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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마침 아내가 밖에 나가고 없는 틈을 타서 나간다는 정분이를 불렀다. 몇 번 불러도 대답이 없다. 그는 종내 정분이가 있는 건넌방으로 갔다.

「정분아, 이제 네가 나가면 어델 나간단 말이냐. 그러지 말고 내 말대로만 해라. 그러지 말고 참고 있어라. 아짐마가 몸도 약하고 사람 없이는 안될 텐데……」

「……」

간곡히 타이르는 그의 말을 들은 체 만 체 대답이 없이 볼이 잔뜩 부은 그대로 금방이라도 나갈 자세를 취하고 외면을 하고 있는 정분이 꼴이 얄밉기도 하다.

「에익 이년」하고 일어서고 말까 싶은 생각도 들었으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어린 정분이가 불쌍해서 못 견디겠다. 어린것이 불쌍한 생각과 자기의 정신이 통쾌해지지 않는 안타깝증이 어울려서 그는 홱 달려들어 정분이를 껴안았다.

「정분아,정분아……」

이렇게 정답게 불러 보았으나 정분이 자신은 붉게 상혈된 눈만 두꺼비 모양 껌벅거리고 있고 아무 감각이 없는 것 같다. 그래도 그는 단념할 수가 없다.

「정분아 네가 아무리 어리기로서니 내 마음을 모른단 말이냐, 응 정분아.」

그는 울음까지 섞인 목소리로 정분이 어깨를 흔들었다.

「응, 얘 정분아……」

그는 다시 한번 정분이 어깨를 흔들었다.

「아저씨 맘은 저두 잘 알아요. 그래두 저는 나가겠어요. 나가라는 걸 나가지 어떻게 있어요?」

정분이의 목소리도 약간 흐려지고 떨렸다. 그래도 마음이 움직여지는 것 같지는 않다.

「이애가 글쎄 나가라긴 뭐 아짐마기 널 미워서 그랬겠니,네가 하두 말썽을 부리니까 화가 나서 그랬지. 내가 있으라면 그만 아니냐. 내가 이 집의 주인이 아니냐, 내가 월급을 주지 않니. 내 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주는 게 아니냐? 너도 그만한 건 알겠구나!」

그는 이런 말까지 해본다.

「그래두 아저씨는 늘 나가 계시구 집엔 얼마 계셔요? 집에서 일 시키는 아줌마가 나를 보기 싫다구 나가라는 걸 어떻게 있어요. 저두 인제 이 집에 있기 싫어요. 씨씨해요.」

아내가 하던 말까지 덧붙이는 정분이의 말은 냉정하였다. 아내가 있었더면 또 한번 야단이 날 판이다.

「음!」

그는 자기가 지금까지 믿었던 자기의 인격 이라는 것이나 자비심에 가까운 사랑이란 것도 몇 푼어치 안되는 걸 처음으로 뼈저리게 느끼고 얼굴이 달아오는 걸 느끼며 화가 날 지경이다. 종내 벌떡 일어났다.

「그래두 넌 못 나간다. 네 맘대로 못 나간다. 너의 어머니가 와서 널 어쨌느냐고 내놓으라면 어쩌니? 내가 그렇게 말리는 말두 안 듣고 나가겠단 말이지, 안된다.」 \

정분이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내쏘았다.

「내 맘대로 하지 누구에게 맸나요?」

밖에서 대문 열라는 종소리가 나는데 정분이는 대문을 열기 위하여 일어서려고도 하지 않고 돌아앉아서 속으로 옹알거리며 제 보따리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는 얼른 나가서 문을 열어 주었다.

「가게집에 접때부터 부탁했더니 음식두 잘 하고 얌전한 아이 하나 있다구 내일 모레쯤 데려다 준대요. 에잇 속이 시원해……」

아내는 아무 일도 없이 다 되었다는 듯이 싱긋이 웃으면서 방으로 들어온다.

「글쎄……」

아내와 더 말해야 소용이 없는 줄 안 그는 모자를 쓰고 나가버렸다. 대학 강의시간이 있어서 더 머무를 수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는 아직 완전히 응낙을 하지 아니했다는 속셈으로〈글쎄〉를 던져 놓고 나오기를 잊지 아니했다.

아내는 정분이의 존재를 잊어버린 듯이 썩썩 방걸레를 치고 있다. 건넌방에서는 아무 소식이 없다. 남편이 나간 뒤를 걷어치운 다음에 아내 경희는 조간신문을 들어서《여인 천하》를 들여다보고 있다. 쥐 이야기를 읽는 그녀는「과연 옛날 이야기로군」하면서 그리 흥미를 느끼지 않는 성싶었으나 내려읽고 있었다.

「홍 아저씨두 암만 그래두 아줌마 편이지 무얼 그래.」

정분이는 단발머리에 흰〈에리〉달린 여학생 교복에 백환짜리 브로우치를 붙이고(그것은 지난 가을에 애기를 업고 경희를 따라 미도파에 갔을 때에 산 것이다) 살짝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서 중얼거린다.

「날 보기 싫다는데 눈에 뵐 거 없지 기까짓거——」

정분이는 주인 아줌마에게 간다는 인사도 안하고 보따리를 끼고 대문을 나서서 뺑소니를 쳐버렸다.

정분이로서는 당연한 생각이다. 사실 요새 경희의 입에서는 정분이에게 대해서 보기 싫다는 말이 가끔 나왔다. 경희가 정분이를 보기 싫다는 것은 그 행동이나 태도가 보기 싫다는 것이지 사람 자체가 보기 싫다는 건 아니었다. 정분이가 불쌍하다는 것은 경희도 늘 생각하고 마음에 먹고 있는 일이다. 불쌍하다고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잘 키워서 사람을 만들어 가지고 시집까지 보내 주려고 하는 생각은 내외가 마찬가지였다.

(어린것이 철이 없어 그렇지.)

그가 정분이에게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나 아내가 생각하는 것은〈아직 철이 없는 것이 그렇지〉하는 것이었다. 정분이가 말을 안 듣고 말썽을 부릴 때마다 두 사람은 그렇게 말 하고 언제나 눌러오고 참아오곤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요새에 들어서 아내는,

「안됩니다. 벌써 바탕이 글렀는걸.」

정분이는 희망이 없다는 것을 단정적으로 역설하는 것이다.

어제 저녁에도 정분이 말이 나와서 아내는 가장 냉정하게〈바탕이 글렀는걸〉을 되풀이 하며 역설하였다. 그럴 적마다 그는 반대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다.

「바탕은 무슨 바탕, 어디 바탕이 따루 있소? 그야 물론 소질 관계두 좀 있긴 있지만 당신은 밤낮 바탕 바탕 하니 소질이 좀 좋지 못한 놈은 절대루 희망이 없단 말이오? 그런 게 아니야.」

그는 바탕이 좋지 못한 아이라도 잘 가르치면 된다는 주장을 늘 해왔다. 그럴 적마다 아내는 반대다.

「홍, 당신이 해보시구려. 왜 못하는 거요. 교육가요 종교가요 성자로 자처하는 분이 왜 못하셨소?」

아내는 무심히 하는 말이지만 그에게는 날카로운 칼을 가지고 가슴을 우벼내는 것같이 아픈 일이었다.

대문을 나선 그는 시간이 바쁘건만 발걸음이 내쳐지지 않았다.

(그 놈이 정말 내 말을 안 듣고 나갈까? 나갔을는지도 모른다. 나갔을 거다.)

정분에게 대한 조바심이 첫째요, 다음에는 그날 아침에 아내가 던진 그 말이 켕겨서 였다.

「교육가요 종교가요 성자로 자처하는 분이 왜 못하시오?」

하는 아내의 말에,

「내가 언제 성자로 자처했던 말이오? 당신은 절대로 그런 말을 마오. 그저 크리스찬으로, 또 세상에서 종교가로 지목받는 우리가 최선을 다해 보자는 거지!」

하고 아내의 말을 막아 놓았지만 그것이 마음에 몹시 걸린다.

목구멍에 반찬 가시가 걸린 이상으로 마음에 걸린다.

(내가 언제 성자로 자처했단 말인가.)

그는 버스길로 나가면서 곰곰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옛날에 어떤 교회 경영의 여학교 선생 일을 볼 때 일이다. 어떤 말이 적고 생각을 많이 하는 모범생인 학생으로 그리고 자기를 잘 이해하는 학생 한 사람이 조용히,

「선생님은 요새 보통 사람은 아니야요. 저희들 눈에는 성자로 보이어요.」

하더란 말을 한 일이 있기는 하다. 그리고 또 한번은 그 학생이,

「선생님이 언젠가 아침에 학교에 올라오셔서 밤 동안에 기숙사에 있는 학생들이 별일이나 없는가 하고 염려가 되더란 말씀을 하셨지요. 그때에 어떤 아이는 입을 비쭉거리고 웃고 어떤 아이는 선생님 참말이예요? 하고 의아스러운 질문을 던졌지만 저희 몇 사람은 선생님이 사실 그러시리라고 믿었어요.」

하더란 말을 아내에게 솔직하게 한 일이 있긴 하다. 그리고 아내를 믿고 간격이 없이 생 각하기 때문에 요새 교육가는 물론이요 종교가란 사람들도 구십 구 퍼센트는 가짜라고 한 말이 있었다. 그때에 아내가 웃으면서 하는 말이,

「그 구십 구 퍼센트 가짜 내놓고 일 퍼센트가 진짜인 당신이시란 말이지요.」

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성자로 자처한 일은 없다.

〈성자?〉〈성자?〉 내게 어느 정도 성자다운 사랑이 있다면 어째서 정분이가 내가 있는 집을 버리고 나가려고 할까? 이러니저러니 해야 내 사랑이 부족한 탓이다. 내 사랑의 힘이 부족한 까닭이다. 나는 사랑하는 체한다. 사랑하느라고 흉내를 내 왔었다.

언젠가 그것도 그 여학교 일을 볼 때다. 밤늦게 집에 돌아오다가 전차를 기다리고 있는 데 어디서 사람의 신음소리가 들린 것을 살 펴보았더니 길 한모퉁이에 기다란 석재가 쌓여 있고, 그 위에 시커먼 그림자가 있는 데서 소리가 나는 것이다. 쫓아가서 들여다본즉 어떤 계집애가 옹크리고 누워서,

「배아파, 아이구 배아파……」

하고 울고 있는 것이다.

「너의 집이 어디냐?」

아무리 물어도 대답이 없고 그저,

「아이구 배아파……」

만 연발한다. 하도 물었더니 계집애는 고개만 흔든다. 그는 다짜고짜로 계집애를 업고 마침 떠나려는 전차를 탔다. 전차에서 내려서도 집에까지 들어가는 거리는 상당히 멀었다. 그래도 무거운 줄도 모르고 집에까지 들어가서 계집애를 마루위에 내려놓았다. 집에서는 깜짝 놀라는 모양이었다. 무슨 송장이나 메고 들어오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그는 계집애를 데리고 온 사정이야기를 하고 물을 끓이라고 해가지고 옷을 벗긴 다음에 온몸을 씻어주고 다른 옷을 갈아입혔다. 그래도 벌벌 떨고,

「아이구 배아파!」

를 연발하는 것을 소화제 약을 먹여서 아랫목에 재웠다. 〈배아파〉소리가 밤새도록 계속되는 것을 들으면서 하룻밤을 지내고 아무리 약을 써주어도 낫지 않기 때문에 S병원에 입원을 시켰더니 계집애가 일주일 만에 죽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한동안은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아내는 그대로 성자라고도 하고 성자로 자처한다고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 사랑이 도대체 몇 푼어치나 되는 것인가 이번에 시험할 때가 왔다. 그놈이 과연 나갈 것인가 안 나갈 것인가 내 사랑의 힘이 몇 푼어치나 되나 그놈을 붙들어 놓을 만한 힘이 내게 없는가, 오오! 위선자며 성자에는 발뒤꿈치두 못 따를 내가…… 오오! 위선자! 그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전차에 오른 그는 거기에 같이 탄 승객들이 자기를 이상스럽게 빈정대는 눈초리로 노려보는 것 같다. 아까 정분이가 나를 이상스럽게 물끄레 바라보던 것도 나를 비웃고 빈정대는 것이 아니었던가.

「무얼 그래? 당신이 날 정말 생각해서 그러는 거요. 가장 사람을 애끼는 것처럼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무슨 딴 생각이 있어서 그러지 아줌마보다 나을 게 있을라구.」

정분이란 년은 제법 내 속을 저울질해 보는 것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차에서 막 내리자 곤색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빨리 달아나는 것을 보았다. 행여나 정분이가 아닌가 하고 몇 걸음 따라가 보았으나 그것은 그가 잘 아는 어떤 여학교 교표를 붙인 진짜 여학생이지 정분이는 아니었다.

그는 그날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나 친구들과 차를 마실 때나 그 마음과 생각이 정분이로 인하여 점령을 당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

그는 종로로 나와서 K관이라는, 밤에는 술을 팔고 낮에는 곰탕 전문을 하는 집에서 점심 요기를 하는 참이었다. 상 심부름을 하는 계집애가 있는데 얼굴에 살이 많고 광대뼈가 좀 두드러졌지만 눈매와 입 모양에 꽤 귀염성이 있는 것이 정분이와 모습이 비슷하였다. 모습도 비슷하거니와 몸 가지는 태도와 머리며 옷매무새가 단정한 데가 없고 모두 흐트러진 꼴이 꼭 정분이 같았다. 정분이가 시골서 갓 올 때처럼 아직 시골티가 벗겨지지 아니했다.

「너 어디서 왔니? 고향이 어디냐 말이다.」

「강경서 왔슈 ——」

마침 고향도 비슷하고 싱글싱글 웃는 것도 정분이와 어지간히 비슷하다. 꽤 귀염성스러우면서도 행동에 빠진 데가 있고 주책이 없어 보였다.

정분이가 그네 집에 온 것은 삼 년 전 정월 어느 날 눈이 펄펄 내리는 날 오후였다. 웃옷 도 못 입고 옹크리고 왔다.

그때 나이는 열세살이라 했다. 머리도 제 손으로 빗을 줄 몰랐다. 치마는 흔히 폭이 찢어진 것을 질질 끌고 다녔다. 코도 좀 홀렸다. 그러면서도 늘 싱글싱글 웃고 언제나 무슨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부엌에서 설겆이를 하든지 빨래를 하든지 언제나 입을 닫치고 있지 않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어떤 때는 찬송가도 곧잘 불렀다. 그러나 흔히는 유행가를 불렀다. 목메인 이별가도 불렀다.

「너 여기 오기 전엔 어디 있었니?」

「……」

그의 아내가 짐작을 하면서도 물어보면 흔히는 대답이 없었다. 말을 아니하는 것은 주인 아저씨가 있기 때문이었던지 아무도 없고 아내와 단둘이만 있을 때는 더구나 신바람이 나서 묻지도 않는 말도 이야기를 곧잘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밥두 안했어유.」

「그럼 무얼 했니.」

「애 봤지 머.」

정분이 말 본때가 버릇이 없다는 것이 그의 아내의 첫째 성화거리고 핀잔거리였다.

「철 없는 게 그러면 어때?」

그러면 아내는 웃으면서,

「당신은 무조건 정분이 역성이구려.」

「역성이 무슨 역성이어, 깃까짓놈 말씨가 아무려면 어떠냐 말이지.」

「철이 없다니 생각을 해보시구려. 아무려면 글쎄 우리 애미란 년두 네살부터 꼭꼭 말을 제대루 하지 않었수. 그런데 열 세살이나 됐다는 게 어른 앞에서 말버릇이 그게 뭐겠소.」

(애미는 그들의 외손녀 이름이었다.)

「배운 데가 없단 말이지.」

「아무리 밴 데가 없으면 그럴라구.」

그의 아내는 쓴웃음을 웃는 것이다.

「서양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you면 그만이 아니오, 민주주의 시대에 차별할 게 무어요.」

그는 한 마디 덧붙이고 웃어넘겼다. 그러나, 이런 것보다도 제일 곤란한 문제는 자다가 자리에 오줌싸고 가끔 바지에 오줌싸는 것이다.

「아이구 지린내.」

아내와 식구들이 콧살을 찡그리고 얼굴을 돌리면 그는 그러는 식구들에게 눈을 홀겼다. 그리고,

「그게 다 제 집에서 어붓애배 밑에서 구박 받은 결과로 그런 것이야,얼마나 불쌍해! 저는 얼마나 답답할 거야!」

하고 정분이 듣지 않는 데서 가만히 정분이 역성을 들었다.

정분이는 신바람이 나면 예전에 다른 집에 있을 때에 지내던 이야기를,시키지도 않는 것을 절절 잘 지껄이는 것이다.

주인 마누라가 밤낮 어린아이를 내버려두고(제게 맡겨 두고) 나가다닌다는 이야기며, 그러면 저는 애를 업고 동네로 돌아다니는 데,그 동네에는 미군이 가끔 드나드는 집이 있고 그리고 집마다 색시들이 많이 있어서 밤이면 젊은 남자 손님들이 많이 몰려와서 술을 먹고 춤을 추고 떠들고 놀다가 나중엔 하나씩 하나씩 맡아 가지고 자고 간다는 이야기며,그 색시들은 짜장면이고 냉면이고 빵이고 찹쌀떡이고 무어나 마음대로 군것질을 잘하고, 그리고 옷도 늘 예쁜 것을 입는다는 이야기며,아침에는 늦도록 자고, 자고 나서는 화장을 오래오래 하고 나서야 밥을 먹고 낮에는 구경을 가고 노래들도 하는데 저도 그 색시들 하는 노래를 좀 배웠다는 이야기를 신이 나서 지껄이는 것이 종로 3가 뒷골목이나 양동에 있는 그 색시들이 부러웠던 게 분명하다는 것이다.

「나두 나이만 좀더 먹으면 그 색사들처럼 거기 가서 살려고 했지.」

정분이는 이런 이야기까지 하더라는 것이다.

「큰일날 뻔했군.」

그는 아내의 말을 듣고 소리쳤다.

「이애야 나 더운 국 좀 갖다 주렴.」

그는 일하는 계집애를 불러가지고 나이를 묻고 이름을 물었다. 나이는 정분이와 꼭같은 열다섯살,이름은 정자라고 했다.

(이놈도 이런 데 있다가 앞길은 뻔한데 어쩌면 좋을까?)

그는 걱정이 되었다. 이 다음에 좀 일찌감치 와서 조용한 틈을 타서 이야기를 해가지고 아무런 수단을 쓰든지 정자를 꼬여내리라. 나쁜 데 빠져서 물이 들기 전에 손을 쓰는 것이다. 물이 든 다음에 구해낸다는 것 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또 오세요,아저씨.」

정자는 덮어놓고 아저씨라고 부르고 버릇 삼아 인사를 하는 것이지마는 그의 속셈은 그렇지 않은 것이어서,

「오냐 또 올께,잘 있어.」

다시 올 것을 약속하다시피 하고 대문을 나섰다. 그리고 정분의 앞날을 생각하니 예전에「배아파 배아파」하다가 죽은 소녀처럼 될까 걱정이 되었다.

그는 그날 오후에도 어떤 친구의 부탁도 있었고 자기 일도 있어서 어떤 출판사와 신문사, 시청에까지 다녀오고 누구하고 다방에서 만나서 이야기가 늦어졌기 때문에 저녁에 시간이 열 시나 가까와서 집에 돌아왔다.

「정분이 어떻게 됐소, 나갔소?」

으례히 웃으면서 나와서 대문을 열어주던 정분이가 나오지 않고 아내만이 나오고 집 안에서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놈이 기어이 나갔구나 하면서도 행여나 하고 한마디 물어본 것이다.

「정분이하구는 꽤 정분이 두터우신 모양이구려. 들어오시자마자 정분이 문안부텀 하시는 품이……」

아내는 낯색이 좋지 않다.

「춘풍추우 삼년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식구로 살아온 정이 어째 없겠소. 그놈이 종내 갔구만,할 수 없지. 그런데 당신 어디가 불편하오?」

그는 이렇게 말끝을 흐려 버리고 아내의 문안을 했다.

「괜찮아요.」

그리고는 아내는 말을 이어서

「종내는 무슨 종내야. 오늘 아침에 당신 나갈 때 나간다고 안 그럽데까. 당신 나간 뒤로 금방 나간다는 말두 없이 도망꾼년처럼 나갔는데,하마터면 도둑이 들어와서 다 집어가두 모를 뻔했는걸. 그런 소갈머리 없는 계집애가 어디 있담. 그래두 제게 무던히 하느라고 해주었고,당신은 당신대루 그만큼 생각해 주었는데 어쩌면 그렇단 말이오. 그걸 사람이라구 당신은 생각을 하구 그러는 거요?」

경희는 어지간히 분이 난 모양이었다.

「나가는 걸 몰랐소,무에 없어지지나 않았읍디까?」

「없어지기야 무에 없어져,저 입으라구 주었던 거나 다 싸가지고 나갔지.」

「당신은 어디 나갔었소?」

「나가긴 어딜 나가,속이 불편해서 좀 누웠다가 잠깐 잠이 들었던 모양이야.」

「그러니깐 당신이 잠이 들었으니깐 간단 말두 못하구 간 게 아니오?」

자기도 미상불 괘씸하게 여겼지만 또 정분이 편을 들어준 셈이다.

「내가 잠이 들었다고 가노란 말을 못하고 갔다니 그런 말을 말이라구 하시우. 이러구 저러구 날더러 말하기도 귀찮으니까 잘 됐다 하구 살짝 나가 버렸지. 나간 다음에야 무에 들어와서 집안의 물건을 집어가거나 말거나 그것두 알 바 아니지.」

「몸이 불편한데 저녁밥 준비를 하느라구 수고했소.」

그는 할 말이 없다는 듯이 마침 저녁상을 받고 인사를 하였다.

「그런데,오늘은 왜 그렇게 늦으셨소?」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려서 아내는 오래간 만에 밖에서 지난 일을 따져서 묻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아내는 거기에다 한마디 독한 화살을 쏘아붙인다.

「당신이 나를 정분이만큼이나 생각하시는 게요?」

경희는 그를 한번 바라보고 금방 얼굴을 돌리는 것이다. 얼굴을 돌리고 하는 말이,

「당신은 나가서 그렇게 뉘게나 남자나 여자를 가리지 않고 썩 친절하게 하고 집안에서는 일하는 계집애한테까지 그렇게 야단스럽게 생각을 하느라고 그러지만…… 이런 소리를 하면 말만 해두 더럽게시리 내가 질투나 하는 것 같지만, 당신이 내게는 너무두 무심하지 않아요?」

아내는 오래간만에 정면으로 불평을 터쳐 놓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좀 미안스러운 데가 있었는데, 오늘은 그의 아픈 데를 건드려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아내의 말에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잠시 말문이 막혀 우두커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글쎄 그거야 당신두 잘 알지 않소. 그건 크리스챤인 우리 가정의 한 이상으로 당신이나 내나 이 냉정한 세상에서 할 수 있는 데까지 진정과 애정으로 한 모퉁이라두 참과 사랑의 향기를 피워 보자는 것이 아니오. 당신이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을 잘 알지 않소. 정분이만 해두 불쌍한 것을 내 자식처럼 길러서 좋은 데 시집까지 보내 주기로 약속을 하지 않았소. 그러니까 불쌍한 애가, 더구나 그 애는 우리집에서 나가는 날에는 아무래두 잘못될 가능성이 많으니까 기어이 붙잡으려고 하는 게 아니오. 우리가 붙잡아 돌봐주지 않으면 누 가 그런 애를 돌보겠소. 그래두 나가지 말라구 달래고 볼 일이지,그리구 당신이야 집안 사람이니깐 믿구 지내는 거지 뭐요. 내가 잘못한 게 있으면 용서하시오.」

그는 이렇게 사정삼아 이야기를 하고 약속을 해놓고 어째서 나가라구 했느냐고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려고 하는 것을 꾹 참고 아내에게 대한 말을 사과삼아 했다. 그렇지만 아내는 그것을 알아채기나 했는지 그 말을 그편에서 꺼낸다.

「글쎄 오죽하면 나가라구 했겠소. 제편에서 척하면 나간다고 하니 나갈 테면 나가라지,그럼 저는 아무렇게 하든지 나가지 말아 달라구 애걸복걸 빌어야 옳단 말이오?」

아내는 한 번 한숨을 쉬고 나서,

「요새 와서는 내가 무얼 하라면 영 죽여라 하구 안하구 꼭 제 고집대루만 하는구먼, 제 고집대루 한다기보다 숫제 안하는걸. 뭘 하라구 이르면 어느 틈에 슬쩍 들어가 버리는걸. 들어가서 담요를 뒤집어쓰고 자빠져 있구먼요.」

아내는 어젯밤 하던 이야기를 되풀이하다가 마지막에는 놀라운 말을 덧붙이는 것이다.

「얘 정분아 나와라 뭘하는데 들어가 누웠니? 하면서 내가 빌다시피 하면,그년이 하는 말이 기가 막히지. 내가 머 당신네 종이요,나두 자유가 있어요. 하기 싫어요, 안할 테야요,하면서 광주리 같은 대가리를 들고 나를 노려보는구먼,그러는 데는 입이 딱 벌어지구 다물어지질 않던걸.」

아내는 말을 이어서,

「그리구 그년이 인젠 벌써 딴 생각을 했어요. 이제 새해가 되면 열 여섯이 아니오. 벌써앞가슴이 떡 벌어진 게 기애가 인제 어린애가 아니랍니다. 기애는 어쨌든 보통 애가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언젠가 무슨 책에선가 보시구〈말을 강에까지 끌구 갈 수는 있어두 물을 먹일 수는 없다〉는 말을 당신 입으로 하시지 않았소? 안 됩니다 안돼요.」

아내는 밥상을 치우면서 자신 있는 듯이 말한다.

며칠 뒤였다. 경희는 신문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사람 찾음(人)〉이란 광고란에 정 분의 모습을 말하고 찾아주는 이에겐 사례를 한다는 광고가 있는데, 광고주는 바로 자기 남편인 것이다.

그리고, 같은 날 라디오 공지 사항에도 같은 광고가 나온다.

「당신은 그렇게도 정분이를 단념하지 못하시오?」

저녁에 들어온 그에게 물은즉 그는 고개를 끄떡일 뿐이었다.

그런지 꼭 일년 뒤 처음과 꼭 매한가지로 눈이 펄펄 내리는 어느 날 오후에 그가 마침 친구와 같이 집에 들어와 보니 집안이 왁자지껄하고 떠든다. 정분이가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도 그 아내도 매우 반가와서 등을 쓰다듬어 주면서 그 여윈 얼굴에 광대뼈가 유난히 드러난 것을 들여다보고 어서 밥먹기를 권했다. 정분이도 제집에나 돌아온 듯이 뿌연 오바를 벗어 걸었다.

다음날에도 정분이는 제집처럼 방소제도 하고 빨래도 하였다. 그러나 그동안에는 저와 나이가 비슷한 처녀가 온 지가 벌써 오랜 듯이 익숙하게 일을 잘하고 있는 것을 보고 어색해하는 눈치였다.

그는 정분이가 어색해하는 눈치를 채고 조용히 불러서 말했다.

「저 애는 이제 몇 날 더 있다가 집으로 간다고 하니깐 너 염려 말구 마음 놓구 있거라.」

「아니야요 저두 가요,우리 아버지는 죽었어요.」

「집에 가보아서 집에 있을 형편이 못되면 다시 오너라. 언제든지 오면 너는 전과같이 우리 식구로 같이 지낼 터이니 아무 염려 말고 오너라. 오는 차비까지 줄 테니 응.」

아내는 이렇게 타일렀다. 이 말을 들은 정분이는 한참 눈을 깜박거리고 섰더니,

「네, 가보아서 오겠어요 아줌마.」

이튿날 아내는 서울역에 손수 나가서 새 옷을 한 벌 사 입혀 가지고 오후 차로 조치원 가는 차를 태워 보냈다.

일주일 만에 과연 정분이는 돌아왔다.

「아무 데를 돌아다녀도 세상에 아줌마네 집 같은 덴 없어요. 여기 있으면 맘이 편안 해요.」

그럭저럭 반 년이 지난 어느 날 늦은 밤에 경희와 같이 앉아서 라디오로 HLKY방송1을 듣다가 하는 말이다. 정분이는 방송을 듣고 경희에게 배워서 찬송가를 잘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아줌마,저는 그전엔 찬송가 소리가 듣기 싫고 유행가만 불렀는데 인제는 유행가가 듣기 싫고 찬송가를 부르면 웬일인지 기쁘고 마음이 편안해요. 그전엔 유행가를 부르면서 웬일인지 눈물이 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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