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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영채는 그 동안 여러 기생을 보았다. 그러고 그네들 중에 어떠한 사람이 있는가 보았다. 영채가 '형님' 하고 정답게 지내던 자도 수십 인이요, '야, 네더냐' 하고 동무로 지내던 자도 수십 인이요, 영채더러 '형님!' 하고 정답게 따르던 자도 몇 사람이 있었다.
영채가 평양서 기생이 되어 맨 처음 '형님' 하고 정들인 기생은 계 월화라 하는 얼굴 곱고 소리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때에 평양 화류계에 풍류 남자들의 눈은 실로 이 월화 한 사람에게 모였었다. 월화는 단율도 잘 짓고 묵화도 남 지지 아니하게 쳤다. 그래서 월화는 매우 자존하는 마음이 있어서 여간한 남자는 가까이하지도 아니하였다. 그러므로 퇴맞은 남자들에게는 '교만한 년' '괘씸한 년'이라는 책망도 듣고, 그 소위 어미 되는 노파에게는 '손님께 공손하라'는 경계도 들었다. 그러나 월화는 자기의 얼굴과 재주를 높이 믿었다. 그래서 제 눈에 낮게 보이는 손님을 대할 때에는, "솔이 솔이 하니 무슨 솔이로만 여겼던가 / 천인 절벽에 낙락장송 내 기로다 / 길 아래 초동의 낫이야 걸어 볼 줄 있으랴" 하는 솔이〔松伊〕가 지은 시조를 불렀다. 그래서 그의 친구들은 월화를 '솔이'라고 별명을 지었다. 실로 월화의 이상은 '솔이'였었다. 영채가 월화를 사랑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라. 영채의 눈에 월화라는 기생은 족히 열녀전에 들어갈 만하다 하였다. 그러고 '솔이'라는 기생이 어떠한 기생인지도 모르면서 월화가 솔이를 이상으로 하는 것을 보고 자기도 그 모양으로 솔이를 이상으로 하였다. 영채가 일찍 월화에게 안기며,
"형님! 형님과 저와 솔이와 세 사람이 친구가 됩시다."
한 일이 있었다. 그러고 나도 반드시 월화 형님과 같이 솔이가 되리라 하였다.
월화의 얼굴과 재주를 보고 여러 남자가 침을 흘리며 모여들었다. 그러한 사람들 중에는 부자도 있고 미남자도 있었다. 그 사람들은 다투어 옷을 잘 입고 금시계와 금반지를 끼고 아무리 하여서라도 월화의 사랑을 얻으려 하였다. 그러나 월화가 머릿속에 그리는 남자는 그러한 경박자는 아니었다. 월화는 이태백을 생각하고 고적(高適)과 왕창령(王昌齡) 같은 성당시대(盛唐時代)의 시인을 생각하고 양창곡(楊昌曲)과 이도령(李道令)을 생각하였다. 그러나 월화의 주위에 모여드는 남자들 중에는 하나도 그러한 사람이 없고 다만 '돈'과 '육욕'이 있는 사람뿐이었다. 월화는 어느 요리점 같은 데 불려 갔다가 밤이 깊어 돌아오는 길에 영채를 찾아와서는 흔히 눈물을 흘리며,
"영채야, 세상이 왜 이렇게 적막하냐. 평양 천지에 사람 같은 사람을 볼 수가 없구나."
하였다. 영채는 아직 그것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거니와 대체 '제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어니 하였다. 그러고는 영채는 어린 생각에 '나는 이형식이가 있는데' 하였다.
월화는 점점 세상을 비감하게 되었다. 그가 영채에게 당시를 가르치다 흔히 영채를 꼭 껴안고 눈물을 흘리며,
"영채야, 네나 내나 왜 이러한 조선에 났겠느냐?"
하였다. 그때에 영채는 무슨 뜻인지 모르고,
"그러면 어디 났으면 좋겠소?"
하였다. 월화는 영채의 어린 것을 불쌍히 여기는 듯이,
"너는 아직 모르는구나."
하였다. 월화는 성당시대 강남에 나지 못한 것을 한하였다. 탁문군은 자기언마는 봉황곡으로 자기를 후리는 사마상여의 없음을 한하였다. 월화의 생각에는 하늘이 대동강을 내시매, 모란봉을 또 내셨으니 계월화는 대동강이 되려니와 누가 모란봉이 되어 봄에는 꽃으로, 가을에는 단풍으로 그 그림자를 부벽루 앞에 비추리요 하였다.
월화는 조선 사람의 무지하고 야속함을 원망하였다. 더구나 평양 남자에 일개 시인이 없고 일개 문사가 없음을 한하였다. 그가 나이 이십이 되도록 한 번도 자기의 뜻에 맞는 남자를 만나지 못하고 슬픈 마음과 세상을 경멸하는 비웃음으로 옛날 시를 읊고 저도 시와 노래를 짓기로 유일의 벗을 삼았었다. 그러고 영채를 사랑하여 친동생같이 귀애하며, 시 읽기와 시 짓기를 가르치고 마음이 슬픈 때에는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채에게 자기의 회포를 말하였다. 그러할 때마다 영채는,
"형님!"
하고 월화의 가슴에 안겨 울었다.
일찍 어느 연회에 평양 성내 소위 일류 인사들과 일등 명기가 일제히 모였다. 이(른 여름) 바람 잔잔한 모란봉 밑 부벽루가 그 회장이었다. 그때 월화가 영채에게,
"야 영채야, 너는 보느냐?"
하고 한편 구석에 끌고 가서 귓속말을 하였다.
"무엇이오?"
하고 영채는 좌석을 돌아보았다. 월화는 영채의 귀에 입을 대고,
"저기 모인 저 사람들이 평양의 일류 명사란다. 그런데 저 소위 일류 명사란 것이 모두 다 허자비에게 옷 입혀 놓은 것이란다."
하고 다시 기생들을 가리키며,
"저것들은 소리와 몸을 팔아먹고 사는 더러운 계집년들이란다."
하였다. 그때에는 영채가 열다섯 살이었다. 그러므로 전보다 분명하게 월화의 말하는 뜻을 알아들었다. 그러고,
"참 그렇소."
하고 조고마한 고개를 까닥까닥 흔들었다. 이러한 말을 할 때에 어떤 양복 입은 신사가 웃으며 월화의 곁에 오더니 목에 손을 얹으며, "야 월화야, 어째 여기 섰느냐" 하고 끌고 가려 한다. 이 신사는 그때에 한창 월화에게 미쳤던 평양 일부 김윤수의 맏아들이니, 지금 나이 삼십여 세에 여태껏 하여 온 일이 기생 오입밖에 없었다. 월화는 무론 이 사람을 천히 여겼다. 그래서 이 사람 앞에서도 '솔이 솔이 하니'를 불렀다. 이때에 월화는 너무 불쾌하여,
"왜 이러시오?"
하고 몸을 뿌리쳤다. 뒤에 알아본즉, 이때에 이 좌석에 월화의 마음을 끄는 어떤 신사가 있었더라. 그는 어떠한 사람이며 그와 월화와의 관계는 장차 어찌 될는고.
32
그 연회로서 돌아오는 길에 영채는 월화를 따라 청류벽 밑으로 산보하였다. 그때에 마침 평양 패성중학(대성학교를 모델로 한 것임. 신문연재본과 신문관본에는 모두 '패성학교'로 되어 있으며, 삼중당 전집 이후 현재는 대성학교로 고쳐져 있음. 이하 동일―편자 주)이라는 학교의 학생 사오 인이 청류벽 바위 위에 서서 유쾌하게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래는 이러하다.
굽이지는 대동강이
능라도를 싸고도니
둥두렷한 모란봉이
우쭐우쭐 춤을 추네
청류벽에 걸어앉아
가는 물아 말을 들어
청춘의 더운 피를
네게 부쳐 보내고저
월화가 영채의 소매를 당기며,
"얘, 저 노래를 듣느냐."
"매우 듣기 좋습니다."
월화는 한숨을 쉬며,
"저 속에 시인이 있기는 있고나"
하고 잠연히 눈물을 흘렸다. 영채는 무슨 뜻인지 모르고 다만 청류벽 위에서 노래 부르던 학생들을 보았다. 학생들은 여전히 노래를 부르는데 두루막자락이 바람에 펄펄 날린다. 영채도 어째 자연히 그 학생들이 정다운 듯하고 알 수 없는 설움이 가슴에 떠오르는 듯하여 월화의 어깨에 엎데어 월화와 함께 울었다. 월화는 영채를 안으며,
"영채야, 저 속에 참시인이 있느니라"
하고 아까 하던 말을 또 한다. "우리가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이다. 그것들은 먹고 입고, 계집 희롱하는 것밖에 아무것도 없는 것들이니라. 그러나 저 학생들 속에 참시인이 있느니라."
이때에 학생이 또 다른 노래를 부른다.
새벽빛이 솟는다
해가 오른다
땅 위에 만물이
기뻐 춤을 추노나
천하 사람 꿈꿀 제
나만 일어나
하늘을 우러러
슬픈 노래 부르네
월화는 못 견디어하는 듯이 발을 동동 굴렀다. 영채더러,
"이애, 저기 올라가 보자."
그러자 이 말이 끝나기 전에 학생들은 모자를 벗어 두르고 저편 고개로 넘어가고 말았다. 월화는 길가 돌 위에 펄썩 주저앉아서 아까 학생들이 부르던 노래를 십여 차나 불러 보았다. 영채도 자연히 그 노래가 마음에 드는 듯하여 월화와 함께 십여 차나 불렀다. 그러고 월화는 한참이나 지금 학생들 섰던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학생들은 다시는 보이지 아니하였다.
그로부터 월화는 더욱 우는 날이 많게 되었다. 영채는 월화와 함께 울고, 틈이 있는 대로는 월화와 같이 있었다. 영채는 더욱더욱 월화에게 정이 들고 월화도 더욱더욱 영채를 사랑하였다. 열다섯 살이나 된 영채는 차차 월화의 뜻을 알게 되었다. 뜻을 알게 될수록 월화의 눈물에 동정하게 되었다. 영채도 점점 미인이라는 이름과 노래 잘하고 단율 잘 짓는다는 이름이 나서, 영채라는 오늘 아침에 핀 꽃을 제가 꺾으리라 하는 사람이 많게 되었다. 그리하여 일찍 월화가 부벽루에서 하던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부벽루 연회 이래로 월화의 변하고 괴로워하는 모양을 보매, 어린 영채도 월화에게 무슨 일이 생긴 줄은 짐작하였다. 영채도 이제는 남자가 그리운 생각이 나게 되었다. 못 보던 남자를 대할 때에는 얼굴도 후끈후끈하고, 밤에 혼자 자리에 누워 잘 때에는 품어 줄 누구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나게 되었다. 한번은 영채와 월화가 연회에서 늦게 돌아와 한자리에서 잘 때에 영채가 자면서 월화를 꼭 껴안으며, 월화의 입을 맞추는 것을 보고 월화는 혼자 웃으며,
"아아, 너도 깨었구나― 네 앞에 설움과 고생이 있겠구나"
하고 영채를 깨워,
"영채야, 네가 지금 나를 꼭 껴안고 입을 맞추더구나"
하였다. 영채는 부끄러운 듯이 낯을 월화의 가슴의(가슴에) 비비고 월화의 하얀 젖꼭지를 물며,
"형님이니 그렇지"
하였다.
이만큼 영채도 철이 났으므로 월화의 눈물에는 반드시 무슨 뜻이 있으리라 하였다. 그러고 물어 볼까 물어 볼까 하면서도 자연히 제가 부끄러워 물어 보지 못하고, 다만 영채 혼자 생각에 아마 월화가 그때 청류벽에서 노래 부르던 학생을 생각하는 게로다 하였다. 영채의 눈에도 그 청류벽에서 노래 부르던 학생의 모양이 잊히지를 아니한다. 무론 길에서 청류벽을 바라보면, 그 위에 선 사람의 얼굴의 윤곽이 보일 뿐이요 눈과 코도 잘 분별하지는 못하겠으나, 다만 거룩한 듯한 모양과 깨끗한 목소리와 뜻있고 아름다운 노래가 두 여자의 가슴을 서느렇게 한 것이라. 그 청년들은 아마 무심하게 그 노래를 불렀으련마는 아직 '진실한 사람', '정성 있는 사람', '희망 있는 사람', '사람다운 사람'을 만나 보지 못하던 그네에게는 그 학생들의 모양과 노래가 지극히 분명하게 청신하게 인상이 박힌 것이라. 영채는 가만히 그 노래 부르던 학생들과, 지금껏 같이 놀던 소위 신사들을 비교할 때에 아무리 하여도 그 학생이 정이 든다 하였다. 영채는 근래에 더욱 가슴속이 서늘하고 몸이 간질간질하고 자연히 마음이 적막함을 깨닫는다. 월화가 물끄러미 자기의 얼굴을 볼 때에는, 혹 자기의 속을 꿰뚫어보지나 아니하는가 하여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월화도 영채의 마음이 점점 익어 옴을 깨달았다. 그러고 자기의 과거를 생각하매, 영채의 장래에 설움이 많을 것을 생각하였다. 그래서 월화는 영채가 잘못하여 세상에 섞이기를 두려워하는 모양으로 항상,
"영채야, 지금 세상에는 우리의 몸을 의탁할 만한 사람이 없나니라."
하고 옛날 시로 일생의 벗을 삼기를 권하였다.
영채는 월화의 눈물의 뜻을 알려 하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알 기회가 이르렀다.
그 연회로서 돌아오는 길에 영채는 월화를 따라 청류벽 밑으로 산보하였다. 그때에 마침 평양 패성중학(대성학교를 모델로 한 것임. 신문연재본과 신문관본에는 모두 '패성학교'로 되어 있으며, 삼중당 전집 이후 현재는 대성학교로 고쳐져 있음. 이하 동일―편자 주)이라는 학교의 학생 사오 인이 청류벽 바위 위에 서서 유쾌하게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래는 이러하다.
굽이지는 대동강이
능라도를 싸고도니
둥두렷한 모란봉이
우쭐우쭐 춤을 추네
청류벽에 걸어앉아
가는 물아 말을 들어
청춘의 더운 피를
네게 부쳐 보내고저
월화가 영채의 소매를 당기며,
"얘, 저 노래를 듣느냐."
"매우 듣기 좋습니다."
월화는 한숨을 쉬며,
"저 속에 시인이 있기는 있고나"
하고 잠연히 눈물을 흘렸다. 영채는 무슨 뜻인지 모르고 다만 청류벽 위에서 노래 부르던 학생들을 보았다. 학생들은 여전히 노래를 부르는데 두루막자락이 바람에 펄펄 날린다. 영채도 어째 자연히 그 학생들이 정다운 듯하고 알 수 없는 설움이 가슴에 떠오르는 듯하여 월화의 어깨에 엎데어 월화와 함께 울었다. 월화는 영채를 안으며,
"영채야, 저 속에 참시인이 있느니라"
하고 아까 하던 말을 또 한다. "우리가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이다. 그것들은 먹고 입고, 계집 희롱하는 것밖에 아무것도 없는 것들이니라. 그러나 저 학생들 속에 참시인이 있느니라."
이때에 학생이 또 다른 노래를 부른다.
새벽빛이 솟는다
해가 오른다
땅 위에 만물이
기뻐 춤을 추노나
천하 사람 꿈꿀 제
나만 일어나
하늘을 우러러
슬픈 노래 부르네
월화는 못 견디어하는 듯이 발을 동동 굴렀다. 영채더러,
"이애, 저기 올라가 보자."
그러자 이 말이 끝나기 전에 학생들은 모자를 벗어 두르고 저편 고개로 넘어가고 말았다. 월화는 길가 돌 위에 펄썩 주저앉아서 아까 학생들이 부르던 노래를 십여 차나 불러 보았다. 영채도 자연히 그 노래가 마음에 드는 듯하여 월화와 함께 십여 차나 불렀다. 그러고 월화는 한참이나 지금 학생들 섰던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학생들은 다시는 보이지 아니하였다.
그로부터 월화는 더욱 우는 날이 많게 되었다. 영채는 월화와 함께 울고, 틈이 있는 대로는 월화와 같이 있었다. 영채는 더욱더욱 월화에게 정이 들고 월화도 더욱더욱 영채를 사랑하였다. 열다섯 살이나 된 영채는 차차 월화의 뜻을 알게 되었다. 뜻을 알게 될수록 월화의 눈물에 동정하게 되었다. 영채도 점점 미인이라는 이름과 노래 잘하고 단율 잘 짓는다는 이름이 나서, 영채라는 오늘 아침에 핀 꽃을 제가 꺾으리라 하는 사람이 많게 되었다. 그리하여 일찍 월화가 부벽루에서 하던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부벽루 연회 이래로 월화의 변하고 괴로워하는 모양을 보매, 어린 영채도 월화에게 무슨 일이 생긴 줄은 짐작하였다. 영채도 이제는 남자가 그리운 생각이 나게 되었다. 못 보던 남자를 대할 때에는 얼굴도 후끈후끈하고, 밤에 혼자 자리에 누워 잘 때에는 품어 줄 누구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나게 되었다. 한번은 영채와 월화가 연회에서 늦게 돌아와 한자리에서 잘 때에 영채가 자면서 월화를 꼭 껴안으며, 월화의 입을 맞추는 것을 보고 월화는 혼자 웃으며,
"아아, 너도 깨었구나― 네 앞에 설움과 고생이 있겠구나"
하고 영채를 깨워,
"영채야, 네가 지금 나를 꼭 껴안고 입을 맞추더구나"
하였다. 영채는 부끄러운 듯이 낯을 월화의 가슴의(가슴에) 비비고 월화의 하얀 젖꼭지를 물며,
"형님이니 그렇지"
하였다.
이만큼 영채도 철이 났으므로 월화의 눈물에는 반드시 무슨 뜻이 있으리라 하였다. 그러고 물어 볼까 물어 볼까 하면서도 자연히 제가 부끄러워 물어 보지 못하고, 다만 영채 혼자 생각에 아마 월화가 그때 청류벽에서 노래 부르던 학생을 생각하는 게로다 하였다. 영채의 눈에도 그 청류벽에서 노래 부르던 학생의 모양이 잊히지를 아니한다. 무론 길에서 청류벽을 바라보면, 그 위에 선 사람의 얼굴의 윤곽이 보일 뿐이요 눈과 코도 잘 분별하지는 못하겠으나, 다만 거룩한 듯한 모양과 깨끗한 목소리와 뜻있고 아름다운 노래가 두 여자의 가슴을 서느렇게 한 것이라. 그 청년들은 아마 무심하게 그 노래를 불렀으련마는 아직 '진실한 사람', '정성 있는 사람', '희망 있는 사람', '사람다운 사람'을 만나 보지 못하던 그네에게는 그 학생들의 모양과 노래가 지극히 분명하게 청신하게 인상이 박힌 것이라. 영채는 가만히 그 노래 부르던 학생들과, 지금껏 같이 놀던 소위 신사들을 비교할 때에 아무리 하여도 그 학생이 정이 든다 하였다. 영채는 근래에 더욱 가슴속이 서늘하고 몸이 간질간질하고 자연히 마음이 적막함을 깨닫는다. 월화가 물끄러미 자기의 얼굴을 볼 때에는, 혹 자기의 속을 꿰뚫어보지나 아니하는가 하여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월화도 영채의 마음이 점점 익어 옴을 깨달았다. 그러고 자기의 과거를 생각하매, 영채의 장래에 설움이 많을 것을 생각하였다. 그래서 월화는 영채가 잘못하여 세상에 섞이기를 두려워하는 모양으로 항상,
"영채야, 지금 세상에는 우리의 몸을 의탁할 만한 사람이 없나니라."
하고 옛날 시로 일생의 벗을 삼기를 권하였다.
영채는 월화의 눈물의 뜻을 알려 하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알 기회가 이르렀다.
33
하루 저녁에는 월화가 영채를 찾아와서 연설 구경을 가자고 한다. 그때에 평양에는 패성학교라는 새로운 학교가 일어나, 사방으로서 수백 명 청년이 모여들고, 패성학교장 함상모는 그 수백여 명 청년의 진정으로 앙모하는 선각자러라. 함교장은 매주일에 일차씩 패성학교 내에 연설회를 열고, 아무나 와서 방청하기를 청하였다. 평양 사람들은, 혹은 새로운 말을 들으리라는 정성으로, 혹은 다만 구경이나 하리라는 호기심으로 저녁 후면 패성학교 대강당이 터지도록 모여들었다. 함교장은 열성이 있고 웅변이 있었다. 그가 슬픈 말을 하게 되면 청중은 모두 눈물을 흘리고, 그가 기쁜 말을 하게 되면 청중은 모두 손뼉을 치고 쾌하다 부르짖으며, 그가 만일 무슨 악한 일을 꾸짖게 되면 청중은 눈꼬리가 찢어지고 입에 거품을 물었다. 그의 말하는 제목은, 조선 사람도 남과 같이 옛날 껍데기를 벗어 버리고 새로운 문명을 실어 들여야 할 일과, 지금 조선 사람은 게으르고 기력이 없나니 새롭고 잘사는 민족이 되려거든 불가불 새 정신을 가지고 새 용기를 내어야 한다는 것과, 이렇게 하려면 교육이 으뜸이니 아들이나 딸이나 반드시 새로운 교육을 받아야 한다 함이라.
영채도 함교장이란 말도 듣고, 함교장이 연설을 잘한다는 말도 들었으므로 월화를 따라 패성학교에 갔다. 두 사람은 (아무쪼록) 검소한 의복을 입었으나 얼굴과 태도를 속일 수가 없으며, 또 양인이 다 지금 평양에 이름난 기생이라 모이는 사람들 중에 손가락질하고 소곤소곤하는 것이 보인다. 월화와 영채는 회중을 헤치고 들어가 저편 구석에 가지런히 앉았다. 어떤 사람은 일부러 등을 밀치기도 하고 발을 밟기도 하고, 혹 제 손으로 두 사람의 손을 스치기도 하고, 혹 어떤 사람은 월화의 겨드랑에 손을 넣는 자도 있다. 월화는,
"너희는 기생이란 것만 알고, 사람이란 것은 모르는구나."
하고 영채를 안는 듯이 앞세우고 들어간 것이라. 부인계에는 연설을 들을 자도 없고 들으려 하는 자도 없으매, 별로 부인석이란 것이 있지 아니하므로 남자들 앉은 걸상 한편 옆에 앉았다. 함교장이 이윽고 부인이 있음을 보더니 어떤 학생을 불러 무슨 말을 한다. 그 학생이 의자 둘을 가져다가 맨 앞줄 왼편 끝에 놓더니 두 사람 곁에 와서 은근히 경례하면서,
"저편으로 와 앉으십시오."
하고 두 사람을 인도한다. 두 사람은 기생 된 뒤에 첫번 사람다운 대접을 받는다 하였다. 이윽고 학생들이 들어와 착석한다. 월화는 저 학생들이 자기를 보는가 하고, 가만히 학생들의 동정을 보았다. 그러나 학생들은 모두 정면한 대로 까딱도 아니하고 앉았다. 월화는 영채를 보고 가만히,
"얘, 저 학생들은 우리가 보던 사람과는 딴세상 사람이지?"
하였다. 과연 함교장은 청년을 잘 교육하였다. 설혹 개성을 무시하고 만인을 한 모형에 집어넣으려는 구식 교육가의 때를 아주 다 벗지는 못하였으나, 그래도 당시 조선에는 유일한 가장 진보하고 열성 있는 교육가였다. 과연 평양 성내에 월화를 보고 눈에 음란한 웃음을 아니 띄우는 자는 패성학교 학생밖에 없을 것이라. 학생들도 만일 월화를 본다 하면 '어여쁘다' 하는 생각이 날는지도 모르고, '한번 더 보자' 하는 생각이 날는지도 모르거니와, 그네는 결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저것을 하룻밤 데리고 놀았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두지 아니한다. 또 설혹 그네가 '저것을 내 것을 삼았으면' 하는 생각이 난다 하더라도 결코 다른 사람들과 같이 (무릎에 앉히고) 희롱하려 함이 아니요, '나의 아내를 삼아 사랑하고 공경하리라' 함이라. 다른 사람들은 월화를 다만 한 장난감으로 알되, 그네는 비록 기생을 천히 여긴다 하더라도 그 역시 내 동포여니 내 누이어니 하는 생각은 있다.
이윽고 함교장이 연단에 올라선다. 만장에 박수가 일어나고, 월화도 두어 번 박수한다. 영채는 옳지 부벽루에서 말하던 이로구나 하였다. (함교장은) 위엄 있는 태도로 이윽히 회중을 내려다보더니,
"여러분."
하고 입을 열어,
"여러분의 조상은 결코 여러분과 같이 마음이 썩어지지 아니하였고, 여러분과 같이 게으르고 기운 없지 아니하였소. 평양성을 쌓은 우리 조상의 기상은 웅대하였고, 을밀대와 부벽루를 지은 우리 조상의 뜻은 컸소이다."
하고 감개무량한 듯이 한참 고개를 숙이더니,
"여러분! 저 대동강에 물은 날로 흘러가느니, 평양성을 쌓고 을밀대를 짓는 우리 조상의 그림자를 비추었던 물은 지금 어디 간 곳을 알지 못하되, 오직 뚜렷한 모란봉은 만고에 한 모양으로 우리 조상의 발자국을 지니고 섰소이다. 아아, 여러분 아, 여러분의 웅장한 조상에게 받은 정신을 흘러가는 대동강에 부쳤는가, 만고에 우뚝 솟은 모란봉에 부쳤는가."
하고 흐르는 눈물로써 말을 잠깐 그치니, 만장이 숙연히 고개를 숙인다. 함교장은 여러 가지로 조선 사람의 타락한 것을 개탄한 뒤에 일단 더 소리를 높여,
"여러분! 여러분은 이 무너져 가는 평양성과 을밀대를 다 헐어 내어 흘러가는 대동강수에 부쳐 보내고, 우리의 새로운 정신과 새로운 기운으로 새로운 평양성과 새로운 을밀대를 쌓읍시다."
하고 유연히 단을 내리니 만장이 박수갈채성에 한참이나 흔들리는 듯하다. 월화는 영채의 손을 꼭 쥐고 몸을 바르르 떤다. 영채는 놀라서 월화를 보니, 무릎 위 치맛자락에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라.
영채도 함교장의 풍채를 보고 연설을 들으매, 돌아가신 아버지의 생각이 나서 울면서 월화를 따라 집에 돌아왔다. 그러나 월화의 눈물은 영채의 눈물과는 달랐다. 월화의 눈물은 어떠한 눈물이던고.
하루 저녁에는 월화가 영채를 찾아와서 연설 구경을 가자고 한다. 그때에 평양에는 패성학교라는 새로운 학교가 일어나, 사방으로서 수백 명 청년이 모여들고, 패성학교장 함상모는 그 수백여 명 청년의 진정으로 앙모하는 선각자러라. 함교장은 매주일에 일차씩 패성학교 내에 연설회를 열고, 아무나 와서 방청하기를 청하였다. 평양 사람들은, 혹은 새로운 말을 들으리라는 정성으로, 혹은 다만 구경이나 하리라는 호기심으로 저녁 후면 패성학교 대강당이 터지도록 모여들었다. 함교장은 열성이 있고 웅변이 있었다. 그가 슬픈 말을 하게 되면 청중은 모두 눈물을 흘리고, 그가 기쁜 말을 하게 되면 청중은 모두 손뼉을 치고 쾌하다 부르짖으며, 그가 만일 무슨 악한 일을 꾸짖게 되면 청중은 눈꼬리가 찢어지고 입에 거품을 물었다. 그의 말하는 제목은, 조선 사람도 남과 같이 옛날 껍데기를 벗어 버리고 새로운 문명을 실어 들여야 할 일과, 지금 조선 사람은 게으르고 기력이 없나니 새롭고 잘사는 민족이 되려거든 불가불 새 정신을 가지고 새 용기를 내어야 한다는 것과, 이렇게 하려면 교육이 으뜸이니 아들이나 딸이나 반드시 새로운 교육을 받아야 한다 함이라.
영채도 함교장이란 말도 듣고, 함교장이 연설을 잘한다는 말도 들었으므로 월화를 따라 패성학교에 갔다. 두 사람은 (아무쪼록) 검소한 의복을 입었으나 얼굴과 태도를 속일 수가 없으며, 또 양인이 다 지금 평양에 이름난 기생이라 모이는 사람들 중에 손가락질하고 소곤소곤하는 것이 보인다. 월화와 영채는 회중을 헤치고 들어가 저편 구석에 가지런히 앉았다. 어떤 사람은 일부러 등을 밀치기도 하고 발을 밟기도 하고, 혹 제 손으로 두 사람의 손을 스치기도 하고, 혹 어떤 사람은 월화의 겨드랑에 손을 넣는 자도 있다. 월화는,
"너희는 기생이란 것만 알고, 사람이란 것은 모르는구나."
하고 영채를 안는 듯이 앞세우고 들어간 것이라. 부인계에는 연설을 들을 자도 없고 들으려 하는 자도 없으매, 별로 부인석이란 것이 있지 아니하므로 남자들 앉은 걸상 한편 옆에 앉았다. 함교장이 이윽고 부인이 있음을 보더니 어떤 학생을 불러 무슨 말을 한다. 그 학생이 의자 둘을 가져다가 맨 앞줄 왼편 끝에 놓더니 두 사람 곁에 와서 은근히 경례하면서,
"저편으로 와 앉으십시오."
하고 두 사람을 인도한다. 두 사람은 기생 된 뒤에 첫번 사람다운 대접을 받는다 하였다. 이윽고 학생들이 들어와 착석한다. 월화는 저 학생들이 자기를 보는가 하고, 가만히 학생들의 동정을 보았다. 그러나 학생들은 모두 정면한 대로 까딱도 아니하고 앉았다. 월화는 영채를 보고 가만히,
"얘, 저 학생들은 우리가 보던 사람과는 딴세상 사람이지?"
하였다. 과연 함교장은 청년을 잘 교육하였다. 설혹 개성을 무시하고 만인을 한 모형에 집어넣으려는 구식 교육가의 때를 아주 다 벗지는 못하였으나, 그래도 당시 조선에는 유일한 가장 진보하고 열성 있는 교육가였다. 과연 평양 성내에 월화를 보고 눈에 음란한 웃음을 아니 띄우는 자는 패성학교 학생밖에 없을 것이라. 학생들도 만일 월화를 본다 하면 '어여쁘다' 하는 생각이 날는지도 모르고, '한번 더 보자' 하는 생각이 날는지도 모르거니와, 그네는 결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저것을 하룻밤 데리고 놀았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두지 아니한다. 또 설혹 그네가 '저것을 내 것을 삼았으면' 하는 생각이 난다 하더라도 결코 다른 사람들과 같이 (무릎에 앉히고) 희롱하려 함이 아니요, '나의 아내를 삼아 사랑하고 공경하리라' 함이라. 다른 사람들은 월화를 다만 한 장난감으로 알되, 그네는 비록 기생을 천히 여긴다 하더라도 그 역시 내 동포여니 내 누이어니 하는 생각은 있다.
이윽고 함교장이 연단에 올라선다. 만장에 박수가 일어나고, 월화도 두어 번 박수한다. 영채는 옳지 부벽루에서 말하던 이로구나 하였다. (함교장은) 위엄 있는 태도로 이윽히 회중을 내려다보더니,
"여러분."
하고 입을 열어,
"여러분의 조상은 결코 여러분과 같이 마음이 썩어지지 아니하였고, 여러분과 같이 게으르고 기운 없지 아니하였소. 평양성을 쌓은 우리 조상의 기상은 웅대하였고, 을밀대와 부벽루를 지은 우리 조상의 뜻은 컸소이다."
하고 감개무량한 듯이 한참 고개를 숙이더니,
"여러분! 저 대동강에 물은 날로 흘러가느니, 평양성을 쌓고 을밀대를 짓는 우리 조상의 그림자를 비추었던 물은 지금 어디 간 곳을 알지 못하되, 오직 뚜렷한 모란봉은 만고에 한 모양으로 우리 조상의 발자국을 지니고 섰소이다. 아아, 여러분 아, 여러분의 웅장한 조상에게 받은 정신을 흘러가는 대동강에 부쳤는가, 만고에 우뚝 솟은 모란봉에 부쳤는가."
하고 흐르는 눈물로써 말을 잠깐 그치니, 만장이 숙연히 고개를 숙인다. 함교장은 여러 가지로 조선 사람의 타락한 것을 개탄한 뒤에 일단 더 소리를 높여,
"여러분! 여러분은 이 무너져 가는 평양성과 을밀대를 다 헐어 내어 흘러가는 대동강수에 부쳐 보내고, 우리의 새로운 정신과 새로운 기운으로 새로운 평양성과 새로운 을밀대를 쌓읍시다."
하고 유연히 단을 내리니 만장이 박수갈채성에 한참이나 흔들리는 듯하다. 월화는 영채의 손을 꼭 쥐고 몸을 바르르 떤다. 영채는 놀라서 월화를 보니, 무릎 위 치맛자락에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라.
영채도 함교장의 풍채를 보고 연설을 들으매, 돌아가신 아버지의 생각이 나서 울면서 월화를 따라 집에 돌아왔다. 그러나 월화의 눈물은 영채의 눈물과는 달랐다. 월화의 눈물은 어떠한 눈물이던고.
34
집에 돌아와 월화는 펄썩 주저앉으며 영채더러,
"영채야, 나는 내가 구하던 사람을 찾았다. 나는 부벽루에서 함교장의 풍채를 보고 말을 들으매, 자연히 정신이 황홀하여짐을 깨달았다. 그러고 오늘 저녁 그의 풍채와 말을 또 들으니, 내 마음은 온통 그이게로 가고 말았다. 조선 천지에서 내가 찾던 사람을 이제야 만났구나."
하고 빙긋이 웃는다. 영채는 그제야 월화의 눈물 뜻을 깨달았다. 자기는 함교장을 아버지같이 생각하였는데, 월화는 자기의 정든 님같이 생각하더구나 하였다. 그러고는 다시 월화의 얼굴을 보았다. 월화의 눈썹에는 맑은 눈물이 맺혔다. 월화는 다시,
"영채야, 너는 그때에 부벽루에서 부르던 노래 뜻을 아느냐?
천하 사람 꿈꿀 제
나만 일어나
하늘을 우러러
슬픈 노래 부르네
이 노래 뜻을 아느냐?"
영채는 아는 듯도 하면서도 말할 수는 없어 잠자코 앉았다. 월화는 영채를 이윽히 보더니,
"온 조선 사람이 다 자고 꿈을 꾸는데 함교장 혼자 깨어 일어났구나. 우리를 찾아오는 소위 일류 신사님네는 다 자는 사람들인데, 그 속에 깨어 일어난 것은 함교장뿐이로구나."
영채는 과연 그럴듯하다 하고,
"그러면 왜 하늘을 우러러 슬픈 노래를 부르나요?"
"깨어 일어나 본즉 천하 사람은 아직도 꿈을 꾸겠지. 암만 깨어라 깨어라 하여도 깰 줄은 모르고 잠꼬대만 하니 왜 외롭고 슬프지를 아니하겠느냐. 그러니까 하늘을 우러러 슬픈 노래를 부르는 것이지"
하고 영채의 손을 잡아 끌어다가 자기의 무릎 위에 엎디게 하고,
"그런데 나도 역시 하늘을 우러러 슬픈 노래를 부른다."
영채는 얼마큼 알아들으면서도,
"왜? 왜 슬픈 노래를 불러?"
"평양성내 오륙십 명 기생 중에 나밖에 깨인 사람이 누구냐. 모두 다 사람이 무엇인지, 하늘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중에 나밖에 깨인 사람이 누구냐. 나는 외롭구나, 슬프구나, 내 정회를 들어 줄 사람이라고는 너 하나밖에 없구나"
하고 영채의 등에 이마를 비비며 영채의 허리를 끊어져라 하고 끌어안는다. 영채는 이제는 월화의 하는 말을 다 알아듣는다. 월화는 다시 말을 이어,
"나는 지금 스무 살이다. 나는 이십 년 동안 찾던 친구를 이제는 찾아 만났다. 그러나 만나고 본즉 그는 잠시 만날 친구요, 오래 이야기하지 못할 친군 줄을 알았다. 그러니까 나는 그만 갈란다"
하고 영채를 일으켜 앉히며 더욱 다정한 말소리로,
"야, 너와 나와 삼 년 동안 동기같이 지내었구나. 이것도 무슨 큰 연분이로다. 안주 땅에 난 너와 평양 땅에 난 나와 이렇게 만나서 이렇게 정답게 지낼 줄을 사람이야 누가 뜻하였겠느냐. 이후도 나를 잊지 말고 '형님'이라고 불러 다고."
하면서 그만 울며 쓰러진다. 영채는 월화의 말이 이상하게 들려 몸에 오싹 소름이 끼치면서,
"형님! 왜 오늘 저녁에는 그런 말씀을 하셔요?"
하였다. 월화는 일어나 눈물을 씻고(뿌리고 망연히 앉았다가),
"너는 부디 세상 사람에게 속지 말고 일생을 너 혼자 살아라, 옛날 사람으로 벗을 삼아라, 만일 네 마음에 드는 사람 만나지 못하거든."
한다. 이런 말을 하고 그날 밤도 둘이서 한자리에 잤다. 둘은 얼굴을 마주대고 서로 꽉 안았다. 그러나 나 어린 영채는 어느덧 잠이 들었다. 월화는 숨소리 편안하게 잠이 든 영채의 얼굴을 이윽히 보고 있다가 힘껏 영채의 입술을 빨았다. 영채는 잠이 깨지 아니한 채로 고운 팔로 월화의 목을 꼭 쓸어안았다. 월화의 몸은 벌벌 떨린다. 월화는 가만히 일어나 장문을 열고 서랍에서 자기의 옥지환을 내어 자는 영채의 손에 끼우고 또 영채를 꼭 껴안았다.
짧은 여름밤이 새었다. 영채는 어렴풋이 잠을 깨어 팔로 월화를 안으려 하였다. 그러나 월화가 누웠던 자리는 비었다. 영채는 깜짝 놀라 일어나서,
"형님! 형님!"
하고 불렀다. 그러나 대답이 없었다. 영원히 없었다. 영채는 자기 손에 낀 옥가락지를 보고 울었다. 그날 저녁때에 대동강에서 낚시질하던 배가 시체 하나를 얻었다. 그것은 월화더라. 월화는 유언도 없었으며 아무도 그가 죽은 이유를 아는 자가 없고, 오직 옥가락지를 낀 영채가 홀로 월화의 뜻을 알고 뜨거운 눈물을 흘릴 뿐, 그 소위 어미는 '안된년!' 하고 돈벌이할 밑천이 없어진 것을 원망하고, 평양 일부 김윤수의 아들은 '미친년!' 하고 자기의 희롱거리 없어짐을 한탄하더라. 그의 시체는 굵다란 베에 묶어 물지게꾼 이삼 인이 두루쳐 메어다가 북문 밖 북망산에 묻었다. 묻은 날 저녁때에 옥가락지 끼인 손이 꽃 한줌과, 눈물 한줌을 그 무덤 위에 뿌렸다. 비도 아니 세웠으니 지금이야 어느 것이 일대 명기 계월화의 무덤인 줄을 알리요. 함교장은 이런 줄이야 알았는지 말았는지. 계월화는 과연 영채의 '형님'이었다. 벗이었다. 월화는 참 영채를 사랑하였었다. 영채는 월화에게 큰 감화를 받았었다.
영채가 형식을 일생의 짝으로 알고 칠 년 동안 굳은 절을 지켜 온 것도 월화의 힘이 반이나 되었다. 영채도 생각하기를 이형식을 찾다가 못 찾으면 월화의 뒤를 따라 대동강에 몸을 던지리라 하였었다. 하다가 우연히 이형식의 거처를 알고, 이제는 내 소원을 이루었구나 하였다. 그러나 만일 형식이가 이미 혼인을 하였으면 어찌할까, 혼인을 아니했더라도 내 몸이 기생인 줄을 알고 나를 돌아보지 않으면 어찌할까 하였다. 형식의 거처를 안 지가 한 달이 넘도록 형식을 찾지 아니하고, 어젯 형식을 찾아가서 자기의 신세를 이야기하다가 중도에 끊고 돌아옴도 이를 위함이러라. 형식의 집에서 돌아온 영채는 어떻게 되었는가.
집에 돌아와 월화는 펄썩 주저앉으며 영채더러,
"영채야, 나는 내가 구하던 사람을 찾았다. 나는 부벽루에서 함교장의 풍채를 보고 말을 들으매, 자연히 정신이 황홀하여짐을 깨달았다. 그러고 오늘 저녁 그의 풍채와 말을 또 들으니, 내 마음은 온통 그이게로 가고 말았다. 조선 천지에서 내가 찾던 사람을 이제야 만났구나."
하고 빙긋이 웃는다. 영채는 그제야 월화의 눈물 뜻을 깨달았다. 자기는 함교장을 아버지같이 생각하였는데, 월화는 자기의 정든 님같이 생각하더구나 하였다. 그러고는 다시 월화의 얼굴을 보았다. 월화의 눈썹에는 맑은 눈물이 맺혔다. 월화는 다시,
"영채야, 너는 그때에 부벽루에서 부르던 노래 뜻을 아느냐?
천하 사람 꿈꿀 제
나만 일어나
하늘을 우러러
슬픈 노래 부르네
이 노래 뜻을 아느냐?"
영채는 아는 듯도 하면서도 말할 수는 없어 잠자코 앉았다. 월화는 영채를 이윽히 보더니,
"온 조선 사람이 다 자고 꿈을 꾸는데 함교장 혼자 깨어 일어났구나. 우리를 찾아오는 소위 일류 신사님네는 다 자는 사람들인데, 그 속에 깨어 일어난 것은 함교장뿐이로구나."
영채는 과연 그럴듯하다 하고,
"그러면 왜 하늘을 우러러 슬픈 노래를 부르나요?"
"깨어 일어나 본즉 천하 사람은 아직도 꿈을 꾸겠지. 암만 깨어라 깨어라 하여도 깰 줄은 모르고 잠꼬대만 하니 왜 외롭고 슬프지를 아니하겠느냐. 그러니까 하늘을 우러러 슬픈 노래를 부르는 것이지"
하고 영채의 손을 잡아 끌어다가 자기의 무릎 위에 엎디게 하고,
"그런데 나도 역시 하늘을 우러러 슬픈 노래를 부른다."
영채는 얼마큼 알아들으면서도,
"왜? 왜 슬픈 노래를 불러?"
"평양성내 오륙십 명 기생 중에 나밖에 깨인 사람이 누구냐. 모두 다 사람이 무엇인지, 하늘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중에 나밖에 깨인 사람이 누구냐. 나는 외롭구나, 슬프구나, 내 정회를 들어 줄 사람이라고는 너 하나밖에 없구나"
하고 영채의 등에 이마를 비비며 영채의 허리를 끊어져라 하고 끌어안는다. 영채는 이제는 월화의 하는 말을 다 알아듣는다. 월화는 다시 말을 이어,
"나는 지금 스무 살이다. 나는 이십 년 동안 찾던 친구를 이제는 찾아 만났다. 그러나 만나고 본즉 그는 잠시 만날 친구요, 오래 이야기하지 못할 친군 줄을 알았다. 그러니까 나는 그만 갈란다"
하고 영채를 일으켜 앉히며 더욱 다정한 말소리로,
"야, 너와 나와 삼 년 동안 동기같이 지내었구나. 이것도 무슨 큰 연분이로다. 안주 땅에 난 너와 평양 땅에 난 나와 이렇게 만나서 이렇게 정답게 지낼 줄을 사람이야 누가 뜻하였겠느냐. 이후도 나를 잊지 말고 '형님'이라고 불러 다고."
하면서 그만 울며 쓰러진다. 영채는 월화의 말이 이상하게 들려 몸에 오싹 소름이 끼치면서,
"형님! 왜 오늘 저녁에는 그런 말씀을 하셔요?"
하였다. 월화는 일어나 눈물을 씻고(뿌리고 망연히 앉았다가),
"너는 부디 세상 사람에게 속지 말고 일생을 너 혼자 살아라, 옛날 사람으로 벗을 삼아라, 만일 네 마음에 드는 사람 만나지 못하거든."
한다. 이런 말을 하고 그날 밤도 둘이서 한자리에 잤다. 둘은 얼굴을 마주대고 서로 꽉 안았다. 그러나 나 어린 영채는 어느덧 잠이 들었다. 월화는 숨소리 편안하게 잠이 든 영채의 얼굴을 이윽히 보고 있다가 힘껏 영채의 입술을 빨았다. 영채는 잠이 깨지 아니한 채로 고운 팔로 월화의 목을 꼭 쓸어안았다. 월화의 몸은 벌벌 떨린다. 월화는 가만히 일어나 장문을 열고 서랍에서 자기의 옥지환을 내어 자는 영채의 손에 끼우고 또 영채를 꼭 껴안았다.
짧은 여름밤이 새었다. 영채는 어렴풋이 잠을 깨어 팔로 월화를 안으려 하였다. 그러나 월화가 누웠던 자리는 비었다. 영채는 깜짝 놀라 일어나서,
"형님! 형님!"
하고 불렀다. 그러나 대답이 없었다. 영원히 없었다. 영채는 자기 손에 낀 옥가락지를 보고 울었다. 그날 저녁때에 대동강에서 낚시질하던 배가 시체 하나를 얻었다. 그것은 월화더라. 월화는 유언도 없었으며 아무도 그가 죽은 이유를 아는 자가 없고, 오직 옥가락지를 낀 영채가 홀로 월화의 뜻을 알고 뜨거운 눈물을 흘릴 뿐, 그 소위 어미는 '안된년!' 하고 돈벌이할 밑천이 없어진 것을 원망하고, 평양 일부 김윤수의 아들은 '미친년!' 하고 자기의 희롱거리 없어짐을 한탄하더라. 그의 시체는 굵다란 베에 묶어 물지게꾼 이삼 인이 두루쳐 메어다가 북문 밖 북망산에 묻었다. 묻은 날 저녁때에 옥가락지 끼인 손이 꽃 한줌과, 눈물 한줌을 그 무덤 위에 뿌렸다. 비도 아니 세웠으니 지금이야 어느 것이 일대 명기 계월화의 무덤인 줄을 알리요. 함교장은 이런 줄이야 알았는지 말았는지. 계월화는 과연 영채의 '형님'이었다. 벗이었다. 월화는 참 영채를 사랑하였었다. 영채는 월화에게 큰 감화를 받았었다.
영채가 형식을 일생의 짝으로 알고 칠 년 동안 굳은 절을 지켜 온 것도 월화의 힘이 반이나 되었다. 영채도 생각하기를 이형식을 찾다가 못 찾으면 월화의 뒤를 따라 대동강에 몸을 던지리라 하였었다. 하다가 우연히 이형식의 거처를 알고, 이제는 내 소원을 이루었구나 하였다. 그러나 만일 형식이가 이미 혼인을 하였으면 어찌할까, 혼인을 아니했더라도 내 몸이 기생인 줄을 알고 나를 돌아보지 않으면 어찌할까 하였다. 형식의 거처를 안 지가 한 달이 넘도록 형식을 찾지 아니하고, 어젯 형식을 찾아가서 자기의 신세를 이야기하다가 중도에 끊고 돌아옴도 이를 위함이러라. 형식의 집에서 돌아온 영채는 어떻게 되었는가.
35
영채가 형식을 대하여 자기의 신세를 말하다가 문득 생각한즉 자기는 기생의 몸이라 형식이 아직 혼인 아니하였다는 말을 들으며 잠깐 기뻐하였으나, 자기가 기생인 줄을 알면 형식은 반드시 자기를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또 설혹 돌아볼 마음이 있다 하더라도 내 몸은 돈이 있고야 구원할 몸이어늘, 가만히 형식의 살림살이를 보매 자기를 구원할 능력이 없음을 깨달았다. 자기가 기생인 줄을 알려 일생에 그리워하던 형식에서 마음으로까지 버림이 되기보다, 또는 나를 버리지 아니하더라도 구원할 힘이 없어 사랑하는 형식으로 하여금 부질없이 마음을 괴롭게 하기보다, 이러하기보다 차라리 대동강수에 풍덩실 몸을 던져 오 년 전에 먼저 간 월화의 뒤를 따라 저세상에서 월화로 더불어 같이 노닐려 하였다. 월화의 얼굴이 영채의 앞에 보이며 '영채야 나와 같이 가자' 하는 듯하였다. 그래서 영채는 손에 있는 옥지환을 보다가 중도에 말을 끊고 집으로 돌아온 것이라.
영채는 곧 평양으로 내려갈 결심을 하였다. 몸을 던져 세상을 버릴진대 사랑하던 '월화 형님'의 몸을 던지던 대동강을 찾아가려 하였다. 평양에 가 우선 북망산에 아버지와 월화의 무덤을 찾아 그 동안 지내 오던 정회나 실컷 말하리라 하였다. 부친은 내가 기생 되었다는 말을 듣고 죽었으니 무덤에나마 가서 내가 기생으로 몸을 판 것은 부친과 두 형제를 구원하려 함임과, 기생이 된 지 육칠 년에 부친의 혈육을 받은 이 몸을 다행히 더럽히지 아니하였음과, 부친께서 이 몸을 허하신 이형식을 위하여 지금껏 아내의 절행을 지켜 온 것을 말하고, 죽은 후에 만일 영혼이 있거든 생전에 섬기지 못하던 한을 사후에나 풀리라 하였다. 만일 부친이 극락에 가셨거든 극락으로 찾아가고, 만일 지옥에 가셨거든 지옥으로 찾아가리라 하였다.
월화의 부탁을 나는 지켰다. 나는 세상에 섞이지 아니하고 내가 생각하는 사람을 위하여 육칠 년간 고절(苦節)을 지켰다. 나는 월화가 하다가 남겨 둔 생활을 하였다. 나는 이제 네게로 돌아간다 하리라.
이러한 생각을 하니 영채의 몸은 바로 그때에 그 학생들이 '천하 사람 꿈꾸는데 나만 깨어서, 하늘을 우러러 슬픈 노래 부르도다' 하는 노래를 부르던 학생들이 청류벽 위에 선 듯하다. 영채는 박명한 십구 년의 일생을 생각하였다. 더구나 형식을 대하였을 때에 말하던 과거의 기억이 바로 어저께 지난 일 모양으로 역력히 눈앞에 보이고, 그 모든 광경이 제가끔 영채의 가슴을 찌르고 창자를 박박 긁는 듯하다. 사람으로 세상에 생겨나서 즐거운 재미란 하나도 보지 못하고 꽃다운 청춘이 속절없이 대동강 무심한 물결 속에 스러질 것을 생각하니 원망스럽기도 하고 가이없고 원통하기도 하다. 십구 년 일생의 절반을 무정한 세상과 사람에게 부대끼고 희롱감이 되다가 매양에 그리고 바라던 이형식을 만나기는 만났으나 정작 만나고 보니 이형식은 나를 건져 줄 것 같지도 아니하고…… 아아, 이것이 무슨 팔자인고 하고 그날 밤이 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캄캄한 방에서 혼자 울었다. 이 팔은 어찌하여 생각하던 사람을 안아 보지 못하고, 이 젖은 어찌하여 사랑스러운 아들과 딸을 빨려 보지 못하는고, 가슴속에 가득 찬 정과 사랑을 생각하던 이에게 주어 보지 못하고 마는고. 내 몸은 일생에 '기생'이란 이름만 듣고, 어찌하여 '아내'라든가 '부인'이라든가 '어머니'라든가 '아주머니'라든가 하는 정답고 거룩한 이름을 못 듣고 마는고. '기생!' '기생!' 에그 듣기 싫은 이름이도다. '기생!'이라는 말만 하여도 치가 떨린다 하였다.
지금 황금을 가지고 자기의 몸을 사려는 사람이 사오 인이 된다고 한다. 지나간 칠 년 동안에 노래와 춤으로 수만 원 돈을 벌어 주어, 논밭도 사고 큰 집도 사고 비단 옷도 입게 되었으니 그만하면 자유로 놓아 주어도 마땅하건마는 아직도 욕심을 다 채우지 못하여 천 원이니 이천 원이니 하고 이 몸을 팔아먹으려 한다. 파는 놈도 파는 놈이어니와 사는 놈도 사는 놈이라. 지금까지는 이럭저럭 정절을 지켜 왔건마는 이제 몸이 뉘 첩으로 팔린 뒤에야 정절이 다 무슨 정절이뇨. 다만 죽을 뿐이다, 다만 죽을 뿐이다 하였다.
바라던 형식을 만나 본 것은 기쁘건마는 바라던 그 형식조차 나를 구원할 능력이 없는 것이 절통하다 하였다.
영채는 그만 절망하였다. 지금까지 자기는 잠시 타향에 길을 잃었다가 선한 세계, 선한 사람 사는 고향으로 돌아가 칠 년 전 자기의 가정에서 누리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까 하였더니 모두 다 허사로다 하였다. 지금껏 유일한 선인으로 알아 오고 유일한 의지할 사람으로 알아 오던 형식도 정작 얼굴을 대하니 그저 그러한 사람인 듯, 칠 년간 악인들 사이에서 부대껴 오던 영채의 생각에는 형식같이 선한 사람은 얼굴이며 풍채며 말하는 것이 온통 항용 사람과 다르리라 하였다. 그러나 만나고 본즉 그저 그러한 사람이로고나. 옳다 죽는 수밖에 없다. 대동강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구태 더러운 세상에 섞여 구차히 목숨을 늘여 가기는 차마 못 하리니 하루바삐 새맑은 대동강 물결 밑에서 정다운 월화를 만나 서로 안고 이야기하리라 하였다.
그러나 영채에게는 돈이 없었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몇 친구에게 돈 오 원을 취하려 하였다. 그러나 마침내 얻지 못하고 점심때가 지나도록 방에 앉아 울었다. 형식이가 김장로의 집에서 선형과 순애를 대하여 즐거운 상상에 취하였을 때는 정히 영채가 자기 방에서 눈물을 흘리고 애통하던 때였다. 이날 저녁에 영채를 찾아온 형식은 영채를 만났는가.
영채가 형식을 대하여 자기의 신세를 말하다가 문득 생각한즉 자기는 기생의 몸이라 형식이 아직 혼인 아니하였다는 말을 들으며 잠깐 기뻐하였으나, 자기가 기생인 줄을 알면 형식은 반드시 자기를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또 설혹 돌아볼 마음이 있다 하더라도 내 몸은 돈이 있고야 구원할 몸이어늘, 가만히 형식의 살림살이를 보매 자기를 구원할 능력이 없음을 깨달았다. 자기가 기생인 줄을 알려 일생에 그리워하던 형식에서 마음으로까지 버림이 되기보다, 또는 나를 버리지 아니하더라도 구원할 힘이 없어 사랑하는 형식으로 하여금 부질없이 마음을 괴롭게 하기보다, 이러하기보다 차라리 대동강수에 풍덩실 몸을 던져 오 년 전에 먼저 간 월화의 뒤를 따라 저세상에서 월화로 더불어 같이 노닐려 하였다. 월화의 얼굴이 영채의 앞에 보이며 '영채야 나와 같이 가자' 하는 듯하였다. 그래서 영채는 손에 있는 옥지환을 보다가 중도에 말을 끊고 집으로 돌아온 것이라.
영채는 곧 평양으로 내려갈 결심을 하였다. 몸을 던져 세상을 버릴진대 사랑하던 '월화 형님'의 몸을 던지던 대동강을 찾아가려 하였다. 평양에 가 우선 북망산에 아버지와 월화의 무덤을 찾아 그 동안 지내 오던 정회나 실컷 말하리라 하였다. 부친은 내가 기생 되었다는 말을 듣고 죽었으니 무덤에나마 가서 내가 기생으로 몸을 판 것은 부친과 두 형제를 구원하려 함임과, 기생이 된 지 육칠 년에 부친의 혈육을 받은 이 몸을 다행히 더럽히지 아니하였음과, 부친께서 이 몸을 허하신 이형식을 위하여 지금껏 아내의 절행을 지켜 온 것을 말하고, 죽은 후에 만일 영혼이 있거든 생전에 섬기지 못하던 한을 사후에나 풀리라 하였다. 만일 부친이 극락에 가셨거든 극락으로 찾아가고, 만일 지옥에 가셨거든 지옥으로 찾아가리라 하였다.
월화의 부탁을 나는 지켰다. 나는 세상에 섞이지 아니하고 내가 생각하는 사람을 위하여 육칠 년간 고절(苦節)을 지켰다. 나는 월화가 하다가 남겨 둔 생활을 하였다. 나는 이제 네게로 돌아간다 하리라.
이러한 생각을 하니 영채의 몸은 바로 그때에 그 학생들이 '천하 사람 꿈꾸는데 나만 깨어서, 하늘을 우러러 슬픈 노래 부르도다' 하는 노래를 부르던 학생들이 청류벽 위에 선 듯하다. 영채는 박명한 십구 년의 일생을 생각하였다. 더구나 형식을 대하였을 때에 말하던 과거의 기억이 바로 어저께 지난 일 모양으로 역력히 눈앞에 보이고, 그 모든 광경이 제가끔 영채의 가슴을 찌르고 창자를 박박 긁는 듯하다. 사람으로 세상에 생겨나서 즐거운 재미란 하나도 보지 못하고 꽃다운 청춘이 속절없이 대동강 무심한 물결 속에 스러질 것을 생각하니 원망스럽기도 하고 가이없고 원통하기도 하다. 십구 년 일생의 절반을 무정한 세상과 사람에게 부대끼고 희롱감이 되다가 매양에 그리고 바라던 이형식을 만나기는 만났으나 정작 만나고 보니 이형식은 나를 건져 줄 것 같지도 아니하고…… 아아, 이것이 무슨 팔자인고 하고 그날 밤이 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캄캄한 방에서 혼자 울었다. 이 팔은 어찌하여 생각하던 사람을 안아 보지 못하고, 이 젖은 어찌하여 사랑스러운 아들과 딸을 빨려 보지 못하는고, 가슴속에 가득 찬 정과 사랑을 생각하던 이에게 주어 보지 못하고 마는고. 내 몸은 일생에 '기생'이란 이름만 듣고, 어찌하여 '아내'라든가 '부인'이라든가 '어머니'라든가 '아주머니'라든가 하는 정답고 거룩한 이름을 못 듣고 마는고. '기생!' '기생!' 에그 듣기 싫은 이름이도다. '기생!'이라는 말만 하여도 치가 떨린다 하였다.
지금 황금을 가지고 자기의 몸을 사려는 사람이 사오 인이 된다고 한다. 지나간 칠 년 동안에 노래와 춤으로 수만 원 돈을 벌어 주어, 논밭도 사고 큰 집도 사고 비단 옷도 입게 되었으니 그만하면 자유로 놓아 주어도 마땅하건마는 아직도 욕심을 다 채우지 못하여 천 원이니 이천 원이니 하고 이 몸을 팔아먹으려 한다. 파는 놈도 파는 놈이어니와 사는 놈도 사는 놈이라. 지금까지는 이럭저럭 정절을 지켜 왔건마는 이제 몸이 뉘 첩으로 팔린 뒤에야 정절이 다 무슨 정절이뇨. 다만 죽을 뿐이다, 다만 죽을 뿐이다 하였다.
바라던 형식을 만나 본 것은 기쁘건마는 바라던 그 형식조차 나를 구원할 능력이 없는 것이 절통하다 하였다.
영채는 그만 절망하였다. 지금까지 자기는 잠시 타향에 길을 잃었다가 선한 세계, 선한 사람 사는 고향으로 돌아가 칠 년 전 자기의 가정에서 누리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까 하였더니 모두 다 허사로다 하였다. 지금껏 유일한 선인으로 알아 오고 유일한 의지할 사람으로 알아 오던 형식도 정작 얼굴을 대하니 그저 그러한 사람인 듯, 칠 년간 악인들 사이에서 부대껴 오던 영채의 생각에는 형식같이 선한 사람은 얼굴이며 풍채며 말하는 것이 온통 항용 사람과 다르리라 하였다. 그러나 만나고 본즉 그저 그러한 사람이로고나. 옳다 죽는 수밖에 없다. 대동강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구태 더러운 세상에 섞여 구차히 목숨을 늘여 가기는 차마 못 하리니 하루바삐 새맑은 대동강 물결 밑에서 정다운 월화를 만나 서로 안고 이야기하리라 하였다.
그러나 영채에게는 돈이 없었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몇 친구에게 돈 오 원을 취하려 하였다. 그러나 마침내 얻지 못하고 점심때가 지나도록 방에 앉아 울었다. 형식이가 김장로의 집에서 선형과 순애를 대하여 즐거운 상상에 취하였을 때는 정히 영채가 자기 방에서 눈물을 흘리고 애통하던 때였다. 이날 저녁에 영채를 찾아온 형식은 영채를 만났는가.
36
형식은 한참이나 '계월향'이라고 쓴 광명등을 보고 섰다가 희경을 돌려보내고 결심한 모양으로 문 안에 들어섰다. 객이 없는지 적적히 아무 소리도 아니 들린다. 서슴지 아니하고 마당에 들어서니 여러 방에 불을 켰으되 사람 그림자가 없다. 형식은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어떻게 찾을 줄을 몰라 다만 발소리를 내며 '에헴' 하고 크게 기침을 하였다. 저편 방으로서 뚱뚱한 노파가 나오는 것을 형식은 한 걸음 방 앞으로 (가까이) 갔다. 번적하는 화류자개 함롱이 보이고, 아랫목에는 분홍빛 그물 모기장이 걸리고, 오른편 구석에는 아롱아롱한 자루에 넣은 가얏고가 비스듬히 벽에 기대어 섰다. 형식은 이것이 '영채의 방'인가 하였다. 그러고는 알 수 없는 슬픈 생각과 불쾌한 생각이 난다. 이 방에서 여러 남자로 더불어 저 가얏고를 타고 소리를 하고 춤을 추었는가. 그러다가 저 모기장 속에서 날마다 다른 남자와…… 형식은 차마 더 생각하기가 싫었다. 그러나 영채는 어디 갔는가. 벌써 누구에게 '천 원'에 팔려 갔는가. 어젯저녁에 내 집에서 돌아오는 길로 팔려 가지나 아니하였는가. 또는 만일 영채가 절개가 굳다 하면 벌써 어디 가서 자살이나 아니하였는가. 이때에 형식의 머릿속에는 수천 가지 생각이 뒤를 대어 나온다. 형식은 저편 방으로서 나오는 뚱뚱한 노파― 노파라 하여도 사오십이나 되었을까―를 보고, '저것이 소위 어미로구나' 하였다. 노파는 손에 태극선을 들고 담뱃대를 물었다. 지금까지 웃통을 벗고 앉았었는지 명주항라 적삼 고름을 매면서 나온다. '더러운 노파'라는 생각이 형식의 가슴을 불쾌하게 한다. 노파는 형식의 모양이 극히 초라함을 보고 경멸하는 모양으로,
"누구를 찾아요?"
한다. 일찍 형식이와 같이 초라하게 차린 자가 월향을 찾아온 적이 없었음이라. 노파의 생각에 아마 형식은 어떤 부자의 아들의 심부름꾼인가 하였다. 그러므로 기생의 집에 온 사람더러,
"누구를 찾아요?"
하고 냉대함이라. 형식은 노파가 자기를 멸시하는 줄을 알았다. 그러고 더욱 불쾌한 마음이 생겼다. '나도 교육계에는 상당히 이름 있는 사람인데' 하였다. 그러나 노파의 눈에는 부자가 있고 오입쟁이가 있을 따름이요, '교육계에 상당한 이름 있는 사람'은 없었다. 형식이가 만일 좋은 세비로 양복에 분홍 넥타이를 매고 술이 취하여 단장을 두르며 '여보게' 하고 들어왔던들 노파는 분주히 담뱃대를 놓고 마당에 뛰어내리며 '에그, 영감께서 오시는구랴' 하고 선웃음을 쳤으련마는, 굵은 모시 두루마기에 파리똥 묻은 맥고자를 쓰고, 술도 취하지 아니하고, 단장도 두르지 아니하고, '여보게'도 부르지 아니하는 형식과 같은 사람은 노파의 보기에 극히 하등 사람이었다. 형식은 겨우 입을 열어,
"월향 씨 어디 갔소?"
하였다. 그러고는 곧 '월향'에게 '씨'자를 달아 부른 것을 한하였다. 그러나 형식은 아직 남의 이름에 '씨'자를 아니 달고 불러 본 적이 없다. 더구나 남의 여자의 이름을 부를 때에는 반드시 '씨'라는 존칭을 붙이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소위 '째운 사람'들은 여학생을 (보고는 '씨'를 달고 기생을 보고는 '씨'를) 달지 아니할 줄을 알되, 형식은 여학생과 기생을 구별할 줄을 모른다. 형식의 생각에는 여학생이나 기생이나 사람은 마찬가지 사람이라 한다. 그러므로 형식은 '월향'에 '씨'를 붙이는 것이 옳으리라 하여 한참 생각한 뒤에 있는 용기를 다하여 '월향 씨 어디 갔소' 한 것이언마는 말을 하고 생각한즉 미상불 부끄럽기도 하다. 그러고 노파의 얼굴을 보았다. 노파는 웃음을 참는 듯이 입을 우물우물하더니,
"월향 씨가 손님 모시고 어디 갔소. 왜 그러시오?"
"어디 갔습니까?"
노파는 '이것이 과연 시골뜨기로구나' 하면서,
"아까 오후에 청량리 나갔소. 여섯점에 들어온다더니 아직 아니 오구려"
하고 성가신 듯이 '잘 가오' 하는 말도 없이 안으로 들어가고 만다.
"누구요?"
하는 어떤 남자의 목소리에
"모르겠소. 웬 거랑방인데 왔구면."
하는 그 노파의 평양 사투리가 들린다. 형식은 일변 실망도 하고, 일변 그 노파에게 멸시받은 것이 부끄럽기도 분하기도 하면서 발을 돌렸다. '계월향! 계월향이가 과연 박영채의 변명인가' 하고 계월향의 내력을 물어 보고도 싶었으나 노파에게 그러한 멸시를 받고는 다시 물어 볼 용기도 아니 나서 그만 대문 밖에 나섰다.
형식은 고개를 숙이고 아까 오던 길로 나온다. 아까 올 때에 '반나마 늙었으니……' 하던 목소리로 '간다 간다네 나는 간다네' 하는 소리가 들리고, 아까 모양으로 여럿이 함께 웃는 웃음 소리가 들린다. 어찌할까 하고 형식은 생각하였다. '청량리! 오후에 나가서 여섯점엔 온다던 것이 아직 아니 들어와!' 형식은 이 말에 무슨 깊은 뜻이 있는 듯이 생각하고 몸이 오싹하였다. '영채가 혼자 어떤 남자로 더불어 청량리에 가 있어! 더구나 밤이 여덟시나 지났는데!' 하고 형식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형식은 전속력으로 다방골 천변으로 내려온다. '옳다! 청량리로 가자' 하였다. 형식의 귀에 영채가 우는 소리로 '형식 씨, 나를 건져 주시오, 나는 지금 위급하외다' 하는 듯하다. 형식은 지금 광충교로 지나가는 동대문행 전차를 잡아탈 양으로 구보로 종각을 향하여 뛰었다. 그러나 전차는 찌구덩 하고 소리를 내며 종각 모퉁이를 돌아 두어 사람을 내려놓고 달아난다. 형식은 그래도 십여 보를 따라갔으나 전차는 본체만체하고 청년회관 앞으로 달아난다. 야시에는 아까보다도 사람이 많이 모였다. 종각 모퉁이 컴컴한 데로서 '에, 아이쓰구림, 아이쓰구림' 하는 늙은 총각의 목소린 듯한 것이 들린다.
형식은 한참이나 '계월향'이라고 쓴 광명등을 보고 섰다가 희경을 돌려보내고 결심한 모양으로 문 안에 들어섰다. 객이 없는지 적적히 아무 소리도 아니 들린다. 서슴지 아니하고 마당에 들어서니 여러 방에 불을 켰으되 사람 그림자가 없다. 형식은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어떻게 찾을 줄을 몰라 다만 발소리를 내며 '에헴' 하고 크게 기침을 하였다. 저편 방으로서 뚱뚱한 노파가 나오는 것을 형식은 한 걸음 방 앞으로 (가까이) 갔다. 번적하는 화류자개 함롱이 보이고, 아랫목에는 분홍빛 그물 모기장이 걸리고, 오른편 구석에는 아롱아롱한 자루에 넣은 가얏고가 비스듬히 벽에 기대어 섰다. 형식은 이것이 '영채의 방'인가 하였다. 그러고는 알 수 없는 슬픈 생각과 불쾌한 생각이 난다. 이 방에서 여러 남자로 더불어 저 가얏고를 타고 소리를 하고 춤을 추었는가. 그러다가 저 모기장 속에서 날마다 다른 남자와…… 형식은 차마 더 생각하기가 싫었다. 그러나 영채는 어디 갔는가. 벌써 누구에게 '천 원'에 팔려 갔는가. 어젯저녁에 내 집에서 돌아오는 길로 팔려 가지나 아니하였는가. 또는 만일 영채가 절개가 굳다 하면 벌써 어디 가서 자살이나 아니하였는가. 이때에 형식의 머릿속에는 수천 가지 생각이 뒤를 대어 나온다. 형식은 저편 방으로서 나오는 뚱뚱한 노파― 노파라 하여도 사오십이나 되었을까―를 보고, '저것이 소위 어미로구나' 하였다. 노파는 손에 태극선을 들고 담뱃대를 물었다. 지금까지 웃통을 벗고 앉았었는지 명주항라 적삼 고름을 매면서 나온다. '더러운 노파'라는 생각이 형식의 가슴을 불쾌하게 한다. 노파는 형식의 모양이 극히 초라함을 보고 경멸하는 모양으로,
"누구를 찾아요?"
한다. 일찍 형식이와 같이 초라하게 차린 자가 월향을 찾아온 적이 없었음이라. 노파의 생각에 아마 형식은 어떤 부자의 아들의 심부름꾼인가 하였다. 그러므로 기생의 집에 온 사람더러,
"누구를 찾아요?"
하고 냉대함이라. 형식은 노파가 자기를 멸시하는 줄을 알았다. 그러고 더욱 불쾌한 마음이 생겼다. '나도 교육계에는 상당히 이름 있는 사람인데' 하였다. 그러나 노파의 눈에는 부자가 있고 오입쟁이가 있을 따름이요, '교육계에 상당한 이름 있는 사람'은 없었다. 형식이가 만일 좋은 세비로 양복에 분홍 넥타이를 매고 술이 취하여 단장을 두르며 '여보게' 하고 들어왔던들 노파는 분주히 담뱃대를 놓고 마당에 뛰어내리며 '에그, 영감께서 오시는구랴' 하고 선웃음을 쳤으련마는, 굵은 모시 두루마기에 파리똥 묻은 맥고자를 쓰고, 술도 취하지 아니하고, 단장도 두르지 아니하고, '여보게'도 부르지 아니하는 형식과 같은 사람은 노파의 보기에 극히 하등 사람이었다. 형식은 겨우 입을 열어,
"월향 씨 어디 갔소?"
하였다. 그러고는 곧 '월향'에게 '씨'자를 달아 부른 것을 한하였다. 그러나 형식은 아직 남의 이름에 '씨'자를 아니 달고 불러 본 적이 없다. 더구나 남의 여자의 이름을 부를 때에는 반드시 '씨'라는 존칭을 붙이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소위 '째운 사람'들은 여학생을 (보고는 '씨'를 달고 기생을 보고는 '씨'를) 달지 아니할 줄을 알되, 형식은 여학생과 기생을 구별할 줄을 모른다. 형식의 생각에는 여학생이나 기생이나 사람은 마찬가지 사람이라 한다. 그러므로 형식은 '월향'에 '씨'를 붙이는 것이 옳으리라 하여 한참 생각한 뒤에 있는 용기를 다하여 '월향 씨 어디 갔소' 한 것이언마는 말을 하고 생각한즉 미상불 부끄럽기도 하다. 그러고 노파의 얼굴을 보았다. 노파는 웃음을 참는 듯이 입을 우물우물하더니,
"월향 씨가 손님 모시고 어디 갔소. 왜 그러시오?"
"어디 갔습니까?"
노파는 '이것이 과연 시골뜨기로구나' 하면서,
"아까 오후에 청량리 나갔소. 여섯점에 들어온다더니 아직 아니 오구려"
하고 성가신 듯이 '잘 가오' 하는 말도 없이 안으로 들어가고 만다.
"누구요?"
하는 어떤 남자의 목소리에
"모르겠소. 웬 거랑방인데 왔구면."
하는 그 노파의 평양 사투리가 들린다. 형식은 일변 실망도 하고, 일변 그 노파에게 멸시받은 것이 부끄럽기도 분하기도 하면서 발을 돌렸다. '계월향! 계월향이가 과연 박영채의 변명인가' 하고 계월향의 내력을 물어 보고도 싶었으나 노파에게 그러한 멸시를 받고는 다시 물어 볼 용기도 아니 나서 그만 대문 밖에 나섰다.
형식은 고개를 숙이고 아까 오던 길로 나온다. 아까 올 때에 '반나마 늙었으니……' 하던 목소리로 '간다 간다네 나는 간다네' 하는 소리가 들리고, 아까 모양으로 여럿이 함께 웃는 웃음 소리가 들린다. 어찌할까 하고 형식은 생각하였다. '청량리! 오후에 나가서 여섯점엔 온다던 것이 아직 아니 들어와!' 형식은 이 말에 무슨 깊은 뜻이 있는 듯이 생각하고 몸이 오싹하였다. '영채가 혼자 어떤 남자로 더불어 청량리에 가 있어! 더구나 밤이 여덟시나 지났는데!' 하고 형식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형식은 전속력으로 다방골 천변으로 내려온다. '옳다! 청량리로 가자' 하였다. 형식의 귀에 영채가 우는 소리로 '형식 씨, 나를 건져 주시오, 나는 지금 위급하외다' 하는 듯하다. 형식은 지금 광충교로 지나가는 동대문행 전차를 잡아탈 양으로 구보로 종각을 향하여 뛰었다. 그러나 전차는 찌구덩 하고 소리를 내며 종각 모퉁이를 돌아 두어 사람을 내려놓고 달아난다. 형식은 그래도 십여 보를 따라갔으나 전차는 본체만체하고 청년회관 앞으로 달아난다. 야시에는 아까보다도 사람이 많이 모였다. 종각 모퉁이 컴컴한 데로서 '에, 아이쓰구림, 아이쓰구림' 하는 늙은 총각의 목소린 듯한 것이 들린다.
37
형식은 다음 번 오는 전차를 탔다. 신호수가 푸른 등을 두르니, 전차는 또 찌국 하는 소리를 내며, 구부러진 데를 돌아간다. 형식은 조민한 생각에 구리개로서 서대문 가는 전차를 잘못 탔다. 형식은 전차에서 뛰어내려서 바로 뒤대어 오는 동대문행을 잡아탔다. 형식은 손수건으로 이마와 목의 땀을 씻었다. 차장은 형식의 차세를 받고 '딸랑' 하면서 유심히 형식의 얼굴을 본다. 형식의 얼굴은 과연 몹시 붉게 되었더라. 형식은 전차 속을 한번 둘러보고,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형식은 전차가 일부러 속력을 뜨게 하는 것같이 생각하였다. 과연 야시에 사람이 많이 내왕하여 운전수는 연해 두 발로 종을 딸랑딸랑 울리면서 천천히 진행하더라. 형식의 가슴에는 불이 일어난다. 형식은 활동사진에서 서양 사람들이 자동차를 타고 질풍같이 달아나는 양을 생각하고, 이런 때에 나도 자동차를 탔으면 하였다. 형식은 자기가 종로에서 자동차를 타고 철물교를 지나 배오개를 지나 동대문을 지나 친잠하시는 상원 앞 버들 사이를 지나 청량리를 지나 홍릉 솔숲 속으로 달려가는 것을 상상하였다. 그러고 자기가 어느 집에서 영채가 어떤 사람에게 고생을 당하는가 하고 땀을 흘리며 이집 저집으로 찾아다니는 양과, 여승들이 방글방글 웃으며 '모르겠습니다' 할 때에 자기가 더욱 초조하여 하는 양을 상상하였다. 이때에 누가 형식의 어깨를 툭 치며,
"요― 어디 가는가?"
한다. 형식은 놀라 고개를 들었다. 신문기자 신우선이로다. 신우선은 형식의 곁에 앉아 그 대팻밥 모자로 부채질을 하며,
"그래 어떤가? 김장로의 따님이 자네를 사랑하던가?"
하고 곁에 앉은 사람이 듣는 것도 상관치 아니하는 듯이 큰소리로 말한다. 형식은 잠깐 아까 자기가 김장로 집에서 선형과 순애를 대하였던 생각을 하고 곧 우선이가 자기의 지금 가는 일에 도움이 될 것을 생각하였다. 형식은 우선의 귀에 입을 대고,
"여보게 큰일이 났네."
하였다. 우선은 껄껄 웃으며,
"아따, 자네는 큰일도 많데, 또 무슨 큰일인가?"
한다. 형식은 우선의 팔을 잡아당기어 말소리를 높이지 말라는 뜻을 표하고 다시 말을 이어 자기의 은인의 딸이 지금 기생으로 서울에 와 있는데, 그는 자기를 위하여 정절을 지켜 왔는데, 지금 여러 유력한 사람들이 그를 자기네의 손에 넣으려 하는데, 지금 청량리에서 어떤 사람에게 위협을 당하는 중인데, 지금 자기는 그를 구원하러 가는 길이라 하고 마침내,
"여보게, 자네는(자네가) 좀 도와 주어야 되겠네."
하고 말을 맺었다. 형식은 이러한 말을 할 때에 영채가 방금 어떤 남자에게 위급한 위협을 받는 양이 눈에 보이는 듯하였다. 우선은,
"응, 응, 그래, 응."
하고 형식의 가늘게 하는 말을 주의하여 듣더니,
"그래, 그 이름은 무엇인가."
"본명은 박영채인데 계월향이라고 한다네."
하고 '계월향'이가 과연 '박영채'인가 하고 의심도 하였다. 우선은 '계월향'이란 말을 듣고, 또 계월향이가 (형식의 은인의 따님이란 월향이가) 형식을 위하여 정절을 지킨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우선은 눈이 둥글하여지며,
"여보게, 그게 참말인가?"
하고 형식의 얼굴을 보았다. 형식은 조민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하는 듯 숨소리가 커지며,
"참말일세, 참말이어!" 하고 영채가 어젯저녁에 자기를 찾아왔단 말과 자기를 찾아와서 신세 타령을 하던 말과, 자기가 방금 다방골 월향의 집으로 다녀온다는 말을 하고 다시,
"그런데 나를 좀 도와 주게."
한다.
"도오다이몬 슈텐(동대문 종점)! 동대문이올시다."
하는 차장의 소리에, 두 사람은 말을 끊고 전차에서 내렸다. 아직도 청량리 가는 전차가 오지 아니하였다.
우선이가 형식의 말을 듣고 놀란 것은 까닭이 있다. 그 까닭은 이러하다. 우선이도 계월향을 처음 보고 그만 정신을 잃은 여러 사람 중의 하나이라. 우선은 백에 하나도 쉽지 아니한 호남자였다. 풍채는 좋겠다, 구변이 있겠다, 나이는 불과 이십오륙 세로되, 문여시(文與詩)를 깨끗이 하겠다, 원래 서울에 똑똑한 집 자손으로 부귀한 집 자제들과 친분이 있겠다, 게다가 당시 서슬이 푸른 대신문에 기자였다. 이러므로 그는 계집을 후리는 데는 갖은 능력과 자격이 구비하였었다. 그는 여러 기생을 상종하였고, 또 연극장의 차리는 방〔樂屋〕에 출입하여 삼패며 광대도 희롱하였었다. 이렇게 말하면 신우선이란 사람은 계집 궁둥이나 따라다니는 망가자와 같이 들리되, 그에게는 시인의 아량이 있고 신사의 풍채가 있고 정성이 있고 의리가 있었다. 그의 친구는 그의 방탕함을 책망하면서도 오히려 그의 재주와 쾌활한 기상을 사랑하였다. '신우선은 지나 소설에 뛰어나오는 풍류 남자라' 함은 형식의 그를 평한 말이니, 과연 그는 소주, 항주 근방에 당나라 시절 호협한 청년의 풍이 있었다.
신우선이가 계월향에게 마음을 둔 것은 한 달쯤 전이었다. 우선은 자기의 힘을 믿으매 월향도 으레 자기의 손에 들려니 하였다. 월향이가 여러 부호가 자제의 청을 거절하는 것은 일생을 의탁할 만한 영웅 재자를 구함이라 하고, 자기는 족히 그 후보자가 되리라 하였다. 그래서 우선은 남들이 돈과 육욕으로 월향을 달랠 때에, 자기는 인물과 재주와 기상으로 월향을 달래리라 하였다. 무론 우선은 돈으로 경쟁할 만한 힘은 없었다. 그래서 우선은 밤마다 시를 지어 혹은 우편으로 혹은 직접 월향에게 주었다. 이러노라면 월향은 자기의 인격과 천재를 알아보고 '이제야 내 배필을 만났구나' 하면서 두 팔을 벌리고 자기에게 안기려니 하였다. 그러하던 즈음에 형식에게서 이러한 말을 들으니 놀라는 것도 마땅하다.
형식은 다음 번 오는 전차를 탔다. 신호수가 푸른 등을 두르니, 전차는 또 찌국 하는 소리를 내며, 구부러진 데를 돌아간다. 형식은 조민한 생각에 구리개로서 서대문 가는 전차를 잘못 탔다. 형식은 전차에서 뛰어내려서 바로 뒤대어 오는 동대문행을 잡아탔다. 형식은 손수건으로 이마와 목의 땀을 씻었다. 차장은 형식의 차세를 받고 '딸랑' 하면서 유심히 형식의 얼굴을 본다. 형식의 얼굴은 과연 몹시 붉게 되었더라. 형식은 전차 속을 한번 둘러보고,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형식은 전차가 일부러 속력을 뜨게 하는 것같이 생각하였다. 과연 야시에 사람이 많이 내왕하여 운전수는 연해 두 발로 종을 딸랑딸랑 울리면서 천천히 진행하더라. 형식의 가슴에는 불이 일어난다. 형식은 활동사진에서 서양 사람들이 자동차를 타고 질풍같이 달아나는 양을 생각하고, 이런 때에 나도 자동차를 탔으면 하였다. 형식은 자기가 종로에서 자동차를 타고 철물교를 지나 배오개를 지나 동대문을 지나 친잠하시는 상원 앞 버들 사이를 지나 청량리를 지나 홍릉 솔숲 속으로 달려가는 것을 상상하였다. 그러고 자기가 어느 집에서 영채가 어떤 사람에게 고생을 당하는가 하고 땀을 흘리며 이집 저집으로 찾아다니는 양과, 여승들이 방글방글 웃으며 '모르겠습니다' 할 때에 자기가 더욱 초조하여 하는 양을 상상하였다. 이때에 누가 형식의 어깨를 툭 치며,
"요― 어디 가는가?"
한다. 형식은 놀라 고개를 들었다. 신문기자 신우선이로다. 신우선은 형식의 곁에 앉아 그 대팻밥 모자로 부채질을 하며,
"그래 어떤가? 김장로의 따님이 자네를 사랑하던가?"
하고 곁에 앉은 사람이 듣는 것도 상관치 아니하는 듯이 큰소리로 말한다. 형식은 잠깐 아까 자기가 김장로 집에서 선형과 순애를 대하였던 생각을 하고 곧 우선이가 자기의 지금 가는 일에 도움이 될 것을 생각하였다. 형식은 우선의 귀에 입을 대고,
"여보게 큰일이 났네."
하였다. 우선은 껄껄 웃으며,
"아따, 자네는 큰일도 많데, 또 무슨 큰일인가?"
한다. 형식은 우선의 팔을 잡아당기어 말소리를 높이지 말라는 뜻을 표하고 다시 말을 이어 자기의 은인의 딸이 지금 기생으로 서울에 와 있는데, 그는 자기를 위하여 정절을 지켜 왔는데, 지금 여러 유력한 사람들이 그를 자기네의 손에 넣으려 하는데, 지금 청량리에서 어떤 사람에게 위협을 당하는 중인데, 지금 자기는 그를 구원하러 가는 길이라 하고 마침내,
"여보게, 자네는(자네가) 좀 도와 주어야 되겠네."
하고 말을 맺었다. 형식은 이러한 말을 할 때에 영채가 방금 어떤 남자에게 위급한 위협을 받는 양이 눈에 보이는 듯하였다. 우선은,
"응, 응, 그래, 응."
하고 형식의 가늘게 하는 말을 주의하여 듣더니,
"그래, 그 이름은 무엇인가."
"본명은 박영채인데 계월향이라고 한다네."
하고 '계월향'이가 과연 '박영채'인가 하고 의심도 하였다. 우선은 '계월향'이란 말을 듣고, 또 계월향이가 (형식의 은인의 따님이란 월향이가) 형식을 위하여 정절을 지킨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우선은 눈이 둥글하여지며,
"여보게, 그게 참말인가?"
하고 형식의 얼굴을 보았다. 형식은 조민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하는 듯 숨소리가 커지며,
"참말일세, 참말이어!" 하고 영채가 어젯저녁에 자기를 찾아왔단 말과 자기를 찾아와서 신세 타령을 하던 말과, 자기가 방금 다방골 월향의 집으로 다녀온다는 말을 하고 다시,
"그런데 나를 좀 도와 주게."
한다.
"도오다이몬 슈텐(동대문 종점)! 동대문이올시다."
하는 차장의 소리에, 두 사람은 말을 끊고 전차에서 내렸다. 아직도 청량리 가는 전차가 오지 아니하였다.
우선이가 형식의 말을 듣고 놀란 것은 까닭이 있다. 그 까닭은 이러하다. 우선이도 계월향을 처음 보고 그만 정신을 잃은 여러 사람 중의 하나이라. 우선은 백에 하나도 쉽지 아니한 호남자였다. 풍채는 좋겠다, 구변이 있겠다, 나이는 불과 이십오륙 세로되, 문여시(文與詩)를 깨끗이 하겠다, 원래 서울에 똑똑한 집 자손으로 부귀한 집 자제들과 친분이 있겠다, 게다가 당시 서슬이 푸른 대신문에 기자였다. 이러므로 그는 계집을 후리는 데는 갖은 능력과 자격이 구비하였었다. 그는 여러 기생을 상종하였고, 또 연극장의 차리는 방〔樂屋〕에 출입하여 삼패며 광대도 희롱하였었다. 이렇게 말하면 신우선이란 사람은 계집 궁둥이나 따라다니는 망가자와 같이 들리되, 그에게는 시인의 아량이 있고 신사의 풍채가 있고 정성이 있고 의리가 있었다. 그의 친구는 그의 방탕함을 책망하면서도 오히려 그의 재주와 쾌활한 기상을 사랑하였다. '신우선은 지나 소설에 뛰어나오는 풍류 남자라' 함은 형식의 그를 평한 말이니, 과연 그는 소주, 항주 근방에 당나라 시절 호협한 청년의 풍이 있었다.
신우선이가 계월향에게 마음을 둔 것은 한 달쯤 전이었다. 우선은 자기의 힘을 믿으매 월향도 으레 자기의 손에 들려니 하였다. 월향이가 여러 부호가 자제의 청을 거절하는 것은 일생을 의탁할 만한 영웅 재자를 구함이라 하고, 자기는 족히 그 후보자가 되리라 하였다. 그래서 우선은 남들이 돈과 육욕으로 월향을 달랠 때에, 자기는 인물과 재주와 기상으로 월향을 달래리라 하였다. 무론 우선은 돈으로 경쟁할 만한 힘은 없었다. 그래서 우선은 밤마다 시를 지어 혹은 우편으로 혹은 직접 월향에게 주었다. 이러노라면 월향은 자기의 인격과 천재를 알아보고 '이제야 내 배필을 만났구나' 하면서 두 팔을 벌리고 자기에게 안기려니 하였다. 그러하던 즈음에 형식에게서 이러한 말을 들으니 놀라는 것도 마땅하다.
38
신우선은 전차 오기를 기다리면서 괴로워하는 형식의 얼굴을 보았다. 발전소에서는 쿵쿵쿵쿵 하는 발동기 소리가 나고 누런 복장 입은 차장과 운전사들이 전등빛 아래 왔다갔다하였다. 우선은 생각하였다. '월향이가 나더러 평양 친구를 묻던 것이 그 때문이로구나' 하였다. 한번 우선이가 월향을 찾아가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다가 월향이가 농담 모양으로 웃으며,
"나리께 평양 친구가 계셔요?"
하고 우선에게 물었다. 우선은 월향이가 평양 사람이니까 평양 친구를 묻는 줄로 생각하고,
"이삼 인 되지."
하였다. 월향은,
"그래, 그 어른들은 다 무엇을 하시는가요?"
하였다. 이때에 월향은 첫째에 이형식의 거처를 알려 함과, 평안도 사람들이 서울에 와서 어떻게 지내는가를 알려 하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월향도 평안도 학생들이 많이 서울에 와 있는 줄은 알건마는 몸이 기생이 되어서는 그 평안도 학생들과 또 평안도 사람 신사들이 어떠한 모양을 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월향에게도 평안도 신사가 삼사 인 놀러 왔었다. 그네들은 다 번적하는 양복을 입고 일본말로 회화를 하며 동경에 가서 대학교에 다니던 이야기를 하고 매우 젠체하며 신사인 체하였다. 그러나 월향은 사 년 전 부벽루에서 월화가 '저것들은 허자비에 옷을 입힌 것이라' 하던 말을 생각하고 '저들도 역시 허자비에 옷을 입힌 것이라' 하였다. 그러고는 월향의 생각에 '저것들이 평안도 사람으로 서울에 와 있는 일류 신사인가' 하고 자기의 고향을 위하여 슬퍼하였었다. 그러하던 차에 우선이가 '평안도 친구가 이삼 인 있지' 하는 말을 듣고, 행여나 그 속에 '월화의 이상적 인물'이 되임직한 사람이 있는가 하고, 또 그 사람이 자기가 기다리는 이형식이나 아닌가 하였다. 월향의 눈에는 우선은 조선에 드문 남자라 하였다. 옛날 시에 있는 듯한 남자라 하였다. 그러고 그 의식의 호탕함을 더욱 사랑하여 '월화 형님에게 보였으면' 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우선의 친구라 하면 상당한 사람이려니 하고,
"그래 그 어른들은 다 무엇을 하시는가요?"
하고 물음이라. 우선은,
"혹은 교사도 하고, 글짓기도 하고, 실업도 한다"
하였다. 월향은 더욱 더욱 유심하게,
"그 중에 누가 제일 좋은 사람이에요? 누가 제일 이름이 있어요?"
하였다. 우선은 유심히 월향의 얼굴을 보며 '옳지, 저 계집이 본고향 사람 중에 배필을 구하는구나' 하고 얼마큼 시기하는 생각이 나서,
"그 중에 이형식이란 사람이 제일 유망하지마는."
하고 이형식의 가치를 낮추기 위하여 '하지마는'에 힘을 주었다. 월향은 가슴이 갑자기 뛰었다. 그러나 그 빛을 감추고 아양을 부리며,
"유망하지마는 어때요?"
하였다. 우선은 자기가 친구의 험담을 한 듯하여 적이 부끄러운 생각이 나면서,
"응, 이형식이가 좋은 사람이지…… 매우 유망하지."
하고는 그래도 행여나 이형식에게 월향을 빼앗길까 두려워,
"아직 유치하지…… 때를 못 벗어서."
하고 자기보다 훨씬 낮은 사람 모양으로 말하였다. 무론 이것이 거짓말은 아니라. 우선은 결코 형식을 자기보다 인격으로나 학식으로나 문필로나 승하다고는 생각하지 아니한다. (그뿐더러 자기와 평등이라고도 생각지 아니한다.) 그래서 '형식은 우선 한문이 부족하니까' 하고 형식이가 자기보다 일문과 영문이 넉넉한 것은 생각지 아니한다. 그러고 자기는 어디까지든지 형식의 선배로 자처하며, 형식도 구태여 우선과 평등을 다투려 하지 아니하고, 우선이가 선배로 자처하면 형식도 우선을 선배 모양으로 대접하였다. 그리하다가 일전에 우선이가 형식에게 허교하기를 청할 적에도 형식은 윗사람에게서 허락을 받는 모양으로 극히 공손하였다. 그러나 우선은 결코 형식을 미워하거나 멸시하지 아니하였다. 우선은 '형식의 유망함'을 진실로 믿었다. 그러므로 월향에게 '유망은 하지마는 아직 때를 못 벗었어' 한 것은 결코 형식을 비방함이 아니요, 자기가 형식에게 대한 진정한 비평을 말한 것이라.
'아아, 그때에 내가 월향에게 형식을 소개한 것이 이러한 뜻을 가졌던가' 하고 다시금 전차를 기다리고 섰는 형식을 보았다. 형식은 조민한 듯이 왔다갔다하며 동편만 바라보고,
"어째 전차가 아니 오는가?"
"밤이 깊었으니까 삼십 분에 한 번씩이나 다니는지."
하고 우선은 형식의 괴로워함을 동정하였다. 형식은 애처로워서 우선을 손을 꼭 쥐며,
"참, 오늘 저녁 힘을 써주게."
하였다. 외로운 형식의 지금 경우에는 우선이밖에 믿는 사람이 없었다. 우선이만 자기를 도와 주면, 영채는 건져 낼 수가 있거니 하였다. 우선은
"걱정 말게."
하고 돌아서면서 픽 웃었다. 그 웃음에는 까닭이 있었다.
우선은 경성학교 교주 김남작의 아들 김현수와 배명식 양인이 월향을 청량리로 데리고 갔단 말을 월향의 집에서 듣고, 월향은 오늘 저녁에는 김현수의 손에 들어가는 줄을 짐작하였다. 그래서 우선은 빨리 종로경찰서에 가서 형사에게 말을 하여 (귓속하여) 후원을 청하고, 김현수의 계교를 깨트리려 하였다. 월향을 아주 김현수의 손에서 뽑아 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사실을 신문에 발표하여 실컷 분풀이나 하고, 혹 될 수 있으면 김현수에게서 맥줏값이나 빼앗으려 하였다. 아까 철물교에서 전차를 탄 것은 바로 종로경찰서로서 나오던 길이었다. 그러한 일이러니 이제 들어 본즉, 월향은 형식에게 마음을 바친 사람이라 한다. 미상불 시기로운 생각도 없지 아니하나 형식의 뜻을 이뤄 줌이 옳은 일이라 하였다.
신우선은 전차 오기를 기다리면서 괴로워하는 형식의 얼굴을 보았다. 발전소에서는 쿵쿵쿵쿵 하는 발동기 소리가 나고 누런 복장 입은 차장과 운전사들이 전등빛 아래 왔다갔다하였다. 우선은 생각하였다. '월향이가 나더러 평양 친구를 묻던 것이 그 때문이로구나' 하였다. 한번 우선이가 월향을 찾아가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다가 월향이가 농담 모양으로 웃으며,
"나리께 평양 친구가 계셔요?"
하고 우선에게 물었다. 우선은 월향이가 평양 사람이니까 평양 친구를 묻는 줄로 생각하고,
"이삼 인 되지."
하였다. 월향은,
"그래, 그 어른들은 다 무엇을 하시는가요?"
하였다. 이때에 월향은 첫째에 이형식의 거처를 알려 함과, 평안도 사람들이 서울에 와서 어떻게 지내는가를 알려 하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월향도 평안도 학생들이 많이 서울에 와 있는 줄은 알건마는 몸이 기생이 되어서는 그 평안도 학생들과 또 평안도 사람 신사들이 어떠한 모양을 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월향에게도 평안도 신사가 삼사 인 놀러 왔었다. 그네들은 다 번적하는 양복을 입고 일본말로 회화를 하며 동경에 가서 대학교에 다니던 이야기를 하고 매우 젠체하며 신사인 체하였다. 그러나 월향은 사 년 전 부벽루에서 월화가 '저것들은 허자비에 옷을 입힌 것이라' 하던 말을 생각하고 '저들도 역시 허자비에 옷을 입힌 것이라' 하였다. 그러고는 월향의 생각에 '저것들이 평안도 사람으로 서울에 와 있는 일류 신사인가' 하고 자기의 고향을 위하여 슬퍼하였었다. 그러하던 차에 우선이가 '평안도 친구가 이삼 인 있지' 하는 말을 듣고, 행여나 그 속에 '월화의 이상적 인물'이 되임직한 사람이 있는가 하고, 또 그 사람이 자기가 기다리는 이형식이나 아닌가 하였다. 월향의 눈에는 우선은 조선에 드문 남자라 하였다. 옛날 시에 있는 듯한 남자라 하였다. 그러고 그 의식의 호탕함을 더욱 사랑하여 '월화 형님에게 보였으면' 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우선의 친구라 하면 상당한 사람이려니 하고,
"그래 그 어른들은 다 무엇을 하시는가요?"
하고 물음이라. 우선은,
"혹은 교사도 하고, 글짓기도 하고, 실업도 한다"
하였다. 월향은 더욱 더욱 유심하게,
"그 중에 누가 제일 좋은 사람이에요? 누가 제일 이름이 있어요?"
하였다. 우선은 유심히 월향의 얼굴을 보며 '옳지, 저 계집이 본고향 사람 중에 배필을 구하는구나' 하고 얼마큼 시기하는 생각이 나서,
"그 중에 이형식이란 사람이 제일 유망하지마는."
하고 이형식의 가치를 낮추기 위하여 '하지마는'에 힘을 주었다. 월향은 가슴이 갑자기 뛰었다. 그러나 그 빛을 감추고 아양을 부리며,
"유망하지마는 어때요?"
하였다. 우선은 자기가 친구의 험담을 한 듯하여 적이 부끄러운 생각이 나면서,
"응, 이형식이가 좋은 사람이지…… 매우 유망하지."
하고는 그래도 행여나 이형식에게 월향을 빼앗길까 두려워,
"아직 유치하지…… 때를 못 벗어서."
하고 자기보다 훨씬 낮은 사람 모양으로 말하였다. 무론 이것이 거짓말은 아니라. 우선은 결코 형식을 자기보다 인격으로나 학식으로나 문필로나 승하다고는 생각하지 아니한다. (그뿐더러 자기와 평등이라고도 생각지 아니한다.) 그래서 '형식은 우선 한문이 부족하니까' 하고 형식이가 자기보다 일문과 영문이 넉넉한 것은 생각지 아니한다. 그러고 자기는 어디까지든지 형식의 선배로 자처하며, 형식도 구태여 우선과 평등을 다투려 하지 아니하고, 우선이가 선배로 자처하면 형식도 우선을 선배 모양으로 대접하였다. 그리하다가 일전에 우선이가 형식에게 허교하기를 청할 적에도 형식은 윗사람에게서 허락을 받는 모양으로 극히 공손하였다. 그러나 우선은 결코 형식을 미워하거나 멸시하지 아니하였다. 우선은 '형식의 유망함'을 진실로 믿었다. 그러므로 월향에게 '유망은 하지마는 아직 때를 못 벗었어' 한 것은 결코 형식을 비방함이 아니요, 자기가 형식에게 대한 진정한 비평을 말한 것이라.
'아아, 그때에 내가 월향에게 형식을 소개한 것이 이러한 뜻을 가졌던가' 하고 다시금 전차를 기다리고 섰는 형식을 보았다. 형식은 조민한 듯이 왔다갔다하며 동편만 바라보고,
"어째 전차가 아니 오는가?"
"밤이 깊었으니까 삼십 분에 한 번씩이나 다니는지."
하고 우선은 형식의 괴로워함을 동정하였다. 형식은 애처로워서 우선을 손을 꼭 쥐며,
"참, 오늘 저녁 힘을 써주게."
하였다. 외로운 형식의 지금 경우에는 우선이밖에 믿는 사람이 없었다. 우선이만 자기를 도와 주면, 영채는 건져 낼 수가 있거니 하였다. 우선은
"걱정 말게."
하고 돌아서면서 픽 웃었다. 그 웃음에는 까닭이 있었다.
우선은 경성학교 교주 김남작의 아들 김현수와 배명식 양인이 월향을 청량리로 데리고 갔단 말을 월향의 집에서 듣고, 월향은 오늘 저녁에는 김현수의 손에 들어가는 줄을 짐작하였다. 그래서 우선은 빨리 종로경찰서에 가서 형사에게 말을 하여 (귓속하여) 후원을 청하고, 김현수의 계교를 깨트리려 하였다. 월향을 아주 김현수의 손에서 뽑아 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사실을 신문에 발표하여 실컷 분풀이나 하고, 혹 될 수 있으면 김현수에게서 맥줏값이나 빼앗으려 하였다. 아까 철물교에서 전차를 탄 것은 바로 종로경찰서로서 나오던 길이었다. 그러한 일이러니 이제 들어 본즉, 월향은 형식에게 마음을 바친 사람이라 한다. 미상불 시기로운 생각도 없지 아니하나 형식의 뜻을 이뤄 줌이 옳은 일이라 하였다.
39
두 사람은 청량사에 다다랐다. 두 사람의 뒤를 따르는 사람은 종로경찰서의 형사였다. 우선은 김현수의 가는 집을 잘 알았다. 그 집은 우물 북쪽에 있는 조고마한 암자라, 여러 암자 중에 제일 깨끗하고 조용한 암자였다. 우선은 형식에게 손짓을 하여 문 밖에 서 있으라 하고 가만히 안에 들어갔다. 형식은 '여기 영채가 있는가' 하고 다리를 떨며 귀를 기울였다. 똑똑지는 아니하나 여자의 괴로워하는 소리가 나는 듯하다. 형식은 손으로 가슴을 만지며 한 걸음 더 들어서서 귀를 기울였다. 과연 여자의 괴로워하는 소리로다. 형식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뛰어들어갔다. 방에는 불이 켜 있고, 문을 닫쳤는데 머리를 깎은 사람의 그림자가 얼른얼른한다. 형식의 호흡은 차차 빨라진다. 우선이가 창으로 엿보다가 고양이 모양으로 가만가만히 나오면서 형식의 어깨에 손을 짚고 가늘게 일본말로,
"모 다메다(벌써 틀렸다)."
한다. 형식은 그만 눈에 불이 번뜻 하면서 '흑' 하고 툇마루에 뛰어오르며 구두 신은 발로 영창을 들입다 찼다. 영창은 와지끈 하고 소리를 내며 방 안으로 떨어져 들어간다. 형식은 영창을 떠들고 일어나는 사람을 얼굴도 보지 아니하고 발길로 차넘겼다. 어떤 사람이 형식의 팔을 잡는다. 형식은 입에 거품을 물고,
"이놈, 배명식아!"
하고는 기가 막혀 말이 아니 나온다. 형식은 아니 잡힌 팔로 배학감의 면상을 힘껏 때리고, 아까 형식의 발길에 채어 거꾸러진 사람을 힘껏 이삼 차나 발길로 찼다. 그 사람은 저편 문을 열고 뛰어나갔다. 형식은,
"이놈, 김현수야!"
하고 소리를 쳤다. 그러고는 넘어져 깨어진 영창을 들었다. 여자는 두 손으로 낯을 가리우고 흑흑 느낀다. 손과 발은 동여매였다. 그러고 치마와 바지는 찢겼다. 머리채는 풀려 등에 깔렸고, 아랫입술에서는 빨간 피가 흐른다. 방 한편 구석에는 맥주병과 얼음 그릇이 넘느른하고 어떤 것은 깨어졌다. 형식은 얼른 치마로 몸을 가리고 손발 동여맨 여자를 안아 일으켰다. 여자는 얽어매인 두 손으로 낯을 가리운 대로 울기만 한다. 우선도 방 안에 들어왔다. 얽어매인 손발을 풀면서 형식더러,
"두 사람은 포박되었네."
하고 웃는다. 형식은 이러한 경우에 웃는 우선을 원망스럽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우선은 이러한 사건을 형식의 모양으로 그리 큰 사건이라고는 생각지 아니한다. 우선은 천하 만사를 웃고 지내려는 사람이었다. 형식은 얼굴에 꼭 대고 있는 여자의 손목을 풀었다. 그러나 여자는 여전히 손을 낯에서 떼지 아니하고 운다. 형식은 얼마큼 분한 마음이 스러지고 냉정하게 생각할 여유가 생겼다. 형식은 우뚝 서서 옷고름이 온통 풀어지고 옷이 흘러내려 하얀 허리가 한 뼘이나 내어놓인 것을 보고 새로운 슬픔이 생긴다. 형식은 '이것이 과연 박영채인가' 하고 '박영채가 아니면 좋겠다' 하였다. 그러고 그 옷을 보고 머리를 보았다. 무론 그 여자는 모시 치마도 입지 아니하고, 서양 머리도 쪽찌지 아니하였다. 형식은 그 치마를 만든 감이 다만 무슨 비단이어니 할 따름이요, 무엇인지를 몰랐다. 머리에 핏빛 같은 왜증 댕기를 들이고 손에는 누런 빛 있는 옥지환을 꼈다. 형식은 그 여자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차마 그 얼굴을 보고자 아니하였나니, 대개 그 얼굴이 '박영채'일까 보아 두려워함이라.
우선은 그가 월향인 줄을 알았다. 그러나 월향이가 그 친구 되는 이형식의 은인의 따님이요, 또 이형식을 위하여 정절을 지킨다는 말을 듣고는 월향더러 '얘, 월향아' 하고 부르기도 미안하고, 또 월향의 곁에 가까이 가기도 미안하였다. 그래서 한 걸음쯤 형식의 뒤에 서서 형식의 하는 양만 보고 섰다. 그러나 그 여자는 낯에 손을 대고 울 뿐이라 형식도 무어라고 부를 줄을 몰라 한참이나 우두커니 섰다가 그 여자더러,
"여보시오! 그 짐승놈들은 포박되었으니 안심하시오"
하였다. '안심하시오' 하는 형식도 그 안심하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몰랐다. 그 짐승놈들이 포박되고 아니 되기에 무슨 안심하고 안심 아니함이 있으리요. 아까 우선이가 형식에게 한 말과 같이 '모 다메다'가 아니뇨. 우선은 참다못하여,
"여보시오. 박영채 씨!"
하였다. 우선은 그 여자가 월향인 줄을 알며 또 월향은 즉 박영채인 줄을 알았다. 그러므로 한 달 동안이나 '얘, 월향아!' 하던 것을 고쳐 '여보시오, 박영채 씨' 한 것이라. 갑자기 '씨'를 달고 '얘'를 변하여 '여보시오' 하기가 보통 사람에게는 좀 어려운 일이언마는 우선에게는 그처럼 어려운 일이 아니라 우선은 다시,
"여보시오! 박영채 씨! 여기 이형식 형이 오셨습니다."
하였다. 이 말을 듣고 여자는 몸을 흠칫하며 두 손을 갑자기 떼더니 정신없는 듯한 눈으로 형식을 본다. 형식도 그 얼굴을 보았다. 그는 월향이었다! 박영채였다! 영채도 형식을 보았다. 그는 형식이었다! 이형식이었다! 형식과 영채는 한참이나 나무로 새긴 사람 모양으로 마주보았다. 우선은 말없이 마주보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이렇게 세 사람은 한참이나 마주보았다. 이윽고 우선의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다음에 형식과 영채의 눈에도 눈물이 돌았다. 영채는 피 흐르는 입술을 한번 더 꼭 물었다. 옥으로 깎은 듯한 영채의 앞닛박이 빨갛게 물이 든다. 형식은 두 팔로 가슴을 안으며 고개를 돌린다. 우선은 형식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형식은 소리를 내어 운다. 영채는 다시 앞으로 쓰러지며 운다. 우선도 입술을 물고 옷소매로 눈물을 씻었다. 종소리가 서너 번 똥……똥 울어 온다.
두 사람은 청량사에 다다랐다. 두 사람의 뒤를 따르는 사람은 종로경찰서의 형사였다. 우선은 김현수의 가는 집을 잘 알았다. 그 집은 우물 북쪽에 있는 조고마한 암자라, 여러 암자 중에 제일 깨끗하고 조용한 암자였다. 우선은 형식에게 손짓을 하여 문 밖에 서 있으라 하고 가만히 안에 들어갔다. 형식은 '여기 영채가 있는가' 하고 다리를 떨며 귀를 기울였다. 똑똑지는 아니하나 여자의 괴로워하는 소리가 나는 듯하다. 형식은 손으로 가슴을 만지며 한 걸음 더 들어서서 귀를 기울였다. 과연 여자의 괴로워하는 소리로다. 형식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뛰어들어갔다. 방에는 불이 켜 있고, 문을 닫쳤는데 머리를 깎은 사람의 그림자가 얼른얼른한다. 형식의 호흡은 차차 빨라진다. 우선이가 창으로 엿보다가 고양이 모양으로 가만가만히 나오면서 형식의 어깨에 손을 짚고 가늘게 일본말로,
"모 다메다(벌써 틀렸다)."
한다. 형식은 그만 눈에 불이 번뜻 하면서 '흑' 하고 툇마루에 뛰어오르며 구두 신은 발로 영창을 들입다 찼다. 영창은 와지끈 하고 소리를 내며 방 안으로 떨어져 들어간다. 형식은 영창을 떠들고 일어나는 사람을 얼굴도 보지 아니하고 발길로 차넘겼다. 어떤 사람이 형식의 팔을 잡는다. 형식은 입에 거품을 물고,
"이놈, 배명식아!"
하고는 기가 막혀 말이 아니 나온다. 형식은 아니 잡힌 팔로 배학감의 면상을 힘껏 때리고, 아까 형식의 발길에 채어 거꾸러진 사람을 힘껏 이삼 차나 발길로 찼다. 그 사람은 저편 문을 열고 뛰어나갔다. 형식은,
"이놈, 김현수야!"
하고 소리를 쳤다. 그러고는 넘어져 깨어진 영창을 들었다. 여자는 두 손으로 낯을 가리우고 흑흑 느낀다. 손과 발은 동여매였다. 그러고 치마와 바지는 찢겼다. 머리채는 풀려 등에 깔렸고, 아랫입술에서는 빨간 피가 흐른다. 방 한편 구석에는 맥주병과 얼음 그릇이 넘느른하고 어떤 것은 깨어졌다. 형식은 얼른 치마로 몸을 가리고 손발 동여맨 여자를 안아 일으켰다. 여자는 얽어매인 두 손으로 낯을 가리운 대로 울기만 한다. 우선도 방 안에 들어왔다. 얽어매인 손발을 풀면서 형식더러,
"두 사람은 포박되었네."
하고 웃는다. 형식은 이러한 경우에 웃는 우선을 원망스럽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우선은 이러한 사건을 형식의 모양으로 그리 큰 사건이라고는 생각지 아니한다. 우선은 천하 만사를 웃고 지내려는 사람이었다. 형식은 얼굴에 꼭 대고 있는 여자의 손목을 풀었다. 그러나 여자는 여전히 손을 낯에서 떼지 아니하고 운다. 형식은 얼마큼 분한 마음이 스러지고 냉정하게 생각할 여유가 생겼다. 형식은 우뚝 서서 옷고름이 온통 풀어지고 옷이 흘러내려 하얀 허리가 한 뼘이나 내어놓인 것을 보고 새로운 슬픔이 생긴다. 형식은 '이것이 과연 박영채인가' 하고 '박영채가 아니면 좋겠다' 하였다. 그러고 그 옷을 보고 머리를 보았다. 무론 그 여자는 모시 치마도 입지 아니하고, 서양 머리도 쪽찌지 아니하였다. 형식은 그 치마를 만든 감이 다만 무슨 비단이어니 할 따름이요, 무엇인지를 몰랐다. 머리에 핏빛 같은 왜증 댕기를 들이고 손에는 누런 빛 있는 옥지환을 꼈다. 형식은 그 여자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차마 그 얼굴을 보고자 아니하였나니, 대개 그 얼굴이 '박영채'일까 보아 두려워함이라.
우선은 그가 월향인 줄을 알았다. 그러나 월향이가 그 친구 되는 이형식의 은인의 따님이요, 또 이형식을 위하여 정절을 지킨다는 말을 듣고는 월향더러 '얘, 월향아' 하고 부르기도 미안하고, 또 월향의 곁에 가까이 가기도 미안하였다. 그래서 한 걸음쯤 형식의 뒤에 서서 형식의 하는 양만 보고 섰다. 그러나 그 여자는 낯에 손을 대고 울 뿐이라 형식도 무어라고 부를 줄을 몰라 한참이나 우두커니 섰다가 그 여자더러,
"여보시오! 그 짐승놈들은 포박되었으니 안심하시오"
하였다. '안심하시오' 하는 형식도 그 안심하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몰랐다. 그 짐승놈들이 포박되고 아니 되기에 무슨 안심하고 안심 아니함이 있으리요. 아까 우선이가 형식에게 한 말과 같이 '모 다메다'가 아니뇨. 우선은 참다못하여,
"여보시오. 박영채 씨!"
하였다. 우선은 그 여자가 월향인 줄을 알며 또 월향은 즉 박영채인 줄을 알았다. 그러므로 한 달 동안이나 '얘, 월향아!' 하던 것을 고쳐 '여보시오, 박영채 씨' 한 것이라. 갑자기 '씨'를 달고 '얘'를 변하여 '여보시오' 하기가 보통 사람에게는 좀 어려운 일이언마는 우선에게는 그처럼 어려운 일이 아니라 우선은 다시,
"여보시오! 박영채 씨! 여기 이형식 형이 오셨습니다."
하였다. 이 말을 듣고 여자는 몸을 흠칫하며 두 손을 갑자기 떼더니 정신없는 듯한 눈으로 형식을 본다. 형식도 그 얼굴을 보았다. 그는 월향이었다! 박영채였다! 영채도 형식을 보았다. 그는 형식이었다! 이형식이었다! 형식과 영채는 한참이나 나무로 새긴 사람 모양으로 마주보았다. 우선은 말없이 마주보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이렇게 세 사람은 한참이나 마주보았다. 이윽고 우선의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다음에 형식과 영채의 눈에도 눈물이 돌았다. 영채는 피 흐르는 입술을 한번 더 꼭 물었다. 옥으로 깎은 듯한 영채의 앞닛박이 빨갛게 물이 든다. 형식은 두 팔로 가슴을 안으며 고개를 돌린다. 우선은 형식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형식은 소리를 내어 운다. 영채는 다시 앞으로 쓰러지며 운다. 우선도 입술을 물고 옷소매로 눈물을 씻었다. 종소리가 서너 번 똥……똥 울어 온다.
40
형사는 김현수, 배명식 양인에게 박승을 지워 마당으로 끌고 들어왔다. 형식은 당장 마주 나가서 그 두 사람의 살을 뜯어 먹고 뼈를 갈아 먹고 싶었다. 두 사람은 그래도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그네는 결코 후회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네의 생각에 기생 같은 계집은 시키는 말을 아니 들으면 강간을 하여도 관계치 않다 한다. 그네는 여염집 부인이 남의 남자와 밀통함이 죄인 줄을 알건마는 기생 같은 것은 으레 아무나 희롱하는 것이 마땅하다 한다. 여염집 부녀에게는 정절이 있으되, 기생에게는 정절이 없는 것이라 한다. 과연 그네의 생각하는 바는 옳다. 법률상 기생은 소리와 춤으로 객을 대하는 것이라 하건마는, 기실은 어느 기생치고 밤마다 소위 '손을 보'지 아니하는 자가 없다. 그러므로 김현수나 배명식의 생각에, 기생이라는 계집사람은 모든 도덕과 모든 인륜을 벗어난 일종 특별한 동물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그가 오늘 저녁에 한 일이 결코 도덕이나 양심에 거슬리는 행위인 줄로는 생각지 아니한다. 다만 귀찮은 법률이라는 것이 있어 '부녀의 의사를 거슬리고 육교를 한 것'을 강간죄라 할 것이 두려울 뿐이었다. 그러므로 그네가 만일 이 자리를 벗어나기만 하면 내일 아침부터는 자기네는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인 줄로 알 것이라. 다만 배명식은 소위 교육자라는 명목을 띠고서 이러한 허물로 박승을 지게 되면, 경성학교의 학감의 지위가 위태할 것을 근심하였을 뿐이라.
형식은 분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인 두 사람을 보았다. 김현수로 말하면 마땅히 그러할 사람이라 하더라도, 소위 교육자라 일컫는 배명식이가 이런 대죄악을 범하였음을 보고 더욱 분하여 하였다. 형식은 배의 곁에 서며 조롱하는 목소리로,
"여보, 배형. 이게 무슨 짓이오? 교육가로 강간이란 말이 웬 말이오?"
하였다. 배명식은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이형식이가 왜 이 일에 참견하는가' 하고 그것을 이상히 여겼다. 그러고 이형식은 상관없는 일에 참견하는 놈이라 하고 괘씸하게도 여겼다. 자기가 강간죄를 범하였으니, 형사의 포박을 당하는 것은 마땅하거니와 상관없는 이형식에게 책망을 받을 이유야 무엇이랴 하였다. 그러고 이렇게 생각하였다. 아마 이형식도 표면으로는 품행이 단정한 체하면서도 속으로 기생집에를 다녀 월향과 친하였다가, 자기가 월향을 손에 넣으려는 것을 시기하여 형사를 데리고 온 것이라 하였다. 그렇지 아니하면 이형식이가 상관도 없는 일에 형사를 데리고 오며 저렇게 성낼 까닭이 없으리라 하였다. 배명식은 직접으로 자기의 이해에 상관되는 일이 아니고는 슬퍼할 줄도 모르고 괴로워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라. 자기의 자식이 칼로 손가락을 조곰 벤 것을 보면 명식은 슬퍼할 줄을 알지마는, 남의 집의 아들이 죽는 것을 보더라도 '참 슬프옵니다' 하고 입으로는 남보다 더 간절한 듯이 말하는 대신에 마음으로 슬퍼할 줄을 모르는 사람이로다. 만일 영채가 자기의 누이동생이거나 딸이었던들, 남이 영채를 강간하는 것을 보면 반드시 형식보다 더욱 분을 내어 칼을 들고 덤비려니와 영채가 누이도 아니요, 딸도 아니므로 그가 강간을 받아도 관계치 않고 죽더라도 관계치 않다 한다.
형식은 김현수를 대하여,
"여보, 당신은 귀족이오! 귀족이란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칭호는 아니지요. 당신도 사오 년간 동경에 유학을 하였소. 당신이 어느 회석에서 말한 것을 기억하시오? 당신은 일생을 교육사업에 바친다고 한 말을."
하고 형식은 발을 굴렀다. 현수는 시골 상놈한테 큰 수모를 당한다 하였다. 암만하여도 나는 남작이요, 수십만 원 부자요, 너는 가난한 일서생이로구나. 지금은 네가 나를 이렇게 모욕하되, 장차 네가 내 발 앞에 꿇어 엎드릴 날이 있으리라 하였다. 나는 이렇게 형사에게 포박을 당하더라도 내일 아침이면 놓여 나올 수도 있건마는, 너는 한번 옥에 들어가기가 바쁘게 일생을 그 속에서 썩으리라 하였다. 네가 아무리 행실이 단정하다 하더라도 일생에는 무슨 허물도 있으리니. 그때에는 내가 오늘 받은 수모를 네게 갚으리라 하였다. 그러고 아까 영채를 안던 쾌미를 생각하매 중도에 방해를 더한 형식의 행위가 괘씸하다 하였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는 말할 바가 아니니 외따른 청량리 솔수풀 속에서는 남작의 권위와 황금의 힘도 부릴 수가 없음이라.
우선은 형식이가 두 사람을 크게 책망할 줄 알았더니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행실 잘하기를 가르치는 모양으로 말함을 보고 형식은 아직도 세상을 모르는 도련님이라 하였다. 만일 내가 형식이가 되었으면 이러한 때를 당하여 실컷 꾸지람이나 톡톡히 하여 분풀이를 하련마는 하였다. 그러나 형식으로는 이보다 이상 더 심한 책망을 할 줄을 몰랐다. 그래서 형식이가 마침내 다시 한번 발을 구르며,
"여보! 사람들이 되시오!"
하였다. 형식은 생각에 아마 이만하면 저 두 사람들이 양심에 부끄러움이 생겨 '다시는 이러한 일을 아니하리라' 하고 아프게 후회할 줄을 믿었다. 두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앉았는 것은 아마 자기의 말에 부끄러움과 후회가 생겨 그러하는 것이어니 하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기실 부끄럽기는 하였으나 후회하지는 아니하였다.
우선은 참다못하여,
"여보게 자네는 영채 씨 모시고 들어가게. 이 일은 내가 맡음세."
하였다.
형사는 김현수, 배명식 양인에게 박승을 지워 마당으로 끌고 들어왔다. 형식은 당장 마주 나가서 그 두 사람의 살을 뜯어 먹고 뼈를 갈아 먹고 싶었다. 두 사람은 그래도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그네는 결코 후회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네의 생각에 기생 같은 계집은 시키는 말을 아니 들으면 강간을 하여도 관계치 않다 한다. 그네는 여염집 부인이 남의 남자와 밀통함이 죄인 줄을 알건마는 기생 같은 것은 으레 아무나 희롱하는 것이 마땅하다 한다. 여염집 부녀에게는 정절이 있으되, 기생에게는 정절이 없는 것이라 한다. 과연 그네의 생각하는 바는 옳다. 법률상 기생은 소리와 춤으로 객을 대하는 것이라 하건마는, 기실은 어느 기생치고 밤마다 소위 '손을 보'지 아니하는 자가 없다. 그러므로 김현수나 배명식의 생각에, 기생이라는 계집사람은 모든 도덕과 모든 인륜을 벗어난 일종 특별한 동물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그가 오늘 저녁에 한 일이 결코 도덕이나 양심에 거슬리는 행위인 줄로는 생각지 아니한다. 다만 귀찮은 법률이라는 것이 있어 '부녀의 의사를 거슬리고 육교를 한 것'을 강간죄라 할 것이 두려울 뿐이었다. 그러므로 그네가 만일 이 자리를 벗어나기만 하면 내일 아침부터는 자기네는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인 줄로 알 것이라. 다만 배명식은 소위 교육자라는 명목을 띠고서 이러한 허물로 박승을 지게 되면, 경성학교의 학감의 지위가 위태할 것을 근심하였을 뿐이라.
형식은 분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인 두 사람을 보았다. 김현수로 말하면 마땅히 그러할 사람이라 하더라도, 소위 교육자라 일컫는 배명식이가 이런 대죄악을 범하였음을 보고 더욱 분하여 하였다. 형식은 배의 곁에 서며 조롱하는 목소리로,
"여보, 배형. 이게 무슨 짓이오? 교육가로 강간이란 말이 웬 말이오?"
하였다. 배명식은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이형식이가 왜 이 일에 참견하는가' 하고 그것을 이상히 여겼다. 그러고 이형식은 상관없는 일에 참견하는 놈이라 하고 괘씸하게도 여겼다. 자기가 강간죄를 범하였으니, 형사의 포박을 당하는 것은 마땅하거니와 상관없는 이형식에게 책망을 받을 이유야 무엇이랴 하였다. 그러고 이렇게 생각하였다. 아마 이형식도 표면으로는 품행이 단정한 체하면서도 속으로 기생집에를 다녀 월향과 친하였다가, 자기가 월향을 손에 넣으려는 것을 시기하여 형사를 데리고 온 것이라 하였다. 그렇지 아니하면 이형식이가 상관도 없는 일에 형사를 데리고 오며 저렇게 성낼 까닭이 없으리라 하였다. 배명식은 직접으로 자기의 이해에 상관되는 일이 아니고는 슬퍼할 줄도 모르고 괴로워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라. 자기의 자식이 칼로 손가락을 조곰 벤 것을 보면 명식은 슬퍼할 줄을 알지마는, 남의 집의 아들이 죽는 것을 보더라도 '참 슬프옵니다' 하고 입으로는 남보다 더 간절한 듯이 말하는 대신에 마음으로 슬퍼할 줄을 모르는 사람이로다. 만일 영채가 자기의 누이동생이거나 딸이었던들, 남이 영채를 강간하는 것을 보면 반드시 형식보다 더욱 분을 내어 칼을 들고 덤비려니와 영채가 누이도 아니요, 딸도 아니므로 그가 강간을 받아도 관계치 않고 죽더라도 관계치 않다 한다.
형식은 김현수를 대하여,
"여보, 당신은 귀족이오! 귀족이란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칭호는 아니지요. 당신도 사오 년간 동경에 유학을 하였소. 당신이 어느 회석에서 말한 것을 기억하시오? 당신은 일생을 교육사업에 바친다고 한 말을."
하고 형식은 발을 굴렀다. 현수는 시골 상놈한테 큰 수모를 당한다 하였다. 암만하여도 나는 남작이요, 수십만 원 부자요, 너는 가난한 일서생이로구나. 지금은 네가 나를 이렇게 모욕하되, 장차 네가 내 발 앞에 꿇어 엎드릴 날이 있으리라 하였다. 나는 이렇게 형사에게 포박을 당하더라도 내일 아침이면 놓여 나올 수도 있건마는, 너는 한번 옥에 들어가기가 바쁘게 일생을 그 속에서 썩으리라 하였다. 네가 아무리 행실이 단정하다 하더라도 일생에는 무슨 허물도 있으리니. 그때에는 내가 오늘 받은 수모를 네게 갚으리라 하였다. 그러고 아까 영채를 안던 쾌미를 생각하매 중도에 방해를 더한 형식의 행위가 괘씸하다 하였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는 말할 바가 아니니 외따른 청량리 솔수풀 속에서는 남작의 권위와 황금의 힘도 부릴 수가 없음이라.
우선은 형식이가 두 사람을 크게 책망할 줄 알았더니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행실 잘하기를 가르치는 모양으로 말함을 보고 형식은 아직도 세상을 모르는 도련님이라 하였다. 만일 내가 형식이가 되었으면 이러한 때를 당하여 실컷 꾸지람이나 톡톡히 하여 분풀이를 하련마는 하였다. 그러나 형식으로는 이보다 이상 더 심한 책망을 할 줄을 몰랐다. 그래서 형식이가 마침내 다시 한번 발을 구르며,
"여보! 사람들이 되시오!"
하였다. 형식은 생각에 아마 이만하면 저 두 사람들이 양심에 부끄러움이 생겨 '다시는 이러한 일을 아니하리라' 하고 아프게 후회할 줄을 믿었다. 두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앉았는 것은 아마 자기의 말에 부끄러움과 후회가 생겨 그러하는 것이어니 하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기실 부끄럽기는 하였으나 후회하지는 아니하였다.
우선은 참다못하여,
"여보게 자네는 영채 씨 모시고 들어가게. 이 일은 내가 맡음세."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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