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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람 불고 몹시 추운 저녁이었다. 정옥은 학교에 갔다 와서「에 추워」하면서 건넌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서 책상에 책보를 놓고 나니깐 전보 한 장이 놓였다.

「어쩐 전보야.」

하고 얼른 뜯어 보았다. 전보의 사연은 이랬다.

〈할멈 금야 구 시 착〉

정옥은 이런 사연을 보고 이마를 찌푸리고 입으로는 웃었다. 그것은 그 전보가 안주 그 본집에서 온 것을 알고 마치 놀이각시 시집 보내는 것처럼 할멈을 보내면서 그것을 하필 자기에게 보내어 어떻게 처리하라는 것이 귀찮고 속상하기 때문에 이마를 찌푸린 것이요, 집에서 그렇게 비루먹은 개처럼 구박 하다가 썩은 생선처럼 노래기처럼 보내는 터에 반가운 식구나 손님처럼 전보로 미리 통지를 하고 오는 것이 할멈의 처지에는 고양이 장삼 입은 것 같고 농사군이 사모관대나 한 것처럼 격에 맞지 않기 때문에, 더구나 그래도 그것이 서울 간다고 좋다고 춤을 추면서 오겠지 하고 입으로는 웃는 것이다.

「전보들도 잘하지, 돈들도 많은 게야.」

정옥은 쯧 하고 혀를 차고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전보 종이를 버리고 옷을 갈아입었다.

2

벌써 삼 년 전 일이다. 정옥의 둘째오빠가 그 부인과 화합하지 못하여 이혼한 후에 여러 해 동안 혼자 지내다가 새로 장가를 들어 서울서 학교 졸업한 새색시를 맞아들이고 회갑이 가까운 정옥의 모친은 더구나 노환이 몸에 떠나지 않기 때문에 집안일은 돌보아 줄 수 없는 형편이라, 아무리 간단한 살림이라도 식모의 필요가 생겼다. 이러한 사정을 잘 아는 충청도로 출가한 정옥의 언니 정순이 출가한 이후에 처음으로 친정에 오는 길에 함멈을 하나 데리고 갔던 것이다.

그 할멈은 나이 칠십이 가깝고 키가 좀 작고 얼굴은 꺼멓고 커다란 주름살이 많고 보기에도 뻣뻣하고 두터운 살가죽을 가진 노파이다. 그리고 아들이나 딸이나 세상에 도무지 혈육이란 하나도 없고 친척이 도무지 없는 그야말로 바위에서 낳았는지 장마비에 섞여 하늘에서 떨어졌는지 난 곳도 모르고 그러니까 제 나이도 모르고 물론 제 생일도 모른다. 아이들이 일부러,

「할멈 몇 살이오?」

하고 물으면 그 대답이 이렇다.

「충청도 있을 때 나하고 의좋게 지내던 처녀가 열 일곱 살인데 나하고 동갑이어서 나도 열 일곱 살이어.」

이 말을 듣고는 온 집안이 웃음판이 된다. 정옥은 몸이 오싹오싹 춥고 머리가 좀 아파서 자리를 펴고 누웠다. 가만히 누우니 할멈의 생각이 난다. 지난 여름방학에 집에 갔을 때 보던 생각이 난다. 공연히 싱글싱글 웃고 어깨를 실룩실룩하면서 춤을 추고 다니던 모양이 보인다. 하루종일 부엌에서 일하고 빨래하고 심부름하다가 어떻게 틈이 나서 주인마님이나 아가씨가 없는데 방안에 들어오면 고개를 기웃기웃하면서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작은 아씨 내 춤에 장단쳐 주어요.」

「그래 그래.」

그러면 할멈은, 좋다꾸나! 하고 두 팔을 벌리고 고개를 좀 갸웃하고 어깨를 놀리고 볼기짝을 흔들고 다리를 들썩거리면서 돌아 간다. 그러다가 흥이 나면 소리가 나온다. 그 소리는 늘 자청해서 하는 꼭 한 가지 소리다.

대모야 풍잠아 너 잘 있거라.
떨어지는 상투는 염낭에 넣고
……(여기는 정옥도 생각이 안 난다.)

도검불 치마는 검어서 좋고
홍당목 치마는 붉어서 좋다.

이상스럽게 우러나오는 딴 목소리를 내어 저 혼자 신이 나서 지껄이면서 춤을 추고 돌아간다. 늘 보고 듣는 것이라 그리 신기하지도 않아서 정옥은 소리를 질러,

「할멈 어서 나가서 저녁 시작하지, 또 마님한테 걱정 들으면 어떡해.」

그러면 할멈은 히히 웃으면서,

「밥은 만날 먹는걸 그리 급한가, 나는 늘 춤이나 추고 소리나 하라면 좋겠더라. 작은아씨도 지금 그러지 나처럼 늙으면 쓸데 없어. 죽으면 쓸데있나.」

「아이 어서 나가보아, 또 마님에게 야단맞으면 어떡해.」

「마님이 왜 야단하셔? 마님이 나를 어떻게 사랑하시는데, 떡도 사 주시고 저고리도 해 주시고 마님도 좀 들어와서 들으시라지. 내 소리를 들으면 모두 잘한다고 칭찬을 하는데, 이왕에는 인력거 타고 불려 다녔다오.」

그러고는 또 희희희희하면서 돌아서 나간다.

할멈은 집에서만 이렇게 소리를 하고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남의 집에 가서도 그러고, 거리에 다니면서도 그런다. 할멈은 매일 주 인나리의 도시락을 가지고 은행에 가는 것이 한 일과요,그것이 할멈에게는 큰 기쁨이다. 그 시간이 되기만 기다리다가 그때가 되면 다른 옷을 갈아입고 춤을 추면서 나간다. 은행에 갈 때나 심부름 갈 때나 밖에 나갈 때에는 으례 빨간 주머니 달린 흰 저고리와 검은 치마를 갈아입는다.

할멈은 이 빨간 주머니와 거기에 달린 은노리개가 큰 자랑거리다. 빨간 주머니는 충청도 아씨가 주고 간 것이요, 은노리개는 일본 공부갔던 작은나리가 준 돈 오전으로 어느 장날 산 것인데 밖에 나갈 때는 반드시 잊어버리지 않고 달고 나간다. 마님이 흉하다고 때어 버리라고 해도 기어이 비뜰어매고 다닌다. 그리고 나가서는 거리의 상점에 앉아서 하라지도 않는 소리를 혼자 한다. 그러면 사람이 둘러서서 큰 웃음거리가 된다. 그래서 성내 거리에서는 소리 잘하고 춤 잘 추는 충청도 할멈이라, 흑은 기생할멈이라 하여 유명하다. 그래서 나가면 으례 상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소리해라,춤 추어라.」

한다.

할멈은 나이는 육십이 훨씬 넘었지만 마음은 어린애다. 어린애들과 썩 잘 논다. 정옥의 큰집에는 어린애가 없으나 작은집에는 정옥의 조카가 둘이나 있다. 심부름을 갔다가는 그아이들과 놀고 과자를 얻어먹고 세월 가는 줄을 모르기 때문에 늘 책망을 듣는다. 그리고 아이들에게서 얻어 먹을 뿐 아니라 정옥을 보고도 조용한 틈만 있으면 떡 사 달라고 하고 마님과 같이 장에 나가면〈떡 사 달 라, 사탕 사 달라〉염치없이 조른다. 그러면 어떤 때는 사주기도 한다.

할멈은 몸이 아주 든든해서 힘드는 일도 잘하고 별로 앓는 일이 없다. 그러다가 일이 정말 고되고 어려울 때에 몸이 좀 지쳐서 앓게 되면 방 한모통이에서 요를 머리까지 온통 들쓰고 끙끙 몹시 앓는다. 그럴 때는 당장 죽을 것처럼 앓는다. 그러면 주인나리는 불쌍한 늙은이라하여 아랫목에 눕게 하고 이불을 덮어 주고 마님이나 아씨가 친히 부엌에 나가서 밥을 짓는다.

정옥은 지난 가을에(개학할 임시에). 할멈이 찬 비를 맞고 빨래를 하고 나서 그날 밤에 몹시 않은 것이 생각나서 불쌍한 마음이 생겼다. 그러나 할멈이 대개는 말도 잘 듣고 일도 잘하고 춤추고 소리나 하여 낙천적으로 지내지만 조금이라도 심사가 틀리면 큰소리를 내어 대답을 하고 밥도 아니 먹고 들어와 아프다고 쓰고 눕는다.

할멈이 심사가 틀릴 때에 들어가 병을 앓는 것은 상관이 없으나 주인마님이나 아씨의 말을 안 듣고 항거하여 함부로 덤벼들 때에는 동정하던 주인들도 그만 진절머리가 나서 가만두지 아니한다. 처음에는 주인나리는 불쌍한 늙은이라 하여 역성을 들어 주고 주인 여자들을 잘못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조용하던 집에 정옥이 어머니의 환갑을 지내고, 아씨가 아기를 낳고 하기 때문에,일도 좀 많아졌거니와 한 가지 까닭은 아무것도 없는 불쌍한 늙은이라 하여 너무 덮어 주고 너무 동정하여 어떤 때는 한집에 세력을 잡은 나리가 주인마님이나 아씨보다 자기를 더 위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하여 실상 분명히 할멈이 잘못하여 책망을 듣고 주인의 노염을 당할 때에도 할멈은 덮어 두고 마님이나 아씨를 그르다고 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 마음을 너무 길러 주고 그 성미를 길러 준 결과 마침내 옳거나 그르거나 주인 부인네의 말을 듣지 아니할 뿐 아니라 도리어 주인을 업신여겨서 여러 가지 수욕을 더하고 야단을 하는 일이 그치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일을 정옥은 친히 목도하여 잘 안다.

정옥은 여름에 갔을 때에 할멈이 심사를 내어 그 어머니에게 대하여 마치 자기 동배로 더불어 싸우는 것같이 아주 거만스러운 태도로 마디마디 큰 소리를 내어 야단하던 것과 그러다가 가없이 어슬렁어슬렁 대문 밖으로 쫓겨나가던 것과 나갔다가도 마님에게 사과도 아니하고 태연히 들어와서 웅크리고 앉았던 것이 생각나고,또 한번은 주인아씨와 충돌되어서 후원 우물가에서 입에 담을 수 없이 고약스러운 욕설을 퍼붓던 것도 생각났다. 그뿐 아니라 밖에 나가서 주인아씨와 심지어 나리의 흉을 선전하였다는 것을 생각하였다. 또 비녀와 돈을 훔쳐서 그 오빠 에게 초달1을 맞던 생각이 났다. 그때마다 할멈은 불쌍한 것인지 미운 것인지 불쌍히 여겨 도와 주어야 할지 미워서 내버려 두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정옥에게는 불쌍한 것을 어떻게 하여 구할까 하는 생각보다도 저 미치광이 같은 것, 저 미친 개 같은 것, 집에서도 어찌할 수가 없어서 종내 쫓아 보낸 것. 이런 생각만 나서 할멈이라는 것은 끔찍하고 무서운 물건, 싫고 괴로운 것같이만 생각되었다. 자리에 누웠던 정옥은 저걸 어떡해, 하며 벌떡 일어나서 나왔다.

3

정옥은 부엌에 나가서 주인집 아주머니가 저녁 짓는 데 불을 때어 주고 앉았다.

「참 전보 보소오. 무슨 전봅디까?」

「보았어요, 그까짓 거.」

「왜 무슨 전본데.」

「우리 할멈이 오신다오.」

「응 접때 편지 왔다더니 그게구먼.」

「그렇다오, 글쎄 그걸 어쩌면 좋아요?」

「아 나가 보아야지.」

「나가 보면 무얼해요, 나가면 만나지요, 만나면 데리고 들어와야지요, 들어오면 여기를 두어 둡니까, 그걸 차마 한길에 내다 버립니까.」

「그래두 나가 보아야지 그거 불쌍하지 않소?」

「글쎄 아주머니 어떡해?」

「어떡하긴 어떡해, 나가보아야지. 나오라구 했다지?」

「아이구 난 몰라.」

「대관절 편지에 뭐랬읍디까? 다시 좀 이야기를 하오.」

「무어라고 그러긴 아주머니도 가 보시고 그래. 할멈이 너무 흉악하게 굴어서 암만 해도 둘 수 없어서 자기 소원대로 서울을 보내니 너 있는 곳에 네나 데리고 있든지 저 있던 곳이라는 데를 데려다 주든지 충청도 저희 고향으로 보내든지 하라고 하지 않았어요? 말은 좋지.」

「참 그랬지!」

「저 있던 데라는 데가 어데요?」

「사직골이라든가, 내 접때 이야기했지요, 왜.」

「그럼 거기 데려다 주지.」

「아주머니두, 그게 벌써 몇 해 전인데 그 집이 여태 그냥 있기나 하며, 또 있다면 그 따윗걸 무엇이 반가워서 맞아들인답디까?」

「글쎄, 우리 집에라도 두었으면 좋으련만 그럴 수도 없고 어떡하나?」

정옥은 방안에서 저녁을 먹고 날이 몹시 춥고 바람이 또한 요란스럽게 불기 때문에, 더욱 쓸쓸한 건넌방에 혼자 앉아 있기도 싫거니와 건넌방은 춥고 안방은 따뜻하기 때문에 그냥 안방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더구나 내일은 임시 시험이 있으므로 여러 해 교사 노릇하던 아주머니에게 모를 것은 물어가며 수학을 복습하기에 골몰했다. 새로 난 교과서의 미터법은 옛날에 공부한 아주머니도 가르쳐 주지 못하기 때문에 정옥이 혼자서 교과서와 필기책을 가지고 씨름을 하면서 몹시 애를 쓴다.

그러다가 정옥은 우연히 아랫목 담벼락에 걸린 큰 시계를 쳐다보았다. 시계를 보고,

「아이쿠」

하고 부르짖었다. 작은 침은 IX자를 지나고 큰 침은 VI에 가까왔다. 신의주 방면에서 오는 찻시간은 아홉 시 이십 분이라 벌써 도착한 지 오랬다. 정옥은 무슨 큰 죄나 지은 것 같이 멍하니 앉았다.

정옥의 눈에는 커다란 보퉁이를 옆에 끼고 정거장 구내에서 두리번두리번하고 허둥지둥 하는 할멈이 보였다. 그러다가 마중나올 줄 알았던 작은아씨가 아니 보일 때에, 혹 작은 아씨 비슷한 사람은 바삐 왔다갔다 하여도 모두 모른 체하고 지나갈 때에 할 수 없이 밖으로 바삐 밀려나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휩싸여서 휘황한 전등불을 쳐다보면서 밀려나오는 것이 보였다. 밖에 나와서도 왔다갔다 하면서 작은아씨를 찾다가 인력거군과 여관쟁이들의 야단하는 소리, 자동차의 붕붕 하는 소리가 뒤섞여 몹시 분주한 가운데 뒤도 아니 돌아보고 달아나는 사람뿐이요, 작은아씨라고는 그림자도 보이지 아니할 때에 그만 절망하여 울 듯이 한모퉁이에 멍하고 섰는것이 보였다.

(어떻게 되었을까? 여관쟁이에게 붙들려 어디로 들어갔을까? 그러면 평안히 자겠지. 혹 순사에게 붙들려서 벌벌 떨고 섰을까? 거기서 내 이름을 부르고 내 말을 하면 어떡하나, 만일에 집에서 번지를 적어 주었으면 어떡하나. 그래서 순사가 데리고 와서 야단을 하면 어쩌나.)

정옥은 이런 생각을 하고 아주머니와 같이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인제 어떡하나 할 수 없지.」

하고 자리를 펴고 누웠다.

바람은 그냥 호통치듯 불고 있다. 조금 떨어진 뒷간 함석이 바람에 흔들려서 덜거덕덜거덕 야단을 한다. 바람에 대문 소리가 조금 삐걱 하고 나도〈순사가 와서 찾지 않는가〉 하고 깜짝깜짝 놀랐다.

4

열 시가 거의 다 되어서 정옥은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대문 소리가 나더니 어느새 뜰에 사람 소리가 난다.

「손님 오셨읍니다.」

정옥은 깜짝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르고 눈이 둥그래서 아주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어서 나가 보라.」

하는 아주머니의 눈짓으로 문을 열고 나가 보았다. 깜깜한 뜰에 시꺼먼 사람이 초롱불을 잡고 섰는 것이 눈에 보이자 마루끝에 회끄무레한 그림자가 선뜻 올라서면서,

「아이 작은아씨 아니야요!」

하는 것은 온다고 하던 할멈의 목소리다.

정옥은 하도 놀라고 기가 막혀서 말도 아니 나오는 것을 입맛을 다시고서 게다가 추워서 떨면서 인력거 값을 물어 주었다. 그리고 할멈이 들어와서 빙글빙글 웃으면서 묻지도 않는 것을 혼자말로 전하는 본집 소식을 잠자코 듣고 앉았다가 처음으로 입을 열어 물었다.

「할멈 왜 왔노?」

「작은아씨 볼려고 왔지?」

하고 할멈은 한번 히히 웃었다. 그리고 작은 아씨에게 드리는 선물이라 하는 것처럼 먹던 귤 한 개를 내놓았다.

「작은아씨 잡수어 보셔요.」

정옥은 안 들은 체하고 일어서 건넌방으로 가면서,

「어서 가 자지, 할멈.」

그날 밤은 건넌방에서 정옥의 옆에서 잤다.

5

다음날 아침이다. 정옥은 학교에 가고 할멈은 정옥의 방으로 안방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혼자서 무어라고 이야기를 하고 중얼거린다. 정옥의 아주머니는 하도 우스워서 쳐다보다가 얼굴에 분칠을 하얗게 한 것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웃으면서 물어보았다.

「늙은이가 분은 왜 발랐나?」

「예쁘라고 발랐지.」

할멈은 소리를 하고 춤을 추면서 돌아 간다. 너무 우습고 가없어서 다시는 묻지도 않고 내버려 두었다. 그러나 할멈은 정옥이 없는 새에 종일 묻지도 않는 말을 남이 듣거나 말거나 혼자서 지껄이고 있다. 그것은 모두 예전 있던 안주댁 정옥의 본집의 흉이다. 주인아씨의 욕이며 마님의 흉이며 나중에는 정옥의 오빠의 흉까지 입에 담을 수 없는 흉악한 말뿐이다. 듣다못해, 「늙은이가 있던 주인댁의 흉을 전해서는 못써!」

하고 그 입을 막았다. 그때에 할멈은,

「참말 그래 내 실수로군.」

하고 웃는다. 정옥의 아주머니는 집에 둘 수 없는 고약한 늙은이다, 하고 생각하였다.

6

정옥이 학교에서 돌아왔다. 정옥이 학교에서 오면서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구두도 벗지 아니하고 할멈보고 말했다.

「할멈 있던 사직골 데려다 줄 터이니 지금 가.」

「작은아씨, 데려다 줄 테야? 그럼 가지.」

「할멈 짐도 가지고 가지.」

「가지고 갈까? 그랴.」

부엌에서 밥 짓는 정옥 아주머니에게 가서 귓속말 하는 것같이 하면서 혼자서 중얼거렸다.

「작은아씨가 나를 데리고 가서 떼어버리고 오랴고 그러지.」

이 말이 끝나기 전에 정옥은 큰 소리를 치면서, 저물었는데 어서 가자고 재촉했다. 할멈은 춤을 추면서 커다란 보퉁이를 이고 정옥을 따라 대문 밖으로 나갔다.

한 사십 분 만에 정옥은 돌아왔다. 바람이 몹시 부는데 나갔다가 온 정옥은 볼이 빨개져서 아무말도 없이 들어온다. 아주머니는 잠깐 기다려서 물어보았다.

「어떡하고 왔소?」

「사직골 가서 두리번두리번할 때 휙 돌아서 왔지.」

「저걸 어째!」

「…………」

「참 안주댁에서 편지 왔읍디다. 책상에 놓아 두었소.」

「편지?」

하면서 정옥은 방으로 들어갔다. 펼썩 주저 앉으면서 책상에 놓인 엽서를 읽어 보았다. 편지 사연은 이렇다.

  • ……할멈은 보았을 듯하다. 할멈은 그 댁에 두게 하든지 여비를 보내 줄 터이니 고향으로 보내 주든지 저 있던 집을 찾아 주든지 어디 있을 곳을 얻어 주든지 하지 함부로 갖다 내버려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 내려다보신다. 너는 아직 앞길이 창창한 어린애다.

할멈을 갖다 버리고 와서 정옥은 마음에 죄송스러운 생각이 많고 큰 죄를 저질러 놓은 것 같아서 공연히 가슴이 울렁거리고 마음이 편치 못하던 터에 오라버니 편지에〈하나님께서 내려다보신다〉하는 구절에 이르러서는 벽력이 내리는 듯이 속이 끔찍하고 정신이 아찔하였다. 그것이 편지의 구절 같지 않고 공중에서 나는 무서운 소리같이 정옥을 위협하였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며 정옥은 망연히 앉았다. 그리고 한숨을 지으면서,

「어쩌란 말이야……나는 몰라.」

정옥은 한숨을 길게 쉬고 엽서를 다시 한번 읽어 보았다. 그리고 이리저리 생각하였다.

사실 정옥은 아직 나이 어리고 더구나 인제 혼인 문제도 있는 터이라 앞길이 멀고먼 처녀다.

(내가 왜 남에게 못할 짓을 하랴. 남의 원한을 받으랴. 더구나 상관도 없는 일에 내가 죄를 입으랴.)

생각하였다. 겨우 밥을 좀 먹고 곧 아주머니와 같이 바로 떠났다. 바삐 사직골로 가서 그 자리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할멈은 그림자도 볼 수 없다. 이 모퉁이 저 모퉁이 한참 찾아보아야 할멈 같은 사람은 없다. 파출소에 물어보아도 모른다고 한다. 몇 곳 상점에서 물어보았으나 아무도 보았다는 사람은 없다. 바람이 불어 날씨가 차기 때문에 밤도 깊지 않았는데 행인이 드물고, 여염집은 물론이요,상점 문들도 다 닫혔다. 그래서 더 물어보고 싶은 것도 못 물어보고 돌아왔다. 오는 길에는 사람이 별로 없고 바람만 야단스럽게 부는데 야주개 모퉁이 군밤 장수는 웅크리고 떨면서 걷어 가지고 돌아가기를 준비한다.

정옥은 집에 와 누웠으나 그날 밤은 꿈만 꾸고 졸연히 깊은 잠을 들지 못했다. 다음날 학교에 가서도 선생의 말이 귀에 잘 들어 오지 않았다.

그 뒤에 두 달 석 달이 지나도록 종내 할멈을 만나지 못하고 그 비슷한 늙은이도 보지 못했다. 아무에게서도 그 소식도 듣지 못했다. 그리고, 밤에 자려고 눈만 감으면 할멈이 싱글싱글 이상스럽게 웃으면서,

대모야 풍잠아 너 잘 있거라
떨어지는 상투는 염낭에 넣고
……웅웅
도검불 치마는 검어서 좋고
홍당목 치마는 붉어서 좋다.

얄궂은 노래를 부르던 모습이 눈앞에 떠오고 잠만 들면 전에 안주서 자기 어머니——마님에게 대들어서 이를 악물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발발 떨면서 발악을 하던 흉악스러운 꼴이 자꾸만 보이고 뇌리에 달라 붙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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