인용하기도 하였다. 인용하는 자기도 그 뜻을 잘 모르면서도 그것을 인용하면 자기의 말하려는 바가 잘 발표된 듯하였고, 그것을 듣는 다른 학생들도 '흥' 하고 코웃음을 하면서도 그네의 지식이 많음을 속으로는 부러워하였다. 그래서 자기네도 몰래 낡은 잡지를 사다가 보기도 하고, 또는 이희경 일파에게 들은 말을 가만히 기억하였다가 다른 데 가서 자랑삼아 써보기도 하였다.
이희경은 꽤 이해력이 있었다. 형식의 생각에 희경은 가장 사상이 익었는 듯하고 희경 자신도 (자기는) 제법 형식의 하는 말을 깨닫는 줄로 믿었다. 그래서 형식과 희경이 같이 앉았을 때에는 마치 뜻맞는 사상가들이 오래간만에 만난 모양으로 인생 문제와 우주 문제가 뒤를 대어 흘러나왔다. 그러나 형식은 아직도 희경에게 말할 수 없는 고상한 사상을 많이 가진 듯이 생각하였다. 그는 사실이었다. 형식이가 한참이나 자기의 사상을 말하다가 희경의 멍하니 앉았는 것을 보고는 '너는 아직 모르는구나' 하는 듯이 빙그레 웃으며 말을 끊었다. 그러할 때에는 희경은 형식에게 모욕을 당한 듯하여 얼굴이 붉어졌다. 무론 희경은 형식이가 자기보다 지식이 많고 사상이 깊은 줄을 인정한다. 그러나 자기보다 여러 십 리 앞섰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아니한다. 그래서 형식이가 자기를 '네야 알겠니' 하는 듯이 대접할 때에 형식에게 대하여 불쾌하고 반항하는 생각이 났다. 희경이가 이년급까지는 형식은 자기보다 수천 리나 앞선 사람인 듯이 보였다. 형식의 머릿속에는 없는 것이 없고, 형식의 입으로서 나오는 말은 모두 다 깊은 뜻이 있는 것같이 생각하였다. 형식은 조선에 제일가는 지식도 많고 생각도 깊은 사람으로 여겼다. 그러나 삼년급이 반쯤 지나간 뒤로부터는 형식도 자기와 얼마 다르지 아니한 사람과 같이 보았다. 형식의 지식은 그렇게 많지 못하고 형식의 생각하는 바는 자기도 생각하는 것같이 생각하였다. 그러고 형식이가 강단에서 하는 말도 (별로) 감복할 만한 말이 아니요, 자기도 강단에 올라서면 그만한 말은 넉넉히 할 수 있으리라 하였다. 그러나 정작 토론회에서 말을 하여 보면 암만하여도 형식만 못한 것 같았다. 그러나 이는 결코 자기가 형식만 못하여 그러한 것이 아니라 형식은 여러 해 교사로 있어 말하는 법이 익은 것이지 자기가 그만큼 말을 연습하면 형식보다 나으리라 하였다. 희경의 생각에 삼 년만 지나면 자기는 생각으로나 지식으로나 말로나 모든 것으로 형식보다 나으리라 한다. 사년급이 되어 독본 사권을 배우게 되매 형식도 혹 모른다는 글자가 있고 문법관계도 분명히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있게 되매 희경은 영어로도 형식을 그렇게 우러러보지 아니하게 되었다. 지금은 희경의 보기에 형식은 자기보다 두어 걸음밖에 더 앞서지 못한 사람같이 보이고 장래에는 자기가 형식보다 열 배 스무 배나 높아질 것같이 보였다. 희경은 중학교 교사를 우습게 보게 되었다. 다른 교사를 아무것도 모르는 껍데기로 본 지는 벌써 오래거니와 그 중에 가장 무엇을 아는 듯하던 형식도 자세히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깨달았다. 자기는 중학교에 교사 같은 직업을 가질 사람이 아니요, 장차는 큰 학자가 별로 되거나 (박사가 되거나) 중학교에 온다 하더라도 교장이나 주면 하리라 한다.
교사들은 대개 될 대로 다 된 작은 인물같이 보이고 자기는 무한히 크게 될 가능성(可能性)이 있는 듯이 생각한다. 그러나 희경은 형식도 육칠 년 전에는 자기와 같은 생각을 가졌던 줄을 모른다. 희경이 보기에 형식은 본래 그릇이 작아서 높이 뛸 줄을 모르고, 사 년이 넘도록 중학교 교사로 있고, 또 일생을 중학교 교사로 지내는 것같이 보여서 일변 형식을 경멸하는 생각도 나고 일변 불쌍히도 여긴다.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것은 희경뿐이 아니다. 희경과 같이 어려운 책을 읽으려 하는 자는 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다른 학생들은 애초부터 형식을 존경하지도 아니하였고, 다만 끔찍이 친절하게 굴려 하는 젊은 교사라 할 뿐이었다. 그뿐더러 그들은 형식이 이희경 일파를 편애하는 것과 특별히 희경을 사랑하는 것을 비웃고 얼마큼 형식을 싫어하는 생각까지 있었다.
학생들은 아이로부터 어른이 되었다. 일년급부터 사년급이 되었다. 아무 지식도 없던 것들이 보통 지식을 얻게 되었다. 학생들 생각에 자기는 지나간 사 년간에 진보도 하였다. 자라기도 하였다. 그러나 형식은 일년급 적이나 사년급 되는 지금이나 학생들의 보기에는 변함이 없는 듯하였다. 형식은 그 가진 바 지식을 온통은 아니라도 거의 다 자기네에게 빼앗기고 이제는 자기네보다 높다고 할 자격이 없는 것같이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네가 형식에게 대한 표면의 행동은 전이나 다름이 없어도 마음으로는 형식을 자기네와 동등 또는 자기네 이하로 보게 되었다.
70
형식은 항상 입버릇 모양으로 자기의 지식과 수양이 부족함을 한탄하였다. 자기는 진실로 자기의 지식과 수양이 부족함을 한탄한 것이언마는, 학생들은 이전에는 그것이 다만 형식의 겸사에 지나지 못하거니 하였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는 학생들은 그 한탄이 참인 줄로 안다. 그래서 형식의 하는 말에도 전과 같이 신용을 주지 아니하게 되었다. '나는 지식과 수양이 부족하외다' 하는 말을 형식이가 자기네를 두려워하여 사죄하는 말로 알게 되었다. 그러나 형식은 그러한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다. 설혹 자기의 지식과 수양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아직은 희경 일파에게 떨어지기를 무서워할 지경은 아니었다. 형식의 보기에 희경 일파는 아직 어린아이들이었다. 그네가 자기를 따라오려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달음질을 하더라도 여간 육칠 년 내에 따라잡힐 것 같지는 아니하였다. 형식은 자기가 조선에 있어서는 가장 진보한 사상을 가진 선각자로 자신한다. 그래서 겸손한 듯한 그의 속에는 조선 사회에 대한 자랑과 교만이 있다. 그는 서양 철학도 보았고 서양 문학도 보았다. 그는 루소의『참회록(懺悔錄)』과『에밀』을 보았고, 셰익스피어의『햄릿』과 괴테의『파우스트』와 크로포트킨의『면포(麵匏)의 약탈(掠奪)』을 보았다. 그는 신간 잡지에 나는 정치론과 문학평론(文學評論)을 보았고 일본 잡지의 현상소설에 상도 한번 탔다. 그는 타고르의 이름을 알고 엘렌 케이 여사(女史)의 전기(傳記)를 보았다. 그러고 우주(宇宙)도 생각하여 보았고 인생(人生)도 생각하여 보았다. 자기에게는 자기의 인생관(人生觀)이 있고, 우주관(宇宙觀), 종교관(宗敎觀), 예술관(藝術觀)이 있고 교육에 대하여서도 일가견(一家見)이 있는 줄로 자신한다. 그가 만원 된 차를 타고 눈앞에 욱적욱적하는 사람을 볼 때에 나는 저들의 모르는 말을 많이 알고, 모르는 사상을 많이 가졌다고 생각하고는 일종 자랑의 기쁨을 깨닫는 동시에 '언제나 저들을 나만큼이나마 가르치는가' (하는) 선각자의 책임을 깨닫고 또 이천만이나 되는 사람 중에 내 말을 알아듣고 내 뜻을 이해(理解)하는 자가 몇 사람이 없구나 하는 선각자(先覺者)의 적막(寂寞)과 비애(悲哀)를 깨닫는다. 그러고 자기의 하는 말을 알아들을 만한 친구를 생각하여 본다. 그러나 형식은 열 손가락을 다 꼽지 못한다. 그러고 이 열도 못 되는 사람이 조선 사람 중에 신문명(新文明)을 이해하는 선각자요, 따라서 온 조선 사람을 가르치고 이끌어 낼 자라 한다. 그러고 지나간 사 년간에 자기가 희경 등 사오 인을 자기와 같은 계급에 끌어낸 것을 더할 수 없는 만족으로 여긴다. 무론 자기보다는 어린아이로되 다른 사람들에게 비기면 어른이요, 선각자라 한다. 조선 안에 학교도 많고 학생도 많되 희경 일파만한 학생은 없다 하며, 따라서 교육자 중에 자기가 홀로 신문명을 이해하고 조선 전도를 통견(洞見)하는 능력이 있는 줄로 생각한다. 서울 안에 수백 명 되는 교사는 모두 다 조선인 교육의 의의(意義)를 모르고 기계 모양으로 산술을 가르치고, 일어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는 조선인 교육계에 대하여 항상 불만한 생각을 품는다. 그가 경성교육회라는 것을 설립할 양으로 두어 달을 두고 분주한 것도 이러한 기관을 이용하여 자기의 교육에 대한 이상(理想)을 선전(宣傳)하려 함이었다.
그러나 다른 교사들은 형식을 그처럼 지식과 사상이 높은 자라고 인정하지 아니하였고, 어떤 사람은 형식을 자기네와 평등이라고도 생각하지 아니하였다. 과연 형식의 하는 말에나 일에는 별로 뛰어난 것이 없었다. 형식이가 큰 진리인 듯이 열심으로 하는 말도 듣는 사람에게는 별로 감동을 주는 바가 없었다. 다만 형식의 특색은 영어를 많이 섞고 서양 유명한 사람의 이름과 말을 많이 인용하여 무슨 뜻인지 잘 알지도 못할 말을 길게 함이었다. 형식의 연설이나 글은 서양 글을 직역한 것 같았다. 형식의 말을 듣건대 이러한 말이나 글이 아니고는 깊고 자세한 사상을 발표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자기의 의견을 좇지 아니함은 그네가 자기의 사상을 깨달을 힘이 없음이라 하여 혼자 분개하여 한다. 공평하게 말하면 형식은 다른 교사들보다 좀더 진보한 점이 있고, 또 자기가 믿는 바를 어디까지든지 실행하려 하는 정성은 있다. 그러나 그는 사람의 마음을 보는 법이 어두웠다. 그의 생각에 세상 사람의 마음은 다 자기의 마음과 같아서 자기가 좋게 생각하는 바는 깨닫기만 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좋게 보이려니 한다. 일언이폐지하면 그는 주관적(主觀的)이요, 이상(理想)의 인(人)이요, 실제(實際)의 인(人)은 아니외다.
그의 지나간 사 년간의 교사생활은 실패의 생활이었다. 그는 학교에서 여러 가지 의견을 제출하였으나 별로 채용된 것이 없었고, 학생들에게도 여러 가지로 가르치고 시키는 바가 있었으나 별로 환영되지도 아니하였고, 무론 실행된 것은 별로 없었다. 형식은 이것을 보고 분개한 적도 있고 비관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것을 자기가 부족함이라고 생각하지 아니하고 세상 사람이 아직 자기의 높은 사상을 깨닫지 못함이라 하여 스스로 선각자의 설움이라 일컫고 혼자 안심하였다. 그러나 남들이 형식의 의견을 채용치 아니함은 자기네가 그것을 깨닫지 못함이라고는 하지 아니하였다. 그네의 보기에 형식의 의견은 도저히 실행할 수 없는 것이요, 또 설사 실행한다 하더라도 효력이 없을 듯한 것이었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도 차차 형식의 지식이 (꽤) 많음과 어려운 책을 많이 보고 생각이 (꽤) 깊은 줄을 인정하였다. 그래서 농담삼아, 칭찬삼아 형식을 '사상가'라고도 하고, '철학자'라고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별명에는 '너는 생각이나 하여라. 실지에는 아무것도 못 하겠다' 하는 조롱의 뜻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 별명을 듣는 형식은, '너희는 사상가가 무엇이며 철학자가 무엇인지를 아느냐' 하고 비웃으면서도 그러한 별명이 아주 듣기 싫지는 아니하였다.
형식은 항상 입버릇 모양으로 자기의 지식과 수양이 부족함을 한탄하였다. 자기는 진실로 자기의 지식과 수양이 부족함을 한탄한 것이언마는, 학생들은 이전에는 그것이 다만 형식의 겸사에 지나지 못하거니 하였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는 학생들은 그 한탄이 참인 줄로 안다. 그래서 형식의 하는 말에도 전과 같이 신용을 주지 아니하게 되었다. '나는 지식과 수양이 부족하외다' 하는 말을 형식이가 자기네를 두려워하여 사죄하는 말로 알게 되었다. 그러나 형식은 그러한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다. 설혹 자기의 지식과 수양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아직은 희경 일파에게 떨어지기를 무서워할 지경은 아니었다. 형식의 보기에 희경 일파는 아직 어린아이들이었다. 그네가 자기를 따라오려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달음질을 하더라도 여간 육칠 년 내에 따라잡힐 것 같지는 아니하였다. 형식은 자기가 조선에 있어서는 가장 진보한 사상을 가진 선각자로 자신한다. 그래서 겸손한 듯한 그의 속에는 조선 사회에 대한 자랑과 교만이 있다. 그는 서양 철학도 보았고 서양 문학도 보았다. 그는 루소의『참회록(懺悔錄)』과『에밀』을 보았고, 셰익스피어의『햄릿』과 괴테의『파우스트』와 크로포트킨의『면포(麵匏)의 약탈(掠奪)』을 보았다. 그는 신간 잡지에 나는 정치론과 문학평론(文學評論)을 보았고 일본 잡지의 현상소설에 상도 한번 탔다. 그는 타고르의 이름을 알고 엘렌 케이 여사(女史)의 전기(傳記)를 보았다. 그러고 우주(宇宙)도 생각하여 보았고 인생(人生)도 생각하여 보았다. 자기에게는 자기의 인생관(人生觀)이 있고, 우주관(宇宙觀), 종교관(宗敎觀), 예술관(藝術觀)이 있고 교육에 대하여서도 일가견(一家見)이 있는 줄로 자신한다. 그가 만원 된 차를 타고 눈앞에 욱적욱적하는 사람을 볼 때에 나는 저들의 모르는 말을 많이 알고, 모르는 사상을 많이 가졌다고 생각하고는 일종 자랑의 기쁨을 깨닫는 동시에 '언제나 저들을 나만큼이나마 가르치는가' (하는) 선각자의 책임을 깨닫고 또 이천만이나 되는 사람 중에 내 말을 알아듣고 내 뜻을 이해(理解)하는 자가 몇 사람이 없구나 하는 선각자(先覺者)의 적막(寂寞)과 비애(悲哀)를 깨닫는다. 그러고 자기의 하는 말을 알아들을 만한 친구를 생각하여 본다. 그러나 형식은 열 손가락을 다 꼽지 못한다. 그러고 이 열도 못 되는 사람이 조선 사람 중에 신문명(新文明)을 이해하는 선각자요, 따라서 온 조선 사람을 가르치고 이끌어 낼 자라 한다. 그러고 지나간 사 년간에 자기가 희경 등 사오 인을 자기와 같은 계급에 끌어낸 것을 더할 수 없는 만족으로 여긴다. 무론 자기보다는 어린아이로되 다른 사람들에게 비기면 어른이요, 선각자라 한다. 조선 안에 학교도 많고 학생도 많되 희경 일파만한 학생은 없다 하며, 따라서 교육자 중에 자기가 홀로 신문명을 이해하고 조선 전도를 통견(洞見)하는 능력이 있는 줄로 생각한다. 서울 안에 수백 명 되는 교사는 모두 다 조선인 교육의 의의(意義)를 모르고 기계 모양으로 산술을 가르치고, 일어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는 조선인 교육계에 대하여 항상 불만한 생각을 품는다. 그가 경성교육회라는 것을 설립할 양으로 두어 달을 두고 분주한 것도 이러한 기관을 이용하여 자기의 교육에 대한 이상(理想)을 선전(宣傳)하려 함이었다.
그러나 다른 교사들은 형식을 그처럼 지식과 사상이 높은 자라고 인정하지 아니하였고, 어떤 사람은 형식을 자기네와 평등이라고도 생각하지 아니하였다. 과연 형식의 하는 말에나 일에는 별로 뛰어난 것이 없었다. 형식이가 큰 진리인 듯이 열심으로 하는 말도 듣는 사람에게는 별로 감동을 주는 바가 없었다. 다만 형식의 특색은 영어를 많이 섞고 서양 유명한 사람의 이름과 말을 많이 인용하여 무슨 뜻인지 잘 알지도 못할 말을 길게 함이었다. 형식의 연설이나 글은 서양 글을 직역한 것 같았다. 형식의 말을 듣건대 이러한 말이나 글이 아니고는 깊고 자세한 사상을 발표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자기의 의견을 좇지 아니함은 그네가 자기의 사상을 깨달을 힘이 없음이라 하여 혼자 분개하여 한다. 공평하게 말하면 형식은 다른 교사들보다 좀더 진보한 점이 있고, 또 자기가 믿는 바를 어디까지든지 실행하려 하는 정성은 있다. 그러나 그는 사람의 마음을 보는 법이 어두웠다. 그의 생각에 세상 사람의 마음은 다 자기의 마음과 같아서 자기가 좋게 생각하는 바는 깨닫기만 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좋게 보이려니 한다. 일언이폐지하면 그는 주관적(主觀的)이요, 이상(理想)의 인(人)이요, 실제(實際)의 인(人)은 아니외다.
그의 지나간 사 년간의 교사생활은 실패의 생활이었다. 그는 학교에서 여러 가지 의견을 제출하였으나 별로 채용된 것이 없었고, 학생들에게도 여러 가지로 가르치고 시키는 바가 있었으나 별로 환영되지도 아니하였고, 무론 실행된 것은 별로 없었다. 형식은 이것을 보고 분개한 적도 있고 비관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것을 자기가 부족함이라고 생각하지 아니하고 세상 사람이 아직 자기의 높은 사상을 깨닫지 못함이라 하여 스스로 선각자의 설움이라 일컫고 혼자 안심하였다. 그러나 남들이 형식의 의견을 채용치 아니함은 자기네가 그것을 깨닫지 못함이라고는 하지 아니하였다. 그네의 보기에 형식의 의견은 도저히 실행할 수 없는 것이요, 또 설사 실행한다 하더라도 효력이 없을 듯한 것이었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도 차차 형식의 지식이 (꽤) 많음과 어려운 책을 많이 보고 생각이 (꽤) 깊은 줄을 인정하였다. 그래서 농담삼아, 칭찬삼아 형식을 '사상가'라고도 하고, '철학자'라고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별명에는 '너는 생각이나 하여라. 실지에는 아무것도 못 하겠다' 하는 조롱의 뜻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 별명을 듣는 형식은, '너희는 사상가가 무엇이며 철학자가 무엇인지를 아느냐' 하고 비웃으면서도 그러한 별명이 아주 듣기 싫지는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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