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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단인이 시국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내선일체(內鮮一體)로 국민의식을 높여가게 된것은 만주사변(滿洲事變) 이후다. 만주사변은 '만주국'이 탄생하고 만주국 성립의 감정이 지나사변(支那事變)으로 부화되자 조선에선 '내선일체'의 부르짖음이 높이 울리고 내선일체의 대행진이 시작된 것이다.
이번 다시 대동아전쟁이 발발되자 이제는 '내선일체'도 문제거리가 안 되었다. 지금은 다만 '일본신민(日本臣民)'일 따름이다.
한 천황폐하의 아래서 생사를 같이하고 영고(榮枯)를 함께 할 한 백성일 뿐이다. '내지(內地)'와 '조선'의 구별적 존재를 허락지 않는 한 민족일 뿐이다. 역사적으로 종족(種族)을 캐자면 다를지 모르나 일본인과 조선인은 지금은 합체(合體)된 단일민족이다.
이러한 심경에서 출발한 현재의 생활은 '엄숙(嚴肅)'의 단 두 자로 끝날 것이다.
나는 지금 구직운동(求職運動)을 한다. 40여 세에 이른 오늘날까지 단 40일간밖에는 봉급생활을 피해오던 내가 지금 진정으로 구직운동을 한다. 이것은 국민개로주의(國民皆勞主義)라는 뜻에서가 아니다. '보잘것 없는 미약한 것이지만' 나의 가지고 있는 재능을 다 들어 국가에 바치려는 진심에서다.
보잘것 없는 초라한 것이나마 열과 성으로 국강[ 바쳐 만분의 일이나마 국은(國恩)에 보답하려는 것이다.
국가가 명하는 일은 다 못하나마 국가가 '하지 말라'는 일은 양심적으로 피하련다. 국가가 '좋다'고 인정하는 일은 내 힘 자라는 데까지 하련다. 이미 자란 아이들은 할 수 없지만, 아직 어린 자식들에게는 '일본과 조선'의 별개존재(別個存在)라는 것을 애당초부터 모르게 하련다.
대동아전쟁이야말로 인류 역사 재건의 성전(聖戰)인 동시에 나의 심경을 가장 엄숙하게 긴장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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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에 명색 없는 ‘평안도 선비’의 집에 태어났다. 아무리 날고 기는 재간이 있을지라도 일

생을 진토에 묻히어서 허송치 않을 수 없는 것이 ‘평안도 사람’에게 부과된 이 나라의 태도

였다.

그런데, 오이배(吳而陪)는 쓸데없는 ‘날고 기는 재주’를 하늘에서 타고나서, 근린 일대에는

‘신동(神童)’이라는 소문이 자자하였다.

쓸데없는 재주, 먹을 데 없는 재주, 기껏해야 시골 향수 혹은 진사쯤밖에 출세하지 못하는

재주, 그 재주 너무 부리다가는 도리어 몸에 화가 및는 재주, 그러나 하늘이 주신 재주이니

떼어 버릴 수도 없고 남에게 물려줄 수도 없는 재주였다.

대대(代代)로 선비 노릇을 하였다. 그랬으니만치 시골서는 도저한 가문이었다. 그러나 산

업(産業)과 치부(致富) 방면에 유의(留意)하지 않았으니만치, 재산은 연년이 줄어서 이배

의 아버지의 대에는 드디어 파산을 면치 못하였다.

대대로 부리던 세도가 있느니만치, 그라도 근처에서 존경받은 지위는 간신히 지켜 왔지만,

재산 없고 산업을 모르고 그냥 그 ‘점잖음’을 지키노라니 여간 살림이 이상야릇하지 않았

다.

불행한 신동 이배를 시험하심에 하늘은 더 어려운 고초를 내렸다.이배가 열한 살 잡히는

해에, 신동 이배의 양친이 한꺼번에 세상을 떠났다. 천하를 휩쓴 ‘쥐통’에 넘어진 것이었다.

여러 대를 이 동네에 살았지만 자손 번창치 못하는 집안이라, 여러 대 계속하여 외꼭지로

내려왔으니만치, 일가친척이라는 것이 전연 없었다. 이렇게 외롭게 될 때는 그래도 일가라

는 것이 있으면 얼마만치 힘입을 수도 있고, 믿고 의지할 수도 있지만, 일가라는 것이 전연

없는 오씨 집안에서 양친이 한꺼번에 세상 떠났으매, 이 넓은 천하에 이배 단 혼자가 덩더

렇게 남았다. 겨우 열한 살 난 코흘리개 소년이.

그래도 대대로 동네의 인심은 잃지 않고 내려왔으니만치, 동네의 동정심은 자연 이배에게

부어졌다. 그러나 인심은 안 잃었다 할지라도, 이쪽은 그래도 선비요 동네 사람은 모두가

이름없는 농꾼들이라, 자연 교제가 없었다. 그래서 마음껏 동정을 나타내기도 쑥스러웠다.

동네 사람의 조력을 빌려, 양친을 한꺼번에 장례를 치르기는 하였다.

그러나 상여를 따르는 상제는, 소년 상주(喪主) 하나뿐 동네 사람 서넛이 함께 묘지까지 가

기는 갔지만, 이 쓸쓸한 상여를 모시고 가는 소년 상주의 눈에서는 눈물이 샘솟듯 솟았다.

*

이 세상에 단 혼자 남은 이배.

부모를 안장하고 집에 돌아오매, 오막살이에서 마주 나오는 것은 개 한 마리뿐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이배 단 셋이서 살던 쓸쓸한 오막살이에, 아버지 어머니조차 영원의 세상

으로 보내고 보니, 세상에는 이배 한 사람에, 인종(人種)이 없는 듯, 밖의 길에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기척도 있지만, 이배에게는 그것이 다 환몽이요 자기 혼자만이 이 너른 세상에

살아 있는 유일인인 듯싶었다.

한심하고 기막혀 한 사나흘은 밥도 짓지 않고, 따라서 먹지도 않고, 집안에 쓰고 누워 있었

다.

그 오막살이에 하도 인기척이 없으므로 동네 할머니가 미심질로 들여다보아서, 며칠이나

굶었는지 굶어서 거의 죽게 되어 정신을 못 차리는 이배 소년을 발견치 않았더면 이배도

제 부모 가신 나라로 갔을 것이다.

“아이구, 이게 웬일이냐. 무슨 일이냐? 정신차리거라.”

*

이배는 그 할머니의 성의 있는 간호로써 다시 소생하였다.

소생한 며칠 뒤, 이배는 그 동네에서 일백오십 상거 되는 곳에 있는 학교를 목적하고 제 고

향을 떠났다.

일백오십 리 밖에 있는 T라는 학교는, 위치는 산골에 있으나 전 조선에 이름높은 학교였

다.

그 학교의 설립자가 유명한 애국지사였다. 신학문과 아울러 애국사상을 소년들의 마음에

뿌려 주기 위해서 세운 학교였다.

옷 두어 가지를 넣은 보따리 하나를 끼고 학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여전히 의지할 데 없

고 믿을 데 없는 소년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두서를 못 차려서, 학교 문 밖에 배회하다가

그 학교 교장에게 발견되었다. 교장이라는 이가 또한 전국에 이름높은 선각자요 애국지사

로서, 설립자의 뜻을 받아 장차 자랄 어린 싹에 좋은 교훈을 하고자 일부러 이런 시골의 학

교장으로 와 있는 이였다.

교장은 이배 소년의 슬기로움을 알아보았다. 그래서 이 소년을 장차 나라의 큰그릇을 만들

고자, 자기 집에 데려다 두고 잔심부름이나 시키며 교육 일체의 책임을 졌다.

구학문에 있어서 신동이었던 이배는 신학문으로 돌아서서도 그의 천품을 충분히 발휘하였

다. 이 학교를 사모하여 전국에서 모여든 수재(秀才)들 가운데 섞이어서도 이배는 가장 빼

어난 성적을 보였다.

농촌의 선비 집안에 한 신동으로 태어나서, 동양 전통의 윤리를 닦고, 이것만이 학문이거

니 여기고 있던 이배는 이 학교에서 비로소 놀랄 만한 지식 분야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 세상에는 ‘청국(淸國)’이라는, 지금은 호인(胡人)의 나라가 본시 하우씨의 직계로서 만

국을 다스리고 있다―---이쯤밖에는 모르던 이배는 여기서 비로소 한국(韓國)이라는 본시

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는 것을 알고, ‘왜(倭)’로만 알고 있던 일본이 놀랄 만한 신문화를

흡수하여 가지고 동양 천지에서 세도하려는 것이며, 그 일본이 현재 한국에게 대하여 어떤

야심을 품고 있다는 것이며, 이런 때에 임하여 한국인은 어떤 길을 밟아야 할 것인가는 큰

과제 등을 비로소 알고 경악하였다.

교장은 이배 소년의 비상히 영특한 재질을 크게 평가하여, 이런 재질에다가 민족관념을 옮

게 지도하면 나라에 얼마나 유용한 인물이 되랴는 기대 아래 소년을 훈육하였다.

이 학교에 의탁한 지 일년 뒤에는 이배는 학문으로는 교사와 어깨를 겨눌 만하게 되었다.

애국사상으로는 모르긴 몰라도, 이 학교에서 교장에 버금가는 사상가로 변하였다.

학교도 무사히 졸업을 하였다. 졸업하고는 더 높은 학교로 가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를 유난히 사랑하고 촉망하던 교장이 놓아 주지 않았다.

“그가 더 높은 학교에서 학업을 닦는다는 건, 본시 같으면 되레 내가 권할 일이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형편이 더 높은 학교를 나온 훌륭한 지도자보다도, 이맛 정도의 지도자가 더

필요해, 그리고 급해. 이 학교에 머물러 후배들을 지도하는 교원이 돼다고. 나라를 위해서

든, 너 개인을 위해서든 너 같은 총명한 사람이 세계의 우수한 학문을 닦아서 나라에 이바

지하면 오죽이나 좋으랴마는, 그런 먼 장래보다도 눈앞에 다닥쳐 있는 소년 지도의 책무를

감당할 일꾼이 더 급하구나. 그러니까, 좀더 이 학교에 그냥 있어서 교원이 돼다고. 국사가

매우 위태롭게 된 이 판국에, 먼 장래는 더 뒤에 생각하고, 목전의 급한 일부터---―”

과연 시국은 가장 어지럽게 되어 있었다. 일본은 그 마수를 차차 노골적으로 펴서 동학당

(東學黨)이라는 당을 손아귀에 넣고, 한국을 삼키려고 공작이 나날이 더 심해 갔다.

반역당파의 동학당은 일본의 농락 아래 들어서, 내 나라를 일본의 마수 안에 넣어 주려고

맹렬히 활동하고 있었다. 경향을 무론하고 일본 세력을 배격하려는 국민운동이 요원의 불

같이 일어서 퍼져 나간다.

이런 판국에 국민은 아직 몇 해 전의 이배나 마찬가지로 한국이라는 국가가 무엇인지도 모

르는 요순시절의 꿈에 잠겨 있는 무리가 태반이다.

하다못해 ‘내 나라’가 무엇이며 어떤 의의를 가진 것인지, 이 개념만이라도 온 국민에게 부

어넣어 주는 것은 여간 급한 일이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래의 위대한 지도자보다 현재의 대중적 지도자가 더 급하고, 더 긴하다.

내 한몸 더 훌륭한 학업을 닦고자 은혜 깊은 교장의 슬하를 떠나고자 하던 이배는, 교장의

이 말에 크게 깨달은 바 있어서, 그냥 이 학교에 주저앉아서 장래 국민을 지도하는 대중적

역할을 맡기로 교장 앞에 맹서하고, 다시 주저앉았다.

*

운명의 힘은 막을 수 없다.

한국은 드디어 일본과 보호조약을 체결치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의 외교권은 동경에 있는

일본 정부가 대행하며 한국의 모든 기관에 일본인을 고문으로 두어서 그 지도를 받는다는

조약이었다.

보호조약에 한국의 상하가 욱적할 동안, 일본은 한 걸음 더 나가서 한국을 병합하여 버렸

다.

일본은 외국에 선전하기를, 한국 황제가 그 통치권을 일본 천황에게 호의로 넘긴 것으로

무혈병합(無血倂合)이라 한다.

하기는 그렇다. 미리 군대를 해산하고 무기를 걷어올려서 촌철(寸鐵)을 못 가진 한국인이

매 맞싸울 수는 없었다.

그러나, 각지에 의병(義兵)이 궐기하였다. 근처의 열혈 애국자를 수령으로 조직된 의병은,

감추어 두었던 낡은 총이며 포수(砲手)의 엽총들을 무기로 하여, 이 병합에 반대하는 의사

를 나타내었다.

다만 끓는 피, 힘주어지는 주먹만을 무기로, 일본의 정예한 군대를 당할 수가 도저히 없었

다. 의병 자신들도 그것은 잘 안다. 알기는 아나 참을 수 없는 분격심은, 이 당할 수 없는

싸움이나마 하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민족의 의사였다.

*

소년 교원 이배는, 자기보다 훨씬 나이 많은 제자들의 위에서, 교장의 뜻을 받아 민족사상

을 기르기에 여념이 없었다. 자기 스스로가 교장의 아래서 몇 해 지나는 동안, 민족을 알고

‘애족사상’을 느낀 뒤에, 자기의 심경의 변화를 돌보아서, 이 제자들로 하여금 내 민족을

사랑할 줄을 알고, 내 민족을 위하여서 사는 사람이 되게 해보려고, 자기의 성심을 다하였

다.

이 귀중한 사업에 종사하는 동안, 자기의 애족심도 나날이 가속도로 늘어 가는 것을 알았

다.

지금의 그에게는 다만 민족밖에 아무것도 없었다.

민족문제가 가장 귀하였다. 민족문제와 관련이 없는 학문은 존재할 가치도 없었다.

열정적이요 감격적인 그는 느끼느니 민족이요 생각하느니 민족이요, 오직 민족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

순정적으로 애족사상에 잠긴 이배라,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것은 죄 애족사상에 관한 것뿐

이었다. ‘애족광(愛族狂)’이란 칭호를 듣도록 오직 민족문제에 빠져 있었다.

이 정열의 소년 교사의 순정적 교육은, 제자들로 하여금 진정한 애국자로 변하게 하였다.

이 학교의 출신자들이 후일 일본 관헌의 가장 미워하는 ‘요보’가 되었으며, 무슨 일이 있을

적마다 이 학교의 출신자들은 죄 없이 일본 관헌의 내리는 벌을 받고 한 그 원인은 이때에

씨뿌려진 것이었다.

전국에 이름난 학교라, 생도들은 전국에서 모여들었다. 그들이 졸업하고는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는지라, 이 학교의 지도사상은 전국에 널리 퍼졌다. 동시에, 소년 교사 오이배의 명

성은 전국에 퍼지고, 그 정열과 애국심을 사모하는 숭배자가 전국에 산재되었다.

이 학교의 이름과 이배 선생의 이름은 전국의 애국사상가의 위에 뚜렷한 존재로 되었다.

그런 차라 후일 한국이 일본에게 삼키우자, 이 학교는 곧 폐쇄 명령으로 장구한 명예 있는

전통을 지켜 내려온 이 학교는 폐쇄되어 버렸다.

*

학교가 폐쇄되자 이배에게는 곧 후원자가 나섰다. 이 후원자의 원조로써, 그는 일본 동경

으로 유학의 길을 떠났다. 오랜 숙망이었다. 그러나 제자 양성이 더 급선무이므로 아직껏

달치 못하고 있던 바였다.

‘네 칼로 너를 치리라. 네게서 배워서 너를 둘러엎으리라.’

이러한 포부로 그는 적도(敵都) 동경으로 길을 떠났다.

그로부터 십 년, 이배는 적도에서 적의 칼로 적을 찍을 심산으로 열심으로 공부하였다. 중

등학교의 교원이던 그는, 동경에서 중학교에 입학하여 코 흘리는 일본 애들과 책상을 나란

히 공부하였다. 중학교를 마치고는 어떤 사립대학의 정치과에 적을 두었다.

여전히 마음속에는 불타는 민족애의 사상을 품은 채 학업에 정진하면서 그가 가장 강렬히

느낀 바는 무한한 실망이었다. 실망에 따르는 마음의 고통이었다.

일본은 나날이 자란다. 그런데 조국 조선은 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 아래 나날이 위축되어

들어간다.

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거늘, 이렇듯 나날이 위축되어 들

어가니, 일본과 조선과의 간격의 차이는 나날이 멀어 간다.

조국의 회복? 그것은 지금의 형편으로 보아서는 절대로 희망이 없었다.

이것은 이배에게 있어서는 끝없는 실망일밖에 없었다. 일본이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 주기

전에는, 조선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더부살이를 면할 날이 없을 것이다.

하숙에서 학과를 복습하다가도 이 생각이 문득 나면 책을 집어던지고 하였다. 그리고 멍하

니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앉아 있고 하였다.

세계 제일차대전이 일었다가 끝났다. 그때 미국 대통령 윌슨이 ‘민족자결주의’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국권을 회복할 수 없고, 일본은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 주지 않을 형편에

서, 이 윌슨 대통령의 제창 같은 것은 조선 민족에게 있어서는 다시 잡을 수 없는 천래의

호기회다. 온 조선은 이 기회에 일본의 굴레를 벗어 보고자, 세계를 향하여 ‘조선 독립 만

세’를 외쳤다.

이배도 꿈밖에 생긴 이 좋은 기회를 이용하고자, 선두에 서서 만세를 외치며 국민을 선동

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실력은 너무도 강하였다. 강자의 앞에는 인류는 굴복하는 법이다. 약자인

조선이 남의 등쌀에 독립을 해보고자 야단하였지만 강자인 일본이 승낙지 않으매 이 사건

도 흐지부지해 버렸다. 전 조선의 감옥만 만세 죄인으로 가득 채워 놓고서…….

윌슨 대통령의 선언도 강자 일본에게는 아무 효력을 못 보였다는 이 비통한 현실 앞에 이

배는 처음에는 낙담하고 다음에는 생각하였다.

일본은 인제는 세계에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커다란 존재다. 조선 민족은 일본의 굴레

는 도저히 벗을 수 없다.

그러면 조선 민족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한 식민지 민족으로 참담한 생활을 계속하여야 하

는가.

조선 민족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이배로서는, 이것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노릇이다. 한 민

족이 영원히 다른 민족의 종살이를 해? 더구나 내가 가장 사랑하는 우리 민족이…… 이 불

행을 벗고 행복된 민족으로 되게 할 무슨 수단은 없을까.

*

이배는 학업을 끝내고 귀국하였다.

쓰라린 회포를 품고 귀국하는 이배를 온 조선은 환영하여 맞았다.

옛날의 T학교의 출신자가, 조선의 각 부문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만치 열혈의

교사 이배를 환영하여 맞은 것은 조선의 각 사회의 각 부문에 걸치어서였다. 어떤 대신문

은 그를 위하여, 부사장 겸 주필의 자리를 비워 두고 기다렸다.

이배는 중요한 지도자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을 지도하랴. 일본의 굴레는 도

저히 벗을 수가 없는 바이며, 일본에 반항하기를 시도하는 것은 공연히 감옥으로 갈 사람

을 늘리는 데 지나지 못한다. 이것은 도리어 민족적 불행이다.

조선 안의 민족적 행복을 따기 위해서는, 첫째로는 조선 민족의 문화적 향상을 도모하여야

할 것이다. 물질적으로 인제는 도저히 일본을 뒤따를 수 없다. 그러나 일본인이 물질문화

의 발전에 주력하는 동안 조선인은 문화 향상에 전력을 다하면 문화 방면으로는 일본과 대

등의 민족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움직일 수 없는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배의 지도 호령은, 조선 민족의 위에 퍼져 나갔

다. 존경하는 지도자 이배의 지도에 조선 민족은 고요히 따랐다.

*

일본은 또 전쟁을 시작하였다. 중국을 상대로 삼아 일격에 부서질 줄 알았던 중국은 의외

에도 완강히 저항하였다. 차차 일본이 육해공의 전부의 병력을 집중하여도 좀체 부서지지

않았다.

우습게 여기고 시작하였던 전쟁이 이렇게까지 되어 일본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싸웠다. 종

내 하릴없이 조선에까지 조력을 빌렸다.

이배는 조선 민족의 행복을 위하여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일본이 이렇듯 악전고투할

때에, 조선에 약간의 무력적 실력만 있더라도, 일본에 대항하여 일어서면 일본의 굴레를

벗을 길이 생길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조선의 현황은 그새 문화 방면에만 주력했더니

만치, 무력적으로는 일본 군인의 고함 한마디만으로 삼천만 조선 민족은 질겁을 할 것이

다. 그 대신 또한 그 반대로 조선이 일본에 약간의 협력이라도 하면 승리의 아침에는, 여덕

이 조선에도 흘러 넘어올 것이다. 조선 민족의 행복을 위하여,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일본

에 협력하자.

협력의 깃발은 높이 들리었다. 협력의 호령은 크게 외쳐졌다.

조선 민족은 어리둥절하였다. 지금껏 민족주의자로 깊이 믿었던 이배가 일본에게 협력하

자고 외칠 줄은 천만뜻밖이므로.

그러나 이 길만이 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이라 깊이 믿는 이배는, 그냥 성의를

다하여 부르짖었다.

일본은 미국과 영국에까지 선전을 포고하였다. 만약 이 전쟁에 이기기만 하면 일본은 세계

의 패자(覇者)가 된다.

조선이 일본에 협력을 하여, 전승자의 하나가 되면 그때 조선의 몫으로 돌아올 보수는 막

대할 것이다. 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이 생명만 부지하기보다는 일본의 일부로서 승리

의 보좌에 나란히 해 앉는 편이 휠씬 크리라.

이배의 협력운동은 차차 더 급격화하였다. 본시부터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이배라 성의

로써 대중에게 부르짖을 때는 그 영향이 적지 않았다. 차차 조선도 성의로써 일본 전쟁에

협력하는 무리가 늘어 갔다.

이런 가운데서, 이배는 단지 전도(前途)의 승리만 바라보았다. 반드시 이길 것이라 굳게 믿

었다. 그리고 일본이 이기는 날에는, 조선의 몫에도 돌아올 행복을 바라보며 기뻐하였다.

어째서 일본이 이기겠느냐. 거게 대해서도 독자의 대답을 가지고 있었다.

숙명적으로 일본은 패배를 모르는 나라이다. 게다가 또한 숙명적으로 서양은 인젠 쇠운에

들고 동양 발전의 새 세상이 전개될 차례다.

*

전쟁도 최고도에 달한 때에 적국 세 나라(미, 영, 중)의 대표자는 카이로에 모여서 한 가지

의 선언을 하였다.

이 선언의 내용을 어떤 길로 통하여 안 이배는, 처음은 딱 숨이 막혔다.

일본에 대한 항복 권고, 게다가 조선의 독립까지 그 조건의 하나였다.

딸 수 없는 독립으로 알았길래 일본의 일부분으로서나마 조선 민족의 행복을 구해 보려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카이로 선언을 보매, 일본은 인젠 다 진 것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그리고, 거기

조선의 독립이 있었다.

오직 조선 민족의 행복을 위하여 오십 년간 건투해 왔고, 조선 민족의 행복을 위하여 일본

에 협력하기를 주장하여 왔거늘, 아아.

조선 민족의 행복을 위해서면 무엇이든 아끼지 않는 그 노력이 오늘날 모두 반대의 결과로

나타나는가. 만약 이 카이로 선언대로 일본이 항복을 하고 조선이 일본에게서 해방이 된다

하면, 자기는 그날에는 반역자가 될 것이다. 그렇듯 사랑하고 그렇듯 귀히 여기던 조선의―

---내가 반역자?

일찍이 추호도 조선을 반역할 생각을 품어 본 일이 없고, 내 생명보다도 귀히 여기던 조국

조선이어늘, 반역이란 웬 말인가.

독립되는 조국에 나는 반역자로 그 기쁨을 함께할 권리도 없는 인생인가.

*

1945년 8월 보름날 정오에, 일본 천황 유인(裕仁)이 울음 섞인 소리로 온 일본인에게 부득

이 항복한다는 포고를 할 때에, 라디오 앞에 이배도 울면서 그 방송을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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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仁王)

바위 위에 잔솔이 서고 잔솔 아래는 이끼가 빛을 자랑한다.

굽어보니 바위 아래는 몇 포기 난초가 노란 꽃을 벌리고 있다. 바위에 부딪치는 잔바람에 너울거리는 난초잎.

여(余)는 허리를 굽히고 스틱으로 아래를 휘저어보았다. 그러나 아직 난초에는 4,5축의 거리가 있다. 눈을 옮기면 계곡.

전면이 소나무의 잎으로 덮인 계곡이다. 틈틈이는 철색(鐵色)의 바위로 보이기는 하나, 나무밑의 땅은 볼 길이 없다. 만약 여로서 그 자리에 한 번 넘어지면 소나무의 잎 위로 굴러서 저편 어디인지 모를 골짜기까지 떨어질 듯하다.

여의 등뒤에도 2,3장(丈)이 넘는 바위다. 그 바위에 올라서면 무학(舞鶴)재로 통한 커다란 골짜기가 나타날 것이다. 여의 발아래도 장여(丈餘)의 바위다. 아래는 몇포기 난초, 또 그 아래는 두세 그루의 잔솔, 바위 아래로부터는 가파른 계곡이다.

그 계곡이 끝나는 곳에는 소나무 위로 비로소 경성시가의 한편 모퉁이가 보인다. 길에는 자동차의 왕래도 가맣게 보이기는 한다. 여전한 분요(紛擾)와 소란의 세계는 그곳에 역시 전개되어 있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 지금 서 있는 곳은 심산이다. 심산이 가져야 할 온갖 조건을 구비하였다.

바람이 있고, 암굴이 있고, 산초 산화가 있고, 계곡이 있고, 생물이 있고, 절벽이 있고, 난송(亂松)이 있고―말하자면 심산이 가져야 할 유수미(幽邃味)를 다 구비하였다.

본시는 이 도회는 심산 중의 한 계곡이었다. 그것을 5백년간을 닦고, 갈고, 지어서 오늘날의 경성부를 이룬 것이다.

이러한 협곡에 국도(國都)를 창건한 이태조의 본의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 산보객의 자리에서 보자면 서울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미도(美都)일 것이다.

도회에 거주하며 식후의 산보로서 푸대님 채로 이러한 유수(幽邃)한 심산에 들어갈 수 있다 하는 점으로 보아서 서울에 비길 도회가 세계에 어디 다시 있으랴.

회흑색(灰黑色)의 지붕 아래 고요히 누워 있는 5백년의 도시를 눈아래 굽어보는 여의 사위에는 온갖 고산식물이 난성(亂盛)하고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와 눈아래 날아드는 기조(奇鳥)들은 완전히 여로 하여금 등산객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여는 스틱을 바위틈에 꽂아 놓았다. 그리고 굴러떨어지기를 면키 위하여 잔솔의 새에 자리잡고 비스듬히 앉았다. 담배를 피우고 싶었으나 잠시의 산보로 여기고 담배도 안 가지고 나온 발이 더듬더듬 여기까지 미쳤으므로 담배도 없다.

시야의 한편에는 2,3장의 바위, 다른 한편에는 푸르른 하늘, 그 끝으로는 솔잎이 서너 개 어렴풋이 보인다. 그윽히 코로 몰려들어오는 송진님새. 소나무에 불리는 바람소리―

유수키 짝이 없다. 여가 지금 앉아 있는 자리는 개벽 이래로 과연 몇 사람이나 밟아 보았을까. 이 바위 생긴 이래로 혹은 여가 맨처음 발 대어본 것이 아닐까. 아까 바위를 기어서 이곳까지 올라오느라고 애쓰던 그런 맹랑한 노력을 하여본 바보가 여 이외에 몇 사람이나 있었을까. 그런 모험을 맛보기 위하여 심산을 찾아온 용사는 많을 것이로되 결사적 인왕 등산을 한 사람은 그리 많으리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등 뒤 바위에는 암굴이 있다.뱀이라도 있을까 무서워서 들어가보지는 않았지만 스틱으로 휘저어본 결과로도, 세사람은 넉넉히 들어가 앉아 있음직하다.

이 암굴을 무엇에 이용할 수가 없을까.

음모의 도시. 한양은 그새 5백년간 별별 음흉한 사건이 연출되었다. 시가 끝에서 반시간 미만에 넉넉히 올 수 있는 이런 가까운 거리에 뚫린 암굴은, 있는 줄 알기만 하였으면 혹은 음모에 이용되지 않았을까.

공상!

유수한 맛에 젖어 있던 여는 이 암굴 때문에 차차 불쾌한 공상에 빠지기 시작하려 한다.

온갖 음모, 그 뒤를 잇는 살육·모함·방축, 이조 5백년간의 추악한 모양이 여로 하여금 불쾌한 공상에 빠지게 하려 한다.

여는 황망히 이런 불쾌한 공상에서 벗어나려고 주머니에 담배를 뒤적이었다. 그러나 담배는 여전히 있을 까닭이 없었다.

다시 눈을 들어서 안하를 굽어보면 일면에 깔린 송초(松梢)!

반짝!

보매 한줄기의 샘이다. 소나무 틈으로 보이는 그 샘은 아마 바위틈을 흐르는 샘물인 듯. 똘똘똘똘 들리는 것은 아마 바람소리겠지. 저렇듯 멀리 아래 있는 샘의 소리가 이곳까지 들릴 리가 없다.

샘물!

저 샘물을 두고 한 개 이야기를 꾸며볼 수가 없을까. 흐르는 모양도 아름답거니와 흐르는 소리도 아름답고, 그 맛도 아름다운 샘물을 두고 한 개 재미있는 이야기가 여의 머리에 생겨나지 않을까. 암굴을 두고 생겨나려던 음모·살육의 불쾌한 공상보다 좀더 아름다운 다른 이야기가 꾸며나지 않을까.

여는 바위틈에 꽂았던 스틱을 도로 뽑았다. 그 스틱으로써 여의 발아래 바위를 가볍게 두드리면서 한 개 이야기를 꾸며보았다.

한 화공이 있다.

화공의 이름은? 지어내기가 귀찮으니 신라 때의 화성(畵聖)의 이름을 차용하여 솔거(率居)라 하여 두자.

시대는?

시대는 이 안하에 보이는 도시가 가장 활기 있고 아름답던 시절인 세종 성주의 때쯤으로 하여 둘까.

백악이 흘러내리다가 맺힌 곳. 거기는 한양의 정기를 한몸에 지닌 경복궁 대궐이 있다. 이 대궐의 북문인 신무문(神武問) 밖 우거진 뽕밭 새에 중로(中老)의 사나이가 오뇌(懊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

화공 솔거였다.

무르익은 여름, 뜨거운 볕은 뽕잎이 가리워준다. 하나, 훈훈한 기운은 머리 위 뽕잎과 땅에서 우러나서 꽤 무더운 이 뽕밭 속에 숨어 있는 화공, 자그마한 보따리에는 점심까지 싸가지고 온 것으로 보아 저녁까지 이곳에 있을 셈인 모양이다.

그러나 무얼 하는지, 단지 땀을 펑펑 흘리며 오뇌스러운 얼굴로 앉아 있을 뿐이다.

왕후 친잠(王后親蠶)에 쓰이는 이 뽕밭은 잡인들이 다니지 못할 곳이다. 하루 종일을 사람의 그림자 하나 얼씬하지 않는다.

때때로 바람이 우수수하니 뽕나무 위로 불기는 하나 솔거가 숨어 있는 곳에는 한점의 바람도 들어오지 않는다. 이 무더운 속에 솔거는 바람이 불 적마다 몸을 흠칫흠칫 놀라며, 그러면서도 무엇을 기다리듯이 뽕나무 그루 아래로 저편 앞을 주시하고 있다.

이윽고 석양이 무악을 넘고 이 도시에도 황혼이 들었다.

날이 어둡기를 기다려서 이 화공은 몸을 숨겨가지고 거기서 나왔다.

"오늘은 헛길, 내일이나 다시 볼까."

한숨 쉬면서 제 오막살이를 찾아 돌아가는 화공. 날이 벌써 꽤 어두웠지만 그래도 아직 저녁빛이 약간 남은 곳에 내어놓은 이 화공은 세상에 보기드문 추악한 얼굴의 주인이었다. 코가 질병자루같다, 눈이 퉁방울같다, 귀가 박죽같다, 입이 나발통같다, 얼굴이 두꺼비같다―소위 추한 얼굴을 형용하는 온갖 형용사를 한 얼굴에 지닌 흉한 얼굴의 주인으로서 그 얼굴이 또한 굉장히도 커서 멀리서 볼지라도 그 존재가 완연할 이 만하다.

이 얼굴을 가지고는 백주에는 나다니기가 스스로 부끄러울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솔거는 철이 들은 이래 여태껏 백주에 사람 틈에 나다닌 일이 없었다.

일찍이 열여섯 살에 스승의 중매로서 어떤 양가 처녀와 결혼을 하였지만 그 처녀는 솔거의 얼굴을 보고 기절을 하고, 기절에서 깨어나서는 그냥 집으로 도망쳐버리고―

그 다음 또 한 번 장가를 들어보았지만 그 색시 역시 첫날밤만 정신 모르고 치른 뒤에는 이튿날은 무서워서 죽어도 같이 못 살겠노라고 부모에게 떼를 써서 두 번째의 비극을 겪고―

이러한 두 가지의 사변을 겪고난 뒤에 솔거는 차차 여인이라는 것을 보기를 피하여오다가 그 괴벽이 점점 자라서 나중에는 일체로 사람이란 것의 얼굴을 대하기가 싫어졌다.

사람을 피하기 위하여―그리고 또한 일방으로는 화도(畵道)에 정진하기 위하여, 인가를 떠나서 백악의 숲속에 조그마한 오막살이를 하나 틀고 거기 숨은지 근 삼십년. 생활에 필요한 물건 혹은 그림에 필요한 물건을 구하기 위하여 부득이 거리에 나가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반드시 밤을 택하였다. 피할 수 없어 낮에 나갈 때는 방립을 쓰고 그 위에 얼굴을 베로 가리었다.

화도에 발을 들여놓은 지 근 사십년, 부득이한 은둔생활을 경영한 지 삼십년, 여인에게로 소모되지 못한 정력은 머리로 모이고, 머리로 모인 정력은 손끝으로 뻗어서 종이에, 비단에 갈겨던진 그림이 벌써 수천 점. 처음에는 그 그림에 대하여 아무 불만도 느껴보지 않았다.

하늘에서 타고난 천분과 스승에게서 얻은 훈련과 저축된 정력의 소산인 한 장의 그림이 생겨날 때마다 그것을 보면서 스스로 만족히 여기고 스스로 자랑스러이 여기던 그였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밟기 이십년에 차차 그의 마음에 움돋은 불만, 그것은 어떻게 보자면 화도에는 이단적인 생각일는지도 모를 것이다.

좀 다른 것은 그릴 수가 없는가.

산이다, 바다다, 나무다,시내다, 지팡 짚은 노인이다, 다리다, 혹은 돛단배다, 꽃이다. 과즉 달이다, 소다,목동이다.

이밖에 그가 아직 그려본 것이 무엇이었던가.

유원(幽遠)한 맛, 단 한가지밖에 없는 전통적 그림보다 좀더 다른 것을 그려보고 싶다.

여태껏 스승에게 배운 바의 백발백염(白髮白髥)의 노옹이나 피리부는 목동 이외에 좀더 얼굴에 움직임이 있는 사람을 그려보고 싶다. 표정이 있는 얼굴을 그려보고 싶다.

이리하여 재래의 수법을 아낌없이 내어던진 솔거는 그로부터 십년간을 사람의 표정을 그리느라고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사람의 세상을 멀리 떠나서 따로이 사는 이 화공에게는 사람의 표정이 기억에 가맣다.

상인들의 간특한 얼굴, 행인들의 덜난 무표정한 얼굴, 나무꾼들의 싱거운 얼굴, 그새 보고 지금도 대할 수 있는 얼굴은 이런 따위뿐이다. 좀더 색채 다른 표정은 없느냐.

색채 다른 표정!

색채 다른 표정!

이 욕망이 화공의 마음에 익고 커가는 동안 화공의 머리에 솟아오르는 몽롱한 기억이 있다.

지금은 거의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어린 시절에 자기를 품에 안고 눈물 글썽글썽한 눈으로 굽어보던 어머니의 표정이 가끔 한순간씩 그의 기억의 표면까지 뛰쳐올랐다.

그의 어머니는 희세의 미녀였다. 대대로, 이후의 자손의 미(美)까지 모두 미리 빼앗았던지 세상에 드문 미인이었다.

화공은 이 미녀의 유복자였다.

아비 없는 자식을 가슴에 붙안고 눈물 머금은 눈으로 굽어보던 표정.

철이 들은 이래로 자기를 보는 얼굴에서는 모두 경악과 공포밖에는 발견하지 못한 화공에게는 사십여년 전의 어머니의 사랑의 아름다운 얼굴이 때때로 몸서리치도록 그리웠다.

그것을 그려보고 싶었다.

커다란 눈에 그득히 담긴 눈물, 그러면서도 동경과 애무로서 빛나던 눈, 입가에 떠오르던 미소.

번개와 같이 순간적으로 심안(心眼)에 나타났다가는 사라지는 이 환영을 화공은 그려보고 싶었다.

세상을 피하고 숨어살기 때문에 차차 삐뚤어진 이 화공의 괴벽한 마음에는 세상을 그리는 정열이 또한 그만치 컸다. 그리고 그것이 크면 크니만치 마음속에는 늘 울분과 불만이 차 있었다.

지금도 세상에서는 한창 계집 사내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좋다고 야단할 것을 생각하고는 음울한 얼굴로 화필을 뿌리는 화공.

이러한 가운데서 나날이 괴벽하여가는 이 화공은 한 개 미녀상(美女像)을 그려보고자 노심하였다.

처음에는 단지 아름다운 표정을 가진 미녀를 그려보고자 하였다.

그러나 미녀를 가까이 본 일이 없는 이 화공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붓끝에 역정을 내며 있는 동안 차차 어느덧 미녀상에 대한 관념이 달라졌다.

자기의 아내로서의 미녀상을 그려보고 싶어졌다.

세상은 자기에게 아내를 주지 않는다.

보면 한 마리의 곤충, 한 마리의 날짐승도 각기 짝을 찾아 즐기고, 짝을 찾아 좋아하거늘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짝없이 오십년을 보냈다 하는 데 대한 불만이 일어났다.

세상놈들은 자기에게 한 짝을 주지 않고 세상 계집들은 자기에게 오려는 자가 없이 홀몸으로 일생을 보내다가 언제 죽는지도 모르게 이 산골에서 죽어버릴 생각을 하면 한심하기 보다는 도리어 이렇듯 박정한 사람의 세상이 미웠다.

세상이 주지 않는 아내를 자기는 자기의 붓끝으로 만들어서 세상을 비웃어주리라.

이 세상에 존재한 가장 아름다운 계집보다 더 아름다운 계집을 자기의 붓끝으로 그려서 못나고도 아름다운 체하는 세상 계집들을 웃어주리라.

덜난 계집을 아내로 맞아가지고 천하의 절색이라 믿고 있는 사내놈들도 깔보아주리라.

4,5명의 처첩을 거느리고 좋다꾸나고 춤추는 헌놈들도 굽어보아주리라.

미녀! 미녀!

―눈을 감고 생각하고 눈을 뜨고 생각하고 머리를 움켜쥐고 생각해보나 미녀의 얼굴이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무론 얼굴에 철요(凸凹)가 없고 이목구비가 제대로 놓였으면 세상 보통의 미인이라 한다. 그런 얼굴에 연지나 그리고 논에 미소나 그려넣으면 더 아름다워지기는 할 것이다. 이만 것은 상상의 눈으로도 볼 수가 있는 자며 붓끝으로 그릴 수도 없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가야만 어린 시절의 어머니의 얼굴을 순영적(瞬影的)으로나마 기억하는 이 화공으로서는 그런 미녀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오뇌의 불만 중에서 흐르는 세월은 1년 또 1년, 무위히 흘러간다.

미녀의 아랫동이는 그려진 지 벌써 수년. 그 아랫동이 위에 올려놓일 얼굴을 어떻게 하여얄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화공의 오막살이 방안에 들어서면 맞은편에 걸려 있는 한 폭 그림은 언제든 어서 목과 얼굴을 그려주기를 기다리듯이 화공을 힐책한다.

화공은 이것을 보기가 거북하였다.

특별한 일이라도 있기 전에는 낮에 거리에 다니지를 않던 이 화공이 흔히 얼굴을 싸매고 장안을 돌아다녔다.

행여나 길에서라도 미녀를 만날까 하는 요행심으로였다. 길에서 순간적으로 마음에 드는 미녀를 볼 수만 있으면 머리에 똑똑히 캐치하여 그 기억으로써 화상을 그릴까 하는 요행심으로……

그러나 내외법이 심한 이 도회에서 대낮에 양가의 부녀가 얼굴을 내놓고 길을 다니지는 않았다. 계집이라는 것은 하인배나 하류배뿐이었다.

하인배·하류배에도 때때로 미녀라 일컬을 자가 있기는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산뜻한 미를 갖기는 했다 하나 얼굴에 흐르는 표정이 더럽고 비열하여 캐치할 만한 자가 없었다.

얼굴을 싸매고 거리로 방황하며 혹은 계집들이 많이 모이는 우물가며 저자를 비슬비슬 방황하며 어찌어찌하여 약간 예쁜 듯한 계집이라도 보이면 따라가면서 얼굴을 연구해보곤 했으나 마음에 드는 미녀를 지금껏 얻어내지를 못하였다.

혹은 심규(深閨)에는 마음에 드는 계집이라도 있을까. 심규! 심규! 한 번 심규의 계집들을 모조리 눈앞에 벌여 세우고 얼굴 검사를 하여보았으면……

초조하고 성가신 가운데서 날을 보내고 날을 맞으면서 미녀를 구하던 화공은 마지막 수단으로 친잠상원(親蠶桑園)에 들어가서 채상(採桑)하는 궁녀의 얼굴을 얻어보려 하였다.그러나 불행히도 화공의 모험도 헛길로 돌아가고, 그날은 채상을 하러 오지도 않았다.

그러나 때 바야흐로 누에시절이라 견딜성있게 기다리노라면 궁녀의 오는 날도 있을 것이다. 미녀―아내의 얼굴을 그리려는 욕망에 열이 오르고 독이 난 이 화공은 그 이튿날 또 뽕밭에 들어가 숨었다. 숨어 기다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로부터 한달, 화공은 나날이 점심을 싸가지고 상원(桑園)으로 갔다. 그러나 저녁때 제 오막살이로 돌아올 때는 언제든지 그의 입에서는 기다란 탄식성이 나왔다.

궁녀를 못본 바가 아니었다.

마치 여기 숨어 있는 화공에게 선보이려는 듯이 나날이 궁녀들은 번갈아 왔다.한떼씩 밀려와서는 옷소매 치마자락을 펄럭이며 뽕을 따갔다. 한달 동안에 합계 사오십명의 궁녀를 보았다. 모두 일률로 미녀들이었다. 그리고 길가 우물가에서 허투루 볼 수 있는 미녀들보다 고아한 얼굴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그 눈―화공이 보는 바는 그 눈이었다.

그 눈에 나타난 애무와 동경이었다. 철철 넘어 흐르는 사랑이었다. 그것이 궁녀에게는 없었다. 말하자면 세상 보통의 미녀였다.

자기에게 계집을 주지 않는 고약한 세상에게 보복하는 의미로 절세의 미녀를 차지하고자 하는 이 화공의 커다란 야심으로서는 그만 따위의 미녀로 만족할 수가 없었다.

오막살이로 돌아올 때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기다란 한숨, 이런 한숨을 쉬기 한달―그는 다시 상원에 가지 않았다.

가을 하늘 맑고 푸르른 어떤 날이었다.

마음속에 불만과 동경을 가득히 담은 히 화공은 저녁쌀을 씻으려 소쿠리를 옆에 끼고 시내로 더듬어갔다.

가다가 문득 발을 멈추었다.

우거진 소나무 틈으로 보이는 시냇가 바위 위에 왠 처녀가 앉아 있다. 솔가지 틈으로 내리비치는 얼룩지는 석양을 받고 망연히 앉아서 흐르는 새냇물을 내려다보았다.

왠 처녀일까?

인가에서 꽤 떨어진 이곳, 사람의 동리보다 꽤 높은 이곳, 길도 없는 이곳―아직껏 삼십년간을 때때로 초부나 목동의 방문은 받아본 일이 있지만 다른 사람의 자취를 받아보지 못한 이곳에 왠 처녀일까?

화공도 망연히 서서 바라보았다. 바라볼 동안 가슴에 차차 무거운 긴장을 느꼈다.

한걸음 두걸음 화공은 발소리를 감추고 나아갔다. 차차 그 상거가 가까워감을 따라서 분명하여 가는 처녀의 얼굴.

화공의 얼굴에는 피가 떠올랐다.

세상에 드문 미녀였다. 나이는 열 일여덟, 그 얼굴 생김이 아름답다기보다 얼굴 전면에 나타난 표정이 놀랄 만큼 아름다왔다.

흐르는 시내에 눈을 부었는지, 귀를 기울였는지, 하여간 처녀의 온 주의력은 시내에 모여 있다. 커다랗게 뜨인 눈은 깜박일 줄도 잊은 듯한 황홀한 눈으로 시내를 굽어보고 있다.

남벽(藍碧)의 시냇물에는 용궁이 보이는가? 소나무 그루에 부딪쳐서 튀어나는 바람에 앞머리를 약간 날리면서 처녀가 굽어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처녀의 온 공상과 정열과 환희가 한꺼번에 모인 절묘한 미소를 눈과 입에 띠고 일심불란(一心不亂)히 처녀가 굽어보는 것은 무엇인가.

아아.

화공은 드디어 발견하였다. 그새 십년간을 여항(閭巷)의 길거리에서 혹은 우물가에서 내지는 친잠 상원에서 발견하여보려고 애쓰다가 종내 달하지 못한 놀랄 만한 아름다운 표정을 화공은 뜻 안한 여기서 발견하였다.

화공은 걸음을 빨리 하였다. 자기의 얼굴이 얼마나 더럽게 생겼는지, 이 처녀가 자기를 쳐다보면 얼마나 놀랄지, 이 점을 온전히 잊고 걸음을 빨리하여 처녀의 쪽으로 갔다.

처녀는 화공의 발소리에 머리를 번쩍 들었다. 화공을 바라보았다. 그 무한히 먼곳을 바라보는듯한 기묘한 눈을 들어서―

"아아……"

가슴이 무둑하여 무슨 말을 하여야 할지 망설이며 화공이 반벙어리같은 소리를 할 때에 처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여기가 어디오니까?"

여기가 어디?

"여기가 인왕산록 이름도 없는 산이지만 너는 웬 색시냐?"

"네……"

문득 떠오르는 적적한 표정.

"더듬더듬 시내를 따라왔습니다."

화공은 머리를 기울였다. 몸을 움직여보았다. 무한히 먼곳을 바라보는 듯한 처녀의 눈은 그냥 움직임없이 커다랗게 뜨여 있기는 하지만 어디를 보는지 무엇을 보는지 알 수가 없다.

드디어 화공은 부르짖었다!

"너 앞이 보이느냐?

"소경이올시다."

소경이었다. 눈물 머금은 소리로 하는 대답을 듣고 화공은 좀더 가까이 갔다.

"앞도 못보면서 어떻게 무엇하러 예까지 왔느냐?"

처녀는 머리를 푹 수그렸다. 무슨 대답을 하는 듯하였으나 화공은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러나 화공으로 하여금 저으기 호기심을 잃게 한 것은 처녀의 얼굴이 아까와 같은 놀라운 매력있는 표정이 없어진 것이었다.

그만하면 보기드문 미인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아까 화공이 그렇듯 놀란 것은 단지 미인인 탓이 아니었다. 그 얼굴에 나타난 놀라운 매력에 끌린 것이었다.

"불쌍도 하지. 저녁도 가까워오는데 어둡기 전에 집으로 나려가거라."

이만큼하여 화공은 처녀를 포기하려 하였다. 이 말에 처녀가 응하였다.

"어두운 것은 탓하지 않습니다마는 황혼은 매우 아름답지요?"

"그럼 아름답구말구."

"어떻게 아름답습니까?"

"황금빛이 서산에서 줄기줄기 비치는구나. 거기 새빨갛게 물들은 천하―푸르른 소나무도, 남빛 바위도, 검붉은 나무 그루도, 모 두 황금빛에 잠겨서……"

"황금빛은 어떤 것이고 새빨간 빛과 붉은빛은 모두 어떤 빛이오니까? 밝은 세상이라지만 밝은빛과 붉은빛이 어떻게 다릅니까? 이 산 경치가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더듬어왔습니다마는 바람 소리, 돌물소리, 귀로 들리는 소리밖에는 어디가 아름다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차차 다시 나타나는 미묘한 표정, 커다랗게 뜨인 눈에 비치는 동경의 물결, 일단 사라졌던 아름다운 표정은 다시 생기가 비롯하였다.

화공은 드디어 처녀의 맞은편에 가 앉았다.

"이 샘줄기를 따라내려가면 바다가 있구, 바닷속에는 용궁이 있구나. 칠색 비단을 감은 기둥과 비취를 아로새긴 댓돌이며 황금 으로 만든 풍경(風磬), 진주로 꾸민 문설주……"

마주 앉아서 엮어내리는 이 화공의 이야기에 각일각 더욱 황홀하여가는 처녀의 눈이었다. 화공은 드디어 이 처녀를 자기의 오막살이로 데리고 돌아갈 궁리를 하였다.

"내 용궁의 이야기를 들려주마. 너의 집에서 걱정만 안하실 것같으면……"

화공이 이렇게 꾈 때에 처녀는 그의 커다란 눈을 들어서 유원(幽園)히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자기네 부모는 병신 딸 따위는 없어져도 근심을 안한다고 쾌히 화공의 뒤를 따랐다.

일사천리로 여기까지 밀려오던 여(余)의 공상은 문득 중단되었다.

이야기를 어떻게 진전시키나?

잡념이 일어난다. 동시에 여의 귀에 들리어오는 한 절의 유행가.

여는 머리를 들었다. 저편 뒤 어디 잡인들이 온 모양이다. 그 분요(紛擾)가 무의식중에 귀로 들어와서 여의 집중되었던 머리를 헤쳐놓는다.

귀찮은 가사(歌師)들이여, 저주받을 가사들이여.

이 저주받을 가사들 때문에 중단된 이야기는 좀처럼 다시 모이지 않았다.

그러나 결말 없는 이야기가 어디 있으랴. 어찌되었든 결말은 지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면 그 화공은 처녀를 데리고 제 오막살이로 돌아와서 용궁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동안에 처녀의 얼굴을 그대로 그려서 십년래의 숙망을 성취하였다는 결말로 맺어버릴까?

그러나 이런 싱거운 결말이 어디 있으랴. 결말이 되기는 되었지만 이따위 결말을 짓기 위하여 그런 서두(序頭)는 무의미한 자다.

그러면?

그럼 다르게 결말을 맺어볼까?

화공은 처녀를 제 오막살이로 데리고 돌아왔다. 그리고 처녀에게 용궁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나 아까 용궁 이야기를 초벌 들은 처녀는 이번은 그렇듯 큰 감흥도 느끼지 않는 모양으로 그다지 신통한 표정도 보이지 않았다. 화공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화공은 그 그림을 영 미완품인 채로 남기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 결말이었다.

그럼 또다시―

화공은 처녀를 데리고 돌아왔다. 돌아와서 처녀를 보면 볼수록 탐스러워서 그림은 집어치우고 처녀를 아내로 삼아버렸다. 앞을 못보는 처녀는 추하게 생긴 화공에게도 아무 불만이 없이 일생을 즐겁게 보냈다. 그림으로나 아내를 얻으려던 화공은 절세의 미녀를 아내로 얻게 되었다……

역시 불만이다.

귀찮고 성가시다. 저주받을 유행가사(流行歌師)여!

여는 일어났다. 감흥을 잃은 이 자리에 그냥 앉아 있기는 싫었다. 그냥 들리는 유행가……그것이 안들리는 곳으로 자리를 옮기자.

굽어보매 저 멀리 소나무 틈으로 한줄기 번득이는 것은 아까의 샘물이다.

그 샘물로, 가장 이 이야기의 원천이 된 그 샘으로 내려가자.

벼랑을 내려가기는 올라가기보다 더 힘들었다. 올라가는 것은 올라가다가 실수하여 떨어지면 과즉 제자리에 내린다. 그러나 내려가다가 발을 실수하면 어디까지 굴러갈지 예측할 길이 없다. 잘못하다가는 청운동 어귀까지 굴러갈는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올라갈 때에는 도움이 되던 스틱조차 내려갈 때에는 귀찮기 짝이없다.

반각이나 걸려서 여는 드디어 그 샘가에 도달하였다.

샘가에는 과연 한 개의 바위가, 사람 하나 앉기 좋을 만한 자리가 있다. 이 바위가 화공 쌀 씻던 바위일까. 처녀가 앉아서 공상하던 바위일까? 그 아래를 깊은 남벽(藍碧)으로 알았더니 겨우 한 뼘 미만의 얕은 물로서 바위를 기운없이 똘똘 흐르고 있다.

그러나 이 골짜기는 고요하기 짝이없었다. 바람소리도 멀리 위에서만 들린다. 그리고 소나무와 바위 둘러싸여서 꽤 음침한 이 골짜기는 옛날 세상을 피한 화공이 줄겨하였음직하다.

자, 그러면 이 골짜기에서 아까 그 이야기의 꼬리를 마저 지을까―

화공은 처녀를 데리고 오막살이로 돌아왔다.

그의 마음은 너무도 긴장되고 또한 기뻐서 저녁도 짓기 싫었다.들어와 보매 벌써 여러해를 머리 달리기를 기다리는 족자(簇子)의 여인이 몸집조차 흔연히 화공을 맞는 듯하였다.

"자, 거기 앉아라."

수년간 화공을 힐책하던 머리 없는 그림이 화공의 앞에 펴졌다. 단청도 준비되었다.

터질 듯 울렁거리는 마음으로 폭 앞에자리를 잡은 화공은 빛이 비치도록 남향하여 처녀를 낮히고 손으로 붓을 적시며 이야기를 꺼냈다.

벌써 황혼, 인제 얼마남지 않은 오늘 해로써 숙망을 달하려 하는 것이었다. 십년간을 벼르기만 하면서 착수를 못했기 때문에 저축되었던 화공의 힘은 손으로 모였다.

"그러구……알겠지?"

눈으로는 처녀의 얼굴을 보며, 입으로는 용굴 이야기를 하며 손은 번개같이 붓을 들었다.

"용궁에는 여의주라는 구슬이 있구나. 이 여의주라는 구슬은 마음에 있는 바에 도달할 수 있는 보물로서 구슬을 네 눈 위에 한 번 굴리면 너도 광명한 일월을 보게 된다."

"네? 구슬이 있습니까?"

"있구말구, 네가 내 말을 잘 듣고 있기만 하면 수일 내로 너를 데리고 용궁에 가서 여의주를 빌어서 네 눈도 고쳐주마."

"그러면 저도 광명한 일월을 볼 수가 있겠습니까?"

"그럼, 광명한 일월, 무지개라는 칠색이 영롱한 기묘한 것, 아름다운 수풀, 유수한 골짜기, 무엇인들 못 보랴."

"아이구, 어서 그 여의주를 구해서……"

아아, 놀라운 아름다운 표정이었다. 화공은 처녀의 얼굴에 나타나 넘치는 이 놀라운 표정을 하나도 잃지 않고 화폭 위에 옮겼다.

황혼은 어느덧 밤으로 변하였다. 이때는 여인에게는 단지 눈동자가 그려지지 않았을 뿐 그밖의 것은 죄 완성이 되었다.

동자까지 그리고 싶었다.그러나 이 그림의 생명을 좌우할 눈동자를 그리기에는 날은 너무도 어두웠다.

눈동자 하나쯤이야 밝는 날로 남겨둔들 어떠랴. 하여간 십년 숙망을 겨우 달한 화공의 심사는 무엇에 비기지 못하도록 기뻤다.

"아―아!"

이 탄성은 오래 벼르던 일이 끝난 때에 나는 기쁨의 소리였다.

이 일단의 안심과 함께 화공의 마음에는 또다른 긴장과 정열이 솟아올랐다.

꽤 어두운 가운데서 처녀의 얼굴을 유심히 보기 위하여 화공이 잡은 자리는 처녀의 무릎과 서로 닿을 만큼 가까웠다. 그림에 대한 일단의 안심과 함께 화공의 코로 몰려들어오는 강렬한 처녀의 체취와 전신으로 느끼는 처녀의 접근 때문에 화공의 신경은 거의 마비될 듯싶었다. 차차 각일 각 몸까지 떨리기 시작하였다. 어두움 가운데서 황홀스러이 빛나는 커다란 눈과 정열로 들먹거리는 입술은 화공의 정신까지 혼미하게 하였다.

밝는 날 화공과 소경 처녀의 두 사람은 벌써 남이 아니었다.

'오늘은 동자를 완성시키리라.'

삼십년의 독신생활을 벗어버린 화공은 삼십년간을 혼자 먹던 조반을 소경 처녀와 같이 멱고 다시 그림폭 앞에 앉았다.

"용궁은?"

기쁨으로 빛나는 처녀의 눈!

그러나 화공의 심미안에 비친 그 눈은 어제의 눈이 아니었다.

아름답기는 다시없는 아름다운 눈이었다. 그러나 그 눈은 사내의 사랑을 구하는 '여인의 눈'이었다. 병신이라 수모받던 전생을 벗어버리고 어젯밤 처음으로 인생이 봄을 맛본 처녀는 인제는 한 개의 지어미의 눈이요, 한 개의 애욕의 눈이었다.

"용궁은?"

"용궁에 어서 가서 여의주를 얻어서 제 눈을 띄어주세요. 밝은 천지도 천지려니와 당신이 어서 눈뜨고 보고 싶어!"

어젯밤 잠자리에서 지기는 스물 네 살난 풍신 좋은 사내라고 자랑한 화공의 말을 그대로 믿는 소경이었다.

"응, 얻어주지. 그 칠색이 영롱한!"

"그 칠색도 보고 싶어요."

"그래 그래, 좌우간 지금 머리로 생각해보란 말이야."

"네, 참 어서 보고 싶어서."

굽어보면 무릎 앞의 그림은 어서 한점 동자를 찍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소경의 눈에 나타난 것은 아름답기는 아름다우나 그것은 애욕의 표정에 지나지 못하였다. 그런 눈을 그리려고 십년을 고심한 것이 아니었다.

"자, 용궁을 생각해봐!"

"생각이나 하면 뭘 합니까? 어서 이 눈으로 보아야지."

"생각이라도 해보란 말이야."

"짐작이 가야 생각도 하지요."

"어제 생각하던 대로 생각을 해봐!"

"네……"

화공은 드디어 역정을 내었다.

"자, 용궁! 용궁!"

"네……"

"용궁을 생각해봐! 그래 용궁이 어때?"

"칠색이 영롱하구요……"

"그래, 또……"

"또, 황금기둥, 아니 비단으로 싼 기둥이 있구요, 또 푸른 진주가……"

"푸른 진주가 아냐! 푸른 비취지."

"비취 추녀던가, 문이던가―?"

"에익! 바보!"

화공은 커다란 양손으로 칵 소경의 어깨를 잡았다. 잡고 흔들었다.

"자, 다시 곰곰이, 용궁은."

"용궁은 바닷속에……"

겁에 띄어서 어릿거리는 소경의 양에 화공은 소경의 따귀를 갈기지 않을 수 없었다.

"바보!"

이런 바보가 어디 있으랴. 보매 그 병신 눈은 깜박일 줄도 모르고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그 천치같은 눈을 보매 화공의 노염은 더욱 커졌다. 화공은 양손으로 소경의 멱을 잡았다.

"에이 바보야, 천치야, 병신아!"

생각나는 저주의 말을 연하여 퍼부으면서 소경의 멱을 잡고 흔들었다. 그리고 병신다이 멀겋게 뜨인 눈자위에 원망의 빛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더욱 힘있게 흔들었다.

흔들다가 화공은 탁 그 손을 놓았다. 소경의 몸이 너무도 무거워졌으므로, 화공의 손에서 놓인 소경의 몸은 눈을 뒤솟은 채 번뜻 나가넘어졌다. 넘어지는 서슬에 벼루가 전복되었다. 뒤집혀진 벼루에서 튀어난 먹물방울이 소경 얼굴에 덮였다.

깜짝 놀라서 흔들어보매 소경은 벌써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었다.

소경은 어찌할 줄을 몰랐다. 망지소조(芒知所措)하여 허둥거리던 화공은 눈을 뜻없이 자기의 그림 위에 던지다가 악 소리를 내며 자빠졌다.

그 그림의 얼굴에는 어느덧 동자가 찍히었다. 자빠졌던 화공이 좀 정신을 가다듬어가지고 몸을 일으켜서 다시 그림을 보매 두 눈에는 완연히 동자가 그려진 것이다.

그 동자의 모양이 또한 화공으로 하여금 다시 털썩 엉덩이를 붙이게 하였다. 아까 소경 처녀가 화공에게 멱을 잡혔을 때에 그의 얼굴에 나타났던 원망의 눈―그림의 동자는 완연히 그것이었다.

소경이 넘어지는 서슬에 벼루를 엎는다는 것은 기이할 것도 없고 벼루가 엎어질 때에 먹방울이 튄다는 것도 기이하달 수 없지만 그 먹방울이 어떻게 홍채에 이르기까지 어찌도 그렇듯 기묘하게 되었을까?

한편에는 송장, 한편에는 송장의 화상을 놓고 망연히 앉아 있는 화공의 몸은 스스로 멈출 수 없이 와들와들 떨렸다.

수일 후부터 한양 성내에는 괴상한 화상을 들고 음울한 얼굴로 돌아다니는 늙은 광인(狂人) 하나가 생겼다.

그의 내력을 아는 사람이 없었고 그의 근본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 괴상한 화상을 너무도 소중히 여기므로 사람들이 보고자 하면 그는 기를 써서 보이지 않고 도망하여버리곤 한다.

이렇게 수년간을 방황하다가 어떤 눈보라치는 날 돌베개를 베고 그의 일생을 마감하였다. 죽을 때도 그는 족자를 깊이 품에 품고 죽었다.

늙은 화공이여! 그대의 쓸쓸한 일생을 여는 조상하노라.

여(余)는 지팡이로써 물을 두어번 저어보고 그즈너기 몸을 일으켰다.

우러러보매 여름의 석양은 벌써 백악 위에서 춤추고 이 천고의 계곡을 산새가 남북으로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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