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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이와 살림을 하기는, 내가 열 아홉 살 먹던 봄이었읍니다.

시방은 이래도, 삼십도 못 된 년이 이런 소리를 한다고 웃지 말아요. 기생이란 스무 살이 환갑이라니, 삼십이면 일테면 백 세 장수한 할미장이가 아니에요. 그때는 괜찮았답니다. 이 푸르족족한 입술도 발그스름하였고, 토실한 뺨볼이라든지, 시방은 촉루(髑髏)란 별명고차 듣지마는 오동통한 몸피라든지, 살성도 회고, 옷을 입으면 맵시도 나고, 걸음걸이도 멋이 있었답니다. 소리도 그만저만히 하고, 춤도 남의 흉내는 내었답니다. 화류계에서는 그래도 누구 하고 이름이 있었는지라, 호강도 웬만히 해보고 귀염도 남부럽잖게 받았읍네다. 망할 것 우스워 죽겠네. 하자는 이야기는 아니하고 제 칭찬 만 하고 않았구먼.

어쨌든 나도 한시절이 있은 것은 사실입니다. 해구멍이 막히지도 안 해 요리집에서 인력거가 오고 가고만 보면 새로 두 점 석 점 전에는 집에 돌아온 적이 별로 없었읍니다. 그나마 집에 와서 곧 자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아, 대개 집에 손님이 기다리고 있기도 하고 또는 손님과 같이 올 때가 많았읍니다. 그래가지고 또 고달픈 몸을 밤새도륵 고달프게 굴다가, 해뜬 뒤에야 인제 내 세상인가 보다 하고 간신히 눈을 붙이면 사정 모르는 손들이 낮부터 달려들어서 고단한 몸을 끌고 꽃 구경을 간다. 들놀이를 간다, 절에를 나간다 합니다그려. 그거니 몸이 피로치 않을 수 있읍니까. 놀기란 참 고된 일입니다. 어느 때는 사지가 늘어지고, 노는 것이 딱 싫고 귀찮아서, ‘이년의 노릇을 언제나 마나’ 하고, 탄식이 나옵니다.

그럴 때 나의 눈앞에 그이가 나타났읍니다. 나보담 네 해 맏이인 그는, 귀공자답게 얼굴도 곱상스럽고 돈도 잘 쓰며 노는 품도 재미스럽고 호귀로왔읍니다. 나는 그만 그에게로 마음이 솔깃하고 말았지요. 그이도 나에게 적지않게 빠진 모양이었읍니다. 그럭저럭 관계가 깊어 가자, 그이는 나와 살자고 조르지 않겠읍니까. 마침 기생 노릇도 하기 싫던 차이고 밉지도 않은 사내라, 내심으론 이게 웬 떡이냐 싶었지만, 그래도 기생 행투가 그렇지 않아 이 핑계 저 핑계로 그이를 바싹 달게 해서 돈 천 원이나 착실히 빼앗아서 어머니를 주고 마지못해 하는 듯이 살림을 들어가게 되었읍니다.

그이는 간이라도 빼어먹일 듯이 나를 사랑해 주었읍니다. 나를 얻기 전에도 오입깨나 해본 모양이었으나, 나이가 나이라, 어리고 참다운 곳이 있었읍니다. 나의 말이면 콩을 팥이라 해도 곧이들었읍니다. 나의 청이라면 무엇이고 낙종(諾從)치 않는 것이 없었읍니다. 이 눈치를 알아본 나는 그이로부터 갖은 것을 졸라 내었읍니다. 우리 든 집 문서도 내 이름으로 내게 하고, 자개농이랑, 자개의 걸이랑, 한간 벽에 맞는 큰 체경이랑, 물론 온갖 비단과 포목을 필필이 들여오게 하고, 철철에 따르는 비녀며 사흘거리로 진고개에 가서는 순금반지 진주반지 보석반지를 사게 하였읍니다.

이 외에 어머니의 생신이라는 둥, 일가의 혼례에 쓴다는 둥, 장사에 쓴다는 둥, 빛을 졌다는 둥, 갖은 핑계를 만들어서 그의 돈을 긁어 내었읍니다. 무슨 내 변명이 아니라 이런 짓을 한 게 전부가 나의 욕심 사나운 까닭도 아닙니다. 사라고 하고 달라고 하는 그것이 어쩐지 좋고 재미스럽기도 하였어요. 그리고 또 그것이 그에게 피우는 애교이고 아양이었어요. 그것뿐도 아니지요. 내 말이라면 어느 정도까지 들어 주나 곧 그이가 나한테 홀리었는지를 자질도 하고 싶고, 뜻대로 성공을 하면 물건을 얻은 것보담 몇 갑절 더 기뻤읍니다. 물론 어머니가 뒷구멍으로 부추 기기도 하였지만.

그인들 몇만금을 제 수중에 두고 쓰는 게 아니라, 아버지를 팔고 빛을 내는 것이 하루 이틀 아니고 물쓰듯 하는 돈을 언제까지 대어 갈 수가 있겠읍니까. 같이 산 지 석 달이 못 되어 돈 주변할 길이 막힌 모양이었읍니다. 아무리 귀한 자식의 빚봉수라도 한 번 두 번이지 전부 아버지가 갚아 줄 리가 있겠어요. 더구나 구두쇠로 유명한 그의 부친이 그때까지 참은 것도 장한 일이지요. 마침내,

“너 같은 놈은 자식으로 알지도 않으니 죽든지 살든지 나는 모르겠다.”

하게 되었읍니다. 그전에도 여러 번 그러고 얼렀지만 이제는 아주 사실로 나타나게 되었겠지요.

빚장이가 벌떼같이 일어났읍니다. 요리집에서, 금은방에서, 선전, 드팀전 더구나 고리대금업자한테서, 빚장이는 문간을 떠날 새가 없었읍니다. 부자집 외동아들로 자라나 도무지 졸리는 것을 모르던 그이는 단박에 입술이 바싹바싹 말라가기 시작하였읍니다. 문간에서 찾는 소리만 나면 온 몸을 옹송그리고 얼굴이 파랗게 질리는 꼴이란 곁에서 보아도 가없었읍니다. 빚에 졸리는 것이 딱 하기도 하고 또 자격지심도 나서,

“나 때문에 이런 곤란을 당하시지요. 내가 몹쓸 년이야.”

하며는 그이는,

“그게 무슨 말이야.”

하며 질색을 하고,

“왜 채선(彩仙)이 때문이람. 내가 못생긴 탓이지.”

하고는 도리어 면목없는 듯이 고개를 숙이었읍니다.

이런 중에 그에게 또 기막힌 일이 생기었지요. 그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그이가 돈 쓰기도 급하였고 또 못된 동무의 꾀임에 빠져 아버지 도장을 위조하여 빛을 낸 일이 발각이 된 것이에요. 돈 꾸어 준 놈도 물론 알고 한 일이지만 그의 아버지가 나는 모른다고 딱 거절을 하니까 이제는 그이를 보고 얼으딱딱거리며 사기를 했느니, 인장 위조를 했느니, 만일 일주일 안으로 갚지 않으면 고소를 하느니 하고 야단을 합니다. 간이 작고 마음이 어린 그는 얼굴이 새파랗게 타들어가겠지요. 몇 번 그의 어머니를 새에 두고 또는 직접으로 자기 아버지께 말을 해보는 모양이었으나, 도무지 일이 안될 줄은 그 찡긴 눈썹과 붙어진 새죽지 같은 어깨를 보아도 짐작할 수 있읍디다. 그이는 조바심이 되어서 못견디는 듯이 누웠다, 앉았다. 일어 섰다 금시로 집을 뛰어나가는가 하면 금시로 또 뛰어들어오겠지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돌부처나 무엇같이 한 자리에 우두커니 않으면 멍하니 바람벽만 바라보고 어느 때까지 손끝 하나 꼼짝도 아니 하였읍니다.

내일같이 그 일주일이란 귀한 날이고 오늘같은 저녁이었읍니다. 여름답게 횐 구름이 봉오리봉오리 솟은 하늘엔 밝은 달이 걸리었읍니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나서 마루로 나와 달을 쳐다보고 있었읍니다. 그때 나는 문득,

“작년 이맘때에는 한강에서 선유를 하였는데.”

하였읍니다. 굼실거리는 시원한 물결은, 그림자를 부수는 배가 눈앞에 선하게 떠보이매 갑자기 덥고 갑갑해서 견딜 수 없겠지요. 그러나 아무리 뻔지 좋은 나인들 사면팔방을 빚에 졸리어 머리를 못드는 그이에게 뱃놀이 가잘 염이야 있어요.

“이런 밤에 처박히어 나가지두 못하구”

하매 번화롭던 옛날 기생 생활이 그리웠읍니다. 살림 들어온 것이 후회가 났읍니다. 이렇게 마음이 들뜨는 판에 곁에서 훌쩔훌쩔하는 소리가 나지 않겠읍니까. 돌아다보니 그이가 울고 있지 않아요.

“왜 우세요”

하니까 얼른 대답은 아니하고 설움이 복받치어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이윽히 코만 들이마시다가 껄떡이는 목소리로,

“채선이는, 채선이는 내가, 내가 감옥엘 들어가면 또 기생으로 나가겠지?”

하고 눈물이 그렁거리는 눈을 나에게로 돌리겠지요. 내 속을 알아차렸나 보다 하고 가슴이 뜨끔하였으되 놀아먹은 보람이 있어서 담박에,

“흉헙게스리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하고 질색을 하였읍니다.

“아니야, 내가 감옥엘 가면 채선이는 또 기생에 나가서 뭇놈의 사랑을 받을 거야.”

감옥에 간단 말이 조금 안되었지만 속으로는 ‘암 그렇지’ 하면서도 입밖에 내어서는,

“그럴 리가 있겠어요. 설령 나으리가 감옥에 간다손치더라도 나야 당신 사람이 아니에요. 왜 또 기생으로 나가겠읍니까. 댁에 가서 행랑방 구석으로 돌아다닐지라도 나으리의 나오기만 기다리지요”

라고 꿀을 담아 붓는 듯한 마음에 없는 딴청을 부리었읍니다. 이 말에 그이는 매우 감동된 모양이었읍니다. 바싹 다가들며,

“그게 참말이야?”

“그럼 참말 아니구.”

“그래 내가 감옥엘 가도 수절을 하고 나를 기다리겠단 말이야?”

“그럼 수절하구말구.“

천연덕스럽게 꼭 그러할 듯이 따끈해서 대답을 하였으되 속으로는 수절이란 말이 어째 춘향전이나 읽는 듯해서 우스웠습니다.

“만일 내가 감옥엘 아니 가고 죽는다면.”

하고 그이는 나의 얼굴을 딱 노리었읍니다. 그 시선이 전에 없이 날카로와서 슬쩍 외면 을 하면서도

“따라 죽지?”

하고서 청승맞게 ‘너 죽고 나 살면 열녀 되나 한강수 깊은 물에 빠져나 죽지’ 하는 노래를 읊었읍니다. 나도 죽일 년이지요. 그 소리를 들으며 그이는 또 얼빠진 듯이 우두커니 앉았다가 무슨 단단한 결심을 한 것같이 벌떡 일어서며,

“채선이, 할 말이 있으니 방으로 들어가자”

하지 않겠어요. 나는 ‘흥, 또 안고 끼고 하려나 보다’ 하였읍니다. 그이는 아직도 숫기가 남아 있어 남보는 데, 아니 남이 볼 만 한 데에서는 나의 손목 한 번 시원스럽게 못 쥐고 그리고 싶을 때엔 꼭 방으로 끌고 들어 갔읍니다. 더구나 요사이 와서는 몹시 근심을 한 뒤라든지 또는 비관한 뒤라든지 반드시 나를 쓰다듬고 어루만지기를 잊지 않았읍니다. 이런 짐작을 한 나는 조금 앙탈도 하고 싶었으나 그의 운 것이 가없어서 말대로 방에 들어갔읍니다. 방에 들어온 그는 방문을 모두 안으로 닫아걸겠지요. 내 짐작이 틀리지 않구나 하면서도,

“이 6월 염천에 방문을 왜 닫아요, 남 더워 죽겠는데.”

라고 까자를 올렸건만 그 말에는 아무 대답이 없고 제 할일을 다해 버립디다. 전 같으면 부끄러운 듯이 눈을 찡긋하기도 하고 손짓으로 말 말라고도 하였으련만. 나는 벌써 내 입술에 닿는 그의 입술, 나의 젖가슴으로 허리로 도는 그의 팔을 기다렸건만 그이는 이상스럽게 엄연한 얼굴로 마주 앉아 있을 뿐입니다. 얼마 만에 그이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채선이 네나 내나 이 세상에 더 구차히 산다 한들 또 무슨 낙을 보겠니, 차라리 고만 죽어 버리는 게 어떠냐?”

하겠지요. ‘미쳤나, 죽기는 왜 죽어’ 하면서도,

“그래요, 고만 죽어 버려요”

라고 쉽사리 찬성을 하였읍니다.

“그래 나하고 같이 죽을 테냐?”

“나으리하구 죽는다면 죽는 것도 꿀이지요.“

“내야말로 너하구 같이 죽는다면 한이 없겠다.“

하는 그이의 소리는 떨리었읍니다. 나도 일부러 목이 메이며,

“내야말로 나으리하구 죽으면 한이 없어요.“

“말만 들어도 고맙다만 정말 나하구 죽을테냐?”

“원, 다심도 하이, 죽는다면 죽는 게지, 그렇게 내가 못미덥단 말이에요”

하고 가장 남의 속을 못도 알아준다는 듯이 새파랗게 성을 내었읍니다. 그리하는 것이 어째 신파 연극을 하는 듯싶어 재미스러웠어요. 설마 죽을 리는 만무하고 이왕이면 이대도록 너한테 정이 깊다는 걸 표시함도 좋았지요. 그이는 나의 기색을 살피더니 그만하면 되었다 하듯이 벌떡 일어나 자기가 쓰는 가방을 가져오더니 그 안에서 횐 봉지를 하나 꺼내겠지요.그 봉지 속으로는 밤낱만한 고약 같은 것 두 개가 나왔읍니다.

(저것이 아편이구나) 하매 가슴이 조금 섬뜩 어리었으되 그리 놀라지는 않았읍니다. 그 약으로 말하면 그이가 돈 안 주는 자기 아버지를 놀라게 하려고 몇 번 자기 어머니에게 보이는 것을 곁에서 구경을 하였으니까요. 그것을 먹고 죽는다고 야단을 해서 돈을 얻어온 일도 있으니까요. 그러니 시방 와서 새삼스럽게 놀랄 것도 없지마는 같이 죽자는 말 끝에 그것이 나온지라 시방껏 달떴던 마음이 조금 긴장은 됩디다. 그이는 자릿기를 당기더니 그 약을 앞에다 놓고 이윽히 내려다보며 닭의 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지 않겠읍니까. 그때만은 나의 가슴도 찌르르하였읍니다.

한참 약을 내려다보고 울고 있던 그이는 무슨 비장한 결심을 한 듯이 몸을 흠칫하더니 그 약 한 개를 얼른 입에 집어넣고 한 개를 집어 나를 주지 않겠읍니까. 나도 서슴지 않고 그 약을 입에 넣었읍니다. 약을 머금은 그는 손가락으로 자릿기를 가리켜 나한테 물을 마시란 뜻을 보이었습니다. 나는 그의 시키는 대로 물을 마시었으나 물만 넘기었지 약은 혀밑에 감춰 둔 것은 물론입니다. 내야 꿈에도 죽을 마음이 없었읍니다. 같이 사는 정의에 그이의 빚에 졸리는 것이 딱하지 않은 바이 아니고, 그 때문에 살림살이가 전같이 호화롭지는 못하였을망정 그걸로 비관할 까닭은 조금도 없었읍니다. 정 못 살게 되면 도로 기생으로 나갈 뿐입니다. 벌써 살림살이가 물려서 그렇지 않아도 기생 생활이 그립던 나인데 아직 나이 어리고 남에게 귀염 받던 일, 호강하던 일이 어제 일같이 역력히 기억에 남아 있는 나인데, 앞길에도 기쁨과 호강이 춤추며 기다리고 있는 줄 믿는 나인 데, 왜 죽자는 마음이 추호만친들 생기겠읍니까. 내 몸뿐만 아니라 그이가 죽는다는 것도 믿지 않았읍니다. 처음엔 실없는 거짓말로 알았고 약을 머금은 뒤에라도 또 무슨 연극을 꾸미는가 보다, 내일이고 모레면 그 댁에서 허덕지덕 돈을 갖다 줄 터이니 또 홍청거릴 수 있구나 하고 도리어 기쁘기도 하였읍니다. 독약을 먹고 하는 노릇이라 가슴이 조금 아니 떨린 것도 아니지만.

그러나 어찌해요. 그이는 나의 물 마시는 것을 보더니 매우 안심된 듯이 내 손에서 자릿기를 빼앗아 꿀떡 마셔 버렸읍니다. 그이가 정말 약을 삼킨 것은 좁은 목구멍으로 굵은 약덩이가 넘어가느라고 얼굴이 새빨개지고 어깨를 추스르며 목줄기가 구불텅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읍니다. 그러더니 고만 뒤로 벌떡 자파지겠지요. 약 힘이 삽시간에 퍼진 것은 아니겠지만 약을 먹었다 하는 생각에 정신을 잃었는가 보아요.

이 뜻밖의 일에---그이로 보면 조금도 뜻 밖의 일이 아니겠지만---나는 더할 수 없이 놀래었읍니다. 저이가 정말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칼날같이 가슴을 찌르자마자 무어라고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온 몸을 뒤흔들었읍니다. 무어니무어니하여도 고작해야 열 아홉 살 먹은 계집애가 아니에요.

이 난생 처음 당하는 큰일에 어안이 벙벙 하여 ‘악’ 소리도 치지 못하고 가위눌린 눈만 휘등그리다가 나도 죽었네 하는 듯이 뒤로 자빠졌읍니다.

얼마 되지 않아 그이가 벌떡 일어나 미친 듯이 방안을 왔다갔다하지 않아요. 아편을 먹으면 자는 듯이 죽는다는 것은 빨간 거짓말인가 보아요. 답답하고 뉘엿거려서 못 견디겠다는 듯이 두 손으로 가슴을 쥐어뜯으며 ‘핫핫’ 하고 괴로운 숨을 토합디다. 그러더니 다짜고짜로 두 손을 입안으로 넣어 왝왝 헛구역질을 하겠지요. 아마 속이 너무도 괴로움에 죽자는 결심도 간 곳 없고 먹은 약을 토해 낼 작정이던가 보아요. 그러나 약은 아니 나오는 듯하였읍니다.

이 광경을 바라보던 나도 일변 무섭기도 하였지만 못 견딜이만큼 괴롭기도 하였읍니다. 그의 받는 고통이 도무지 내 탓이 아니에요. 나로 하여금 돈을 쓰고 그 돈을 물리다못하여 죽는 죽음이니 내 탓이 아니고 누구의 탓이겠옵니까. 그런데 나는 죽을 때까지 그를 속이었읍니다. 거짓 죽는 시능을 해서 그를 속이었읍니다. 내가 만일 따라 죽는다 아니하고, 그를 말리었던들 그이는 아니 죽고 말았을지도 모르지요. 그 약을 먹고 저런 욕을 아니 볼는지도 모르지요.

그러면 내 손으로 그이를 죽인 것이나 다를 바가 무엇이겠율니까. 그때에야 물론 이렇게 사리를 쪼개서 생각은 안했지마는 차마 그이의 괴로와하는 꼴을 볼 수는 없었읍니다. 나는 진저리를 치고 눈을 딱 감았읍니다. 그때입니다. 무엇이 나의 어깨를 흔들지 않아요. 번쩍 눈을 떠보니까 그이가 걷어쳐 올라가는 개개풀린 눈으로 내 옆에 앉아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겠지요.

나는 소름이 쪽 끼치어 흠칫하고 몸을 소스라쳐 일으켰읍니다.

나의 일어나는 것을 보고 그이도 따라 일어서며 용서해 달라는 표정으로,

”괴롭지, 괴롭지, 공연히 나 때문에”

라고 더듬거리고는 눈물이 핑 도는 듯하였읍니다. 그 소리는 어쩐지 무서움에 떠는 나의 창자 속까지 스며 들어가는 듯하였읍니다. 나의 눈에도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읍니다. 그러자 그이는 바짝 다가들며 한 손으로 내 목덜미를 안고 또 한 손을랑 나의 입에 대입니다. 죽어가는 그이, 아니 벌써 송장이나 진배없는 그이의 손이 나에게 닿았건만 나는 조금도 전같이 두렵고 무서운 증이 들지 않았읍니다.

“배앝아라, 배앝아. 어서 배앝아”

하고 그이는 손가락을 입 안으로 꾸역꾸역 들여밀겠지요.

이때에 입 안에 든 약을 생각한 나는 흘리던 눈물을 뚝 그치고 ‘에그머니!’ 싶었습니다.

나는 그이의 지중한 사랑에 감읍하였으되, 그이가 돌려 내려고 얘를 쓰는 것이로되 나는 그 약을 내어놓기가 죽어도 싫었읍니다. 나는 차라리 삼켜 버려야 하였읍니다. 몇 번을 침을 모아 그 약을 넘기려 하였으나 원수의 덩이가 큰 까닭인지 세상 넘어가지를 않습디다. 그러는 판에 내 입에 들어온 그이의 손가락이 벌써 그 약을 집어내겠지요. 그 약을 집어내자 나를 바라보던 그이의 얼굴은 시방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 곱상스럽던 얼굴이 그렇게 변할까요. 나는 어떻다 형용할 수가 없읍니다.

제 계집이 딴 사내를 끼고 자는 것을 보는 본남편의 얼굴이나 그러할는지요. 얼굴의 표정은 분노 그것이었읍니다. 원한 그것이었읍니다. 입술을 악물고 드러난 이빨 하나만 보고라도 누구든지 질겁을 할 것입니다. 더구나 잊히지 않는 것은 그 눈자위예요. 일상 생글생글 웃는 듯하던 그 눈매가 위로 홉뜨이 어서 미친 개 눈깔같이 핏발을 세워 나를 흘긴 것이에요. 그 무섭기란 시방 생각하여도 몸서리가 쳐져요.

그이는 숨이 진 뒤에도 그 홉뜬 눈을 감지 않았읍니다. 물론 나는 고약한 년이지요. 그 를 죽을 때까지 속인 몹쓸 년이지요. 그러나 그이는 나에게

“괴롭지”

라고 묻지 않았어요.

”배앝아”

라고 하지 않았어요. 돌려내려고 내 입에 손까지 넣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악을 삼키지 않고 그저 있음을 보았으면 내 마음은 어떠하든지 그이는 죽어가면서도 나를 생각한만큼 거룩한 사랑을 가진 그이는 기뻐해야 옳을 일이 아니에요. 좋아해야 옳을 일이 아니에요. 그렇게 성을 내고 나를 흘길 일이 무엇이에요. 내 그른 것은 어찌 갔든지 그때에는 그이가 야속한 듯싶었어요. 야속하다니보담 의외이었어요. 그런데 시방 와서는 그 흘긴 눈이 떠오를 적마다 몸서리를 치면서도 어째 정다운 생각이 들어요. 그립은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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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정히 오월 중순이라. 비온 뒤끝은 아직도 깨끗지 못하여 검은 구름발이 삼각산 봉우리를 뒤덮어 돌고 기운차게 서서 흔들기 좋아하는 포플러도 잎새 하나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서 있을 만치 그렇게 바람 한 점도 날리지 않는다. 참새들은 떼를 지어 갈팡질팡 이리 가랴 저리 가랴 하며 왜가리는 비 재촉하는 울음을 깨쳐 가며 지붕을 건너 넘어간다.

이때에 어느 집 삼 칸 대청(원문에는 ‘삼간대청’)에는 어린아이 보러 온 6, 7인의 부인네들이 혹은 앉아서 부채질도 하며, 혹은 더운 피곤에 못 이기어 옷고름을 잠깐 풀어 젖히고 화문석 위에 목침을 의지하여 가볍게 눈을 감고 있는 이도 있으며, 혹은 무심히 앉아서 처음 온 집이라 앞뒤를 살펴 보기도 하며, 혹은 살림에 대한 이야기도 하며, 혹은 그것을 듣고 앉았기도 한다. 마루에는 어린애의 기저귀가 두어 개 늘어놓아져 있고 물주전자가 놓여 있으며 물찌끼가 조금씩 남아 있는 공기가 3, 4개 널려 있다. 또 거기에는 앵두 씨가 여기저기 떨어져 있고 큰 유리화대접에 반도 채 못 담겨 있는 앵두는 물에 젖어 반투명체로 연연하게 곱고 붉은빛이 광선에 반사되어 기름 윤이 흐르게 번쩍번쩍한다.

이때에 열어젖힌 뒷문으로 어린애 우는 소리가 사랑으로부터 멀리 들리자 산후의 열기로 인하여 신음하다가 일어나 앉은 아기 어머니는 어푸수수한 머리를 아무렇게나 쪽지어 흑각(黑角: 물소의 검은 뿔, 또는 그것으로 만든 비녀)으로 꽂고 기운 없이 뒷문턱에 기대어 앉았다가 깜짝 놀라 일어서며 사랑으로 나가 아기를 고쳐 안고 들어온다. 아기의 두 눈에는 약간 눈물이 흘러 있고 모기에 물린 자국으로 두어 군데 붉은 점이 찍혀 있다. 어머니 팔에 안기어 오는 기쁨인지 또렷또렷한 눈망울을 굴리어 군중을 둘러보다가 아는 듯 모르는 듯 씽긋 웃는다. 군중의 시선은 모두 이 아기에게 집중하여 있는 중 모두 “아이고, 웃는구나.” 하고 다시 웃을까 하여 어르기도 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보기도 하고 손을 만져 보기도 한다. 아기는 모르는 체하고 몸을 돌리어 어머니 가슴에 입을 돌리어 젖을 찾는다.

저편 구석에 담배 물고 시름없이 하늘을 쳐다보고 앉은 부인은 어떻게 보면 거진 사십쯤 되어 보이고 어떻게 보면 겨우 삼십이 넘어 보인다. 어디인지 모르게 귀인성이 있어 보임직한 얼굴에는 얼마만한 고생의 흔적인지 주름살이 이리저리 잡혀진다. 거기다가 분을 좀 스친 모양이라 햇빛에 그을어 꺼무죽죽한 얼굴빛에 겉돌며 넉사 자 이맛전에 앞머리를 좌우 평행으로 밀기름에 재어 붙이고 느짓느짓 땋아 느짐하게 길쭉이 쪽을 지어 은비녀로 꾹 찔러 놓은 것이며 모시 적삼 화장은 길쭉하여 손등을 덮고 설핏한 모시 치마에 허리를 넓게 달아 느직하게 외로 여며 입은 것은 아무리 보아도 서울 부인네가 아닐 뿐 아니라, 어디인지 모르게 고상하게 보이는 것은 예절 있는 양반의 집에서 자라난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여러 부인네들은 아기들 앞으로 와서 어르고 만져 보나 다만 홀로 이 부인만은 아무 말 없이 멀리 건너다보다가 흥 하고 이상한 코웃음을 한번 웃고 눈을 내리깔며 반도 타지 않은 담배를 옆에 있는 재떨이에 놓고 허리를 굽혀 마루 아래 대뜰에다 탁탁 털며 이상하게 슬픈 기색을 띤다. 이 부인은 다시 전과 같이 앉더니 애기가 젖먹는 양을 바라보며,

  • “흐흥, 그거 보시오. 이렇게 많이들 앉았는 중에 아기 우는 소리를 그 어머니밖에 들은 사람이 없소그려. 그렇게 자식과 어머니 사이에는 끊으려도 끊을 수 없는 애정이 엉키어 있건마는 나 같은 것은…….”

하고 목이 메여 말끝을 아물지 못하고 두 눈에 눈물이 핑 돈다. 군중은 모두 이상히 여겨 왜 그리 서러운 기색을 띠느냐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무 대답 없이 잠잠히 있고, 그와 동행하여 온 그의 친구 김 부인이 옆에 앉았다가 그를 쳐다보며,

  • “또 청승이 끌어 나오는군. 아들 둘의 생각을 하고 그러지요.”

한다. 군중의 의심은 더욱 깊어진다.

  • “아들 둘을 어떻게 하였기에요?”

하고 다시 물을 수밖에 없었다. 이 부인은 역시 아무 말 없이 앉았고 김 부인이 또 이 부인을 쳐다보며,

  • “그 내력을 말하려면 숙향전의 고담이지요.”

한다. 군중에게는 더욱 호기심을 갖게 되고 궁금증을 일으킨다.

  • “어째서 그래요? 좀 이야기하시구려.”

하는 것이 군중의 청구(請求)이었다. 김 부인은 또 그를 쳐다보며,

  • “이야기하구려.”

권한다. 그 부인은 역시 잠잠히 앉았더니,

  • “이것 보십쇼.”

하고 두 손을 내밀며,

  • “세상에 사주팔자란 알 수 없습디다. 분길 같던 내 손이 이렇게 마디마다 못 박혀 볼 줄 뉘 알았으며 5, 6월 염천까지 무명 고쟁이로 날 줄 뉘 알았으리까(치마를 걷어치고 가리키는 무명 고쟁이는 오동빛이라). 나도 남부럽지 않게 호의호식으로 자라나서 시집가서도 마루 아래를 내려서 본 일이 없었더랍니다. 이래 보여도 나도 상당한 집 양반의 딸이랍니다. 내 내력을 말하자면 기가 막혀 죽을 일이지요.”

이렇게 차차 그의 내력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 “내 아버지께서는 평양 감사까지 지내시고 봉산(鳳山) 고을도 사시고(군수를 지냈다는 뜻), 안성(安城) 고을도 사셨지요. 우리 백부(伯父)님은 이 판서(李判書)집이시지요. 그리하여 우리 고향(故鄕)인 철원(鐵原)골에서는 우리 친정집 일파(一派)의 세력이 무섭지요. 그러한 집에서 아들 4형제 틈에 고명딸로 귀엽게도 자랐지요. 지금은 갖은 고생을 다 겪어서 이렇게 얼굴이 썩고 썩었지요마는, 내가 열두서너 살 먹었을 때는 색씨꼴도 박히고 빛깔이 희고 얼굴도 매우 고왔었으며 머리는 새까마니 전반 같았지요(여자의 머리채가 숱이 많고 치렁치렁함을 비유하는 말). 그리하여 열 살 먹던 해부터 시골 서울 할 것 없이 재상의 집에서들 청혼들을 해댔답니다. 우리 아버지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면 어머니는 딸자식 하나 있는 것이 그렇게 원수스러우냐고 하시지요.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아무 말씀 못하십니다. 그러나 딸자식이란 쓸데없어요. 열여섯 살 먹던 해 3월에 기어이 남의 집으로 가게 되옵디다.” “신랑은 몇 살이고요?”

하고 한 부인은 묻는다. “신랑은 열세 살이었댔지요. 우리 시부모되시는 김 판서(金判書)하고 우리 아버지와는 절친한 사이셨지요. 아마 두 분이 술잔을 나누시다가 우리 혼인이 정해진 모양입디다. 그렇게 어머니 떨어지기 싫어서 울면서 80리나 되는 곳으로 시집을 갔지요. 우리 집에서도 없는 것 없이 처해 가지고 갔거니와 그 집에도 단 형제뿐으로 필혼(畢婚: 마지막 혼사)이라 갖은 예물이며 채단이야 끔찍끔찍하였었지요. 시부모님에게 귀염인들 나같이 받았으리까. 말이 시집이지 세상에 나같이 어려운 것 모르고 괴로운 것 모르게 시집살이를 하였으리까. 혼인한 지 삼 년이 되도록 태기(胎氣)가 없어서 퍽도 걱정들을 하시고 기다리시더니 팔 년 되던 해 우연히 태기가 있어 가지고 아들을 낳아 놓으니 그 어른들께서 좋아하시는 것이야 어떻다 말할 수 없었어요. 은(銀) 소반 받들 듯하십디다. 바로 그 해에 우리 바깥양반이 춘천 군청(春川郡廳)에 군주사(郡主事)를 하였었지요. 그럴 동안에 첫애가 세 살을 먹자 또 아우가 있어서 낳으니 또 아들이지요. 밤이면 네 식구가 옹기옹기 앉아서 재롱을 보고 하면 타곳에서 외롭게 지내는 중에도 재미있게 지냈지요. 그러나 내 복조가 그만이었던지 집안 운수가 불길하려 함인지, 둘째 아이 낳던 그 해 동짓달에 일본 설(新正을 가리킴)이라고 하여 연회에 가시더니 밤이 늦어서 들어오시는데 술이 퍽 취한 듯싶습디다. 펴놓은 자리 위에 옷도 벗지 않고 탁 드러누워 머리를 몹시 아프다고 끙끙 앓더니 별안간에 와르르 게우는데 벌건 선지피가 두어 번 칵칵 엉키어 나옵디다그려. 나는 간담이 서늘하여지옵디다.”

여기까지 듣고 앉았던 여러 부인네의 가슴은 졸여지는 모양이라. “그래서요?” 하며 이야기 계속하기를 원하는 이도 있으며, 혹은 “저런, 어쩔까!” 하고 차마 들을 수 없겠다는 것처럼 찌푸린다. 혹은 “아이고, 딱해라.” 한다. 이 부인(李夫人)은 목이 메여 침 한 번을 꿀떡 삼키고 잠깐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한다.

  • “그때 드러누우신 후로 그 이튿날부터 사진(仕進: 벼슬아치가 정해진 시간에 출근함)이 무엇입니까. 하루에 미음 한 번이나 자시는 둥 마는 둥 하고 담이 점점 성하여져서 벌건 피담을 한 요강씩 뱉지요. 그렇게 걷잡을 새 없이 나날이 병이 중(重)하여 가옵디다그려. 그래서 큰댁에 편지를 한다, 전보(電報)를 한다 하였더니 우리 맏시아주버니께서 다 모아 데리고 가시려고 곧 오셨습디다. 그리하여 우둥부둥 짐을 싸 가지고 불시로 모두 떠나 왔지요. 그러한 일이 또 어디 있었으리까. 큰댁에를 들어서니까 공연히 무슨 죄나 지은 것같이 어른 뵐 낯이 없습디다. 아니나다를까 시어머님되는 마님께서는 나를 보고 어떻게 하다 저렇게 병을 냈느냐고 원망을 하시며 두 내외분은 식음을 전폐하시고 느러누워 계시니 집안이 그런 난가(亂家)가 어디 있으리까. 인삼이며 사슴뿔이며 갖은 좋다는 약은 다 사들이고 용하다는 용한 의원은 멀고 가깝고 간에 데려다가 사랑에 두고 날마다 맥을 보고 약을 쓰나 만약(萬藥)이 무효이라. 돈도 많이 들었거니와 사람의 간장인들 그 얼마나 졸였었으리까. 필경은 그 이듬해 8월 스무하룻날 가서 그 몸을 마치었지요.”

하며 적삼 끈을 집어 두 눈을 씻는다. 군중은 모두 “저런 어쩔까?” 하고 혀들을 툭툭 한다. 이 부인은 한풀이 죽어서 겨우 말끝을 잇는다.

  • “그러니 스물다섯 살인 꽃 같은 나이에 세상 재미를 다 버리고 죽은 이도 불쌍하거니와 여편네가 30도 못 되어 혼자되니 그 신세야 말할 것 무엇 있겠소. 오죽 방정맞아 보였으리까. 왜 그런지 모든 사람이 이 몸을 모두 박복한 년으로 보는 듯싶어서 어찌 부끄러운지 혼자된 후로는 사람을 쳐다보지를 못하고 지내 왔지요. 친정 오라버니가 보러 오셨는데 하얗게 소복을 하고 보기가 어찌 부끄럽던지 모닥불을 퍼붓는 것 같아서 즉시 얼굴을 들지 못하였더랍니다.”

한 부인이 말하되,

  • “참 옛날 어른이시오. 아 그렇다뿐이에요. 생전 죄인이지요. 어디 가서 고개를 들어 보고 말소리를 크게 내어 보며 목소리를 높여 웃어 보아요. 그러기에 몸을 마친다 하고 과부가 되면 하늘이 무너졌다고 하는가 봐요. 참, 기가 막히지요. 그러나 요사이 과부들은 어디 그럽디까. 벌건 자주 댕기를 아니 드리나, 분들을 못 바르나. 그러니 세상이 망하지 않겠소.”

하며 누었다가 벌떡 일어나 앉으며 담뱃재 떠느라고 허리를 굽히는데 보니, 그의 머리에는 조적 댕기가 드려 있는 것이 이 부인도 과부 중에 한 사람인 듯싶고 말하는 것이 경험한 말 같다.

이 부인은 다시 말을 이어, “지금 생각하여 보면 그, 못나서 그랬어요. 그야말로 불행 중 다행으로 아들 형제를 두고 가서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도 그것들로 위로를 많이 받으시고 나도 그것들에게 의지하게 되었지요. 우리 시아버님께서는 우리 세 식구를 어떻게 불쌍히 여기시는지 살림에나 재미를 붙여 살으라고 하시고, 둘째 아드님 몫으로 지어 두셨던 삼백 석 추수 받는 논과 밭을 내 이름으로 증명(證明)을 내어주시고 큰댁 바로 앞집을 사셔서 분통같이 꾸며서 상청하고 우리 세 식구들 세간을 그 동짓달에 내어주시며 조석으로 드나드시면서 보아주십디다. 살림도 내외가 가져서 해야 이것도 사고 싶고 저것도 사고 싶고 하여 재미가 나지요. 마지못하여 살림에 당한 것을 하나 사면 ‘어디를 가고 나 혼자 이렇게 살려고 애를 쓰나.’ 하는 마음이 생기고 걷잡을 새 없이 설움이 북받쳐 눈물이 앞을 가리우지요. 우리 친정에서는 내가 불쌍하다고 철철이 나는 실과(實果)를 아니 사 보내 주시나, 아이들 옷을 아니 해 보내 주시나, 남편 없이 시아버님께 돈을 타서 쓰니 오죽 군색하랴 하고 일용(日用)에 보태어 쓰라고 돈을 다 보내 주시고 하지요. 아, 참 세월도 빨라요. 살아서 있는 것같이 조석상식(朝夕喪食)을 받들기에 큰 위로를 받고 밤에라도 나와서 마루에 있는 소장(素帳: 궤연 앞에 드리우는 흰 포장)을 보면 집을 지켜주는 듯싶어서 든든하더니 그나마 3년상을 마치고 나니 더구나 새삼스럽게 서러운 마음이 생기고 허수하며 섭섭하기가 말할 길 없습디다. 따라서 죽지 못한 것이 한이지요. 죽지 못하여 살아가는 동안에 한 해 가고 두 해 가서 4년이 되었지요. 그 해 8월에 마루에서 혼자 큰아이 녀석 추석 빔을 하고 앉았으려니까 전부터 우리 큰댁에 드나들면서 바느질도 하고 하던 점동 할머니가 손자를 등에 업고 들어옵디다. 그는 전에 없이 내가 혼자 사는 것이 불쌍하다는 둥 오죽 서럽겠느냐는 둥 하며 무슨 말인지 서울 어느 점잖은 사람이 상처(喪妻)를 하고 젊은 과부를 하나 얻으려고 하는데 그 사람은 문벌(門閥)도 관계치 않고 재산도 상당하며 어쩌고저쩌고 늘어놓습디다. 나는 아마 그냥 그런 이야기를 하나 보다 하고 무심히 들었을 뿐이었지요. 그런 뒤 얼마 있다가 어느 날 또 할멈이 오더니 그런 말을 또 하면서 감히 무엇이라고는 못하고 내 눈치를 보는 것이 매우 이상스럽겠지요? 어찌 괘씸스러운지 나 역시 모르는 체하였을 뿐이지요. 아, 이것 좀 보시오. 며칠 뒤에 또 와서는 불고 염치하고 날더러 마음이 없냐고 아니합니까. 내가 누구 앞에서 그 따위 말을 하느냐고 악을 쓰니까 꽁무니가 빠지게 달아납디다. 그런 뒤로는 나는 어찌 분하든지 밤이면 잠이 다 아니 오겠지요. 그리고 모든 사람이 다 나를 업수이여기는 것 같아서 어찌 서러운지 과부되었을 때보다 더해요. 그런데 이거 보세요. 망신살이 뻗치려니까 어렵지가 않겠지요. 도무지 날짜까지 잊혀지지가 않습니다마는, 그 해 9월 열이튿날이었어요. 저녁밥을 다 해치우고 안방에서 신선해서 방문을 닫고 어린애 젖을 먹이느라고 끼고 드러누웠으려니까 별안간에 마당에서 우리 큰애 이름 ‘순영아, 순영아.’ 두어 번 부르는 남자의 소리가 나겠지요. 나는 시부(媤父)께서 나오셨나 하고 젖을 떼고 일어서려는데 다시 부르는 소리를 들으니 우리 시부님의 목소리는 캥캥하신데 그렇지가 않고 우렁찬 소리겠지요. 나는 이상스러운 마음이 생겨서 잠깐 문틈으로 내다보았지요. 어스름 밤이라 자세히는 볼 수 없으나 키가 훨씬 큰 사람이 뒷짐을 지고 그 손에는 단장을 휘적휘적 흔들며 안을 향하여 섰는 것이 잠깐 보아도 우리 집 내(內) 사람은 아니옵디다. 나는 불현듯 무서운 생각이 생겨서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벌벌 떨며, ‘그 누구신가 여쭈어 보아라.’ 하였지요. 그자는 내 목소리를 듣자 반가운 듯이 마루 끝으로 가까이 오며 천연스럽게 ‘네, 서울서 왔습니다.’ 해요. 나는 다시 떨리는 소리로, ‘서울서 오시다니 누구신가 여쭈어 보아라.’ 한즉 그자는 버쩍 마루로 올라서며, ‘왜 점동 할머니께 들으셨지요. 서울 사는 장 주사라고요…….’ 하며 바로 익숙한 사람에게 대하여 말하듯이 반웃음을 띠며 말하겠지요. 나는 무섭고도 분하여서, ‘나는 그런 사람 몰라요. 그런데 대관절 남의 집 대청에를 아무 말 없이 들어오니 이런 법(法)이 어디 있소.’ 하며 주고받고 할 때에 마침 대문 소리가 나자 우리 시어머니되는 마님이 들어오시는구려.”

군중은 모두 “아이고, 저런 어쩔까.”, “어쩌면 꼭 그때.” 하며 마음을 졸여한다.

  • “그러니 꼭 그물에 걸린 고기지요. 넘치고 뛸 수 있나요. 그러니 장 주사라는 작자가 밖으로 뛰어나가야 옳겠습니까. 안으로 뛰어들어와야 옳겠습니까. 어쩔 줄을 몰라 그랬던지 방으로 뛰어들어오는구려. 나는 속절없이 누명을 쓰게 되었지요. 시모님께서는 그자의 태도가 수상스러운 것을 보시고 곧 눈치를 채신 모양이라, 방으로 쫓아 들어오시더니 눈을 똑바로 떠 쳐다보시며, ‘웬 사람이냐?’고 하시더니 다시 나의 태도를 유심히 보시는구려. 그러니 그 자리에서 무어라고 말하겠소. 하도 기가 막히는 일이라 아무 말도 아니 나와서 잠잠히 서 있을 뿐이었지요. 원래 괄괄하신 어른이라 곧 내게로 달려드시더니 내 머리채를 휘어잡고 이 뺨 저 뺨 치시며, ‘이년, 남의 집을 착실하게도 망(亡)해 준다. 생때 같은 서방 죽이고 무엇이 부족하여 밤낮 뭇놈하고 부동을 하며 서방질을 하니? 이년, 그런 뭇서방놈들이 앞뒤로 널렸으니까 네 서방을 약을 먹여 병 내놓았구나. 에, 갈아 먹어도 시원치 않을 년. 내 집에 일시라도 머물지 말고 저놈 따라 나가 버려라. 어서 어서!’ 하는 벼락 같은 재촉이 거푸 나는데 어느 뉘라서 거역할 수 있던가요. 시골이라 앞뒷집에서 큰소리가 나니 남녀노소 물론하고 마당이 미어지도록 구경꾼이 밀려들어 오는구려. 오장을 버선목이라 뒤집어 뵈는 수도 없고 그 자리에서 내가 억울하다 하면 누가 곧이를 듣겠소. 남영 홍씨(洪氏)네 떼라니 순식간에 모여들더니 그년 어서 쫓아내 보내라는 말이 빗발치듯 합디다. 그렇게 원통할 길이 또 어디 있었으리까. 다만 하늘을 우러러보며 하나님 맙소사 할 뿐이었지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우리 부모님에게 큰소리 한 마디 들어 보지 못하고 자라났는데 머리가 한 움큼이나 빠지고 온몸이 성한 곳이 없이 멍이 퍼렇게 들도록 어떻게 맞았지요. 이것 좀 보시오(윗입술을 올려치니 간간이 금(金)을 넣어 번쩍번쩍 하는 앞니를 보이면서). 이것도 그때에 어찌 몹시 얻어맞았던지 그때부터 잇몸이 부어서 순색으로 쑤시더니 6달 만에 몽땅 빠지겠지요. 그래서 이렇게 앞니를 모조리(앞니 여섯을 가리키며) 해 박았습니다. 그래서 그날 그 시로 당장에 내쫓겼지요. 아이 둘은 물론 뺏기고요. 쫓겨 나와 갈 데가 있나요. 첫째 남이 부끄러워서 조그만 바닥이라 즉시로 온 성내(城內)에서 다 알게 되었지요. 할 수 없이 우리 친정 편으로 멀리 일가 되는 집을 찾아가서 그 집 행랑 구석 얼음장 같은 구들 위에서 그 밤을 앉아 새웠었지요. 손발이 차다 못하여 나중에는 저려 오고 두 젖이 뗑뗑 불어 아파 견딜 수가 있어야지요. 사람이 악에 바치니까 눈물도 아니 나오고 인사도 차릴 수 없습디다. 아무려면 어떠랴 하고 발길을 기다려 사람을 보내서 어린아이를 훔쳐 오다시피 했지요. 그 이튿날 늦은 조반 때쯤 되어서 보교(步轎: 정자 모양의 지붕에 사방을 장막으로 두른 가마의 한 가지) 하나가 들어오더니 그 뒤에는 어느 하이칼라 하나가 따라 들어오는데 잠깐 보니 어제 저녁에 내 집에서 방으로 뛰어들어오던 사람 비슷합디다. 나는 그자를 보자 곧 사시나무 떨리듯 떨려지며 분한 생각을 하면 곧 내려가서 멱살을 쥐고 마음껏 한판 해 내었으면 좋겠습디다. 바로 호기스럽게 어느 실내 마님이나 모시러 온 듯이 날더러 타라고 하겠지요. 어느 쓸개 빠진 년이 거기 타겠습니까. 그러자니 자연 말이 순순히 나가겠습니까. 남에게 누명을 씌운 놈이라는 둥 내 계집된 이상에 무슨 말이냐는 둥 점점 분통만 터지고 꼴만 드러나지요. 보니까 벌써 앞뒤가 빽빽하게 구경꾼이 들어섰구려. 그러니 어떻게 합니까. 그곳을 떠나는 것이 일시(一時)가 바쁘게 되었지요. 큰댁 하인(下人) 놈들이 웅기중기 서서 구경하는 양을 보니까 고만 어떻게 부끄러운지 아무 소리가 아니 나오고 부지불각(不知不覺) 중에 아이를 끼고 보교 속으로 피신을 하여 버렸지요. 얼마를 한없이 가서 어느 산골 촌구석 다 쓰러져 가는 초가 앞에다 보교를 놓더니 날더러 내리라고 합디다. 그리고 원수의 그자는 정다이 나를 들여다보며 시장하지 않느냐고 묻겠지요. 참, 꿈인들 그런 꿈이 어디 있으리까. 분한 대로 하면 뺨을 치고 싶었으나 차마 남의 남자에게 손이 올라가야지요. 그리고 다른 곳에 가서까지도 꼴을 들키고 싶지 아니하여서……. 거기서 이럭저럭 근 10여 일이나 지냈지요.”

이제껏 열심히 듣고 앉았던 애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면서,

  • “그러면 혼인은 언제 했어요. 거기서 했나요.”

하고 묻는 말에 이 부인은 어물어물하며 잠깐 두 뺨이 불그레진다.

  • “그러면 어떻게 해요. 아무려면 그 계집 아니라나요. 그러기에 지금이라도 그때 내 살을 그놈에게 허락한 것을 생각만 하면 치가 떨리고 분하지요. 내가 지금만 같았어도 무관하지요. 그때만 해도 안방 구석만 알다가 졸지에 쫓겨나서 물 설고 산 설은 곳으로 가니 그나마도 사람을 배반하면 이년의 몸은 또 무엇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날 잡아 잡수 하고 있었지요. 그러기에 지금 생각하면 그때 왜 내가 목이라도 매서 못 죽었나 싶으지요. 자살도 팔자니까요……. 그리고 장 주사는 서울 집 사 놓고 데리러 오마 하고 떠났지요. 나는 어린애 데리고 거기 며칠 더 있다가 하루는 염치 불구하고 우리 친정을 찾아 나갔지요. 마침 그 동네 사람 하나가 평강으로 간다고 해서 애를 업고 생전 처음으로 50리 걸음을 하여 저녁때 우리 집 문앞에를 다다르니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벌벌 떨려서 차마 대문 안에 발이 들여놓아집디까. 그러나 이를 깨밀어 물고 쑥 들어갔지요. 우리 집에서야 80리 밖의 일을 아실 까닭이 있겠습니까. 어머니는 버선발로 뛰어내려오시며 ‘이게 웬일이냐?’고 하시고 오라버니댁들도 뛰어내려와서 아이를 받아 들어가고 야단들입디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진지상에 고기 반찬을 해서 놓으면 꼭 반만 잡수시고 오라범댁들을 부르셔서 ‘이것은 홍집(홍씨 집안에 시집간 여자를 일컫는 말) 누이 주어라. 세상에 부부의 낙(樂)을 모르니 좀 불쌍하냐.’ 하시고 밤이면 잊지도 않으시고 ‘홍집 자는 방이 춥지나 않느냐.’ 하시며 꼭 물으시지요. 그렇게 호강스럽게 그 겨울 동안에 잘 먹고 잘 입고 지냈지요. 그 이듬해 3월 초엿샛날 아침나절이었지요. 건넌방에서 아버지 마고자를 꾸미고 있으려니까 손아래 오라범이 얼굴이 시퍼래져서 건넌방 미닫이를 부서져라 하고 열어젖히더니 퉁명스럽게 내 앞에다가 무슨 전보 한 장을 내어던집디다. 까막눈이라 볼 줄을 아나요. 옆에 앉았던 그 오라범댁더러 좀 보아 달라고 하였지요. 한참 보더니 이상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아이고, 형님. 순영이 아버지는 돌아가셨는데 이게 누구입니까. 아버님 함자로 왔는데 오늘 온다 하고 서랑(壻郞: 사위) 장필섭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요. 그런 원수가 어디 있으리까. 그러자 별안간에 문 밖에서 자동차 소리가 나더니 키는 멀쑥하니 삼팔 두루마기 자락이 너풀거리며 금테 안경을 번쩍거리고 서슴지 않고 중문을 들어서 중청(重聽: 귀머거리)같이 안마당으로 들어오더니 마루 끝에 걸터앉는구려. 우리 어머니는 그만 이불 쓰시고 아랫목에 드러누우시고요. 우리 오빠들은 동네 집으로 피신하고 나는 부엌에 선 채로 오도 가도 못하고 벌벌 떨고 섰으려니까 오라범댁이 ‘형님에게 온 손님이니 형님 나가셔서 대접하시오.’ 하는 권에 못 이길 뿐 아니라, 누구나 들어오면 어떻게 해요. 그래서 억지로 나가서 들어가자고 하여 건넌방으로 데리고 들어갔지요. 아랫목에 하나, 윗목에 하나 섰을 뿐이지 무슨 말이 나오겠습니까. 갈수록 산이요, 물이라더니 죽을 수(數: 운수)니까 할 수 없습디다. 왜 하필 그때 우리 아버지는 사흘 전에 큰댁 제사에 가셨다가 돌아오십니까. 안방으로 들어가시더니 우리 어머니더러 왜 드러누웠냐고 하시겠지요. 어머니는 몸살이 났다고 하십디다. 다시 마루로 나오셔서 다니시다가 댓돌에 벗어 놓은 마른 발막신(앞부리가 넓적하게 생겼는데 거기에 가죽을 댄 마른신, 흔히 잘사는 집의 노인이 신었다)을 보시더니 오라범댁을 부르셔서 이게 웬 남자의 신이냐고 하시는구려. 오라범댁은 마지못하여 어물어물하면서 ‘평강형에게 손님이 왔어요.’ 하지요. ‘홍집에게 남자 손님이 웬 손님이며 남자 손님이면 으레 사랑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거늘 그 방에 들어앉는 손님이 대체 누구란 말이냐?’ 하시더니, ‘홍집 나오라.’고 두어 번 큰소리로 부르시는구려. 나는 그만 겁결에 건넌방 뒷문 밖으로 뛰어나갔지요. 그래서 가만히 섰었으려니까 별안간에 누가 내 뒷덜미를 부러져라 하고 치며 머리채를 휘어잡는구려. 깜짝 놀라 돌아다보니 우리 아버지시지요. 두 말씀 아니하시고 사뭇 아래위로 치시는데 아픈지 만지 하옵디다. 아이구 어머니 살리라고 악을 쓰나 누가 내다보기나 하옵디까. 지금도 장 주사는 그때 나 매 맞은 것을 생각하면 불쌍하다고는 하지요. 이왕 그렇게 되었으니 나를 앞장을 세우고 나서야 옳지요. 자기는 훌쩍 나가서 자동차를 잡아 타고 갔구먼요. 그러니 하인 등쌀에 남이 부끄러워 있을 수도 없거니와 우리 아버지께서는 어머니와 오라범댁들에게 왜 그놈을 부쳤느냐고 조련질(못되게 굴어 남을 괴롭힘)을 하시고 나를 내쫓으라고 하시지요. 할 수 없이 그날 저녁에 친정에서까지 쫓겨나서 아이를 업고 정처없이 나섰지요. 우리 어머니는 20리까지 쫓아 나오시며 우시는구려. 길거리에서 그렇게 모녀가 마지막 작별을 하였지요. 그러니 인제야 장가에게밖에 갈 곳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서울이 어디 가 박혔는지, 서울은 어떻게 하여서 간다 하더라도 그자의 집이 어디인지는 알아야지요. 아무려나 빌어먹어도 자식들하고나 같이 빌어먹으려고 40리나 되는 철원으로 가서 길에서 놀고 있는 우리 순영이를 훔쳐 가지고 다시 주막 있던 집으로 왔지요. 우리 집에서 나올 때에 아버지 몰래 어머니가 쌀 판 돈 3원을 집어 주셔서 그것으로 밥값을 치르고 있었으나 그까짓 것 쓰려니까 얼마 되나요. 열흘도 못 가서 다 없어졌지요. 할 수 있나요. 그때부터 그 집 바느질도 하고 아이를 거두어도 주고 하며 세 식구 얻어먹고 지냈지요. 여보 말씀 마시오. 제법 어디 가 더운 밥 한술을 얻어먹어 보아요? 뭇상에서 남는 밥찌꺼기나 해가 한나절이나 되어서 겨우 좀 얻어먹어 보지요. 시골집이라니요. 여편네라도 허리를 못 펴고 다니지요. 단칸방에서 주인 식구 다섯하고 여덟이 자면 평생에 어디가 옷고름 한번을 풀어 보고 다리를 펴고 자 보리까. 알뜰히도 고생도 하였지요. 그나마도 가라면 어쩝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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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차라리 어둬버리기나 했으면 좋겠는데──벽촌의 여름날은 지리해서 죽겠을 만치 길다.

동에 팔봉산. 곡선은 왜 저리도 굴곡이 없이 단조로운고?

서를 보아도 벌판, 남을 보아도 벌판, 북을 보아도 벌판, 아아 이 벌판은 어쩌라고 이렇게 한이 없이 늘어 놓였을꼬? 어쩌자고 저렇게까지 똑같이 초록색 하나로 되어 먹었노?

농가가 가운데 길 하나를 두고 좌우로 한 십여 호씩 있다. 휘청거린 소나무 기둥, 흙을 주물러 바른 벽, 강낭대로 둘러싼 울타리, 울타리를 덮은 호박넝쿨, 모두가 그게 그것같이 똑같다.

어제 보던 대싸리나무, 오늘도 보는 김서방, 내일도 보아야 할 흰둥이, 검둥이

해는 100도 가까운 볕을 지붕에도, 벌판에도, 뽕나무에도 암탉 꼬랑지에도 내려쪼인다. 아침이나 저녁이나 뜨거워서 견딜수가 없는 염서(炎署) 계속이다.

나는 아침을 먹었다. 그러나 무작정 널따란 백지 같은 <오늘>이라는 것이 내 앞에 펼쳐져 있으면서, 무슨 기사라도 좋으니 강요한다. 나는 무엇이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연구해야 된다. 그럼──나는 최서방네집 사랑 툇마루로 장기나 두러 갈까? 그것 좋다.

최서방은 들에 나갔다. 최서방네 사랑에는 아무도 없나보다. 최서방네 조카가 낮잠을 잔다. 아하 내가 아침을 먹은 것은 열 시 지난 후니까, 최서방의 조카로서는 낮잠 잘 시간에 틀림없다.

나는 최서방의 조카를 깨워 가지고 장기를 한판 벌이기로 한다. 최서방의 조카와 열 번 두면 열 번 내가 이긴다. 최서방의 조카로서는, 그러니까 나와 장기 둔다는 것 그것부터가 권태다. 밤낮 두어야 마찬가질 바에는 안 두는 것이 차라리 낫지―그러나, 안 두면 또 무엇을 하나? 둘밖에 없다. 지는 것도 권태여늘 이기는 것이 어찌 권태 아닐 수 있으랴? 열번 두어서 열번 내리 이기는 장난이란 열번 지는 이상으로 싱거운 장난이다. 나는 참 싱거워서 견딜수 없다.

한번쯤 져 주리라. 나는 한참 생각하는 체하다가 슬그머니 위험한 자리에 장기 조각을 갖다 놓는다. 서방의 조카는 하품을 쓱 하더니, 이윽고 둔다는 것이 딴전이다. 의례히 질 것이니까, 골치 아프게 수를 보고 어쩌고 하기도 싫다는 사상이리라.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장기를 갖다 놓고, 그저 얼른얼른 끝을 내어 져 줄 만큼 져 주면 이 상승장군은 이 압도적 권태를 이기지 못해 제 출물에 가버리겠지 하는 사상이리라. 가고나면 도 낮잠이나 잘 작정이리라.

나는 부득이 또 이긴다. 인제 그만 두잔다. 물론, 그만 두는 수밖에 없다. 일부러 져준다는 것조차가 어려운 일이다. 나는 왜 저 최서방의 조카처럼 아주 영영 방심 상태가 되어 버릴 수가 없나? 이 질식할 것 같은 권태 속에서도 사세(些細)한 승부에 구속을 받나? 아주 바보가 되는 수는 없나?

내게 남아 있는 이 치사스러운 인간 이욕(利慾)이 다시없이 밉다. 나는 이 마지막 것을 면해야 한다. 권태를 인식하는 신경마저 버리고, 완전히 허탈해 버려야 한다.

2

나는 개울가로 간다. 가물로 하여 너무 빈약한 물이 소리없이 흐른다. 뼈처럼 앙상한 물줄기가 왜 소리를 치지 않나?

너무 더웁다. 나뭇잎들이 다 축 늘어져서 허더허덕하도록 더웁다. 이렇게 더우니 시냇물인들 서늘한 소리를 내어보는 재간도 없으리라.

나는 그 물가에 앉는다. 앉아서, 자──무슨 제목으로 나는 사색해야 할 것인가 생각해 본다. 그러나, 물론 아무런 제목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생각 말기로 하자. 그저 한량없이 넓은 초록색 벌판, 지평선, 아무리 변화하여 보았댔다 결국 치열한 곡예의 역(域)에서 벗어나지 않는 구름, 이런 것을 건너다 본다.

지구 표면적의 100분의 99가 이 공포의 초록색이리라. 그렇다면, 지구야말로 너무나 단조 무미한 채색이다. 도회에는 초록이 드물다. 나는 처음 여기 표착(漂着)하였을 때, 이 신선한 초록빛에 놀랐고 사랑하였다. 그러나 닷새가 못 되어서 이 일망무제(一望無際)의 초록색은 조물주의 몰취미와 신경의 조잡성으로 말미암은 무미건조한 지구의 여백인 것을 발견하고, 다시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쩔 작정으로 저렇게 퍼러냐? 하루 온종일 저 푸른 빛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오직 그 푸른 것에 백치와 같이 만족하면서 푸른 채로 있다.

이윽고 밤이 오면, 또 거대한 구렁이처럼 빛을 잃어버리고 소리도 없이 잔다. 이 무슨 거대한 겸손이냐?

이윽고 겨울이 오면 초록은 실색(失色)한다. 그러나 그것은 남루를 갈기갈기 찢는 것과 다름 없는 추악한 색채로 변하는 것이다. 한겨울을 두고 이 황막(荒漠)하고 추악한 벌판을 바라보고 지내면서, 그래도 자살 민절(悶絶)하지 않는 농민들은 불쌍하기도 하려니와 거대한 천치다.

그들의 일생이 또한 이 벌판처럼 단조한 권태 일색으로 도포된 것이리라. 일할 때는 초록 벌판처럼 더워서 숨이 칵칵 막히게 싱거울 것이요, 일하지 않을 때에는 겨우 황원(荒原)처럼 거칠고 구지레하게 싱거울 것이다.

그들에게는 흥분이 없다. 벌판에 벼락이 떨어져도, 그것은 뇌성(雷聲) 끝에 가끔 있는 다반사에 지나지 않는다. 촌동(村童)이 범에게 물려가도, 그것은 맹수가 사는 산촌에 가끔있는 신벌(神罰)에 지나지 않는다. 실로 전선주 하나 없는 벌판에서 그들이 무엇을 대상으로 흥분할 수 있으랴.

팔봉산 등을 넘어 철골 전선주가 늘어섰다. 그러나, 그 동선은 이 촌락에 엽서 한 장을 내려뜨리지 않고 섰는 채다. 동선으로는 전류도 통하리라. 그러나 그들의 방이 아직도 송명(松明)으로 어둠침침한 이상, 그 전선주들은 이 마을 동구에 늘어선 포플라나무와 조금도 다름이 없다.

그들에게 희망이 있던가? 가을에 곡식이 익으리라. 그러나 그것은 희망은 아니다. 본능이다. 내일. 내일도 오늘 하던 계속의 일을 해야지. 이 끝없는 권태의 내일은 왜 이렇게 끝없이 있나? 그러나, 그들은 그런 것을 생각할 줄 모른다. 간혹, 그런 의혹이 전광과 같이 그들의 흉리(胸裏)를 스치는 일이 있어도, 다음 순간 하루의 노역(奴役)으로 말미암아 잠이 오고만다. 그러니, 농민은 참 불행하도다. 그럼 이 흉악한 권태를 자각할 줄 아는 나는 얼마나 행복된가?

3

대싸리나무도 축 늘어졌다. 물은 흐르면서 가끔 웅덩이를 만나면 썩는다.

내가 앉아 있는 데는 무던히 한가롭다. 어제도 울던 낮닭이 오늘도 또 울었다는 외에 아무흥미도 없다.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이다. 다만, 우연히 귀에 들어왔으니까 그저 들었을 뿐이다.

닭은 그래도 새벽, 낮으로 울기나 한다. 그러나 이 동리의 개들은 짖지를 않는다. 그러면, 모두 벙어리 개들인가, 아니다. 그 증거로는 이 동리 사람 아닌 내가 돌팔매질을 하면서 위협하면 10마리나 달아나면서 나를 돌아다보고 짖는다.

그렇건만, 내가 아무 그런 위험한 짓을 하지 않고 지나가면, 천리나 먼 데서 온 외인, 더구나 안면이 이처럼 창백하고 봉발(蓬髮)이 작소(鵲巢)를 이룬 기이한 풍모를 쳐다보면서도 짖지 않는다. 참 이상하다. 어째서 여기 개들은 나를 보고 짖지를 않을까? 세상에서 희귀한 겸손한 겁장이 개들도 다 많다.

이 겁쟁이 개들은 이런 나를 보고도 짖지를 않으니, 그럼 대체 무엇을 보아야 짖으랴?

그들은 짖을 일이 없다. 여인(旅人)은 이곳에 오지 않는다. 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도 연변에 있지 않는 이 촌락을 그들은 지나갈 일도 없다. 가끔 이웃마을의 김서방이 온다. 그러나 그는 여기 최서방과 똑같은 복장과 피부색과 사투리를 가졌으니, 개들이 짖어 무엇하랴. 이 빈촌에는 도적이 없다. 인정있는 도적이면 여기 너무나 빈한한 시악시들을 위하여, 훔친 바 비녀나 반지를 가만히 놓고 가지 않으면 안되리라. 도적에게는 이 마을은 도적의 도심을 도적맞기 수운 위험한 지대이리라.

그러니, 실로 개들이 무엇을 보고 짖으랴. 개들은 너무나 오랜동안──아마 그 출생 당시부터──짖는 버릇을 포기한 채 지내왔다. 몇 대를 두고 짖지 않은 이곳 견족들은 드디어 짖는다는 본능을 상실하고 만 것이리라. 인제는 돌이나 나무토막으로 얻어맞아서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파야 겨우 짖는다. 그러나 그와 같은 본능은 인간에게도 있느니, 특히 개의 특징으로 쳐들 것은 못되리라.

개들은 대개 제가 길리우고 있는 집 문깐에 가 앉아서 밤이면 밤잠, 낮이면 낮잠을 잔다. 왜? 그들은 수비할 아무 대상도 없으니까다.

최서방네집 개가 이리로 온다. 그것을 김서방네집 개가 발견하고, 일어나서 영접한다. 그러나 영접해 본댔자 할 일이 없다. 양구(良久)에 그들은 헤어진다.

설레설레 길을 걸어본다. 밤낮 다니던 길, 그 길에는 아무것도 떨어진 것이 없다. 촌민들은 한여름 보리와 조를 먹는다. 반찬은 날된장, 풋고추다. 그러니, 그들의 부엌에조차 남는 것이 없겠거늘, 하물며 길가에 무엇이 족히 떨어져 있을 수 있으랴.

길을 걸어본댔자 소득이 없다. 낮잠이나 자자. 그리하여, 개들은 천부의 수위술을 망각하고 낮잠에 탐닉하여 버리지 않을 수 없을 만큼 타락하고 말았다.

슬픈 일이다. 짖을 줄 모르는 벙어리 개, 지킬 줄 모르는 게으름뱅이 개, 이 바보 개들은 복날 개장국을 끓여 먹기 위하여 촌민의 희생이 된다. 그러나 불쌍한 개들은 음력도 모르니, 복날은 몇날이나 남았나 전연 알 길이 없다.

4

이 마을에는 신문도 오지 않는다. 소위 승합 자동차라는 것도 통과하지 않으니, 도회의 소식을 무슨 방법으로 알랴?

오관이 모조리 박탈된 것이나 다름없다. 답답한 하늘, 답답한 지평선, 답답한 풍경, 답답한 풍속 가운데서 나는 이리 디굴 저리 디굴 굴고 싶을 만치 답답해하고 지내야만 된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상태 이상으로 괴로운 상태가 또 있을까? 인간은 병석에서도 생각한다. 아니, 병석에서는 더욱 많이 생각하는 법이다.

끝없는 권태가 사람을 엄습하였을 때, 그의 도공은 내부를 향하여 열리리라. 그리하여, 망살할 때보다도 몇 배나 더 자신의 내면을 성찰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인의 특질이요, 질환인 자의식(自意識) 과잉은 이런 권태치 않을 수 없는 권태 계급의 철저한 권태로 말미암음이다. 육체적 한산, 정신적 권태, 이것을 면할 수 없는 계급이 자의식 과잉의 절정을 표시한다. 그러나 지금 이 개울가에 앉은 나에게는 자의식 과잉조차가 폐쇄되었다.

이렇게 한산한데, 이렇게 극도의 권태가 있는데, 동공은 내부를 향하여 열리기를 주저한다.

아무것도 생가하기 싫다. 어제까지도 죽는 것을 생각하는 것 하나만은 즐거웠다. 그러나 오늘은 그것조차가 귀찮다. 그러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눈 뜬 채 졸기로 하자.

더워 죽겠는데 목욕이나 할까? 그러나 웅덩이 물은 썩었다. 썩지 않은 물을 찾아가는 것은 귀찮은 일이고──

썩지 않은 물이 여기 있다기로서니, 나는 목욕하지 않았으리라. 옷을 벗기가 귀찮다. 아니! 그보다도 그 창백하고 앙상한 수구(瘦軀)를 백일 아래 널어 말리는 파렴치를 나는 견디기 어렵다.

땀이 옷에 배이면? 배인 채 두자.

그렇다 하더라도, 이 더위는 무슨 더위냐? 나는 내가 있는 집으로 돌아와서 세수를 하기로 한다. 나는 일어나서 오던 길을 돌치는 도중에서 교미하는 개 한 쌍을 만났다. 그러나 인공의 기교가 없는 축류(畜類)의 교미는 풍경이 권태 그것인 것같이 권태 그것이다. 동리 동해(童孩)들에게도 젊은 촌부(村婦)들에게도 흥미의 대상이 못되는 이 개들의 교미는, 또한 내게 있어서도 흥미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함석대야는 그 본연의 빛을 일찍이 잃어버리고, 그들의 피부색과 같이 붉고 검다. 아마 이집 부인 아주머니가 시집올 때 가지고 온 것이리라.

세수를 해본다. 물조차가 미지근하다. 물조차가 이 무지한 더위에는 견딜 수 없었나 보다. 그러나 세수의 관례대로 세수를 마친다.

그리고 호박 넝쿨이 축 늘어진 울타리 밑 호박 넝쿨의 뿌리 돌친 데를 찾아서 그 물을 준다. 너라도 좀 생기를 내라고.

땀내 나는 수건으로 얼굴을 훔치고 툇마루에 걸터앉았다니까, 내가 세수할 때 내 곁에 늘어섰던 주인집 아이들 넷이 제각기 나를 본받아 그 대야를 사용하여 세수를 한다.

저 애들도 더워서 저러는구나, 하였더니 그렇지 않다. 그 애들도 나처럼 일거수 일투족을 어찌하였으면 좋을까 당황해 하고 있는 권태들이었다. 다만 내가 세수하는 것을 보고, 그럼 우리도 저 사람처럼 세수나 해 볼까 하고, 따라서 세수를 해보았다는데 지나지 않는다.

5

원숭이가 사람의 흉내를 내는 것이 내 눈에는 참 밉다. 어쩌자고 여기 아이들이 내 흉내를 내는 것일까? 귀여운 촌동(村童)들을 원숭이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나는 다시 개울가로 가 본다. 썩은 물, 늘어진 대싸리 외에 아무것도 없다. 그런 나는 거기 앉아서 이번에는 그 썩는 중의 웅덩이 속을 들여다 본다.

순간, 나는 진기한 현상을 목도한다. 무수한 오점이 방향을 정돈해 가면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생물임에 틀림없다. 송사리 떼임에 틀림없다.

이 부패한 소택 속에 이런 앙징스러운 어족이 서식하리라고는, 나는 참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요리 몰리고 조리 몰리고, 역시 먹을 것을 찾음이리라. 무엇을 먹고 사누. 벌레를 먹겠지. 그러나, 송사리보다도 더 작은 벌레라는 것이 있을까!

잠시를 가만 있지 않는다. 저무도록 움직인다. 대략 같은 동기와 같은 모양으로들 그러는 것 같다. 동기! 역시 송사리의 세계에도 시급한 목적이 있는 모양이다.

차츰차츰 하류를 향하여 군중적으로 이동한다. 저렇게 하류로 하류로만 가다가 또 어쩔 작정인가? 아니 그들은 중로(中路)에서 또 상류를 향하여 거슬러 올라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장 하류로 향하여 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하류로, 하류로!

5분 후에는 그들의 모양이 보이지 않을 만치 그들은 멀리 하류로 내려갔다. 그리고 웅덩이는 아까와 같이 도로 썩은 물의 웅덩이로 조용해지고 말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풀밭으로 가보기로 한다. 풀밭에는 암소 한 마리가 있다.

그 웅덩이 속에 고런 맹랑한 현상이 잠복해 있을 수 있다니──하고 나는 적잖이 흥분했다. 그러나 그 현상도 소낙비처럼 지나가고 말았으니,잊어버리고 그만두는 수밖에.

소의 뿔은 벌써 소의 무기는 아니다. 소의 뿔은 오직 안경의 재료일 따름이다. 소는 사람에게 얻어맞기로 위주니까, 소에게는 무기가 필요 없다. 소의 뿔은 오직 동물학자를 위한 표식이다. 야우(野牛)시대에는 이것으로 적을 돌격한 일도 있읍니다──하는, 마치 폐병의 가슴에 달린 훈장처럼 그 추억성이 애상적이다.

암소의 뿔은 수소의 그것보다도 더한층 겸허하다. 이 애상적인 뿔이 나를 받을 리 없으니, 나는 마음놓고 그 곁 풀밭에 가 누워도 좋다. 나는 누워서 위선 소를 본다.

소는 잠시 반추를 그치고, 나를 응시한다.

"이 사람의 얼굴이 왜 이리 창백하냐? 아마 병인인가보다. 내 생면에 위해를 가하려는 거나 아닌지, 나는 조심해야 되지."

이렇게 소는 속으로 나를 심리하였으리라. 그러나, 5분 후에는 소는 다시 반추를 계속하였다. 소보다도 내가 마음을 놓는다.

소는 식욕의 즐거움조차를 냉대할 수 있는 지상 최대의 권태자다. 얼마나 권태에 지질렸길래 이미 위에 들어간 식물을 다시 게워, 그 시금털털한 반소화물의 미각을 역설적으로 향략하는 체해보임이리요?

소의 체구가 크면 클수록 그의 권태도 크고 슬프다. 나는 소 앞에 누워 내 세균같이 사소한 고독을 겸손하면서, 나도 사색의 반추는 가능할는지 불가능할는지 몰래 좀 생각해 본다.

6

길 복판에서 6,7인의 아이들이 놀고 있다. 적발동부(赤髮銅膚)의 반라군(半裸群)이다. 그들의 혼탁한 안색, 흘린 콧물, 두른 베두렁이, 벗은 웃통만을 가지고는 그들의 성별조차 거의 분간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여아가 아니면 남아요, 남아가 아니면 여아인, 결국에는 귀여운 5,6세 내지 7,8세의 <아이들>임에는 틀림없다. 이 아이들이 여기 길 한복판을 선택하여 유희하고 있다.

돌멩이를 주워 온다. 풀──이처럼 평범한 것이 또 있으까? 그들에게 있어서는 초록빛의 물건이란 어떤 것이고 간에 다시없이 심심한 것이다. 그러나 하는 수 없다. 곡식을 뜯는 것도 금제니까 풀밖에 없다.

돌멩이로 풀을 짓찧는다. 푸르스레한 물이 돌에가 염색된다. 그러면 그 돌과 그 풀은 팽개피고, 또 다른 풀과 돌멩이를 가져다가 똑같은 짓을 반복하다. 한 10분 동안니나 아무 말이 없이 잠자코 이렇게 놀아본다.

10분만이면 권태가 온다. 풀도 싱겁고, 돌도 싱겁다. 그러면 그 외에 무엇이 있나? 없다.

그들이 일제히 일어선다. 질서도 없고, 충도의 재료도 없다. 다만 그저 앉았기 싫으니까 이번에는 일어서 보았을 뿐이다.

일어서서 두 팔을 높이 하늘을 향하여 쳐든다. 그리고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러 본다. 그러더니 그냥 그 자리에서들 겅중겅중 뛴다. 그러면서 그 비명을 겸한다.

나는 이 광경을 보고 그만 눈물이 났다. 여북하면 저렇게 놀까? 이들은 놀 줄조차 모른다. 어버이들은 너무 가난해서, 이들 귀여운 애기들에게 장난감을 사다 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하늘을 향하여 두 팔을 뻗치고, 그리고 소리를 지르면서 뛰는 그들의 유희가 내 눈에는 암만해도 유희같이 생각되지 않는다. 하늘은 왜 저렇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푸르냐, 산은, 벌판은 왜 저렇게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푸르냐는 조물주에게 대한 저주의 비명이 아니고 무엇이랴!

아이들은 짖을 줄조차 모르는 개들과 놀 수는 없다. 그렇다고 모이 찾느라고 눈이 벌건 닭들과 놀 수도 없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너무나 바쁘다. 언니 오빠조차 바쁘다.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노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체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놀아야 하나? 그들에게는 영영 엄두가 나서지를 않는 것이다. 그들은 이렇듯 불행하다. 그 짓도 5분이다. 더 이상 더 길게 이 짓을 하자면, 그들은 피로할 것이다. 순진한 그들이 무슨 까닭에 피로해야 되나? 그들은 위선 싱거워서 그 짓을 그만 둔다.

그들은 도로 나란히 앉는다. 앉아서 소리가 없다. 무엇을 하나 무슨 종류의 유희인지, 유희는 유희인 모양인데──이 권태의 왜소 인간들은, 또 무슨 기상천외의 유희를 발명했나?

5분 후에 그들은 비키면서 하나씩 둘씩 일어선다. 제 각각 대변을 한 무더기씩 누어 놓았다. 아아 이것도 역시 그들의 유희였다. 속수무책의 그들 최후의 창작 유희였다. 그런 그중 한 아이가 영 일어나지를 않는다. 그는 대변이 나오지 않는다. 그럼 그는 이번 유희의 못난 낙오자임에 틀림없다. 분명히 다른 아이들 눈에 조소의 빛이 보인다. 아아 조물주여, 이들을 위하여 풍경과 완구를 주소서.

7

날이 어두웠다. 해저(海底)와 같은 밤이 오는 것이다. 나는 자못 이상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배가 고픈 모양이다. 이것이 정말이라면, 그럼 나는 어째서 배가 고픈가? 무엇을 했다고 배가 고픈가?

자기 부패작용이나 하고 있는 웅덩이 속을 실로 송사리떼가 쏘다니고 있더라. 그럼 내 장부속으로도 나로서 자각할 수 없는 송사리떼가 준동하고 있나보다. 아무렇든 나는 밥을 아니 먹을 수는 없다. 밥상에는 마늘장아찌와 날된장과 풋고추조림이 관성의 법칙처럼 놓여 있다. 그러나 먹을 때마다 이 음식이 내 입에, 내 혀에 다르다. 그러나 나는 그 까닭을 설명할 수 없다.

마당에서 밥을 먹으면, 머리 위에서 그 무수한 별들이 야단이다. 저것은 또 어쩌라는 것인가? 내게는 별이 천문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렇다고 시상(詩想)의 대상도 아니다. 그것은 다만 향기도 촉감도 없는 절대 권태의 도달할 수 없는 영원한 피안(彼岸)이다. 별조차가 이렇게 싱겁다.

저녁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보면, 집집에서는 모깃불의 연기가 한창이다.

그들은 마당에서 멍석을 펴고 잔다. 별을 쳐다 보면서 잔다. 그러나 그들은 별을 보지 않는다. 그 증거로는 그들은 멍석에 눕자마자 눈을 감는다. 그리고는 눈을 감자마자 쿨쿨 잠이 든다. 별은 그들과 관계없다.

나는 소화를 촉진시키느라고 길을 왔다 갔다 한다. 돌칠 적마다 멍석 위에 누운 사람의 수가 늘어간다. 이것이 시체와 무엇이 다를까? 먹고 잘 줄 아는 시체──나는 이런 실례로운 생각을 정지해야만 되겠다. 그리고 나도 가서 자야겠다.

방에 돌아와 나는 나를 살펴 본다. 모든 것에서 절연된 지금의 내 생활──자살의 단서조차를 찾을 길이 없는 지금의 내 생활은 과연 권태의 극 그것이다.

그렇건만 내일이라는 것이 있다. 다시는 날이 새이지 않는 것 같기도 한 밤 저쪽에, 또 내일이라는 놈이 한 개 버티고 서 있다. 마치 흉맹한 형리처럼──나는 그 형리를 피할 수 없다. 오늘이 되어 버린 내일 속에서, 또 나는 질식할 만치 심심해 해야 되고, 기막힐 만치 답답해 해야 된다.

그럼 오늘 하루를 나는 어떻게 지냈던가? 이런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으리라. 그냥 자자! 자다가 불행히, 아니 다행히 또 깨거든 최서방의 조카와 장기나 또 한 판 두지. 웅덩이에 가서 송사리를 볼 수도 있고, 몇 가지 안 남은 기억을 소처럼 반추하면서 끝없는 나태를 즐기는 방법도 있지 않으냐?

불나비가 달려들어 불을 끈다. 불나비는 죽었든지 화상을 입었으리라. 그러나 불나비라는 놈은 사는 방법을 아는 놈이다. 불을 보면 뛰어들 줄도 알고──평상에 불을 초조히 찾아다닐 줄도 아는 정열의 생물이니 말이다.

그러나 여기 어디 불을 찾으려는 정열이 있으며, 뛰어 들 불이 있느냐? 없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암흑은 암흑인 이상, 이 방 좁은 것이나 우주에 꼭 찬 것이나 분량상 차이가 없으리라. 나는 이 대소 없는 암흑 가운데 누워서 숨쉴 것도 어루만질 것도 또 욕심나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다만 어디까지 가야 끝이 날지 모르는 내일, 그것이 또 창 밖에 등대하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 오들오들 떨고 있을 뿐이다.

[출처] http://www.jikji.org/%EA%B6%8C%ED%83%9C?highlight=%28%5Cb%EC%86%8C%EC%84%A4_%EA%B0%88%EB%9E%98%5Cb%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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